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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32화 (132/371)

〈 132화 〉 진상

* * *

"도대체 그 새끼들은 목적이 뭐냐?"

문영석의 말을 듣고 있자니,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몬스터 새끼들이야 그렇다 치자고.

놈들에겐 오히려 대침공 쪽이 반길 만한 상황일 테니까.

하지만.

신세계 질서에 속한 인간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 내 투정 비슷한 말에, 문영석은 조용히 답했다.

……뭐, 틀린 말도 아니지.

방금 전 내가 한 말은 결국 단순한 불평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 하나 바라는 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태까지 두 번의 대침공을 맞닥뜨렸으니까.

신세계 질서, 노부스 오르도 세클로룸.

놈들이 인류를 배신한 호로 새끼들이라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녀석들 때문에 제 3차 대침공이 일어난다 말하는 건 조금 어폐가 있겠지.

애초에 아카데미의 창립 이념부터 제 3차 대침공을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언젠가 제 3차 대침공은 반드시 일어난다.

대다수 헌터들은 그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녀석들은 언젠가 일어날 제 3차 대침공을 손수 불러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언제 일어날지, 어떤 식으로 발생할지 예상할 수도 없는 대재해.

그렇다면 차라리 이 쪽에서 직접 대침공을 일으킨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 세 번째 대침공이 시작될까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상황에 비하면 훨씬 낫겠지.

필시 그런 생각이었으리라.

그리고 내게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질 않았다.

대한민국은 나름 헌터 강국이다.

제 2차 대침공의 여파를 피할 수는 없었으나, 어찌저찌 잘 극복한 축에 속한다.

하물며, 지금 이 나라에는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이준구도 있다.

대대적인 헌터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긴 하지만, 그거야 전 세계적인 현상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지 못한다고 판단한 건가.'

인류 최강인 이준구를 포함해, 대한민국의 헌터 전원을 동원해도.

규격 외 등급에게는 상대가 되질 않는다고, 그렇게 판단한 건가.

그 사실이 나로서는 자못 불쾌했다.

"……그래서?"

"결론만 말하자면, 이들은 제 3차 대침공을 일으킬 규격 외 등급의 몬스터를 소환하려 하고 있습니다."

끓어오르는 듯한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툭 하고 던진 한 마디.

문영석은 용케도 그런 내 말에 대답을 건넸다.

다만.

"소환, 인가?"

"네. 마법, 개중에서도 소환술을 이용해서 말이죠."

역시.

문영석이 참여한 시점에서 얼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녀석들의 주된 수단이란 아무래도 마법이었던 모양이다.

마법.

그렇게 들으면 팍 하고 느낌이 오질 않는다.

헌터와 몬스터, 그리고 게이트.

이런 비상식이 당연해진 이런 시대에조차, 마법이라는 단어에는 생경함이 있으니까.

다만.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마법이란 즉 마력을 사용하는 방법.

다시 말해, 마력이라는 독자적인 법칙 하에 구동하는 자원을 사용한 일종의 기술이다.

보다 쉽게 설명하자면, 검을 만들어내는 건 정필연의 능력.

그렇지만, 검을 사용하는 건 어디까지나 정필연 개인의 기술이다.

이와 마찬가지.

본인의 적성이나 경향이 두드러지는 능력과 달리,마력 자체를 사용하기 위해 쌓아올린 기술.

그게 바로 마법의 정체다.

말하자면, 불꽃을 다루기 위한 김민철의 각종 기술도 일종의 마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마법사가 되기에 적합한 능력이 마력 감응이라 일컬어지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

발화 능력을 각성한 김민철의 마력이 발화 자체에 특화되었듯이, 여타 헌터들의 마력도 각성한 능력에 따라 성질이 바뀐다.

아니, 정확하겐 마력의 성질에 따라 각성하는 능력이 다르다고 말해야 하겠지만.

어쨌든,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마력 감응 능력은 사실 다소 심심한 편이다.

즉, 편향성이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력 감응 능력 자체가 마법에 도움이 되는 점도 없잖아 있지만, 마법사들이 감응 능력을 고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저런 까닭이다.

저주 능력을 각성한 하연이가 회복 마법을 사용하긴 힘들듯이.

염동 능력을 각성한 예은이가 육체 강화 마법을 사용하긴 힘들다.

능력에 맞추어 특화된 마력은 그만큼 편향성도 강하니까.

마력과 반대되는 성질의 마법은 거의 확실하게 사용할 수 없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겠지.

반대로, 최승준이 사용하는 얼음 마법을 일개 마력 조작 능력자가 따라잡기는 요원한 법.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마법사들은 만능성으로 승부를 보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순한 하위 호환에 머무를 뿐이니.

방금 전 소환된 소환술이라는 마법 또한 마찬가지.

마력과 술식을 매개체로 해당하는 대상을 소환한다.

