〈 139화 〉 마법전
* * *
'저 새끼는 또 뭐야.'
평소운 박사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운이 좋다며 내심 쾌재를 지르기도 했다.
이미 다 끝난 상황이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몇 가지 질문 좀 하겠다.
그런 식으로 말하며 접근한 헌터 따위, 얼마든지 구워삶을 수 있으리라 여겼으니까.
허나.
'병신인가?'
이론과 이치, 합리와 수식의 세계를 살고 있는 평소운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왜 화를 내는 거지?
자신이 몸담은 조직,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가 제공한 데이터만 봐도 일목요연한 사실.
현생 인류의 힘으로는 규격 외 등급 몬스터를 쓰러뜨릴 수 없다.
그렇기에 항복했다.
뭐, 배신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고작해야 그 뿐.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앞두고 싸움을 고집하는 건 단순한 우행에 지나지 않는다.
무작정 맞서 싸우는 게 멋지다 생각할 나이도 아니지 않은가.
평소운 박사로서는 오히려 왜 화를 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거 참 고고하시군."
그렇기에, 당장엔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뭐,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애초에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감각에 가까웠으니.
거리는 10m 내외.
솔직히 말해, 상황은 엄청나게 나쁘다.
자신이 설립한 시설이라 하나, 지금은 저 쪽에게 허를 찔린 모양새.
당연히 시설 내에 설치된 함정들 또한 별다른 영향을 주진 못했다.
발목을 잡아채는 수준이나 되었다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시간 벌이로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거기서 정지."
"엉?"
그렇기에, 평소운 박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박우찬을 향해 당당히 그런 요구를 던질 수 있었다.
전사와 마법사, 사냥꾼과 연구직.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십중팔구 전자다.
그러나.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
요격할 준비 따위, 박우찬이 연구동에 발을 들인 시점에서 이미 끝났다.
"자, 내가 지금 손을 올리고 있는 키보드. 이건 도대체 뭘까요?"
"연구실 메인 컴퓨터랑 연결된 물건이겠지."
"그럼, 화면에 뜬 이 명령어들은?"
"봐도 어차피 못 알아먹어."
"……정말이지, 귀여운 맛이 없다니까."
나지막이, 한숨.
마치 문제아를 바라보는 듯한 평소운의 모습에 박우찬은 조용히 어깨를 좁혔다.
방심이라고 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여유를 부린다고 해야 할지.
어느 쪽이든, 방자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뭐, 좋아요. 못난 애 떡 하나 더 준다고, 그 정도는 설명해 주지 뭐."
이윽고, 평소운은 느릿한 목소리로 자신이 이룬 연구 성과를 설명했다.
예를 들면, 이 연구소.
도시에서 사용하는 용맥의 찌꺼기를 모아 축적한 마법사의 영역.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설계된 풍수도참형 연구동.
추가로, 조직에 몸담으며 익힌 새로운 지식들까지.
즉.
"내가 지금 이 키를 누르면, 어머나 세상에. 여태까지 저장한 마력들이 다른 연구실로 흘러들어간답니다?"
"흠."
"그렇게 흐른 마력이 각 연구소 내에 비치된 시설과 접촉하면, 급격한 반응이 일어나고."
"급격한 반응?"
"바로 그거야."
따악, 손가락을 튕기는 평소운 박사.
과연 그 말엔 박우찬이라 해도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응집된 마력.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급격한 반응.
비록 마력 공학 이론에 대해선 일자무식에 가까운 박우찬이었으나, 세간에서 저런 현상을 무어라 부르고 있는 건진 알고 있었다.
"게이트?"
"정답."
자신이 지금 키보드를 건드리기만 하면, 주변 일대에 임시 게이트가 발생한다.
눈 앞의 평소운 박사는 그리 주장하고 있었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인공 게이트.
수많은 연구자들이 지향하는 목표지이자 도달점.
게이트 내에서 발생하는 몬스터를 제거하고 희소 자원만 적출할 수 있다면, 당면한 자원 문제를 거의 해결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땐 영토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겠지.
방금 전 평소운 박사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마력 공학 업계에 있어선 정말로 위대한 한 걸음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박우찬은 마력 공학 연구자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해 보던가."
"뭐?"
잠깐 고민한 끝에, 그렇게 말했다.
아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진 알겠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도시 주변에 게이트를 여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러니 나를 건들지 마라.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거겠지.
확실히, 그 말이 사실이라면 위험할 법도 했다.
마법사이며 연구자에 지나지 않는 평소운 박사가 지나칠 정도로 여유를 부리던 모습도 바로 저기에서 기인한 거겠지.
그렇지만.
평소운 박사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 손으로 빚은 최고의 실패작.
인류 최강의 헌터가 이 작전에 참여했다는 것이 과연 무슨 뜻인지를.
