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미친 연구자의 푸념
* * *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상황에 접어든 시점에서 내 승리는 요지부동이나 다름없었다.
연구동 가장 깊은 장소에 자리잡은 연구실.
만일 평소운 박사가 갑자기 발광을 시작한다 할지언정, 당장 이 간격이라면 내가 칼침을 꽂는 게 먼저다.
전사와 마법사.
나아가서는, 사냥꾼과 연구자란 바로 그런 관계니까.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있는 평소운 박사의 표정은 썩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화장빨 운운했을 땐 잠깐 무너지긴 했지만.
'허세?'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허세가 아니었을 경우…….
어느 쪽이든, 별다른 문제는 없다.
내겐.
문제는 다른 연구동 쪽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조금은 심사숙고할 필요가 생겼다.
뭐, 막말로 일이 생기고 난 다음 제압해도 늦진 않겠다만.
본디 사람이란 몸이 부족하면 머리가 고생하는 법이다.
때문에.
슬쩍 팔짱을 낀다.
의식 너머로 능력을 퍼트린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나를 중심으로 발산된 능력이 지하 연구동을 통째로 장악한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평소운 박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쭈?'
눈치채지 못했을 리는 없겠지.
당장 나와 같은 능력을 보유한 당사자니까.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여유를 부린다는 건 확실히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아니, 이젠 다 틀렸다고 자포자기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그런 의미에서 묻겠는데, 이미 다 끝난 상황이라는 건 아시죠?"
"글쎄?"
"꿀밤 마려우니까 허세는 부리지 마시고. 뭐, 어쨌든 몇 가지 질문이나 좀 할까 하는뎁쇼."
"……흐음?"
내 말에 평소운 박사는 조용히 말꼬리를 잡아늘렸다.
어지간히 의외였던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물어볼 게 있다 말하는 나도 나지만, 평소운 또한 기묘한 반응을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런 말을 할 거라곤 그야 예상하지 못했겠지.
그렇지만, 평소운의 반응은 마치 연구 발표회에서 질문이 있다며 손을 들어올리는 블루 칼라를 보는 듯했다.
빡대가리 멸시, 멈춰!!
"의외로구나."
"개인적인 궁금증이 있어서 말입죠."
"그래, 얼마든지. 서로 남는 게 시간일 테니."
"어, 일단 지금 진압 작전에 이준구가 한 몫 끼고 있다는 건 아십디까?"
"아?"
……조금 놀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유자적한 얼굴을 하고 있던 평소운 박사가 돌연 얼굴을 종잇장처럼 구겨버린 탓이다.
흠, 예상 밖인데.
이준구 쪽이야 어쨌든, 평소운 박사야 기껍게 여기지 않을까 생각했건만.
연구자라는 건 그런 인종이고.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녀석이 나타났다는데 하필이면 저런 반응이라니.
그야 이준구가 참여한 시점에서 어떻게 해도 도망칠 가능성 따위는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 가지 착각하고 있군."
허나, 평소운 박사는 그런 내 말에 이견을 달았다.
불편하다는 듯 품에서 꺼낸 담배갑에서 돛대를 꺼내는 평소운 박사.
나이는 나보다 많은 주제에,액면가는 우리 애들이랑 비슷한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녀가 담뱃불을 당기는 모습은 무어라 말하기 힘든 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자리잡은 건 이 나라의 그림자 뒤에서 정부를 지탱한 노괴였다.
애시당초 이런 상황에서 담배는 몸에 나쁘다고 말하기도 좀.
공익 광고도 아니고.
이윽고 잘근잘근 필터를 씹으며 연초를 태우던평소운은, 짧은 말투로 그리 첨언했다.
"놈은 내가 만든 성공작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처절한 실패작이지."
눈도 높네, 그렇게 말해야 할 상황일까.
다만, 이해할 수는 있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이준구는 인류 최강의 헌터다.
수많은 헌터들이 나날이 죽음을 맞이하는 이 시대에, 그 정점에 선 유일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녀석의 모습으로부터 별을 꿈꾸기 마련이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녀석의 힘은 타고난 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손에 넣은 것.
몸에 맞지 않는 개조와 우스꽝스러운 능력을 어떻게든 사용하고자 끊임없이 갈고닦은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연구자인 평소운에게 있어선 예상 외의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카탈로그 스펙과 다른 성능이 나온 셈이니.
