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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36화 (136/371)

〈 136화 〉 미친 연구자의 푸념

* * *

"이런 염병할!!"

책상 위를 난폭하게 훑는 팔에 떠밀려,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던 유리그릇들이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새벽이었다.

도시가 잠든 이 시간대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난폭한 소리.

몇 번이나 씨근대며 공연한 화풀이를 반복하던 평소운 박사가 평소다운 이지를 회복한 건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후우우……."

달큰한 한숨이 흘러나온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서 이런 꼴이 된 건지, 평소운으로서는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본래부터 그랬다.

정부의 전적인 지원 하에 만들어진 마력 공학 대학교.

거기에서도 굴지의 실력을 자랑한 자신에게 있어, 이 시대는 상실의 시대가 아닌 기회주의자의 낙원이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빠르게 실적을 쌓았다.

한층 위태롭던 마력 공학을, 미국의 도움을 받아 얼추 그럴듯한 형태로 기틀을 잡았다.

이 나라의 마력 공학에 있어, 평소운이라는 이름은 바야흐로 위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제출한 품목 중 한 마리에, 이상이 있었다.

보통은 폐기처분하는 게 당연할 성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쓸모가 있어 살려두었던 피험체.

고작해야 한 마리가 일으킨 날개짓이 그토록 어마어마한 여파로 다가올 거라고는!

……영웅이라 불리는 이의 성토.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존재의 규탄.

결국 정부는 그림자 뒤에서 이 나라를 지탱하던 연구소들의 폐기를 결심했다.

그렇게.

대한민국 헌터 사회에 있어, 지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평소운은 헌신짝처럼 내버려지고 말았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머리를 사용해, 머잖아 세상이 대 헌터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 예측했던 연구자.

덕분에 줄곧 탄탄대로를 걸었던 박사의 인생조차, 이렇게 한 순간 어긋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바야흐로 한 순간이다.

허나.

다른 이들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평소운은 상상 이상으로 끈질겼다는 점이다.

정부는 영웅과 손을 맞잡기 위해 평소운을 버렸다.

그렇다면, 평소운 또한 정부를 저버릴 뿐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굴욕.

사회의 엘리트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자신이 한 순간에 낙오자가 되었다는, 참을 수 없는 분노.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운은 연구를 계속했다.

일찍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등록해두었던 특허비를 사용해 생활을 꾸렸다.

무명의 헌신.

말이야 좋지만, 자신 또한 언제든 헌신짝이 될 가능성은 있다.

설마 그럴 일이 있으랴 하면서도 만약을 대비해 따로 준비한 보험이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 평소운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았다.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

자신들을 그렇게 자칭한 이 비밀 조직은, 평소운을 고용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위대한 대망.

어째서 자신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술회.

혹은, 그들이 평소운에게 제공할 수 있는 편의.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평소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레일 밖으로 튕겨져나간 자신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왔다는 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인류를 배신한다는 죄책감도 평소운 박사에겐 없었다.

오히려 통쾌한 기분이었으니까.

감히 주제도 모르고 자신을 내버린 이 나라를 팔아넘긴다는 계획엔 도리어 폭소가 나왔다.

동시에, 엘리트 특유의 지적 허영심을 채울 수 있다는 쾌감까지.

규격 외 등급. 대침공의 진상.

그리고 이를 모르고 오늘도 죽어갈 수많은 사람들!

안녕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부디 잘 가시길, 이름도 모를 수많은 엑스트라들!

나를 위해 먼저 죽어줘서 고마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평소운은, 어울리지도 않게 초조함에 등을 내밀리고 있었다.

그래.

그 날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빌어먹을 벌레 한 마리의 날개짓 때문이었다.

'박우찬!!'

얼굴 한 번 마주본 적 없는 대상에게 내비칠 살의가 아니었다.

그러나, 평소운은 자신의 분노가 아주 정당하다 여겼다.

예의 계획을 집행하기 위한 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 선두에서, 자신은 무한한 영광을 맛보았을 텐데.

역시 저 빌어먹을 사냥꾼이 문제였다.

갑자기 나타나 의식의 중심인 소체를 채갔다는 얌체.

