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미친 연구자의 푸념
* * *
허면, 평소운 박사라는 개인에 대해서.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가 평소운 박사라는 인간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다.
대침공이 시작될 당시 이미 성인이었던 박사가 곧바로 마력 공학 쪽에 투신했다는 점 정도?
글쎄,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은 건지 아니면 뭔지.
어느 쪽이든, 덕분에 평소운 박사는 대한민국 마력 공학 업계에서 이름만 들어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미국 쪽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대한민국의 실정에 맞는 온갖 연구를 지도.
이후, 사실상 미국의 주도로 설립된 본격적인 마력 공학이라는 학문을 대한민국에 이식한다.
이런 공적으로 인해, 각종 정부 주도 프로젝트에 참여.
그 끝에 마침내 인공 헌터 제작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었다.
허나, 승승장구하던 인생도 거기까지.
사실상 별다른 진척이 없던 연구를 완성시키기 위해 비도적인 수단에도 손을 댄다.
후일 이런 점에서 덜미를 잡혀 이준구와 정부 사이의 협상 끝에 연구소가 해체될 당시 책임을 떠안고 사임.
그 뒤로도 줄곧 대한민국 역사에서 자취를 감춘다.
뭐, 업적이야 대단하지만 저렇게 대대적으로 저질러서야.
과연 어느 누구도 보호해 줄 수 없었겠지.
실수로 그 추태가 드러나기라도 했다간 자신까지 순식간에 나가리일 테니까.
그렇게 자취를 감추었던 평소운 박사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건 그런 부분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집단.
즉,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의 수석 연구원으로서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전말이라고 해야 할까.
일찍이 한 나라를 지탱했던 연구자라 하기엔 비참한 그 결말도, 어떤 의미로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였다.
허면.
여기까지는 연구자로서의 평소운 박사에 대한 이야기.
그렇다면, 게이트의 영향을 받아 능력에 눈을 뜬 능력자로서의 평소운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제 1차 대침공 당시, 이미 성인이었던 평소운 박사.
덕분일까?
평소운 박사는 제 1차 대침공에서 스스로의 몸을 건사하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여기에는 당시 평소운 박사를 덮쳤던 게이트로부터 선사받은 능력도 제 몫을 톡톡히 했겠지만.
마력 감응.
다시 말해, 평소운 박사는 나와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마법사겠지.'
전공을 생각해 보면 훤하다.
마력 공학.
마력이라는 물질이 가진 힘을 규명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말이야 길지 요컨대 마력이 뭔지 알아보는 학문이다.
제 1차 대침공 당시엔 마력이라는 신 에너지 자원이 도대체 어떤 물건인지 그 정보조차 없었으니까.
지금이야 물건에 마력을 새긴다느니, 마법을 부린다느니 하고 있었지만 당시엔 그런 분류도 없었고.
실제로 평소운 박사 또한 마력 공학이라는 이름 하에 뭐든지 할 수 있는 인재일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마력 공학 전공한 마력 감응 능력자를 가만히 놀려둘 만큼 이 나라가 여유로운 게 아니니까.
같은 감지 능력이라 해도, 몬스터 찰지에 대다수 능력을 할애한 나와는 천지차이다.
시발, 내가 후발 주자인데.
두뇌 차이 꼬라지 하고는.
뭐, 어쨌든.
문제는 평소운 박사의 실력이다.
까놓고 말해, 능력이야 각성했지만 어디까지나 연구직이었던 평소운 박사의 전투 능력에 대해선 어디에도 실려있지 않았으니까.
물론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평소운의 경력으로 미루어 볼 때, 박사는 전형적인 후방 연구직.
아무리 그래도 능력의 강함 하나만 가지고 전문 싸움꾼들을 때려잡을 수 있는 수준은 못 된다.
때문에.
내가 경계하고 있는 건, 순수한 마법사로서의 기량 뿐이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
헌터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격언 비슷한 말이다.