그제서야 조금 알 듯도 했다.
이 여자, 이준구가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아서 싫어하는 게 아니다.
물론 그 쪽도 없잖아 있겠지.
대한민국 마력 공학계의 거두, 평소운 박사가 이런 지하실에서 기재나 깔짝이고 있는 건 바로 녀석 때문일 테니까.
단지.
그보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이야기.
아마도 평소운 박사는 단순히 이준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다.
자신을 쫓아낸 이준구를 미워하는 이유 또한 바로 그 일환이겠지.
본인이 예상한 카탈로그 스펙에 따르면, 이준구는 인류 최강이라 불릴 그릇이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최강이라 불린 끝에, 마침내 평소운 박사를 쫓아낸 이준구.
평소운 박사는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리라.
감히?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렇게 되겠지.
평소운 박사는 어디까지나 연구자.
이준구를 비롯한 실험체들을 마구잡이로 다뤘던 이유 또한 그 일환이다.
결국 이 녀석들은 실험체니까. 실험 동물에 지나지 않으니까.
내게 이를 드러낼 수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끝에 내던진 실패작이, 이제 와서 자신에게 발톱을 드러내다니.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이 이렇게 추락해버릴 줄이야.
말하자면, 끼니를 때우려고 대충 끓인 라면이 토핑 좀 넣어 먹으라고 국물을 끼얹은 셈이다.
그야 빡치겠지요~
그러니 이렇게 사실 확인만 들어도 열이 확 뻗치는 거고.
이래서야 원,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까지 미리 가불해 들은 기분이었다.
뭐, 묻긴 할 거지만.
"다시 말해, 박사님의 화려한 도주 계획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이 말인뎁쇼."
"흥. 처음부터 도망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어이쿠, 과감한 발언. 아니, 그거야 어쨌든. 그런 상황이니 할 수 있는 말인데……."
"아?"
"왜 신세계 클럽인지 뭔지 하는 조직에 가입한 겁니까?"
평소운 박사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숫제 병신 하나를 보는 듯했다.
"너 바보냐? 그야, 이준구 그 놈이 나를 쫓아냈기 때문이지."
"바로 그겁니다."
"뭐?"
"내가 알고 있는 이준구는 그럴 놈이 아니거든요."
공교롭게도, 그 놈은 물러빠진 자식이다.
법과 질서, 정의에 엄격하지만 그 근간은 본인이 허술하기에 최대한 스스로를 다잡고 있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헌터가 되겠단 말 따위는 하지 않겠지만.
놈은 타인의 비극에 엄격하다.
반대로, 자신의 비극엔 허술하다.
까놓고 말해, 녀석이 인공 헌터 개발 프로젝트의 담당자들을 쾌척한 데에는 얼마나 되는 사감이 섞여 있었을까?
없지는 않았겠지.
어, 대충 10% 정도?
내가 봤을땐 딱 그 정도다.
대침공 당시의 필요악.
그러나 지금은 이 나라의 암적인 존재가 될 연구자들의 업보를 미리 청산하기 위해서.
나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일찍이 녀석 또한 말하지 않았던가.
프로젝트 담당자들은 전부 옷을 벗었다고.
반대로 말하자면, 과거 그런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셈이다.
'씨발, 나라면 죽였어~'
어, 아마도?
하여튼, 그런 만큼 나로서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이준구가 정말로 평소운 박사에게 악의를 가지고 내쫓으려 들었을까?
솔직히 말해, 악의를 가져도 당연할 사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에는 이준구가 그렇게 행동하는 모습이 도통 그려지질 않았다.
"바보같은 소리를 하는군."
실제로, 평소운 박사의 대답 또한 내 예상과 어긋나지 않았다.
"그럼 내가 이 나이 먹고 울며불며 애원이라도 할까? 제발 자르지 말아 달라고?"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뇨?"
"뭐? 야,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사과해야 할 일이었다고?"
다만.
아무래도 평소운 박사의 생각은 나와 다른 모양이었다.
"나 참, 이래서 애들은."
"늙은 게 자랑은 아닌데."
"닥쳐! 애초에, 뭘 안다고 떠드나!!"
격분한 평소운 박사의 발 밑으로 방금 전 빼물었던 돛대가 힘없이 나동그라졌다.
방금 막 누운 사람조차 눈을 뜨게 만든다는 돛대.