거기에 더해, 허겁지겁 준비한 조직의 대책이나 몬스터마저 삽시간에 베어넘기는 괴물 놈.

덕분에, 지금 조직 내에서 평소운의 입지는 거의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의식을 치를 만한 조건도 갖추어지지 않은 지금 이 상황에서, 평소운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더더욱 억울한 건 그녀의 능력 자체가 의심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작전의 수행을 위해, 자신이 평생 쌓은 마력 공학 지식을 아낌없이 제공한 평소운.

어떤 의미로는 조직을 향해 꼬리를 흔드는 듯한 비참한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몇 번이나 말했듯, 박우찬이라는 그 헌터 때문이었다.

언제나 몇 번이고 나타나 조직의 행동을 가로막는 그 개자식.

때문에, 조직 내에서 평소운 자신의 협력을 받아 몽마들이 사역하고 있던 몬스터들까지 줄줄이 쓰러진 지금.

수많은 조직의 소속원들은 평소운 박사의 능력 자체에 회의감을 품고 있었다.

박사니 뭐니 했지만, 고작해야 헌터 한 명에게 막히는 수준이 아닌가?

정말로 박사라 불릴 만한 지식이 있긴 한 건가?

……차라리 그 정도였다면 코웃음이라도 치고 말았겠지.

자신의 연구만 있다면 결과로 전부 뒤집을 수 있다.

평소운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아무리 그래도 예상 밖이었다.

신도심 외곽, 그 지하.

도시를 따라 흐르는 용맥 근처에 세운 비밀 연구소 근처로 다가서는 인원들이 느껴진다.

질서정연하게 거리를 좁히는 다수의 인원들.

어딜 어떻게 보아도 우연삼아 접근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사실, 이전부터 그랬다.

알게 모르게 이 쪽을 포위하고 올가미를 조이기 시작하는 누군가.

'꼬리를 밟혔다.'

평소운으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 하필이면 왜 지금!

머지 않아 조직 내에서의 평가를 뒤바꿀 수 있을 기회인데!

바득바득, 이를 갈아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적들의 포위는 실로 치밀했다.

몇날 며칠에 걸쳐 평소운이 도망칠 만한 장소를 정성스레 차단하는 인원들.

덕분에 눈치챘을 때 평소운은 연구소 안에서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운도 바보는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이 포위망을 단독으로 돌파할 수 있으리라는 헛된 희망 따위는 버렸다.

그렇기에 분노.

혹은 짜증.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세상에 대해, 평소운은 울분을 터트리고 있었다.

"짜증나지만, 어쩔 수 없지."

끓어오르는 듯한 살의를 담아, 평소운은 그렇게 뇌까렸다.

뭐, 어쩔 수 없지.

사고의 전환은 빠르다.

편집증적이며 히스테리컬하기까지 한 평소운 박사였지만, 한 번 해야 한다고 정하면 침착해지는 것도 신속했다.

그렇기에.

평소운은 평소처럼 냉정하게 지금 이 상황으로선 적들의 포위를 돌파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허면?

소요를 일으킬 뿐이다.

자신이 빠져나갈 수 있을 만한 구멍이 뚫릴 때까지, 진득하고 또 지독하게.

거기까지 생각했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평소운은 지금 자신이 있는 연구동에서 다른 연구소들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

중간고사 당일.

새벽 바람을 맞으며, 나는 미리 거리로 나와 있었다.

준비는 끝났다.

다행스럽게도, 중간고사를 앞두고 평소운 박사가 먼저 선수를 치는 일 따위는 없었다.

하긴, 일개 연구직 따위가 앞지르기엔 지나칠 정도로 깔끔한 제압 계획이었다.

사정 상 최승준 측의 인력은 빌릴 수 없었지만, 단순한 퇴로 차단이라면 혼인회 측 인력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가용한 전력에 더해, 헌터 협회 측에서 빌린 인원들까지.

불법 연구소가 있다는 말에 새벽부터 고생하는 헌터들에겐 미안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행동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최승준 쪽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만 않았더라면 딱히 협회의 손을 빌리진 않았겠지.

