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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33화 (133/371)

〈 133화 〉 진상

* * *

결국 우리들은 문영석의 망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지나칠 정도로 스케일 큰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자신은 인공 헌터 개발 프로젝트에 발 한 번 담근 적 없다는 문영석의 말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당사자인 이준구도 그렇게 말했으니 틀림없겠지.

물론 나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같은 연구동에 있었다면서 그걸 모를 수가 있나?

"죄송합니다만, 바로 이웃한 연구동이었어도 몰랐을 겁니다."

"엥, 진짜로?"

뭐, 정작 문영석은 담담하게 그리 토로할 뿐이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우리들은 아카데미를 향한 귀환길에 올랐다.

"요란스러운 하루였군."

"그러게나 말이다."

새벽이었다.

자연스레 클럽에서 퇴장할 수 있을 때까지 어울린 탓일까?

나나 이 녀석이나 목소리에서 씻을 수 없는 피로가 배어나오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거기에 당장 오늘 알게 된 사실만 해도 벌써 몇 개인지.

예의 조직의 이름. 조직의 진정한 목적.

그리고 조직의 구성원들과 각종 부속 시설들이 위치한 장소까지.

비록 일개 연구원이었던 문영석이 알고 있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나로서는 갑자기 모르던 지식이 때려박힌 셈이다.

이래서야 복잡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지.

스스로의 두뇌에 면죄부를 부여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규격 외 등급인가."

……사실대로 말하자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장 먼저 그런 의문을 입에 올렸고, 티아마트 또한 무어라 타박하진 않았다.

"애초에 그 놈들은 이걸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야?"

"글쎄, 놈들 중에 그만한 거물이 있는 건지 뭔지."

"좆같은 가정이군."

규격 외 등급.

문자 그대로, S랭크 헌터에게조차 해금되지 않는 최중요 기밀.

이 나라라면 현직 대통령과 참모총장, 나아가서는 헌터 협회장 정도나 열람할 수 있는 정보다.

실제로, 나는 물론이요 최승준이나 이준구조차 규격 외 등급이라는 정보에 대해선 거의 처음 듣는 기색이었고.

허면.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

놈들은 어디서 이 정보를 들은 걸까.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 이 나라는 이미 놈들의 손에 넘어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뭐냐?"

"무엇이?"

"너희들."

게이트.

혹은, 몬스터.

녀석들은 도대체 뭐지?

정말로 이 나라의 대통령이 벌써부터 넘어갔다곤 역시 생각할 수 없다.

애초에, 그래서야 티아마트가 규격 외 등급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물론, 협회 최상층 너머에서 칩거를 시작한 이래 여신의 고견을 듣고자 녀석을 방문한 권력자는 수도 없이 많다.

규격 외 등급이라는 명칭 자체는 거기서 들었던 거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현직 대통령이나 참모총장이 귀중한 면담 기회를 사용해 규격 외 등급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는지 물으려 할까?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있어, 티아마트는 단순한 몬스터가 아닌 지상에 강림한 여신 그 자체다.

여신의 고견을 빌어 대책을 강구할 순 있겠지만, 도대체 누가 여신에게 규격 외 등급이 뭔지 알고 있느냐 묻는단 말인가.

외국인한테 김치가 뭔지 알고 있냐 묻는 악질 기자들도 아니고.

즉, 처음부터 티아마트는 규격 외 등급 몬스터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공산이 컸다.

거기에.

만일 티아마트가 이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 가정한다면, 짐작할 수 있는 사정은 하나 뿐이다.

'몬스터니까.'

뉴 월드 오더인지 노부스 오르도 세클로룸인지, 놈들 또한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이는 새로운 사실을 시사했다.

'어쩌면 몬스터는 단순한 짐승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나를 포함한 헌터들은 몬스터가 무리를 이루는 건 당연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짐승이니까.

예의 조직과 협력하고 있는 몬스터들 또한 마찬가지다.

막연하게 각기 다른 몬스터 무리가 개별적인 루트로 합류한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을 뿐.

허나, 몬스터라는 이유만으로 대침공의 정체를 알고 있다 한다면.

'몬스터들도 모종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객관적인 정보의 공유가 가능할 법한 다종족 사회.

이미 짐승들의 무리 운운할 영역은 진즉에 넘어섰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몬스터라는 개념 자체에 다소 의문이 생긴다.