그렇지만 당장 평소운 박사의 눈에는 차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세간에서는 그리 떠들지. 제 2차 대침공에 비하면 제 1차 대침공은 귀여운 수준이었다고!"
"허어."
"그렇지만 당시 사람들이 받았던 충격은 제 2차 대침공을 한참이나 상회하고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갑자기 나타난 구멍에서 괴물들이 쏟아졌으니까."
"그리고 우리들은 그 시대에 있어 구원자였다. 마력을 해명했고, 마법의 구조를 재현했지."
그렇게 말하는 평소운 박사는 마치 자신의 말에 도취된 듯 보이기도 했다.
"수많은 군인들에게 싸울 수단을 선물했고, 망국을 피하기 위해 그림자 속에서 헌신했어!"
"거 참 감동적이군."
"헌데, 감히 그런 말을 한단 말이냐? 우리가 흘린 피와 땀 위에서 살고 있는 너희들이?"
아니, 나는 딱히 댁들한테 신세 진 적도 없는데.
가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몬스터 한 마리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골 마을의 정경을 떠올린다.
최근엔 무 농사가 잘 되냐 배추 농사가 잘 되냐 물으시길래 브로콜리라고 답했더니 뭐라고 한 소리 들었었지.
다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여기에서 그런 말꼬리 잡기나 하는 건 시간 낭비라는 사실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사회의 법률이 무너졌고, 도덕과 정의가 붕괴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섰던 게 바로 우리들이야!!"
"눈물겹네."
"우리가 악이라 하면 우리는 필요악이다. 우리가 약이라 하면 우리는 극약이었어!! 이 나라에 필요한 극약!!"
"시인이쇼?"
"하늘 아래 어느 누구도 우리를 악이라 단정 지을 수 없거늘, 감히 그 꼬마가 우리에게 사죄를 요구해!!"
짐승 새끼들조차 서로 영역을 침범하면 사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고 말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우리가 이 나라를 바로 세웠다. 무너진 법과 선의를 다시 만들었어. 우리가 법이었고, 우리가 선이야!!"
거기까지 일장연설을 토한 평소운 박사는 어깨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참으로 감동적인 연설이라 박수라도 쳐 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야 많지만, 그럼 그 다음은?"
"아?"
"자존심 상해서 거기까진 못 하겠고, 그래서 나갔고. 그럼 왜 비밀 조직 따위에 들어간 거요?"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말이야 저렇게 했어도 평소운이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타입은 아니지 않은가.
그 정도는 나도 평소운도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이제 와서 평소운이 조직에 들어간 이유 따위를 모르겠다.
정나미가 떨어져서?
돈이 없어서?
아니, 벌어들인 돈만 얼마인데.
구태여 새로운 연구 따위를 시작한 게 아니라면 이제 와서 돈이 부족할 일은 없다.
반대로,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던 거라면 차라리 이준구에게 고개를 숙이는 편이 낫다.
도대체 무얼 위해서 평소운은 예의 조직에 발을 담근 걸까.
이준구에 대한 복수?
그렇다 말하기엔 다소 묘한 반응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했더니, 어처구니없는 질문이군."
"어, 비교적 합당한 의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해라. 내가 지도교수였다면 틀림없이 낙제점이었을 거다."
마치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처럼, 평소운은 그렇게 말한다.
"내가 이 조직에 들어간 이유? 그야 간단하지."
"흠?"
"그게 옳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과제 채점이라도 하듯이, 평소운 박사는 그런 말을 했다.
"뭐?"
"아니, 수치 보면 알잖아? 너, 여기까지 온 걸 보면 규격 외 등급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겠지?"
"그, 그렇긴 한데."
"허면 왜 그렇게 당연한 질문을 한 거지?"
"당연한 질문?"
"현생 인류로서는 규격 외 등급 몬스터를 쓰러뜨릴 수 없다."
뒤이어, 당연하다는 듯 첨언이 따라붙었다.
"물론 두 번의 대침공은 달랐지. 인류 측이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우선권."
"그래. 그러니 규격 외 등급 몬스터가 해방되기 전에 먼저 둘을 매장할 수 있었다."
"세 번째에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당연하지. 애초에, 매장했다 한들 실제론 다시 봉인 지점에 쑤셔넣었을 뿐이니까."
이해할 수는 있었다.
