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파티
* * *
사실대로 말하자면, 티아마트는 지금 이 살롱의 분위기 자체가 영 마음에 들질 않았다.
나지막한 음색의 재즈.
다소 느슨한 클럽 내의 분위기.
뭐, 여기까진 괜찮다.
애초에 그녀가 신경 써야 할 부분도 아니고.
클럽의 창설 동기를 생각해 보면, 사실상 진짜배기들은 뒤이은 제 2차 대침공 때 이 살롱에서 손을 뗀 거겠지.
아니면 죽었거나.
그럴 만한 시대였으니까.
그렇게 빈 자리를 젊은이들이 대체한 결과가 바로 지금 이 살롱 특유의 천박한 분위기다.
음욕 가득한 시선.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있고, 추앙받길 좋아하는 티아마트라 해도 역시 이런 시선까지 달갑진 않다.
하물며 은근슬쩍 손을 뻗는 녀석들은 더더욱 예외고.
탁, 엉덩이를 더듬기 위해 달려드는 손등을 다시 한 번 쳐낸다.
솔직히 말해, 박우찬에게 신세를 지지만 않았더라면 진즉 손모가지를 분질러버렸을 것이다.
것보다, 정말로 손이 닿았다면 계획이고 뭐고 전부 불살라버릴지도 모른다.
'감히 여신의 옥체에 손을 대려 하다니.'
무엄한 짓에도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거늘.
더더욱 환장할 만한 사실은,저 정도면 차라리 양반이었다는 점이다.
아예 대놓고 그녀의 몸을 노리며 다가온 녀석들도 있을 정도였으니.
개중에서도 일부는 그들의 제안을 완고하게 거절하는 그녀를 향해 바람맞은 주제에 건방지다며 입을 삐죽대기도 했다.
차였다니, 차였다니!
아니,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저 녀석들에게 차인 건 아니거늘!!'
내심 티아마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차였다는 말에는 이토록 엄청난 마력이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지모신조차 차였다는 소리를 들으면 이렇게 구차한 변명이나 늘어놓을 수밖에 없으니.
그런 식으로 어떻게든 분을 삭이며 시간을 보내던 도중.
"잠깐 괜찮으실까요?"
드디어 입질이 왔다.
*
하릴없이 술이나 빨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자니, 문득 티아마트가 다급하게 신호를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확실히, 이 쪽도 이 쪽 나름대로 티아마트에게 접근하는 녀석들을 살피곤 있었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막말로 협회 최상층에서 수많은 사회 상류층들의 자문을 담당했던 여신과 나.
둘을 비교하자면 당연히 사람을 보는 안목도 그녀 쪽이 앞설 테니까.
덕분에 나로서는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다 합류하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티아마트가 낚아올린 월척은 내가 보기에도 한 눈에 수상쩍다는 걸 간파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문영석이라고 합니다."
눈 앞의 남자를 보고 느낀 첫인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전형적인 너드Nerd였다.
칙칙한 눈매. 짙은 다크서클.
우중충하게 기른 머리카락은 남자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길었고, 이를 한데 묶어 정리한 몰골도 영 난잡하다.
말하자면, 이런 살롱보단 대학원 연구실에 있을 법한 인상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도 그러했다.
문영석.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한 남자는, 자신을 마력공학 박사 학위 보유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내 의심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였다.
다른 직업도 아닌 박사 출신이 이런 살롱에 출석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무언가 수상쩍었기 때문이다.
아니, 전적으로 대학원생에 대한 내 편견에 기반하고 있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그러나 그 이후의 행동만 봐도 그랬다.
갑자기 살롱에 얼굴을 내민 공대 출신 박사가 티아마트에게 말을 걸었다고?
설령 거기까진 어떻게든 용기를 쥐어짜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이후부터 줄곧 자기 연구 분야에 대한 이야기만 반복한다는 건 좀…….
단순한 너드라면 처음부터 말을 걸지도 못했을 테지.
말을 걸만한 용기가 있다면, 반대로 그렇게 허술한 행동을 취할 리 없다.
때문에 나로서는 문영석이 예의 조직의 끄나풀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그건 지극히 당연한 행동들 뿐입니다."
"응? 진짜로?"
"예. 언제 또 다시 이런 곳에 와 볼 기회가 있을까 싶어 한층 들뜬 마음으로 말을 걸었지만, 정작 여자랑 대화하는 법을 모르겠다."
"엇."
"그러니 평소 하던 이야기, 자신 있는 이야기를 꺼낸다. 남중 남고 남초학과 대학원생 루트를 밟은 학생들 특유의 슬픈 습성이죠."
"앗, 뭔가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기혼자니까요."
은근슬쩍 손가락에 낀 반지를 내비치며 강변하는 꼴이 살짝 우습긴 했다.
어쨌든.
성대한 편견으로 시작된 이야기였으나, 결과적으로 정답이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파트너 분께 적당히 말이나 붙여볼 심산으로 다가갈 만큼 대범한 사람은 없겠습니다만."
사내 또한 그리 시인했고.
오히려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더욱 불쾌하게 여기는 듯 보일 정도였으니.
