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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29화 (129/371)

〈 129화 〉 파티

* * *

"처음 뵙는 분이시로군요. 실례합니다만, 회원증 확인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 이걸 보여주면 괜찮을 거라고 하던데요."

"아, 따로 초대받으신 분이로군요. 초대장은 어떤 분께서?"

"태시영이라고 하는데. 오늘 그 친구도 왔나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오늘은 부재중이라 하시는군요."

"이런, 엇갈렸나보네. 뭐, 다음에 따로 만나면 되겠죠."

"그럼, 부디 즐거운 시간 되시길."

결론만 말하자면, 잠입은 손쉬웠다.

드레스 코드까지 맞추겠답시고 대낮부터 온갖 고생을 한 보람이 있었다.

그리 생각하며, 나는 목을 죄고 있던 넥타이를 다소 헐겁게 풀었다.

"태시영이라는 녀석은 또 누구더냐?"

"일전에 말한 실눈 총잡이."

흐응, 짧은 콧소리.

내 한걸음 뒤에 서 있던 티아마트가 내는 소리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옆에 찰싹 달라붙었던 티아마트도 지금은 어정쩡하게 거리를 둔 채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일단 살롱 안까지 잠입하는 데에 성공하기도 했으니 더 이상 남녀 동반이라는 문구를 의식할 필요도 없거니와…….

"어우, 씹."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 그 내용물을 바닥에 흩뿌린다.

물론 뜬금없이 살롱 바닥을 더럽히고 싶은 기분이 든 건 아니고.

그대로 흘러넘친 내용물, 다시 말해 포션 내의 마력을 제어해 정장 안 오른팔을 가볍게 적셨다.

최고급 포션이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순식간에 회복하는 오른팔.

잠시 오른손을 쥐락펴락하던 나는 곧 손가락 끝의 감촉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였다.

품 속으로 빈 병을 챙긴다.

동시에, 짤랑 하는 유리병 소리.

따로 챙겨두었던 빈 병들끼리 부딪힌 탓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벌써부터 세 병.

최고급 포션이라는 이름 내지 성능과 반대로, 내가 이 살롱에 잠입하며 사용한 포션만 벌써 세 병이었다.

첫 번째는 두 분 정말 잘 어울린다 말하던 종업원에게 주먹을 날리려던 걸 참기 위해 혀를 씹다 혀를 끊어먹었고.

두 번째는 연인인 척 하기 위해 잡았던 손을 씻다가 무심코 손목을 뽑아버릴 뻔했다.

세 번째는 들어오기 직전 팔짱을 꼈다가 팔에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근육이나 세포가 괴사하기 직전이었다.

"미쳤군, 미쳤어. 역시 그 조직의 집회라 할 만은 해."

그리고 그런 나를 티아마트는 한 걸음 뒤에서 떨떠름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엔 다소 쾌활하게 내 주변에서 얼쩡거리던 녀석이 지금은 잠잠한 이유 또한 바로 저 때문이었다.

하긴, 갑자기 혓바닥을 뱉어냈을 땐 엄청나게 놀랐더랬지.

"……본인이 자청한 게 아니니라."

"알고 있어."

침울한 듯 떨떠름한 듯,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늘어뜨리는 티아마트.

말마따나, 이번에 녀석을 부른 건 어디까지나 내 쪽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에 녀석을 탓할 생각은 없다.

아니, 사실 거짓말이고 엄청 탓하고 싶지만.

천천히 심호흡을 반복한다.

만약 평소대로였다면 저딴 말을 지껄이는 녀석들은 전부 기절시키고 계획을 강행했겠지.

어쩌면 상대가 티아마트밖에 남지 않았던 시점에서 계획 따윈 포기하고 이 살롱을 강습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우주복은 덧입었을 테고.

허나.

지금의 나는 사냥꾼이다.

일개 헌터, 일개 몬스터.

일개 개인을 상대로 투닥대고자 여기까지 찾아온 게 아니다.

내가 사냥해야 할 건 바로 이 나라를 팔아넘기기 위해 획책하고 있는 인류의 배신자들.

이런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해서야 대물을 잡을 순 없는 법이다.

진흙탕에 몸을 담구고, 짐승의 변을 맛보는 사냥꾼처럼.

당장은 인내해야 할 때다.

