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준비
* * *
"그런데 너희들, 우리 담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냐?"
그리고 그 날.
담임인 박우찬이 학생들의 앞날에 염려하며 귀환하던 당일.
정작 당사자인 자하연과 이예은을 포함한 동아리 학생들은 시덥잖은 주제로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물론 뜬금없이 나온 이야기는 아니었다.
처음엔 어디까지나 중간고사를 대비하기 위한 공부회였으니까.
다만.
이번에도 갑자기 자리를 비운 담임, 박우찬에 대해 툭툭 던진 한 마디가 쌓이고 쌓이니 군소리가 되는 건 실로 순식간이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동아리방에 모인 학생들 전원이 박우찬에게 개인적인 술회가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담임이 또 자리를 비웠다더라.
십중팔구 예의 조직과 관련된 사안 때문이겠지.
이번에도 별다른 설명 한 번 없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실 담임이 보기에 우리는 어디까지나 애들일 테고…….
어쩌다 보니 사정을 설명할 만한 계기가 있었을 뿐.
애초에우리가 이런 일에 말려드는 걸 좋아할 만한 성품도 아니다.
처음에는 불평. 다음에는 납득. 이후에는 한숨.
만약 당사자인 박우찬이 들었다면 살짝 상심했을지도 모르는 말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당장 동아리에 모인 학생들은 알고 있었다.
결국 그녀들이 토로하고 있는 건 단순한 아쉬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렇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S랭크 몬스터를 동원할 수 있는 조직과의 싸움에 학생들을 끌어들이려는 측이 이상한 거겠지.
허나, 당사자가 되면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기 힘든 법.
요컨대, 그녀들은 단순히 스스로의 부족함에 씁쓸함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평생 따라갈 만한 분이지."
이예은의 대답 또한 바로 그 일환이었다.
물론 이예은도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일찍이 다른 누구보다 자신의 오빠인 이준구를 존경하고 있던 그녀.
그렇지만, 담임인 박우찬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째서 오빠인 이준구는 그녀가 자신의 전법을 따라하는 모습에 난색을 표했는가.
담임인 박우찬이 내기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그녀를 만류하던 이유는 무엇인가.
……합당한 이유. 나름의 사정.
그 끝에, 오빠인 이준구는 그리 말했다.
자신의 여동생이 아닌, 진짜배기 사냥꾼Hunter.
헌터가 되고 싶은 거라면, 자신이 아닌 박우찬의 뒤를 좇으라고.
여태까지 줄곧 오빠의 뒤를 쫓고 있던 그녀로서는 쉬이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었다.
이후, 계속해서 망설이고 있던그녀는 이윽고 남해 지부에서 일어난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다.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불합리.
이예은은 처음으로 TV 속 화려한 헌터들의 삶이 아닌 냉엄한 현실을 마주했다.
동시에, 깨달았다.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헌터가 되려는 거라면, 차라리 때려쳐라.
무작정 오빠를 모방하고 있던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일찍이 박우찬이 그렇게 평했던 이유를.
장례식장에서 울려퍼지던 통곡조차 담담하게 직면하고 있던 그 옆얼굴을 통해.
이예은이 진정한 의미에서 헌터가 되고자 결심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오빠조차 주워담지 못한 슬픔이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진 않는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는 눈 앞의 비극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냥꾼의 모습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비극엔 이미 익숙해졌다는 듯한 얼굴.
더 이상 탄식할 일도 무엇 하나 남지 않은 끝에 역으로 가라앉은 그 표정에, 괜한 반항심이 들었다.
그러니 그녀는 헌터가 되기로 했다.
설령 오빠라 해도 세상 모든 비극을 지우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빠처럼 맞서 싸우기로.
그리고.
언젠가 그 손아귀 안에도 남은 것이 있노라 말해주고 싶어서.
단순한 학생이나 제자가 아닌, 한 명의 헌터로서 나란히 서고 싶다 생각한 것이다.
물론실력도 있겠지.
사냥꾼Hunter이라는 이름에 부족함도 없다.
그렇지만, 이예은이 박우찬의 뒤를 따라가려는 건 단순한 능력보단 차라리 동경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오, 한 달만에 담임한테 바락바락 소래기 지르면서 대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발언."
"그, 그 때는 다들 미숙했잖니……."
조롱하는 듯한 황윤하의 발언에, 이예은은 조용히 양 뺨을 붉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례한 행동이 아니었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뭐, 그런 면은 없잖아 있을지도~"
능청스레 뒤를 받은 류지희 또한 경쾌하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그녀 또한 당황했었으니까.
도축업자.
수많은 몬스터들은 물론, 모르긴 몰라도 세 자릿수는 될 혼혈들을 매장했을 거라 전해지는 사냥꾼.