요컨대, 그런 이야기.
제 1차 대침공.
문영석이 건넨 정보에 따르면, 에트나 화산 밑에서 눈을 뜬 '괴물의 아버지Typhon'.
제 2차 대침공.
마찬가지로 문영석이 건넨 정보에 따르면, 아타카마 사막에서 기립한 '별을 멸하는 거신Tunupa Tarapaca'.
비유하자면, 놈들은 게이트 밖에 팔 한 쪽을 내밀고 있었을 뿐이다.
인류가 한 일이라고는 거기에 바늘을 찔렀을 뿐.
그러자 깜짝 놀란 녀석들은 다시금 게이트 안으로 팔을 잡아당겼다.
그런 이야기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흠."
"그럴 리가 없지. 정치가들은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알고는 있었다.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니라, 자신이 홀로 좋은 성적을 냈다고 좋은 결말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좋은 결말을 맞았다고 해서 그대로 엔딩 롤이 올라오는 게 아니라, 남은 현실은 그런 결말 이후에도 추적추적한 암운을 드리운다.
하물며, 쓰러뜨렸다 한들 온당한 결말이 찾아올 법한 마왕이나 절대악도 없다.
현실이 게임이 아니라고 한다면, 리셋 버튼이 아니라 엔딩 롤이 없기 때문.
그런 만큼,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정치가들이 인류를 등진 건 사실이다.
허나, 이 모든 일이 그들의 사욕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건 아무래도 현실성이 없다.
정계. 재계. 그리고 헌터 업계.
사회의 각종 분야에서 조직을 지원하는 전원이 인류를 배반하기로 마음먹은 배신자들이라고?
니미, 을사오적도 다섯 명이다.
그럴 리가 있나.
사욕을 챙기려는 마음도 없진 않겠지.
하지만, 인류를 배신한다는 대죄를 짓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동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명분이.
요컨대, 그런 이야기.
대한민국의 정치가들은 인류의 선을 위하여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그 자리를 맡은 거다.
그렇기에.
'이 나라를 보존하려는 건가.'
전 인류를 배신하고, 나라를 팔아넘기는 형태가 되더라도.
……물론 칭찬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의문은 풀렸다.
"선의나 굳게 마음을 먹는다고 적들이 멋대로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그야 좋겠지."
"……."
"그렇지만, 꼬마야. 여기에 있는 건 현실이란다. 냉정하고 합리적인 현실!"
다만.
저렇게 말하는 꼴은 역시 못 들어주겠지 싶었다.
"거 참, 더럽게 시끄럽네 아줌마."
"뭐, 뭐?!"
"더럽게 시끄럽다고 말했소."
아니, 그야 놀라긴 했다.
그런 사정이 있었다니, 라고 생각한 기분도 없지는 않다.
나름 그런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정치가들에 대한 연민도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거야 사정을 참작할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지, 저들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씨발, 나쁜 짓 했으면 나쁜 거지 뭐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게다가.
"아줌마는 자기 결과물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뭐라고?"
"막말로 그거야 그 쪽 사정이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신세계 질서라 불리는 집단은 규격 외 몬스터의 강림지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상층부 중 일부는 이들에게 땅을 제공하기로 했다.
언젠가 제 3차 대침공이 발생할 바로 그 날, 안전을 담보로 받기 위해서.
그렇지만.
땅을 제공한 건 제공한 거고, 과연 정말로 대한민국 국민은 안심할 수 있을까?
놈들이 약속을 지킬까 어떨까 하는 기본적인 의문은 제쳐두더라도.
막말로, S랭크 몬스터가 전력으로 움직이면 천둥이 칠 지경인데?
내 생각에, 규격 외 몬스터가 강림하는 순간 최소 대한민국 인구 중 절반은 쓸려나갈 거다.
하물며.
"핑계 대지 마, 이 양반아~"
"핑계?"
"무슨 사정이 있었다 한들, 결국 댁들이 한 행동은 나쁜 짓이라고. 알간?"
"나, 나쁜 짓?"
너무 유치한 단어 선정에 과연 평소운 박사라 해도 얼빠진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어쩔 수 없었다.
딱 어울리는 표현이고.
그야 무서울 수는 있었겠지.
싸울 힘이 없으니까.
가장 먼저 죽어나가는 건 자신들이 아닐까 두려워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계획이 시동한 시점에서 차선의 미래라도 쟁취하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였을지도 모르고.
