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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28화 (128/371)

〈 128화 〉 파티

* * *

문제는 나도 마땅한 상대가 없었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담임 권한으로 애들이라도 부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참해서 관두기로 했지만.

"전 괜찮아요."

"헛소리 말고 공부나 해, 요것아. 네가 괜찮아도 내가 안 괜찮으니까."

"테에엥."

하연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정말로 데려갈 수도 없었다.

아니, 파티 클럽이고.

십중팔구 술도 나올 텐데 무슨 미성년자.

드레스 정도는 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

'다들 와꾸는 그럭저럭 먹어주니까.'

물론 그렇다 쳐도 하연이를 데려가는 건 역시 자살 행위다.

미치지 않고서야, 놈들의 거점일지도 모르는 장소에 하연이를 데려갈 수는 없지.

지희도 마찬가지고.

윤하는 파티 분위기 자체를 꺼려하는 성격이고.

따지자면 예은이 정도일까.

뭐, 그렇다 쳐도.

'정말로 데려갈 순 없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랑 별개로, 곧 중간고사 기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 와서 중간고사 따위를 챙기는 게 우습게 보일 순 있겠지만, 이 부분에 있어선 나와 최승준의 의견도 일치했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관여해라."

이제부터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될 테니, 학생들한테서 거리를 두는 게 좋을까?

그런 내 물음에, 최승준은 반대로 대답했다.

일전, 학생들을 싸움에 말려들도록 해선 안 된다는 발언과 비교하면 퍽 상이한 대답이었다.

물론 녀석에게도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네 말에 따르면, 애초부터 학교 밖에서 잠깐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황윤하 학생을 납치한 게 그 놈들이다. 그렇지?"

"뭐, 그렇지. 사실 그것도 하연이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로 잠깐이었고."

"그러니 거리를 둬도 별로 의미는 없을 거다."

어차피 같은 반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저 쪽에선 멋대로 손을 쓸 거라는 말엔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내키지 않나?"

"아직 애들이잖냐."

"그래도 해야 할 거다."

아무리 그래도 벌써부터 이런 싸움에 끼어들도록 하는 건 역시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런 취지의 발언에 대해, 최승준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평소 녀석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발언에 내가 잠시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하자, 녀석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로 이제 와서지. 애초부터, 이 아카데미의 창설 목적을 잊었나?"

"그렇게 말하면 내가 또 할 말이 없네."

"그래. 말려들게 하고 말고 이전에, 우리들은 이미 소년병을 내세우고 있는 개새끼들이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녀석들의 목적이 제 3차 대침공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애들한테도 이제 예의 조직의 행보는 남 일이 아니다.

이 아카데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제 3차 대침공에 대비할 차세대 헌터들을 기르기 위함이었으니까.

말마따나, 학생이니 뭐니 하기 이전의 문제였다.

나 참, 글러먹은 어른들같으니.

"물론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애들까지 피할 필요는 없다?"

"그래. 그리고 그 애들을 한시라도 빨리 가용할 수 있는 전력으로 만들어라."

다소 지친 어조로 그리 말하며 소파에 등을 기대던 최승준의 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 생생했다.

"알고 있겠지만, 이 싸움은 장기전이 될 거다."

"뭐, 반 년 지났는데 이제 간신히 끄나풀 하나 잡은 셈이니까."

"그래. 그러니까 우리도 보다 넓게 봐야겠지."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은 총 3년.

E랭크를 기준으로, 매년마다 한 단계씩 상승해 졸업 시점에서 B랭크를 목표로 한다.

즉.

"그 정도는 기대해도 괜찮겠지?"

"얌마, 너무 무시하지 마. 다들 못해도 A랭크는 될 재목이야."

"기대하고 있으마."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어머, 정말로 잘 어울리세요~"

"훗. 본인의 본판이 뛰어난 덕택이지."

"네? 앗, 네."

덕분에 이런 상황이 되긴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다 한들,클럽 측에서 그런 사정까지 고려해주진 않는다.

즉, 남녀 동반 필수라는 조건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여자들의 연락처란 실로 협소하다.

어쩔 수 없지, 모태 솔로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서아네 어머님께 부탁드릴까 생각한 적도 있을 정도다.

서아야 저번과 마찬가지로 나랑 동시에 자리를 비울 순 없는 입장이고.

그 결과, 내 주변에 남은 사람들 중 이런 파티를 문제 없이 소화할 수 있을 만한 여자.

거기에 추가로 죽어도 괜찮은 녀석을 우선해 선발하자, 역시 저 년밖에 남질 않았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람도 아니지만.

몬스터 이전에 분신이기까지 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팅 룸 앞.