자신들의 담임이 그런 인물이었다고 들었을 땐 과연 류지희라 해도 곤혹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같은 반에 연쇄살인마가 있는 기분이었으니까.
때문에, 그녀는 아카데미 습격을 결의한 남상원과 박우찬을 떼어놓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뭐, 실패했지만.
그러나.
정작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박우찬은 그녀의 말 한 마디만 듣고 남상원을 비롯한 혼인회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혼인회 소속이라는 게 들통난 그녀조차 그대로 아카데미를 다닐 수 있을 정도였으니.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그렇게 의심한 적도 있었다.
까놓고 말해, 류지희 자신의 몸을 노리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으니.
저런 쪽으로 사고가 흐르는 건 몽마 특유의 슬픈 습성이다.
허나, 그런 류지희라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박우찬이 그들에게 베푼 호의는 정말로 단순한 배려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제자인 류지희에 대한, 혹은 예의 조직에게 이용당한 혼인회를 위한 배려.
물론 여러 사정이야 있을 수 있겠지.
혼인회를 포섭한 이상 홀대할 수는 없다던가 뭐라던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박우찬은 단 한 번도 그녀나 혼인회에게 개인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의혹. 의심. 관찰. 그리고 결론.
족히 몇 개월에 걸쳐 박우찬의 모습을 살핀 그녀는 곧 그런 박우찬의 행동인 제자인 자신에 대한 염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어느 날 갑자기 전 국민에게 자신의 정체가 들통났을 때.
그리고 그런 자신을 찾아 뛰쳐나온 담임의 모습을 보았을 때.
차라리 몽마가 되어버릴까 싶을 정도로 몰려 있었던 류지희는 역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 전부가 본인을 적대하는 듯한 소외감 속.
혼인회의 아는 어른들이나 다른 누구보다 먼저 자신을 찾아내고 안심하던 담임의 얼굴 덕분이었다.
때문에, 류지희는 언젠가 자신을 심판할 사람으로 박우찬을 선택했다.
……꾸욱 하고 배를 누르자, 속에서 요동치는 마력이 느껴졌다.
그 날, 박우찬 앞에서 스스로 삼켰던 여왕급 몽마의 마력이었다.
이 세상에, 그리고 스스로에게.
도저히 확신을 가질 수 없어 입에 대었던 마력 덩어리는 아직도 그녀의 안에 남아 있었다.
언젠가 그녀의 마음이 꺾이면 몽마로 타락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감추지도 않은 채.
그렇기에.
만약 그녀가 몽마로 전락하는 날이 오면, 박우찬은 그녀의 목을 베어주고자 약속했다.
몽마로서 살고 싶지는 않다.
평생에 걸쳐 그리 생각한 류지희의 마음을 존중해서.
말하자면, 지금 류지희에게 있어 박우찬이란 일종의 무게추나 다름없었다.
언젠가 자신 또한 몽마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그런 사실에 두려워하고 있던 그녀를 현실에 붙들어놓는 무게추.
동시에, 일종의 기준점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박우찬이 자신을 보고 있다면, 류지희는 아직 자신이 몽마가 되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다.
박우찬이 자신을 적대할 때가 온다면, 그 때는 자신이 몽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시인할 수 있겠지.
도축업자라는 악명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줄곧 류지희를 배려하던 박우찬이다.
그런 담임이 류지희를 적대할 만한 사안은 역시 그녀가 완전히 몽마로 타락했을 때 정도일 테니까.
'어라?'
생각보다 중요한 입장 아냐, 이거?
처음엔 누구라도 상관 없다 생각했었는데…….
예상 밖의 곤혹을 삼키며, 자신도 모르게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지희.
그런 그녀의 표정을 살피던 황윤하는 발안자답게 작금의 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뭐야, 다들 담임 좋아하냐?"
우당탕!!
그 말에 한바탕 소요가 일었다.
황급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는 사람, 오히려 책상에 무릎을 들이받은 사람.
철 지난 개그 만화처럼 자지러지는 동급생들의 모습에 되려 황윤하 쪽이 당황할 정도였다.
"글쎄, 너무 성급한 발언 아니니?"
"마, 맞아.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아니, 평범한 일 아니냐?"
평범?
그 말에 쫑긋 하고 애써 태연한 척하던 여학생들의 귓가가 곤두섰다.
"어, 그렇지 않나? 이 나이대엔 원래 선생님들이 멋있어 보이고 하는 거지 뭐."
"그, 그런가?"
물론 거짓말이었다.
아니, 전부 거짓말인 건 아니지만.
이 나이대 여고생들에게 담임 교사가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변에 있는 어른 남성이라는 이미지에서 기인하는 법.