즉, 문영석은 처음부터 우리와 접촉할 생각을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다시 한 번 소개하죠. 문영석 박사입니다."
"박우찬입니다."
"아, 어쩐지 눈에 익다 싶더라니. 걸려도 제대로 걸렸군요."
그렇기 때문일까?
사내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자신의 현재 신분을 털어놓았다.
문영석. 대침공 이후 세계 각지에 우후죽순 생겨난 수많은 마력공학 박사 학위 보유자들 중 한 명.
"동시에 지금은 이 조직의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죠."
……폭력. 유혈. 협박. 약탈.
어느 쪽이든, 힘을 써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던 나로서는 상당히 맥빠지는 일이었다.
"너무 그렇게 바라보진 말아주시겠습니까? 이거야 원, 무서울 지경이로군요."
그럴 만도 했다.
사람이 영 비실비실한 게, 로우킥 한 대 맞으면 다리가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고.
여하간, 예상 이상으로 평화로운 조우가 되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홀에서 화장실로 이어진 복도 한구석.
우리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문영석의 말에 따르면, 살롱 내에 비치된 휴게실과 달리홀 내의 열기를 피하고자 하는 이들이 애용하는 장소라던가.
그거야 어쨌든.
"거두절미하고 묻겠습니다. 제가 여러분들 쪽으로 망명한다면, 여러분들께선 제게 무엇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문영석은 그렇게 말했다.
망명.
확실히,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일전에 강원도 지부에서 있었던 나와 태시영의 교전은 사실상 내 판정승으로 끝이 났으니까.
그리고.
저 집단이 상상 이상으로 발이 넓은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S랭크 헌터조차 쉽게 충당할 수 있을 수준은 아니다.
태시영 정도 되는 실력자가 쓰러졌다고 들으면 그야 동요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
마침내 S랭크 헌터조차 정면에서 쓰러뜨린 도축업자.
그렇다면 지금처럼 이적을 원하는 자들이 나와도 이상할 건 없다.
말하자면, 문영석은 그 틈을 타 가장 먼저 떨어져 나온 끄나풀인 셈이었다.
문제는.
"이 쪽이 물어야 하는 말 아뇨?"
"합당한 이야기로군요."
그거야 뭐 저 쪽 사정이고.
막말로, 망명자니 뭐니 해도 결국 여태까진 그 놈들과 한통속이었다는 뜻 아닌가.
이제 와서 배신을 한다고 들어도 말이지~
물론 사내가 가지고 있을 정보는 나도 궁금하긴 했다.
탐이 나는 건 역시 사실이니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를 입증해야 할 건 내가 아닌 문영석 쪽이다.
인간의 피를 손에 묻히고 싶지 않다는 건 여전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솔선해 인류를 배신한 양반들까지 배려하고 싶진 않고.
까놓고 말해 옆 사람 팔아먹고 도망치려 한 현대판 을사오적들 아닌가.
솔직히 눈 앞에서 죽는 모습 보면 안타깝다고 말이야 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론 엄청 통쾌할 것 같은데.
나만 해도 그럴 테니.
"……어쩔 수 없죠. 그럼, 먼저 짤막하게 자기 PR부터 시작해보도록 할까요."
결국 문영석 또한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 정말로 자기 PR을 시작했다.
"먼저 한 가지, 따로 정정하고 싶은 사실이 있습니다."
"뭔데 그러쇼?"
"저는 인류를 배신하고 제 살 길을 도모하고자 이 살롱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말이야 누구나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물론 그렇습니다만, 저로서는 그리 주장할 수밖에 없군요."
"흐음. 그래서? 당장 제시할 수 있는 근거라도 있나?"
"공교롭게도, 그 쪽은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
"제 사정을 나름대로 설명해보도록 하죠. 판단은 부디 그 쪽에서."
"허어. 만약 내가 이야기만 듣고 손을 털면 어쩌려고?"
"글쎄요. 굳이 따지자면, 제가 지금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일종의 도박입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죠."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어디, 들어나 볼까."
팔짱을 낀 채 등을 벽에 기댄다.
말 그대로, 어디 한 번 들어나 볼까 싶은 기분에서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티아마트 또한 턱끝을 치켜올리고 팔짱을 낀다.
어설픈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기도 잠시, 문영석 박사는그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 본래 국가 연구기관 소속 연구원이었습니다."
"듣기야 했지. 초기 마력공학 학위 보유자는 정부에서 모조리 쓸어갔다면서?"
"알고 계시는군요."
"뭐, 그래서?"
"그렇게 국가의 부름에 응해 여러 프로젝트를 주관하던 저였습니다만, 어느 날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네. 몬스터 소재가 제대로 공급되질 않았거든요."
"아."
그렇게 들으니 짐작이 가는 게 또 없지는 않았다.
최근 만난 청준필 그 아저씨랑 관련 있는 이야기였으니까.
다시 말해, 청준필 그 양반이 준장 자리까지 초고속 진급하게 된 이유.
즉, 정부와 헌터 사이의 대립이다.
"제 1차 대침공이 막 안정되던 시기였으니까요."
"정부와 헌터 사이에 불온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고, 그게 소재 공급의 차질로 이어졌다?"