드레스 코드를 맞추기 위해 최승준으로부터 받아온 카드에 힘입어 희희낙락하는 자칭 여신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

그리고 그 시각.

여신, 티아마트는 요 근래 들어 가장 유쾌한 기분이었다.

거기에는 물론 술과 축제를 사랑하는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등장인물 특유의 성품도 있다.

새 드레스를 맞춘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박우찬이 자신에게 파트너로서 파티에 참가해 달라 부탁했다는 점 쪽이 더 컸다.

'후후, 녀석도 참.'

세상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피팅 룸 안에서 드레스를 갈아입는 여신.

돈은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어떤 의미에선 여자들이 남자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 덕분일까.

티아마트는 벌써부터 족히 열 벌은 되는 드레스를 갈아치우고 있었다.

물론 박우찬이 그렇게 말한 건 단순히 자신에게 카드를 넘길 때 최승준이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었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티아마트에게 있어선 자신을 위해 지갑을 털겠다 선언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드레스 차림을 보고 싶어서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허면.

이 시점에서 슬슬 한 가지 명시해야 할 점이 있다.

만약 이 자리에 독심술사가 있었다면 단박에 깨달을 수 있을 만한 사실.

즉, 여신 티아마트는 한 가지 성대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보기와는 달리 꽤나 열성적인 구애로구나. 후후후, 결국 녀석도 사내인 게지.'

여신 티아마트.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여신이자 지모신.

수많은 신들을 낳은 존재이며 동시에 그 대적자.

위대한 신들의 어머니는 박우찬이 자신에게 반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술렁술렁, 술렁술렁.

만약 박우찬이 알았다면 눈을 까뒤집고도 남을 오해였다.

허나, 여기선 먼저 여신의 명예를 위해 그녀의 입장에서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까놓고 말해, 그녀의 도끼병을 부정할 순 없더라도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티아마트가 알기로, 박우찬은 심각한 수준의 몬스터포비아였다.

오로지 몬스터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성좌들의 정체를 찍어 맞출 만큼.

그만한 몬스터 혐오자는 티아마트로서도 난생 처음 볼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그리고 그런 박우찬에게 최근 티아마트는 이루 말로 다하기 힘든 폐를 끼쳤다.

무엇을 숨기랴, 예의 김민철 사건이었다.

물론 그녀에게 있어 민철이와의 이별은 하나의 비극이었다.

하지만 박우찬에게 있어선 단순한 민폐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실로 자명한 사실……!!

그렇기에.

모든 사건이 해결된 직후, 티아마트는 박우찬이 필시 자신에게 화를 낼 거라 생각했다.

사실 당연한 판단이었다.

어쩌다 보니 S랭크 헌터를 상대로 사생결단을 벌이게 되질 않나, 알고 있던 아이가 납치당하질 않나…….

평범한 사람이라도 성질을 부렸을 상황이다.

그러나 박우찬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에 가선 티아마트를 위로하기 위해 그런 말까지 하지 않았던가.

"애초에 나, 딱히 널 싫어하진 않는데."

……티아마트 입장에서 보자면 개인적인 호의 때문에 자신을 도와준 게 아닐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따로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물론 박우찬으로선 마지막에 S랭크 몬스터를 썰어제낀덕택에 기분이 좋았던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애미 앞에서 아들을 죽이고 희희낙락하긴 힘들었을 뿐.

뭐, 어느 쪽이든.

티아마트에게 있어선 착각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자신이 몬스터를 싫어하는 이유와 별개로, 티아마트라는 개인에겐 호의를 가지고 있으니까.

딱히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저런 상황 하에서라면 아무래도 은밀한 고백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이런 의구심은 여름방학을 맞아 한층 더 몸집을 불렸다.

다름이 아니라, 박우찬이 먼저 바다에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녀석, 보고 싶은가?!

보고 싶은 건가, 이 여신님의 수영복이?!

이번엔 정말로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뭐, 정작 남해 지부에서 요호 무리와 마주친 탓에 바닷가에서 노닥거릴 수는 없었지만.

애시당초 박우찬이 티아마트를 초대한 이유는 눈 앞에서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허나.

슬픔과는 별개로 김민철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을 박우찬에 대한 민폐라 생각하고 있던 그녀로서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사교 파티에 참여할 파트너로 자신을 지명했다?

여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벌써부터 삼세 번.

이 정도면 의심이 아니라 확신을 가져도 이상하지 않다……!!

소소한 이야기지만, 아무리 박우찬이라 해도 면전에서 대놓고 달리 부를 사람이 없어서 널 부른 거라고 말하진 않았다.

몬스터니까 좋아하고 싫어하고 이전에 단순한 예절 문제니까.

