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준비
* * *
그 뒤, 우리들은 무사히 아카데미로 귀환했다.
물론 연미복이나 파티 드레스 따위를 입고 출근할 수도 없는 만큼 빈틈없이 중간에 환복한 채였다.
나와 티아마트가 가져온 정보는 상당히 값진 물건이었다.
여하간, 세세한 점은 무시하더라도 당장 녀석들의 연구 시설까지 알 수 있었으니까.
단지.
"아무래도 이번엔 너랑 이준구만 보내야 할 것 같다."
"엉? 왜? 아, 학교 지키려고?"
"그 쪽도 있지만, 기업에 벌레가 기어든 모양이더군."
최승준 쪽은 이번 습격 계획에서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이번 잠입을 위해 정보를 정리하던 도중 예의 클럽의 참가권을 보유한 일가친척들이 대거 발각된 탓이다.
아무래도 저 쪽은 최승준의 사촌들을 이용해 기업 내의 지지 기반을 흔들려 시도한 모양인데…….
'어쩐지.'
상류층만을 위한 클럽이라면서 정작 최승준에겐 이야기가 없었던 게 수상쩍다 생각했건만.
실제로는 방금 전 언급된 사촌들 중 한 명이 뒤에서 수작을 부렸던 모양이다.
덕분에 지금은 피의 숙청이 한창이었다.
만약 내가 등장하는 작품이 정치 드라마였다면 챕터 몇 개를 할애해야 할 정도로 대대적인 사건이겠지.
뭐, 공교롭게도 나는 이준구를 주인공으로 하는 헌터물의 조역 정도고.
그런 세세한 작업은 전적으로 최승준에게 맡길 따름이다.
그렇게.
"본인, 깜짝."
우리 꼬마들이 잘 하고 있나 마지막으로 동아리실에 들렀던 나는 말마따나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진짜로 뭐지 이 분위기.
쾌활한 어조와 함께 인사를 건넨 나와는 달리, 교실 문턱을 넘은 내게 날아드는 건 냉엄하기 짝이 없는 학생들의 시선이었다.
"……중간고사 스트레스니?"
"아니거든요!!"
단박에 소음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말이죠~
"전혀 짐작 가는 게 없는데."
동의를 구하기 위해 슬쩍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움찔.
내 시선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지.
흠칫 하고 어깨를 떤 티아마트는, 이윽고 떨떠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시선은 땅바닥을 향해 비끄러미 흘린 채였다.
"아니, 본인은 살짝 짐작이 가는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고……."
"개년아."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 입장은 어떻게 돼.
그런 식으로 박박 이를 갈고 있자니, 이윽고 쑥덕이던 녀석들 사이에서도 대표가 나왔다.
반짝이는 은발.
허나, 평소라면 윤기 넘치는 머리카락만큼 새하얗게 빛났을 피부도 지금은 눈동자처럼 발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선생님!!"
"어, 그래. 지희야, 오늘따라 기운 넘치네."
"혹시 두 분은 이거인가요?!"
평소였다면 시원스레 나를 무시하고 말을 잇는 지희의 모습에 무심코 상심해버렸을 테지.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팟! 파팟!! 파파팟!!!
격렬한 손놀림!!
도저히 여고생이라 생각할 수 없는 손동작이 이어진다!!
"아니, 잠깐!! 지희야!! 설명하기 힘든 손동작 그만둬!! 천박해!!"
"나는 원래 천박한 종족이에요!!"
살짝 쫄았다.
지금 지희가 발하고 있는 기백은 그 정도로 심상치 않았다.
것보다, 본래부터 천박한 종족이라니.
일단은 나도 현직 교사.
언젠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때가 오진 않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까놓고 섹──."
"잠깐, 여고생이 하면 안 되는 발언 멈춰!!"
설마 이런 쪽으로 이루어질 줄이야.
아니, 여기까지 들으면 과연 나라 해도 무슨 오해가 펼쳐지고 있는 건지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갑자기 어제 자리를 비운 두 남녀!
하룻밤 내내 돌아오지 않다가 동시에 귀가!
심지어 옷조차 어제 입은 그대로!
아이고, 두야.
탁, 이마를 짚고 말았다.
얘네들, 정말로 여고생 맞나?
어쩌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건진 대충 알겠지만, 내 상상 속 여고생 이미지랑 영 동떨어진 기분이 든다.
결국 내가 녀석들을 진정시키고 어제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데엔 대략 한 시간 가까운 여유가 필요했다.