"정확합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군은……."
"몬스터 소재 확보에 적합하진 않지."
해체 기술도 해체 기술이지만, 화기를 사용한다는 점이 가장 크다.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무래도 냉병기에 비하면 소재에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는 법.
이래저래 몬스터 소재를 확보하기 위해선 헌터의 협력이 필수불가결한 이유다.
"대침공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만, 신소재 연구 등에는 수많은 샘플이 필요합니다."
"샘플?"
"예. 대다수 신소재 연구의 시작은 결국 자연 관찰에서 시작되니까요."
"아, 연꽃 구조를 참고한 금속 표면 처리라던가 그런 거 말이지."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리고 그건 마력공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일전, 수업을 위해 참고한 네메아의 사자 가죽만 해도 저랬으니까.
무기에 의한 공격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하는 성질.
저런 무기 내성을 돌파하기 위해 장인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물건은 바로 네메아의 사자 발톱이었다.
어지간한 단검보다 날카로움에도 불구하고, 무기 내성 너머로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발톱.
이를 보고 수많은 장인들은 영감을 얻었다.
네메아의 가죽이 발휘하는 무기 내성은 어느 정도인가?
어떤 기준 하에 무기와 육체를 구분하는가?
무기와 육체를 구분하는 경계선은 어떻게 되는가?
무기로서의 성능과 무기 내성 돌파를 양립할 수 있는 한계선은 어디인가?
그 결과.
마침내 헌터들은 몬스터들의 무기 내성을 돌파할 수 있는 특수 골재 함유 무장을 손에 넣었다.
문영석의 말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 이해는 합니다. 정치적인 사정이 있었으니까요. 차질이 생겨도 어쩔 수 없겠죠."
"허면?"
"씨발 납품 기간을 안 늘려주더군요."
"저런……."
자주 있는 일이다.
물론, 자주 있는 일이라 해서 빡치지 않는 건 또 아니지만.
그렇게, 문영석은 자신이 속해 있던 연구소에 사표를 던졌다.
"얘, 얘."
"뭐냐."
"이 녀석, 박사라는 주제에 존나 웃긴 놈이로구나."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다.
아니, 그거야 어쨌든.
짧은 헛기침과 함께 다시 한 번 이야기의 중심을 그의 인생사로 돌렸다.
"그래서? 때려친 건 때려친 거고, 도대체 어쩌다가 비밀 조직에 가입했다는 거지?"
"이후 저는 치킨을 튀기고 있었습니다만……."
"으음? 박사라는 자가 어찌하여 갑자기 닭을 튀기게 되었단 말이냐? 이 녀석, 수상하구나."
"잠깐, 진정해라. 원래 그런 직업이니까 너무 캐묻지 말도록."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직장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직장 선배?"
치킨 튀기는 법을 알려주신 치킨집 사장님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겠지.
문영석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직장을 때려치고 꽤 시간이 된 시점이었죠. 두 번째 대침공이 일어났었으니까요."
"허, 대침공이 일어났는데 치킨을 팔았다고? 나 참, 기름값도 안 나왔겠네."
"치킨집 차렸는데 대침공이 일어난 겁니다."
"……어, 음. 뭐, 그래. 계속해 보쇼."
"그 선배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비슷한 이유로 사표를 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건데, 나랑 같이 일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
……거기까지 말한 뒤, 문영석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짙은 피로가 느껴지는 탄식이었다.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힘겨운 듯한, 바야흐로 연구원들만이 가능할 법한 숨소리였다.
"저는 받아들였죠."
"요컨대 돈 때문이었다는 거군?"
"예, 그렇습니다."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사정이긴 했다.
단지.
"댁 사정은 잘 알겠지만, 그래서 댁이 뭘 할 수 있는 건진 아직 잘 모르겠는데."
"거기에 대해선 연구 자료라도 보면서 설명해드리고 싶습니다만……."
그런 내 말에 문영석은 다소 난색을 표했다.
뭐, 그야 갑자기 프레젠테이션을 하라고 들어도 곤란할 따름이겠다만.
문제는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점이다.
막말로, 저렇게 말한 뒤 우리를 연구소까지 데려가 함정 속으로 밀어넣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사연 한 번 기구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답시고 쫄래쫄래 뒤따를 순 없는 노릇이니까.
"뭐, 괜찮겠지요."
"엥?"
"저는 여러분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길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거 참, 자신만만하시군."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당신들 측에는 이준구 국회의원이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응?"
이준구?
아니, 그야 그렇긴 하지만.
갑자기 여기서 그 새끼 이름이 왜 나와?
허나, 그런 내 질문에 곧바로 답하는 대신 남자는 천천히 뜸을 들이며 말했다.
"평소운."
"뭐?"
"방금 전 말씀드린 제 직장 선배의 이름입니다."
"그게 누군데."
"음, 당신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드리자면……."
이윽고.
아하 하는 소리와 함께, 문영석은 이번 대화에 쐐기를 박았다.
"대한민국의 인공 헌터 개발 프로젝트 총책임자, 라고 말씀드리면 이해하기 쉬우실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