정녕 몬스터들은 모종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대침공을 통한 습격 또한 사회 내부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인가?

허면 몬스터들은 어째서 인류를 습격하기로 결의한 것인가?

게이트는 정말로 인류를 침략하기 위한 발판인가?

그런 사실에 궁구하고 있는 나를 향해, 티아마트는 한 마디로 소평했다.

"아니, 초보 헌터들도 한 번쯤은 생각할 만한 주제로 이제 와서 무게를 잡아도."

"씨발년아."

물론 그렇겠지만!!

별 생각 없이 몬스터만 죽이면 되지 않나 싶었던 내겐 첫 의혹이었단 말이다.

"뭐, 대답해주는 건 어렵지 않지."

"뭣이?"

"다만, 지금은 그럴 상황도 아니지 않더냐.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면 그 때 이야기해주도록 하마."

……틀린 말도 아니었다.

클럽을 떠나는 우리를 향해, 문영석은 그리 말했다.

"선배님을 조심하십시오."

"선배? 누구? 아까 말했던 평소운인가 뭔가 하는 양반?"

"예. 지금 선배님께서는 조직 내에서 상당히 입지가 좁은 상황이거든요."

"호오. 왜? 소환 의식이 목적이라고 하지 않았나? 마력 공학 박사가 홀대받을 위치는 아닐 텐데."

"당신 때문입니다."

"엥?"

이야기를 들어 보면, 예의 조직에 협력하고 있는 몬스터들도 대략 두 부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전면적으로 조직에게 협력하고 있는 부류.

첫 만남 당시 하연이를 습격하고 있던 세 마리 드래곤.

혹은 구미호나 몽마의 여왕 등, 지성이 있는 쪽은 대개 이 쪽.

이에 반해, 애시당초 조직조차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부류가 있다.

대개 지성이랄 게 존재하지 않는, 바야흐로 짐승과 같은 몬스터들이 바로 이 쪽인데…….

일전에도 몇 번 보았듯이, 예의 비밀 조직은 이런 몬스터들을 어떻게든 잘 구슬리는 쪽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끼를 던진다거나, 매료 능력을 사용해 정신을 제어한다거나.

그리고 이런 식으로 포섭한 몬스터들 대부분이 평소운의 손을 거쳤다고 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력 공학 등으로 어떤 게이트에서 무슨 몬스터가 나올지 예측하는 수준이었다지만.

문제는 이런 몬스터들 전반이 내 손에 명을 달리했다는 점.

그렇지 않아도 지성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여러모로 무시당하던 무지성 몬스터들이다.

하물며 고르고 골랐다는 녀석들의 실적이 이 모양이니, 아예 평소운 박사 무용론도 나오고 있는 모양.

때문에.

"당장 선배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릅니다."

평소운 박사는 모종의 일발 역전을 노리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설령 그렇지 않다 치더라도 평소운 박사는 이미 국가에서 숙청당한 몸.

조직에 몸담은 시점에서, 노부스 오르도 세클로룸을 등지면 더 이상 떨어질 장소도 없다.

……한때나마 조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이유로 손에 피를 묻히던 양반이, 지금은 몬스터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는 꼴이라니.

여기까지만 해도 당장 무슨 일을 저지를까 짐작이 가질 않을 정도다.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문영석이 망명을 결심한 이유 또한 작금의 상황에 따른 불안감 또한 없잖아 있었겠지.

"나 참,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려는 건지."

결국 문영석 또한 예의 조직이 제 3차 대침공을 위해 안배한 몬스터의 정보까진 알지 못했다.

뭐, 당연한 이야기지.

섣불리 떠들었다간 어디서 정보가 새어나갈지 모를 일이니.

예의 비밀 조직을 움직이고 있는 동기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절대적인 힘.

전 인류가 힘을 합쳐도 감히 당해낼 수 없을 거라 일컬어지는 괴물에 대한 외경.

헌데, 그런 식으로 자만에 빠져 입방아를 찧은 끝에 인류가 대책을 쌓는 데에 성공한다면?

당장에 놈들 또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를 일이다.

이미 한 번 저지른 일, 무엇이 두렵겠는가?

하물며 이번엔 같은 인류를 배신한다는 심리적 부담도 없을 판국에.

그렇지만.