*
……문득, 자하연은 언젠가 있었던 일을 새삼스레 상기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직 박우찬과 만나기 몇 시간 전.
그림자마저 하얗게 질릴 듯한 새벽녘 아래로, 달무리가 불타고 있던 밤이었다.
조용한 밤그늘 아래로,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달아오른다.
기묘한 초조감.
당시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던 그녀는,마치 뒤쫓기듯 웅성이는 두려움에 떠밀려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무엇을?
뒤를 밟고 있던 세 마리 용?
설마.
허면?
글쎄, 자문해도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단지, 앞으로 닥칠 폭력보다도 훨씬 두려운 무언가가 용솟음치는 듯한…….
"죄송해요.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그리고.
넘실대는 기억의 바다에서 의식을 건져올리며, 자하연은 좌우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우찬과 티아마트가 단 하루만에 알아온 사실들은 정말로 다망했다.
저번 현장학습 당시 만난 추정 퇴역 군인 출신 헌터.
여기서부터 시작된 청준필 준장과의 면담.
신세계 질서라는 클럽.
클럽 내에서 마주친 망명 희망자.
그리고 그 망명 희망자가 언급한 정보까지.
박우찬은 정말로 남김없이 그녀들에게 모든 사정을 털어놓기로 했다.
물론, 개인적인 사정은 빼고.
예를 들면 방금 전 하연이에게만 몰래 속삭인 그녀에 관련된 사정이라던가.
혹은중간고사 기간동안 날뛸지도 모르는 누군가가인공 헌터 개발 프로젝트의 당사자라던가 하는 이야기.
딱히 숨길 생각은 아니었지만, 전자야 어쨌든 후자는 박우찬이 말해줄 문제는 아니다.
이런 장소에서 말할 만한 사안도 아니고.
덕분에, 이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이준구가 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이예은이 이야기할 생각이 들면 다른 학생들에게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
그 때문일까?
학생들은 당장 박우찬이 말한 정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제 3차 대침공.
여태까지 있었던 두 번의 대침공에 필적, 혹은 상회할지도 모르는 재앙.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침공을 일으킬 만한 괴물을 통째로 소환한다는 막무가내 계획.
헌터 업계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인 적 있다면 그야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규격 외 등급이라는 희소한 정보만 해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론 공표해선 안 될 등급의 보안.
협회에서도 협회장을 제외한 그 어느 누구도 접할 수 없는 정보.
그렇지만, 박우찬은 우선적으로 그녀들에게 해당 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다.
물론 입막음 정도는 해두겠지만.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박우찬은 천성이 무법자.
지금이야 어쨌든 협회에 속한 상태이긴 했지만, 본질적으론 비 인가 헌터로서 행동하는 게 편하다.
그리고 그런 그가 보기에, 협회의 보안을 지키기 위해 눈 뜬 채 코 베이는 건 완전히 바보같은 짓이었다.
뭐, 대대적으로 공표하지 않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 쳐도, 지금 동아리에 속한 학생들 대부분은 이미 예의 조직의 과녁이나 다름없다.
칭찬받을 만한 일은 아닐지 몰라도, 당장 당사자인 그녀들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판단한 탓이다.
"그렇게 됐으니, 앞으로 너희들은 특히나 더 빡세게 굴릴 거니까 알아둬라."
"아, 제발!!"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창 달아올랐던 대화 뒤.
박우찬은 그렇게 덧붙였다.
그러자 한층 죽는 소리를 내는 학생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박우찬의 훈련법은 여하간 당사자의 약점을 철저하게 보완하는 것.
최소한 약점 한 번 당했다고 억 하고 죽어버리는 일은 없도록 능력을 끌어올리는 쪽이다.
때문에, 효과와는 별개로 당하는 입장에서는 고역이 따로 없을 지경.
헌데, 벌써부터 그 이상으로 굴리겠다니.
사정이야 듣긴 했지만 그야 죽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박우찬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졸업할 때까지 3년.
자신이 녀석들을 돌봐줄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은 현직 헌터로서 직접 전장을 겪으며 성장해야 하겠지.
그러므로, 박우찬은 아직 그녀들이 자신이라는 안전망 뒤에 있을 때 최대한 실력을 붙여줄 생각이었다.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이 졸업 당시 B랭크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 최소 A랭크.
가능하다면 A+랭크 정도에 해당하는 실력을 갖출 수 있다면 이상적이다.
게다가 박우찬 본인도 무적은 아니다.