그리고 내가 보았을 때, 저건 한없이 정답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다.
준비에 준비를 더할수록, 더욱 정교하고도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용맥 등을 점거해 시설의 백업을 받을 수 있는 마법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언제 어느 때에도 문제 없이 싸울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사냥꾼Hunter과는 달리.
마법사라는 이들은, 말 그대로 주어진 시간 자체가 힘이 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 반대되는 역설도 있었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이기에, 준비되지 않은 마법사 따위는 결국 별 볼 일 없기 마련이라는.
아니, 당연한 이야기겠지.
마법이라는 건 결국 마력을 사용한 의식이다.
마법진을 그려야 하고, 특정한 순서에 따라 구동해야 한다.
마력 조작 능력으로 이를 대체한다 치더라도, 동등한 실력이라면 당연히 칼침 맞는 게 더 빠르다.
마력 또한 수족과 같은 신체 능력의 일종.
칼을 뽑아 휘두르는 것과 마력을 뽑아 특정 순서대로 배열해 그리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빠를까 물으면 그야 당연히 전자다.
어지간한 실력 차이가 없는 한, 마법사는 밀접한 전위나 활을 겨눈 후위를 이길 수 없다.
때문에, 역으로 스스로에게 강화 따위를 부여하고 싸우는 마법사 따위도 있지만…….
'힘들지.'
마법이란 곧 마력을 다루는 방법.
거기에 주먹질을 하는 데에도 적절한 묘리와 기술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육체 강화 마법 하나만 익히고 격투기에 전념하지 않는 이상 저런 부류는 대부분 타인의 두 배 가까운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설마 평소운 박사가 취미로 배운 격투기로 실장권법을 펼치진 않을 테지.
허면, 문제가 되는 건 결국 평소운 박사의 마법이다.
그리고.
'단순한 능력의 강함으로 따지면 A+. 주된 전법은 풍수도참인가.'
타다다다당!!
콩 볶는 소리와 함께, 내장을 토하는 기관총 너머로 나는 그리 생각했다.
역시 이 정도까지 되면 평소운 박사도 우리들의 난입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불법 연구소라는 걸 숨길 의향도 없다는 듯, 불을 뿜는 총탄.
아무리 대침공 이후 총기 소지 제한이 유명무실화되었다지만, 적어도 일개 연구소에 있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벽 뒤로 몸을 숨겨, 연구소 내의 감시 시스템이 이 쪽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한다.
잦아드는 소음.
그 사이에서 나는 잠시 고민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연구소의 방위 체계는 꽤 단단했다.
마법사의 영역이나 다름없으니 당연한 이야기겠다만.
방금 저 기관총만 해도 그렇다.
단순한 기관총이라면 돌파할 수 있겠지.
하지만, 도대체 어디서 지원을 받은 건지.
적절하게 배치된 기관총의 포화는 단순한 스펙으로 밀고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두터웠다.
모르긴 몰라도, 대충 방어력을 믿고 돌파하려는 적들에 대한 대처도 되어 있겠지.
'무엇보다…….'
벽 너머, 푸르스름하게 화기를 뒤덮고 있는 마력을 살핀다.
그런 방어력 위주의 헌터라 해도 꽤 곤란할 만큼, 압도적인 마력을 머금은 총구.
저 총신에서 튀어나오는 총탄 또한 마찬가지로 마력에 의해 코팅되어 있다.
단순한 기관총이라면 돌파할 수 있을 만한 헌터라 해도, 이 앞에선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겠지.
함정의 중심이 되는 마력 결정이나 술식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뭐, 당연한 이야기.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식으로 알기 쉬운 배치를 해 두지는 않았겠지.
오히려, 저 방위 체계에 마력을 부여하고 있는 건 이 건물의 구조 그 자체다.
풍수도참.
대한민국에 전해져 내려오는 마법 계통 중 하나다.
특징적인 건, 풍수지리 등 자연의 배치에 의해 결정되는 천기를 임의로 뒤틀 수 있다는 것.