저번 사례에서부터 줄곧 협회와는 다소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단지.

이렇게 된 거, 위기를 기회로 삼자.

대대적으로 신세계단인지 뭔지 하는 녀석들의 정체를 공표하는 건 위험하다.

허나, 이런 식으로 움직인 기록을 남긴다면 협회 측과 접선하기 쉬워진다.

거기에, 서아 사태 관련으로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던 협회로서는 오랜만에 이미지를 챙길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고.

일찍이 불법으로 규정된 불법 인체 실험 연구자의 연구동 적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한 실적 아니겠는가.

게다가, 잘만 되면 이번 일로 협회 측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십중팔구 협회 상층부에도 예의 조직 소속원들은 있겠지.

그렇지만, 협회장을 필두로 한 대다수가 그럴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아니, 그랬으면 지부를 두 개나 날려먹으려 했겠냐고~

때문에, 이번 일로 일단 자리를 만든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그들을 끌어들인다.

최소한 협회장이 적인지 아군인지,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는 있다.

대통령이나 참모총장, 혹은 협회장이나 되는 양반들이 설마 그런 비밀 조직에 발을 담았을 리는 없다…….

아무리 그래도 일정부터 빡빡한 양반들이 한가하게 그러고 있을 시간이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르는 법이니까.

뭐든 확신을 기하는 게 좋겠지.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헌터 사이의 싸움도 뜬금없이 출몰한 몬스터 퇴치도 아닌 불법 연구소 습격.

어딜 어떻게 봐도 헌터들의 통상적인 업무는 아니다.

나중에 책잡히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공공기관인 협회를 한 발 끼게 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출근 시간 되기 전에 끝내자고."

"어, 휴가 안 끊고 왔어?"

"미리 말은 했지만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벌써 며칠 빠지는 거야. 눈치 보인다고."

"직장인의 애환이네."

"너나 나나, 새삼 별걸로 다 고생하는군."

잡담을 나누며 마지막으로 몸을 푼다.

어디 보자.

하연이를 비롯한 학생들에게는 시험이나 치르라고 말해두었다.

저번과 같은 이유로, 서아 또한 데리고 오지 않았다.

티아마트도 있으면 안 된다.

만약 몬스터라도 키우고 있었다간 티아마트 채로 죽여버리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지금 이 작전엔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새끼가 합류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다른 의미로 불안할 지경이다.

"기억하고 있겠지만, 넌 주변 외곽만 도는 거야."

"알고 있어."

문영석이 말해 준 핵심 연구소.

십중팔구 평소운 박사가 거주하고 있을 연구동을 제압하는 건 내 쪽이 하기로 했다.

여하간, 녀석에게는 여러모로 위험한 장소니까.

무엇보다, 이젠 국회의원이나 되는 양반이 손수 진압에 참가하는 것도 조금 그렇지.

당장 이런 일을 저지른 평소운 박사를 보고 참을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고.

하물며, 평소운 박사와 아는 사이이기도 한 만큼 역으로 빈틈이 생길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협회에게 적절하게 공훈을 양보하기 위해서라도 주변으로 돌게 하는 쪽이 정답이다.

물론 녀석이 정말로 나와 자리를 바꾸고 싶다고 하면 말릴 수도 없겠거니와, 말리고 싶지도 않았지만.

"말이야 그렇게 했는데, 괜찮겠냐?"

"괜찮아."

평소처럼 반문하는 일 한 번도 없다.

담담하게, 마치 그런 질문이 날아들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렇게 대답하는 녀석.

바야흐로 인류 최강의 인내심이라 할 법했다.

그런 옆모습을 보며, 무어라 말하기도 멋쩍어 어깨를 좁히기도 잠시.

슬슬 움트는 아침놀에 새벽이 불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은이한텐 말 했냐?"

"아직. 오늘 보고 말해주려고."

"하여튼, 새끼. 그래, 가자."

그리고.

나와 이준구는 걸음을 옮겼다.

본격적으로 예의 조직을 적대하고자 결심하길 대략 2주.

우리들로서도 처음 겪는,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에 대한 공략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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