물론 실제로는 전혀 참지 못했지만.

크윽, 제기랄.존나 힘들어.

그래도 미리 연습한 덕분에 한 가지 익숙해진 점이 있었다.

포션 쓰는 법.

이제는 옷깃 하나 적시지 않고 포션을 피부에 바를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쓸데없는 잡기였다.

심지어 본래 목적이었던 몬스터의 기척엔 조금도 적응하지 못했고.

하긴, 그렇게 적응하기 쉬웠으면 내가 3년동안 그렇게 골골댈 필요도 없었겠지.

혹시 모르는 마음에 일단 연습이야 하고 있지만, 내 생각엔 이거 평생 불가능하지 않겠나 싶다.

'하여튼 귀찮다니까.'

공연히 심통이 나 괜히 새로 맞춘 정장의 커프스를 만지작대고 있자니 문득 한숨이 나왔다.

나름 비싸게 맞춘 명품이니만큼 이제 와서 불편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가격만 해도 평소 내가 걸치던 물건보단 값싸니 지레 겁을 집어먹을 필요도 없다.

아니, 헌터용 장비니 당연하겠지만.

오히려 그 쪽은 내다 팔기라도 하면 이 살롱 채로 구매하고도 남을 테고.

단지.

그런 만큼 한층 더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허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거북함.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은 역시 옷 문제가 아니라 내 기분 때문이겠지.

적진 한복판에 무기도 갑옷도 없이 홀로 동떨어진 느낌은 도저히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허면, 앞으론 어떻게 할 테냐?"

"일단 적당히 시간이나 떼우고 있자고."

"흐음. 어디, 춤이라도 추겠느냐?"

"야."

"농담이니라."

쿡쿡,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고소하는 티아마트.

그런 그녀의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확실히 춤을 추고 있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물론 춤이라고 해도 정말 클럽처럼 떠들고 노는 건 아니고.

낮게 깔린 재즈 음악.

그 가운데, 가볍게 춤을 출 수 있는 홀이 마련되어 있는 구조였다.

오히려 무도회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뭐, 정작 춤추고 있는 사람들도 두어 번 어울리고 마는 정도인 걸 보면 그렇게 말하기도 힘들겠지만.

제 1차 대침공 당시 창립되었다는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고아한 앤티크 풍 인테리어.

거기에 무언가 허례허식만 가득찬 구성.

사회 상층부가 잔뜩 포진하고 있다는 말과 달리 묘하게 벼락부자 냄새가 나는 구성이었다.

"뭐, 그럼 본인은 이대로 적당히 시간이나 허비하고 있도록 하지. 더 이상 네 녀석을 고생시켜도 곤란할 테니 말이다."

"어, 뭐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기특해?"

"후후. 다시 한 번 반했느냐?"

"……?"

"수줍어하긴."

뭐래 시발.

그렇게 말하긴 힘든 분위기였다.

술, 개중에서도 맥주를 숭상하는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여신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벌써부터 분위기에 취한 걸지도 모르겠다.

"좋아. 그럼 해산하자고."

"으음. 떠나기 직전 합류하면 될 테지?"

"그래."

"좋다."

그리 말하는 것과 달리, 티아마트는 사뿐사뿐 내 곁으로 발을 옮겼다.

부르르, 방금 전 있었던 일을 상기한 탓에 온 몸의 솜털이 쭈삣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내 곁을 지나친 여신은, 그대로 내 앞에 멈춰선 채 핑그르 하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팔락대는 드레스 자락이 우아하게 꽃처럼 피었다.

"어떻더냐?"

"또 뭐가."

"해산하는 건 좋지만, 적어도 감상평은 들어두어야 하지 않겠느냐. 설마, 여신을 바람맞힌 꼴로 만들진 않겠지?"

바람은 모르겠지만 칼침은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틀린 말은 또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갑자기 왜 따로 놀고 있냐 물으면 대답할 말 정도는 맞춰두는 게 좋겠지.

그거랑 드레스 품평이 무슨 상관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부탁받기도 한 만큼,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였다.

등은 거의 끝까지, 가슴팍은 거의 아랫배까지 패인.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걸 학생들한테 입힐 뻔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오싹한 기분이 들 정도로.

옷감의 색깔은 검은색.

목덜미로부터 흘러나와 가슴으로 떨어져내린 천은 곧 허리에서 만개하듯 얕게 다리를 감싼다.