단순히 놈들에게 받은 카탈로그 스펙을 보고 지레 겁을 집어먹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만한 세력이 참가하고 있는 와중에 자신만 발을 빼도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는다던가.
혹은, 그러므로 자신의 목숨이라도 건사하고자 발악했던 걸지도 모른다.
알 바냐, 씨발.
힘이 없어서, 무서워서.
두려우니까, 겁을 먹어서.
그래서 대신 싸워주고 있던 놈들 등에 칼빵 꽂겠다는 새끼들을 나보고 이해해 주라고?
미친, 너희 쪽이야말로 우리를 이해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하물며.
"현실 현실 가오 잡지 마쇼, 우리들 중 그거 하나 모르는 사람 없으니까."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니다.
리셋 버튼이 아니라, 엔딩 롤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홀로 좋은 성적을 냈다고 해서 좋은 결말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좋은 결말을 맞았다고 해서 그대로 엔딩 롤이 올라오지도 않는다.
남은 현실은 그런 결말 이후에도 추적추적한 암운을 드리운다.
하물며, 쓰러뜨렸다 한들 온당한 결말이 보장된 마왕이나 절대악도 없다.
'씨발, 그게 뭐?'
알고 있다.
그거 하나 모르고 헌터 하는 새끼들이 있나?
있다 해도 곧 관두는 게 대부분이겠지.
그러니까.
그런데도 싸우기로 한 거다.
불합리한 폭력.
틈만 나면 이를 들이대는, 몬스터의 거죽을 쓴 부조리한 현실과.
현실 운운하면 멋있는 줄 아는 거냐?
막말로, 그딴 현실은 너희 같은 탁상물림보단 우리 쪽이 더 잘 알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싸우기로 결정한 거다.
놈만 해도 그렇다.
눈 앞의 연구자가 실패작이라 폄훼한 인류 최강의 헌터, 이준구.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놈은 뇌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무엇보다도 강하게.
불합리한 폭력을, 그 이상의 힘으로 짓누를 수 있도록.
무엇보다도 빠르게.
부조리한 현실에, 늦지 않고 손을 내밀 수 있도록.
물론 그렇다 해도 마찬가지.
벼락과 같이 당도해, 신?과 같은 힘을 휘둘러도 지금 이 시대에 흘러넘치는 비극과 눈물을 모조리 닦아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만큼은불합리한 폭력과 부조리한 현실에 뒤쳐지지 말자.
그 쪽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니까.
그런 마음을 담아 작성한 시그니처 때문이다.
……현실적으론힘들다는 이유를 들어 포기하는 게 편하다는 걸 세상 천지 누가 모르겠나.
허나 어찌하리오.
사냥꾼이란 놈들은 대개 꼴통이라 그런 걸 알고도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을.
그리고 단순히 몬스터를 죽이고 싶어서 헌터가 되기로 결정한 내겐, 그 쪽이 훨씬 더 멋있게 보였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런 건 결국 타협에 지나지 않는다.
스스로가 타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속이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사자 또한 알고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 또한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이유, 말할 수 없는 사연이라는 녀석도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최소한 그럴 거라면 타협하지 않는 사람을 현실도 모르는 꼬맹이라고 비하하면 안 되지."
하물며 너희들을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을.
"수치를 모르나, 늙은이."
나야 괜찮다.
일단 죽이고 싶어서 죽이고 있을 뿐이고.
다만, 가해자 측인 평소운이 피해자인 이준구에게 뻔뻔한 얼굴로 저리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개빡치네.'
아니, 내가 와서 다행이야 이거.
당사자인 이준구가 들었다면 도대체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뭐, 두 번 다시 말할 기회는 없겠지만.
"아지매, 미음 좋아하쇼?"
"어?"
"싫어해도 마음 붙이려 노력하는 게 좋을 거요. 앞으로 남은 평생 미음만 먹으면서 살아야 할 테니까."
능력의 예열도 끝났다.
혹시나 싶어 물었던 사실도, 지금에 와선 단순한 시간 낭비라고 느껴질 뿐이었다.
미친 연구자의 푸념 따위, 듣는 게 아니었는데.
당장에라도 귀를 씻고 싶은 기분과 함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 새벽도 밝고 있으니.
슬슬 이번 일도 끝낼 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