당장 상대 중에 태시영과 같은 S랭크 헌터, 그것도 대인전 특화인 친구들까지 확인된 판국이니까.
강원도 지부에서야 스탬피드가 한창이니 어떻게든 싸울 수 있었지만, 수싸움에선 완전히 밀린 것도 사실.
자신의 실력도 붙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그에게, 학생들의 실력이 눈에 찰 리 없었다.
그런 모습을 확인하며, 자하연은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티아마트가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방금 전 박우찬이 괜한 헛바람을 불어넣은 윤하를 향해 대갈일성을 토해낸 이후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가 듣기에도 다소 불쌍할 정도였다.
티아마트에게 관심이 없는 수준을 넘어, 티아마트와 밤을 보냈냐는 질문 자체에 혐오감을 느끼던 박우찬의 표정.
평범하게 상심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단지.
"괜찮으세요?"
"으, 으음. 마음에 조금 상처가."
자하연이 보기엔 조금 달랐지만.
……방금 전, 윤하는 말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학생들 전원이 담임을 좋아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거기에 대해, 마치 죽은 듯 조용히 이야기가 흘러가길 기다리고 있던 그녀.
허나, 그건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
애들이 떠드는 소리를 배경으로 삼아, 자하연은 자신의 속내를 조용히 가늠하고 있었다.
확실히, 자신은 오빠에게 여러 은혜를 입었다.
아마도 평생에 걸쳐 갚는다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은혜다.
거기에 대해, 다른 친구들은 말했다.
우리들이 제자니까.
어디까지나 선생 대 학생의 관계로서 우리들을 도와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퍽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실제로, 자하연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하지만.
언젠가 자신을 납치했던 이상한 변태는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박우찬과 같은 녀석들은 여태까지 몇 번이나 봤다고.
자신이 잃은 걸 남들에게서 비추어 보는 부류.
자신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머리로는 납득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납득하지 못한 부류.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일찍이 자신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
변태 납치범은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 말을 들었을 때, 과연 어떻게 반응했던가.
박우찬이 자신에게 베푸는 은혜가 누군가를 겹쳐본 탓에 그런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침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자신을 누군가로 착각하지 말라고 일갈해야겠단 생각이라도 했던가?
설마.
자존심을 챙기는 건 좋지만, 그건 단순히 무례한 짓이다.
그런 속사정은 제쳐두더라도, 받은 은혜만 해도 얼마인데.
진짜배기 아침 드라마라면 모를까, 그렇게 역으로 역정을 낼 만한 자신감 혹은 뻔뻔함은 그녀에겐 없었다.
아니, 오히려…….
'솔직히 말해, 조금은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걸.'
오히려 좋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
어째서?
적어도 그렇다면 박우찬이 자신을 버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향후 3년, 멀쩡히 아카데미를 졸업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서서?
앞으로의 미래에도 나름 나쁘지 않은 계획이 잡혀서?
틀림없이 그것도 있다.
그렇지만.
고작해야 그것 뿐이었더라면, 애초부터 그리 반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까놓고 말해, 그녀가 알고 있는 박우찬은 저런 사정 일체를 제쳐둔다 할지라도 중간에 와서 그녀의 손을 놓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단지.
여태까지 흐릿하게 잡혀 있던 마음이, 황윤하의 말을 듣고 명확한 형체를 쥐었다.
'아하.'
나, 저 사람을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지나칠 정도로 담백하게, 박우찬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여고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손쉽게.
자하연은 그런 사실을 인정했다.
자신이 그런 사실에도 나쁘지 않다 반응한 건, 그조차 박우찬을 대상으론 마음을 간질이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알아서.
그 이상으로, 자신의 어딘가가 박우찬에겐 추정 옛 연인을 떠올리도록 하는 면모가 있어서.
다시 말해, 박우찬에겐 취향에 들어맞는 일이라.
그렇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입가에 지어지는 은밀한 미소를 애써 감추는 쪽이 더 힘들었다.
그렇기에.
"정말로, 오빠도 너무하네요."
"그, 그렇지?"
"네. 정말 언니랑 아무 일도 없었다 한들, 저렇게 말하는 건 조금 아니라고 봐요."
"으, 으응.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그래서 묻는 건데,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죠?"
"정말이니라……."
솔직히 말해서, 지금 그녀에겐 제 3차 대침공이나 규격 외 등급 몬스터보단 어물쩡 넘어간 그 사실을 확인하는 쪽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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