지금 그녀들처럼 개인 대 개인으로서 호감을 품고 있을 때 사용할 만한 핑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보통이라는 면죄부를 손에 넣은 동급생들은 이미 황윤하가 뿌리는 독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그러는 너는 어떤데?"
"엉?"
"아니, 꼭 남 일이라는 듯한 말투고? 정작 그렇게 말한 윤하는 또 어떨까~ 싶어서."
"좋아하는데?"
"크헉!!"
용감하게 반격을 시도했던 류지희가 일격에 침몰하고 만다.
그 정도로 방금 전 황윤하의 발언엔 다소 과감한 면이 있었다.
"엇, 응? 어, 정말로?"
"왜? 이상한 일도 아니잖냐. 키 크고, 헌터니까 능력 괜찮고. 우리 집 사윗감으로 딱인데?"
"아, 그런 거야?"
당연히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물론 다른 친구들처럼 그럴듯한 이유를 댈 순 있겠지.
두 번이나 자신을 구해줬다거나, 자신을 위해 헌터랑 싸우는 모습을 봤다거나.
자신이 힘들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주었다거나, 무심한 듯 자신이 가장 바라던 말을 해주었다거나…….
그렇지만.
'아니, 내가 그런 말을 할 만한 캐릭터는 아니지.'
한 마디로, 직접 그런 말을 하기엔 아무래도 영 쪽팔렸다.
당장 눈 앞에서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예은이나 류지희처럼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고.
애초에 황윤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의무감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겉멋만 잔뜩 든 인간.
본인 또한 그런 사실을 부끄러워했고, 그렇기에 오로지 돈만을 위해 헌터가 되겠다 말한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여겼다.
허나.
박우찬은 그리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황윤하의 그 마음씨야말로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고.
단 한 마디에 불과한 그 말에, 어찌나 구원받은 기분이었는지.
황윤하가 박우찬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느끼는 건 언제나 그럴 때였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납치범과 싸우던 모습이 아닌, 밤하늘 아래에서 자신의 앞날을 걱정할 때.
자신을 구하기 위해 총잡이와 싸우던 모습이 아닌,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었을 때.
황윤하는 그럴 때마다어울리지도 않게 가슴 뛰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에이, 씨팔!'
새삼 자각하니 괜시리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결국 황윤하는 좌우로 고개를 털며 자잘한 생각은 떨쳐버리기로 했다.
동시에.
'그 양반도 참 조심성 없네.'
솔직히 말해서 그리 생각했다.
설마설마 했지만 이미 대다수가 넘어간 상황이었을 줄이야.
어차피 지금 당장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한들 그 양반은 학생이 어쩌고 하는 말로 도망칠 뿐이겠지.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가끔씩 박우찬이 내비치는 묘한 소심함을 보고 황윤하는 그렇게 판단했다.
때문에, 적당히 견제 삼아 같은 동아리에 속한 친구들의 마음부터 떠 볼 생각이었지만…….
'전원이고 지랄~'
내심 품고 있던 첫인상이 좋은 의미로 반전한 이예은.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의외의 일면을 발견한 류지희.
거기에 자신까지.
하연이나 그 교생 선생님도 십중팔구 이 쪽일 테고.
티아 언니, 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난봉꾼도 이런 난봉꾼이 없다.
만약 신서아 헌터가 이런저런 이유로 방심한 게 아니었다면 같은 씨름판에 오를 수도 없었을 테지만.
스승인 박우찬을 닮아서 그런 걸까?
신서아의 묘한 소심함을 그렇게 촌평하며, 황윤하는 슬쩍 창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결혼 운운하는 건 너무 성급해."
"맞아, 맞아! 벌써부터 아이가 몇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할 상황은 아니잖아?"
"아니, 내가 그런 말까지 했던가……? 엉?"
어느덧 아예 날개를 피우기 시작한 동급생들의 망상에서 시선을 돌리던 황윤하.
그런 그녀의 눈동자가 운동장 너머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포착했다.
다음 순간.
"야, 밖!"
"응?"
"뭔데?"
자신도 모르게 황윤하는 그리 외치고 말았다.
그런 황윤하의 목소리에 맞추어 옹기종기 창문 앞으로 모이는 동아리 친구들.
그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문득 동아리실 내의 온도가 뚝 하고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오늘도 무슨 일이 있다며 잠깐 자리를 비웠던 박우찬이 출근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옆에 그녀들 또한 익히 알고 있는 붉은 머리칼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는 걸까.
티아 빈트 라흐만 빈 압둘라 무함마드.
어째서인지 학교에서는 이상한 아랍식 이름을 자칭하고 있는 티아마트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마침 티아마트도 어제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그녀들이 깨달았을 때.
황윤하를 비롯한 여학생들은 두 명의 옷차림이어제 학교를 떠나던 순간과 동일하다는 걸 눈치챘다.
……학생들의 눈매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