도선 선사의 일화에서도 등장하듯, 그 때 사용되는 수단은 주로 건축물이다.
건축물로 풍수지리의 개념을 뒤틀어 의도적인 천기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 풍수도참의 핵이 되는 건 바로 이 연구소겠지.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도심 용맥 근처에 세워진 이 연구소를 중심으로 건설된 연구동 일체.
동력원이 되는 건 도시에서도 활용하지 못하고 흩어진 용맥의 마력일 테지.
그렇게 조금씩 마력을 축적한 끝에 이런 식으로 활용하고 있는 건가.
노골적으로 용맥에 간섭하는 것도 아닌 만큼, 협회 측에서 눈치채기도 힘들 테고.
단순한 완성도로 따지면 가히 예술적인 수준이었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
그리고 이만한 준비가 완료된 마법사의 영역은, 가히 던전이나 다름없었다.
'던전이라.'
뭐, 괜찮겠지.
툭 하고 발끝을 굴린다.
그러자 방금 전 총화기에 난타당한 벽에서 떨어져나온 파편이 발 끝에 걸렸다.
평소운이 마법사라고 한다면, 이 쪽은 사냥꾼Hunter.
공략하는 건 이 쪽의 특기다.
허면, 풍수도참의 약점이란 무엇인가.
'유연성이 없다는 거겠지.'
천기, 천명.
요컨대 운명이라 불리는 거대한 흐름을 왜곡하기 위한 술식이다.
당연히 그 규모 또한 상상 이상으로 거대해질 수밖에 없다.
건물이라는, 쉽게 다시 부수고 지을 수 없는 물건이 매질로 사용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
그렇기에 풍수도참은 유연성이 부족하다.
천기라 불리는 마력의 흐름을 왜곡하는 일만 해도 어마어마한 부담일 텐데, 실시간으로 그 천기를 어떻게 고칠지 수정할 수 있겠냐.
말하자면 풍수도참에 유연성을 부여한다는 말은 건물의 구조가 실시간으로 바뀐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하물며, 상대는 마법사.
그것도 전투 경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능력만 비대하게 발달한 연구직이다.
이제 와서 실시간으로 구조를 바꾼다 한들, 그 능력을 유효하게 활용할 수 있을 리 없지.
오히려 헛물만 켜지 않으면 다행일 거다.
일개 연구직에게 내가 발을 묶였다는 지금 이 사실부터 이를 증명하는 일이고.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
말 그대로, 침입자에게 대처하는 프로토콜도 여태까지 준비했다는 거겠지.
눈 앞에서 휘둘러지는 칼을 막지 못한다 해도, 한 달 전부터 어느 시점에 칼이 날아들 거라 알고 있다면 방검복을 껴입으면 그만이니까.
그렇다면.
툭, 돌조각을 옆으로 던진다.
방위 시스템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럼 이후의 이야기도 간단해진다.
마력을 실어, 벽 너머로 다시 한 번 투석.
총화기를 향해 날아간 돌조각이, 어마어마한 충돌음과 함께 격돌했다.
그리고.
완전히 박살난 총화기가 투둑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무력화 완료.
뭐, 그렇겠지.
족히 분당 몇 천 발은 쏴제낄 기관총을 거리 두고 배치한 이 복도.
기관총의 화력을 보강한다면 모를까, 내구성을 강화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기관총을 부술 수단만 있다면 손쉽게 제압이 가능한 셈이고.
활이라면 힘들었겠지만, 혹시 몰라 투석술을 연습해 둔 건 역시 다행이었다.
다시 한 번 복도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쪽의 이동을 철저하게 방해할 수 있도록, 일자로 쭉 뻗은 통로.
다시 복도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장소 따윈 어디에도 없다.
당연히 그렇게 행동할 경우, 뒤에서 나타난 적들이 복도로 침입자를 내몰려고 할 테고.