아니, 그 이전에.
"해 보라고."
헌터라는 직종을 얕보고 있다.
마법사의 영역.
거의 던전과 가까운 불법 연구동.
하물며, 이번 작전에 동원된 헌터들은 알지 못했지만 이 연구소의 배후에는 신세계 질서가 있다.
때문에, 박우찬과 이준구는 귀찮을 정도로 헌터들을 닦달했다.
고작해야 연구소 진압.
그렇게 생각하는 일 없도록, 제대로 된 전투용 무장을 챙기라고 신신당부한 지금.
"아니, 그 말을 듣고 댁을 놓아줄 리 없잖수."
앞으로 몇 개나 되는 인공 게이트를 양산할 수 있다 주장하는 기인.
이제 와서 놓아줄 리가 있나.
할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 박우찬은 걸음을 멈췄다.
거기에 더해, 팔짱을 끼는 모습까지.
평소운 박사는 지금 박우찬이 내비치는 자신감의 근거를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허세라는 게 들켰나?'
확실히, 평소운 박사가 준비한 함정은 그렇게 정교하진 않았다.
영구적인 게이트 형성에는 도저히 못 미칠 수준에 불과하지.
명명하자면 임시 게이트라 칭해야 할까.
말 그대로, 핵심 연구동에서 흘려보낸 마력이 잔존하고 있을 때까지만 주둥이를 벌릴 수 있는 물건이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평소운 박사는 결론을 내렸다.
도시가 잠든 새벽.
서광이 움트는 아침을, 피와 폭력으로 도색하는 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냥꾼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냥꾼이 달려드는 속도와 자신이 키를 누르는 찰나.
어떤 의미로는 서부극의 빨리 뽑기Quick Draw 승부나 다름없는 결말이 될 거라 예상했던 그녀로서는 다소 의외인 반응이었다.
……아니, 어쩌면 정 반대일지도 모른다.
빠득, 하고 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평소운 박사가 자신도 모르게 턱을 꽉 깨문 탓이었다.
'저 새끼, 나를 무시하고 있는 건가?'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지향하는 목표.
아무리 평소운 박사라 해도 벌써부터 인공 게이트 발생 기술을 확립했다니, 믿을 수 없다고.
저 놈은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가?
……부글부글, 부글부글.
내장이 불타는 듯한 착각.
자신에 대한 멸시와, 거기에 응하지 못한 굴욕.
이 조직에 발을 들인 이후, 어쩌면 그 이전부터 쌓이고 쌓였을 감정이 불시에 폭발했다.
"이 개새끼가!!"
그리고.
평소운 박사는 키를 눌렀다.
협상. 공갈.
어느 쪽이든 상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평소운 박사의 머릿속에 가득 찬 건자신을 괄시하고 있는 박우찬에게 스스로의 실적을 증명하는 일 뿐이었다.
'저 양반은 갑자기 또 왜 저래?'
물론 박우찬으로서는 뜬금없는 발작에 지나지 않았지만.
허나, 효과는 확실했다.
삐비비비빅!! 삐비비비빅!!
연구동 안.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스크린 너머로, 온갖 경고 메세지가 출력된다.
범람하는 마력.
중앙 연구동을 중심으로 흘러넘친 마력의 파도가, 각 연구실을 향해 쏟아진다.
그렇게 방사된 마력이 각 연구동에 비치된 마법과 접촉.
이윽고, 풍수도참의 묘리로 건설된 연구실이 자율적으로 마법을 기동한다.
본래는 각 연구동과 연계해 신도심 위로 거대한 게이트를 발생시키기 위한 장치.
말 그대로, 박우찬의 존재에 쩔쩔매고 있던 조직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반등시키기 위한 프로젝트.
하지만.
반쯤 억지로 기동한 마법은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진 못했다.
도시를 붕괴시키고 아카데미를 날려버릴 초대형 몬스터의 소환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신도시에 살고 있는 인구 전원을 지상에서 말소해버리는 데엔, 오히려 초대형 몬스터보다 낫다.
이제 곧 연구소 각지에서 범람한 몬스터들이 도시의 새벽을 피로 물들이겠지.
그 사실에, 평소운 박사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나왔다.
"하,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자, 봐라!!
내가 뭐라고 했냐, 된다고 했었지?!
날 무시한 놈들, 내 실력을 의심한 놈들.
그리고 내게 가능할 리 없다 생각하고 무시하던 놈들.
전부 뒈져라.
나는 평소운이야.
평소운 박사가 바로 나다.
내게 있어 이 정도 과제는 정말로 간단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렇게 가가대소하려던 평소운의 눈이 문득 멈췄다.
박우찬.
방금 전부터 멀뚱멀뚱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 사냥꾼의 모습 때문이었다.