이준구가 사용하면 번개의 정령 따위나 나오고 말겠지만, 마력 감응 능력자가 방향성을 지정하면…….

"규격 외 등급의 몬스터를 불러낼 수도 있다, 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냐?"

다만.

거기에도 몇 가지 의문이 있었다.

막말로, 마법은 결국 검술과 같은 기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검술만 해도 제대로 된 구결을 펼치기 위해선 충분한 훈련이 필요한 법.

헌데.

"대침공을 일으킬 만한 괴물을 도대체 어떻게 소환하겠다는 건데?"

마법이니 뭐니 멋들어지게 포장하긴 했지만, 결국 그 본질은 캣맘이나 다름없는 게 소환술이다.

마력을 사용하니 마법적인 캣맘이라고 해야 할까.

소환수들이 소환자의 마력을 소비해 현현하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고.

요컨대, 소환술에서 소환자가 하는 일은 제 마력으로 마법적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소환을 위해 그리는 마법진 또한 그 구성을 제대로 살피면 결국 저런 내용이다.

제가 이런 계약 조건으로 이만한 마력을 일정 기간동안 납부할 테니, 이 캣푸드가 마음에 드신다면 왕림해주소서…….

즉, 소환사 나름의 계약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내 의문은 상당히 지당한 편이었다.

소환을 위한 마법진을 그리고, 마력을 지불해 게이트 너머에서 규격 외 등급의 몬스터를 부른다.

바보냐?

씨발, 규격 외 등급의 몬스터를 부르고 유지할 수 있을 만한 마력이 있다고?

차라리 그만한 마력이 있다면 예의 규격 외 몬스터를 지워버리는 데에 사용하는 쪽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마력이 나름 독자적인 법칙 하에 돌아가는 건 사실이지만, 우주의 질서를 위배하진 않는다.

고작해야 100 정도 되는 마력으로 150 가까운 결과를 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를 알고 있는 내게 있어, 문영석의 말은 단순한 탁상공론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단지.

"그렇기에, 촉매가 필요한 법이죠."

촉매.

문영석은 태연한 얼굴로 그리 대답했다.

……확실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침공 이전까지만 해도 단순한 오컬트라 여겨졌던 마법서에서도 그리 말하지 않던가.

정말로 대상에게 마법을 걸고 싶다면 대상과 깊은 관련이 있는 주물을 사용하라는 식으로.

저주 등에서 대상의 머리카락을 요구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미약한 마력으로도 그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결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요구치를 낮출 수 있도록.

촉매를 사용하는 건 정말로 흔한 일이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같은 캣맘이라 해도 익숙한 캣맘과 처음 보는 캣맘이라면 대개 전자를 따르지 않겠나.

그런 이야기다.

"아니, 그런 물건이 있다고?"

다만, 아무래도 의문은 어쩔 수 없었다.

저건 뭐 신화 시대에 티폰이 사용했다는 무기가 남아있다는 수준인데.

아니, 티폰이라면 차라리 이해할 수라도 있겠지.

여하간 제멋대로 에트나 화산을 뒤엎고 튀어나오려 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 사이 벗겨진 세포 하나라도 있으면 꽤 쓸만한 촉매가 될 수 있을 거다.

여러 저주술 따위에서 제일 많이 애용하는 촉매가 머리카락인 건 괜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만.

여태까지 소환된 적도 없는 괴물의 촉매를 도대체 어찌 구하겠다는 건지.

"구하고 뭐고, 이미 있습니다만."

"엥?"

"다행스럽게도, 이 조직의 손에 들어가진 않았지만요."

"뭔데 그게?"

아니, 뭐야. 진짜로?

더럽게 깜짝 놀랐다.

평범하게 있다고 대답할 줄이야.

뭐 어디 경매라도 나온 건가?

그런 거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만.

이 쪽에게는 최승준이 있으니까.

물론 녀석들 중에도 기업가는 있겠지.

다만.

아카데미 교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최승준과 달리, 녀석들은 예의 촉매를 위해 공공연히 자금을 굴릴 순 없는 입장이다.

기업이 다 그렇지 뭐.

만일 누군가 이를 감수한다 할지라도, 그건 우리들에게 꼬리를 드러낼 뿐이니까.

때문에, 나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그리 물을 수 있었다.

허나.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뭐?"

"이미 당신들이 회수했으니까요."

……문득, 그 말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실이 있었다.

언젠가.

새벽이 깊게 자리한 골목길 너머에서, 나는 몬스터에게 쫓기고 있던 소녀를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미약하게 내 목덜미를 간질이던 위화감.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이상한 느낌을 받지 못했던 탓에, 어쩌면 내 착각이었던 게 아닐까 하고 넘어갔었는데.

"네. 자하연, 그녀가 바로 제 3차 대침공을 위해 준비된 제물입니다."

매정하게도, 문영석은 그리 답할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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