물론 내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불똥을 튀기며 파열하는 경비 로봇.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대식으로 재구성된 골렘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존재들이 뒤에 널부러져 있었다.
내게 있어선, 로봇처럼 만든 골렘도 몬스터에 해당한다는 걸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크흑, 감사합니다 카렐 차페크.
그럼, 마지막으로 남은 건 이 복도인가.
쭈욱 하고 몸을 푼 나는, 천천히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털컹!!
발 밑과 머리 위에서, 동시에 그런 소리가 울렸다.
다소 전형적인 함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대로 발 밑이 푹 하고 꺼지는 느낌.
숙련된 헌터라 해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에, 머리 위에서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떨어진다.
모르긴 몰라도, 각종 전설 등에서 등장하는 귀금속 따위겠지.
이런 상황이라는 걸 고려하면, 현철 혹은 아다만트일까.
삽시간에 천장 전체를 가리듯 추락하는 금속체를 보며 나는 그리 생각했다.
동시에, 축지의 요령으로 도약.
추락하기에 앞서, 갑자기 바닥에 생긴 구멍을 회피한다.
그 너머로 끝없이 추락하는 광물.
모르긴 몰라도, 공간 조작 따위의 능력이 적용되어 있을 것이다.
저만한 희귀 금속을 낭비할 리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며 착지함과 동시에, 양쪽 벽면의 환풍구에서 마력 결정들이 떨어졌다.
'발화에 대기 조작, 폭발이군.'
콰아아아앙!!
정확하게 제어된 폭발이, 내가 있던 자리만을 덮쳤다.
물론 결국은 마력 결정에 의한 폭발.
능력을 구사하는 당사자가 있는 것도 아닌 지금, 마력 조작 능력자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하물며 그 기습을 예상할 수 있었다면 더더욱.
폭발이 가시고, 나는 그대로 옷가지에 묻은 검댕을 털었다.
대기 조작의 마력 결정을 사용해, 주변의 대기 성분을 폭발하기 쉬운 물질로 바꾼다.
이후 불씨를 틔우면, 폭발.
바람과 불이라면 대개 후자를 경계하는 걸 이용한 함정인 듯하지만, 처음부터 바람을 막아버리면 그만이다.
회전하는 마력에 맞추어 일렁이는 바람을 크게 한 번 흔들었다.
은근슬쩍 새어나오는 독가스 때문이었다.
만일 폭발을 견디는 녀석이 있다면 이를 대비하기 위한 술책이었겠지.
공교로운 점이 있다면, 헌터에게 통용될 만한 독가스는 대개 마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고.
그 경우 마력 감응 능력자에겐 지금부터 독가스 넣을 거라고 내부 방송 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그대로 함정들을 돌파하며, 앞으로.
마법사의 던전을 해체하며 나아간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평소운 선생님 계십니까?!"
호랑이같이 달려들며 걷어찬 문짝 너머.
마침내 나타난 본격적인 연구실 내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나는 마침내 당사자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택배 시킨 적 없는데."
"무기징역 영장 나옴."
"거 참 끔찍한 일이군."
서류에서 몇 번 확인한 얼굴 그대로였다.
어깨 근처에서 탁 하고 친 단발.
제 능력 대부분을 거기에 할애하고 있기라도 한 건지, 대침공 당시 그대로인 얼굴.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어뜨린 의사 가운 너머로 도사린 피로는 채 씻지 못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당장에라도 비커에 커피라도 타 마실 듯한 낯짝.
단순한 액면가로는 나와 별로 다를 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연륜만큼은 그대로 녹아난 듯했다.
평소운.
전 인공 헌터 개발 프로젝트 총괄 담당자이며, 현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의 연구자.
동시에.
"화장빨 좆되네."
"개새끼가."
20년 전, 이 나라에 마력 공학이라는 학문을 바로세웠다 알려진 천재 소녀.
20년 전 신문 기사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얼굴로, 평소운 박사는 쌍욕을 내뱉었다.
생각보다 입이 험한 양반이었던 모양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