설마 지금 이 상황에서 저 스크린이 무얼 의미하고 있는 건지 설명해 주어야 하나?
잠깐이나마, 평소운 박사는 그리 번민했다.
그렇지만, 박우찬이 지금 저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건 다름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평소운 박사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하고 말고 이전에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건지 가늠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박우찬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평소운 박사의 말이 전부 사실이고, 정말로 인공 게이트 발생 기술을 확립했을 경우.
그런 상황을 가정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운 박사의 마음을 완전히 꺾어놓기 위하여.
확실히, 평소운 박사는 천재다.
스크린 너머로 표시된 각 연구동들과, 그 위로 시시각각 늘어나며 점멸하는 붉은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니, 굳이 지켜보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박우찬의 능력이 있다면, 지금 이 장소에서도 연구동 전역에 나타난 몬스터들의 숫자를 셀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므로.
평소운 박사의 자격지심과는 다르게, 박우찬이 움직이지 않은 이유는 단 둘.
첫째로는 지금 여기서 자신이 움직였다간 평소운 박사가 아닌 몬스터들을 잡으러 갈지도 모르겠다는 점.
둘째로는 애시당초 자신이 움직일 필요도 없다는 점이었다.
박우찬은 사냥꾼이다.
헌터들을 믿는 건 사실이지만, 헌터들을 신뢰한다는 이유로 게이트 발생을 좌시하는 도박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지금 박우찬에게는 내버려두어도 괜찮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었다.
평소운 박사의 만행을 좌시해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100% 이상의 자신감.
즉,인류 최강이라는 으뜸패다.
비비비비빅, 비비비비빅…….
"뭐, 뭐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광란하듯 발작하고 있던 스크린 너머의 붉은 점들이, 빠르게 소거당한다.
끊임없이 포효하던 연구소 내의 경고음도, 점차 잦아들어간다.
무언가의 오류 따위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쿠르르르릉!!
점멸하는 점. 다시 말해 몬스터.
깜빡이는 경고등. 다시 말해 대피 신호.
도시 외곽 지하에서 발생한 모든 소란을, 천둥이 덮어씌웠다.
새벽 하늘을 찢어가르는 우레.
한 순간, 벼락이 친 연구동 일대의 모든 몬스터들이 소멸했다.
그렇게 한 번.
눈을 깜빡이는 사이, 나머지 모든 연구동에서 나타난 몬스터들이 전멸했다.
바야흐로 뇌신.
문자 그대로의 뇌속으로 질주하는 인류 최강에게, 수만 많은 어중이떠중이 따위.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불사를 수 있다.
"나 참, 어이가 없네."
그 광경을, 박우찬은 그렇게 평했다.
어처구니없는 무력.인류 최강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폭력.
그런 게 아니었다.
'백면서생, 책상물림이라 해도 한도가 있지.'
하다못해 A랭크 드래곤조차 특유의 위엄Fear 덕택에 단순한 물량전으로 밀어낼 순 없다는 판국이다.
S랭크는커녕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괴물을 고작해야 숫자만 채운 잡졸 따위로 금족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싸움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만.'
뭐, 덕분에 부담은 덜었다.
다시금 침묵이 찾아든 연구실.
자박, 자박.
끼고 있던 팔짱을 풀며, 박우찬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스크린을 올려다보고 있던 평소운 박사의 시선이 박우찬을 향한다.
가장 먼저 그 눈에 깃든 건, 공포.
다음으로 그 눈길에 깃든 건, 억울함.
마지막으로 그 눈동자에 깃든 건, 분노.
자신이 어째서 이토록 불합리한 상황에 처한 건지 알 수 없다는 듯, 눌어붙은 감정이 번들거린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박우찬은 대검을 꺼냈다.
도저히 대인전에 적합하진 않을 듯한 생김새의 거병.
물론 전투에 대한 경험이 없는 평소운 박사에게는 우악스러운 죽음으로밖에 보이지 않겠지.
자신도 모르게, 피식 하고 박우찬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던 탓이다.
그리고.
카앙!
손잡이를 놓았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소 바닥에 떨어진 대검은 그대로 연구실의 바닥을 꿰뚫고 꽂혔다.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손목을 돌리던 박우찬.
그의 시선에 맞추어 이리저리 움직이던 평소운의 눈동자가, 다시 한 번 의문을 품는다.
그렇지만.
박우찬의 목적은 처음부터 일목요연했다.
평소운 박사의 사정을 들은 이후, 줄곧.
즉.
"뭐, 여기서 칼질 한 방에 끝내는 건 너무 재미없고."
"재, 재미?"
"뜰까? 아줌마."
"뭘?"
"마법전."
헤 하고 평소운 박사가 입을 벌렸다.
말 그대로, 박우찬은 평소운 박사의 정신을 완전히 박살낼 생각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