얇은 천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신체의 윤곽.

검은 옷과 대비를 이루는 우윳빛 피부.

위험할 정도로 유려한 곡선이 언뜻언뜻 드레스 각지에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은, 까놓고 말해 위험할 정도였다.

옷가지라고 해야 할지, 천쪼가리라고 해야 할지.

그런 감상을 품을 수밖에 없는 차림새를 천박하다 폄훼할 수 없는 건 전적으로 옷걸이 덕택이었다.

대비를 이루는 겉옷과 속살.

그 위로 흐드러지는 적주색 머리칼.

새하얀 피부 위에선 마치 그 신체를 타고 흐르는 핏방울처럼, 새카만 옷자락 위에선 잿더미 위로 타오르는 불씨처럼.

선명하게 그 빛깔을 아로새긴 머리카락은 마치 불꽃이 일렁이는 듯 보이기도 했다.

거기에 그 이상으로 고혹적인 미소까지.

스스로의 매력을 알고 있다는 듯, 입가가 자신만만하게 호선을 그린다.

그리고 실제로 그럴 만도 했다.

현대적인 디자인의 선글라스 너머로, 세로로 찢어진 보랏빛 눈동자가 반짝인다.

평소라면 어색하다 못해 위화감 가득했을 뱀의 시선도, 지금이라면 다들 낯선 매력으로 받아들일 테지.

모델들에게 흔히 사용하는 값싼 비유와 달리, 문자 그대로 여신.

한 신화군의 정점에 군림했던 여신만이 두를 수 있는 기품을, 그녀는 실로 자연스레 소화하고 있었다.

"옷이 날개네."

"쌀쌀맞은 녀석 같으니."

뭐, 이거야 대충 그렇지 않겠느냐 추측한 거고.

내가 보기엔 최고급 캐비어를 아낌없이 사용한 군대산 비닐밥처럼 보일 뿐이었다.

참 이상하단 말이지.

하나하나 뜯어볼 땐 객관적으로 예쁘겠구나 얼추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정작 내겐 그렇게 보이질 않으니.

구성하고 있는 요소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보면 솔직히 말해 내겐 과분할 정도로 아름다운 느낌이 없잖아 있는 바퀴벌레.

참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감각이었다.

"대충 알겠구나. 허면, 다른 녀석들에겐 네 녀석이 옷차림에 트집을 잡았다고 말해두도록 하마."

아니, 그렇게 말하면 내가 또 할 말이 없잖냐…….

다소 멋쩍은 기분에 앓는 소리를 내고 있자니, 녀석은 뭐가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흥 가벼운 콧소리와 함께 사뿐사뿐 떠나갔다.

그런 뒷모습에서 가급적 빨리 시선을 뗀다.

감상평을 말해주지 못해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그거랑 별개로 오래 보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제 역할은 이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불꽃.

마치 넘실대는 불길처럼 보인다.

방금 전, 티아마트에 대해 나는 그런 감상을 품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이 장소에서 티아마트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쪽이었다.

부나방을 끌어들이는 모닥불.

졸부 냄새 가득한 이 살롱에 춤추듯 내려온 진짜배기.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달려들겠지.

내 일은 개중에서도 수상쩍은 놈들을 걸러내 이후 따로 추궁하는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녀석 또한 외모만큼은 그럭저럭 먹어주는 편일 테고.

어, 아마도?

난 실감이 안 나서 잘 모르겠긴 한데, 최승준이 고 사인을 냈으니 대충 괜찮지 않을까.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내 개인적인 호오야 어쨌든 이번에 동참한 게 티아마트라서 다행인 점도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쪽 세력 중에서 가장 얼굴이 팔리지 않은 게 바로 티아마트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의 집단의 성질을 생각해 보면 협회 최상층의 여신에 대해 알고 있는 녀석들도 없잖아 있겠지.

다만.

그렇다 해도, 티아마트와 매번 얼굴을 맞댈 수 있는 건 정말로 소수다.

하물며 그 명단 또한 티아마트가 이미 암기하고 있으니.

녀석의 얼굴을 보고 묘한 태도를 취한다 한들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것보다, 설령 티아마트를 알고 있다 해도 그렇게 과민 반응하진 않을 거다.