'하연이인가.'

동시에, 문영석은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스터 측에서 제공한 하연이의 정보를 촉매에 대입시키고 보면 소환이 성공할 확률은 매우 높다고.

심지어 S랭크 몬스터의 소재나 본인을 대동해도 이처럼 높은 확률이 나오진 않을 거라 열변을 토하기까지 했지.

물론, 예의 집단과 손을 잡은 몬스터들이 제공한 정보가 전적으로 옳다는 가정 하에.

'십중팔구 틀림없겠지.'

문영석은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정 반대였다.

하연이를 보육원에 맡긴 이들이 예의 집단이라는 게 거의 확실한 가운데.

나로서는 놈들이 하연이의 성능을 잘못 쟀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아직 몇 가지 문제도 남아있다.

'어째서 놈들은 하연이를 고아원에 맡긴 거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제물이 필요했을 뿐이라면 처음부터 양육을 다른 이에게 맡길 필요는 없다.

비교적 대중적인 서구 흑마술에 따르면, 소환에 필요한 제물은 오히려 아이일 때가 제격이라는 모양이니.

요컨대, 그들의 행동은 하연이가 품은 촉매로서의 적성을 역으로 깎아내린 셈이다.

내분?

'설마.'

보육원 원장 쪽도 말하지 않았나.

열 여섯 살이 되면 데리러 올 예정이라고.

이를 고려하면 놈들은 역시 하연이를 제물로 삼을 생각이었겠지.

그렇다면, 16년이라는 시간은?

무언가 이유가 있었던 걸까?

……당장 거기까진 짐작할 수 없었다.

정보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으니까.

아니, 이전에 비하면 상당히 나은 축이긴 한데.

지금으로서는 정작 죽일 때가 되니 동정심이 생겼다는 형편 좋은 전개도 부정할 수 없는 판국이니.

당장 내가 하연이를 처음으로 만난 그 날만 해도 그렇고.

무언가에 쫓기듯 도망치고 있던 하연이.

그 뒤를 쫓던 A랭크 몬스터 세 마리.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하연이를 제물로 바치기 위한 의식에서 모종의 차질이 있었던 거겠지.

거기에 하필이면 내가 있었던 탓에 드래곤 세 마리가 하림 용가리치킨 꼴이 되어버린 건 뭐 아무래도 좋다.

그렇지만.

'하연이는 어떻게 도망칠 수 있었던 거지?'

조직 내의 누군가가 하연이에게 동정심을 품었다는 가설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최소 A랭크 드래곤이 세 마리.

거기에, 여태까지 맞닥뜨린 적들을 고려하면 족히 그 이상.

당시까지만 해도 자신이 헌터라는 사실조차 몰랐던 하연이가 예의 조직의 포위망을 돌파해 도망칠 수 있었을까?

글쎄, 나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하연이는 조직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는 데에 성공했다.

이 시점에서, 대다수 문제는 결국 거기로 귀결한다.

'대체 뭐지, 하연이는?'

'하연이는 대체 뭐지?'

도대체 뭐길래 규격 외 등급의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는 촉매라는 건가.

도대체 무슨 힘이 있길래 그런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건가.

공교롭게도, 대답은 알 수 없었다.

너무나도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일까?

하연이 본인부터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질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당장 내가 품고 있는 대다수 의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그 날의 안개 너머에 도사리고 있으리라고.

뭐, 어느 쪽이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놈들의 돌발 행동에 대한 대책.

동시에, 이 쪽의 손이 남을 때 역으로 놈들의 시설을 쳐부수는 일이다.

평소운 박사가 움직인다면 십중팔구 이 쪽의 손이 한창 바쁠 때.

즉, 머잖아 있을 중간고사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쪽이 움직이는 건 그 전후.'

중간고사를 무게추로 삼아, 평소운 박사의 싹을 자른다.

거기까지 결정했다면, 나 또한 당장에 움직이려 들 필요는 없다.

저 쪽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역으로 발본색원.

그게 지금 우리들이 취할 수 있는 최적의 행동이니까.

때문에, 나는 방금 전부터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온갖 고민에 고개를 저으며 마저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저 멀리 어렴풋하게 보이는 아카데미를 향해.

하연이의 정체.

그리고 예은이를 '제작'했다는 평소운 박사에 대한 사고를 반추하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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