물론 박우찬이 몬스터 앞에선 예의고 나발이고 전부 날아가는 타입이긴 하지만, 그거야 어쨌든.

덕분에 여신의 착각은 지금 절찬리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었다.

비록 이번 파티가 예의 수상쩍은 비밀 조직의 회동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듣긴 했지만.

그조차 여기까지 오면 단순한 명분이나 핑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최승준의 카드 또한 그런 의심에 한 획을 더했다.

아니, 막말로 예의 집단에 대한 습격을 위해서라면 어째서 드레스를 맞출 필요가 있단 말인가?

하물며 돈은 신경 쓸 필요 없다니.

'이래서야 단순한 밀회가 아닌가!!'

아니었다.

그러나.

저러한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채, 티아마트는 엷은 웃음을 띄우고 있을 뿐이었다.

"후우, 이런 이런. 이토록 죄 깊은 미모가 다 있을까……."

곤란하다는 듯 피팅 룸 거울 앞에서 고개를 가로젓는 적발의 미녀.

쓸쓸한 듯 우수 어린 표정이 실로 치명적이라고 티아마트는 생각했다.

"어이쿠, 정체불명의 미녀가 아니라 나였나──."

정말이지 죄 많은 여자다.

그리 말하며 티아마트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절찬리에 자뻑 중이었다.

그리고 이 시점까지 오면 독심술사가 아니라 해도 눈치챌 수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현세에 내려오길 대충 20년.

여신 티아마트, 제대로 된 구애를 받고 있다는 착각 속에 한껏 들뜬 상태였다.

덤으로 평소의 자아도취가 한층 더 심화된 모습도 보인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티아마트는 자신에 대한 숭배를 싫어하진 않았다.

여신이니까.

것보다, 여신이기 이전에 지성체라면 누구나 자신을 떠받들어준다는 사실에 즐거움을 느끼는 법이다.

요 최근 그녀가 자신을 무작정 숭배하던 이들을 꺼려했던 건 전적으로 김민철 때문이니까.

박우찬을 좋게 보던 이유 또한 마찬가지.

허나, 그런 트라우마와는 별개로 단순한 취향만을 따지자면 역시 추앙받는 쪽이 마음 편하다.

말이야 쉽지, 막말로 박우찬의 평소 모습을 보고 도대체 누가 은총을 내려도 좋다 생각한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 갑자기 발작하면서 뿔 자르고 튀었을 땐 씨박 괘씸한 새끼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본체가 머무르는 협회 최상층에서 박우찬을 맞이할 때마다 잘린 뿔을 들이미는 이유 또한 사실 바로 그 때문이고.

사람 심리가 다 그런 법이지.

아니, 사람이 아니긴 했지만.

그리고 그런 김민철과 관련된 트라우마조차 해소된 지금, 그녀에겐 자신을 향한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김민철과 비교하기엔 아무래도 경우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근친상간도 오케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티아마트였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나름의 기준은 있다.

설령 동성애자라 해도 모든 동성에게 무작정 연심을 품지는 않듯이.

말하자면, 그녀에게 있어 김민철은 어디까지나 연인이 아닌 가족이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박우찬이 보내는 호의는 나름 나쁘지 않았다.

여하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날을 세우던 당사자였으니까.

'이건 못 참지~'

……실로 꼴사나운 모습이긴 했지만, 어떤 의미에선 여신의 관록을 엿볼 수 있는 광경이기도 했다.

적어도 나를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라면서 흔들다리 효과에 당하진 않았으니까.

물론 그렇게 생각해보려 한들 김칫국 마시는 모습까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자그마치 20년에 걸쳐 대한민국에 적응한 결과라고 해야 할까.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지모신은 김칫국을 마시는 몰골조차 남달랐다.

"정말이지, 그 녀석에게 연심을 품은 여아들도 있었다만……."

예를 들면 다른 학생들.

개중에서도 특히나 두 명이다.

한 명은 일찍이 박우찬의 제자였다 이야기하던 신서아라는 계집애.

다른 한 명은 아직 명확한 자각까진 없는 듯하지만 여러모로 그에게 의존하고 있던 자하연이라는 계집애다.

그렇지만.

정작 녀석의 마음을 빼앗아버린 건 그 둘이 아닌 본인이란 말인가──.

슬프다, 미안하다.

애석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그저 아름다울 뿐인데.

세상에 이런 비극이 다 있단 말인가.

"나라는 여자도 참, 정말로 곤란하군."

그렇게.

온갖 꼴깝을 떨던 티아마트가 마침내 드레스를 고른 건 그로부터 1시간은 더 지난 뒤의 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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