막말로 평상시 협회 최상층에 칩거하는 여신과 똑같이 생긴 누군가가 남자와 함께 연회장에 나타났다?

도대체 누가 그걸 보고 여신이 분신을 보냈다 생각한단 말인가.

그냥 비슷하게 생긴 다른 사람이라 착각하고 말겠지.

하물며, 녀석이 종종 말했던 걸 고려해 보면 녀석의 분신은 다른 이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권능일 공산이 컸다.

허면 티아마트의 알리바이 또한 자동으로 완성되는 셈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소 느긋한 태도로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낚시에 가까운 행동.

하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입질은 온다.

오늘 이 자리에 예의 집단의 끄나풀이 아예 없다면 모를까, 있다면 무조건 미끼를 물 거다.

어째서냐고?

녀석들이 점조직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태시영과 내 교전 사실도 예의 집단 사이에 널리 퍼졌겠지.

이를 고려해, 나는 몇 가지 밑밥을 뿌렸다.

아저씨를 보호하기 위함도 있지만, 굳이 태시영의 이름을 사용해 여기까지 들어왔다.

팔이 두 동강 난 상황에서 파티에 참여할 리 없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누군가는 수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

거기에 지금은 방독면 따위도 완전히 놓고 온 상황.

달리 내 얼굴을 알아보는 녀석도 있을지 모르고.

그럼 누구 하나는 걸리게 되어 있다.

점조직의 한계다.

꼬리를 밟기 어려운 대신, 세밀한 통제 따위는 어렵겠지.

하물며 놈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제 3차 대침공의 발발.

대의도 신념도 없는 목적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윤 이상의 결집 요소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충분한 미끼를 제공할 수 있다면, 녀석들 중 일부를 유인하거나 내분을 일으키기도 용이하다는 뜻이다.

나와 태시영의 교전 이후 예의 조직 내에서 접근 금지령 따위가 내려졌다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조건 하에서라면 누군가 마각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날 수밖에 없으니까.

태시영이라는 이름에 의심을 품고 쏘다니던 일개 조직원.

태시영의 패배에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고 싶은 전투광.

반대로, 태시영의 패배에 불안함을 느낀 중도파 인원.

어느 쪽이든 나로서는 환영할 따름이다.

이번에는 취미 생활 따위를 위해서 찾아온 게 아니다.

이기러 온 거다.

그러니까, 쓸 수 있는 건 이 쪽도 전부 쓴다.

그럴 각오로 왔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모닥불이라는 표현은 퍽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썩어도 여신이라고 해야 할까.

예의 집단의 끄나풀과 달리, 평범하게 말을 붙여보고 싶어 다가오는녀석들도 한가득일 테지.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경계심 강한 사람이라 해도 주의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수상쩍기 그지없는 상황.

하물며, 상대 남자 측은 바로 그 도축업자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던 녀석들 앞에, 바로 그 도축업자의 파트너가 나타난다.

도대체 어떤 관계인 건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녀다.

어디까지나 추정이지만.

어쨌든,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고 협회 최상층에 기거하고 있는 여신의 존재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허나, 이윽고 스스로의 머릿속에 떠오른 추측을 배제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여신은 협회의 최상층에 스스로 칩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도축업자라고 하면 바로 그 여신의 뿔을 자르고 도망쳤다는 무뢰한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여신께서 직접 도축업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미쳤을 리 없다.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명목 하에, 녀석은 어디까지나 여신과 닮은 제삼자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느껴지지 않았던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찌른다.

도축업자와 직접 부딪히는 건 아무래도 부담이 있다.

그러나, 파트너 쪽은 어떨까?

마침 파트너 쪽은 그 미모 덕분인지 말이라도 한 번 붙여보고자 몰려든 녀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같은 살롱에 속하긴 했지만, 지금 이 클럽 한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조차 못할 우민들.

자연스레 가벼운 지적 허영심이 일어난다.

뭐, 괜찮겠지.

저토록 어리석은 녀석들이 자신과 같은 선택된 자들의 방패막이 되어줄 것이다.

허면.

정말로 가볍게, 묻어가듯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슬쩍 섞여들어 질문을 던지는 건 괜찮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다면, 그 뒤는 간단하다.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위에 있다고 믿는 녀석들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꽂아넣는 건 정말로 손쉬운 일이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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