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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27화 (127/371)

〈 127화 〉 신세계 질서

* * *

태시영.

드디어 놈들의 끄나풀과 그 이름을 알게 되었다.

허면, 이후는 그 꼬리를 밟아 나설 뿐이다.

"어떤 놈이오?"

"그렇게 물어도 말이지."

잠시 앓는 소리를 내며 팔짱을 끼던 양반이, 곧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그래. 처음부터 좀 이상한 녀석이긴 했다."

"이상했다고?"

"음. 일단 그 녀석이 군에 들어온 이유부터 수상쩍었으니까."

이유라니.

단박에 수상쩍은 표현이 튀어나왔다.

아니, 태시영인지 뭔지 하는 놈 이야기가 아니라.

요 아저씨 쪽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의 집단의 존재 따위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이 갑자기 수상쩍다 말한들…….

'적당히 말하는 거 아냐, 이 아저씨?'

나도 모르게 의심의 시선이 향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준필 준장은 사뭇 진지한 태도로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그렇잖냐. 요즘 시대에 누가 입대를 하려고 하겠어."

"어, 아저씨가 해도 되는 소리요 그거?"

"안 되니까 여기서만 하는 소리지."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아저씨가 늘어놓는 이야기에도 나름대로 조리가 있었다.

아저씨 가라사대, 저런 이유로 요즘은 군대에서도 입대 사유를 조사하고 있다던가.

비록 주민 등록 제도라는 게 대침공 이전의 산물이 되어버린 시대라지만, 군대는 또 예외다.

폐쇄적인 환경.

거기에 집단의 뜻을 강요할 수 있는 체제.

틀림없이 군적 정도는 따로 관리하고 있겠지.

하여튼, 덕분에 태시영 그 놈의 정보도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그 놈, 처음부터 군대의 시스템에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야."

"시스템?"

"그래. 정확하게 말하자면, 랭크 시스템이라고 해야겠지."

"아하."

과연.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랭크 시스템.

요컨대 현재 대한민국 헌터 협회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사용하고 있는 랭크 구분 시스템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랭크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군의 체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왜냐고?

미군에서 만든 거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알파벳을 쓸 이유가 없지.'

까놓고 말해, 랭크 시스템이니 뭐니 해도 그 근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기준.

말인즉슨 일종의 구분용 라벨이나 다름없다.

개중에서도, 랭크를 결정짓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대상 몬스터를 사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화력.

즉.

완전 무장한 군인이 필요한 몬스터는 E랭크.

일개 소대가 필요한 몬스터는 D랭크.

탱크나 폭격기 등 군용 병기가 필요한 몬스터는 C랭크.

미사일이 필요한 몬스터는 B랭크.

그리고 핵병기가 필요한 몬스터는 A랭크.

미군은 당시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용 전력을 분석해 이를 필요에 따라 배분했다.

현재 헌터들의 랭크가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

미군에게 있어 중요한 건 특정 몬스터를 확실하게 사살할 수 있는 전력의 확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중에서도 그 녀석이 관심을 가진 건……."

"S랭크."

"정확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게 바로 S랭크.

말 그대로, 특수Special한 랭크다.

여하간, 현생 인류에게 핵병기 이상의 화력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다시 말해, S랭크는 말 그대로 특주.

확실하게 쓰러뜨리기 위해선 얼마나 되는 화력이 필요할지, 그조차 알 수 없다.

핵병기 두 발에 쓰러질 수도 있고, 백 발도 견딜 수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적이다.

그리고 군에 있어, 미지란 곧 천적이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통상적인 기준으로는 A+면 최고 랭크라는 말도 마찬가지.

처음부터 S랭크란 기준 외의 대상을 뜻하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핵병기로도 쓰러뜨릴 수 없는 몬스터.

그런 몬스터를 훨씬 나약한 칼침만으로도 쓰러뜨릴 수 있는 사냥꾼.

어느 쪽이든, 현생 인류 사회의 기준을 아득하게 벗어난 괴물들이다.

"애초부터 실력도 나쁘지 않았지만, 실제로 성장세가 특히나 가파른 친구 중 한 명이었지."

실제로도 그랬다.

사회에 있을 땐 C랭크, 입대했을 땐 B랭크.

그리고 전역할 땐 A랭크.

어느 정도 재능도 있었겠지만, 도저히 노력 없이 나올 수 있을 만한 수치가 아니다.

거기에.

'지금은 거의 확실하게 S랭크, 인가.'

정면에서 A+랭크 헌터인 도주진을 쓰러뜨린 실력.

설령 군인 출신이었던 태시영이 특히나 대인전에 강했다 해도, 그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도주진을 설득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시점에서 기습의 이점은 없음.

그런 상황에서 변변찮은 부상 하나 없이 A+랭크 헌터를 쓰러뜨렸다는 건, 그만한 체급 차이가 있다는 뜻이니까.

군에 들어가기 위해 스스로의 스펙을 올리고, 군 내에서도 단련을 거듭한다.

이렇게 랭크를 올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뒷세계와 접하며 이를 스스로의 경험으로 삼은 건가.

'엄청난 향상심이군.'

S랭크에 대한 관심.

군인 출신 헌터가 이제 와서 그런 비밀 조직에 몸을 담은 이유.

어쩌면 그 비밀 또한 바로 거기에 있을지 모르겠다.

"해서?"

"음. 당시 담당자의 평에 따르면 참으로 금욕적인 친구였다던데……."

이야기는 이랬다.

말마따나 금욕적으로 스스로의 단련에 매진하던 태시영.

허나 그런 그를 보다 못한 동기들이 최소한 취미라도 붙이라며 만류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일과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제대로 된 교류 한 번 없는 수준이었다고 하니.

결국 못 이기는 척 한 번은 다른 동기를 따라 나간 적이 있고, 이후 훈련과 생활 사이에도 균형이 잡혔다던가.

퍽 그럴듯한 미담이다.

하지만 이후 태시영의 행적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애초에.

"결국 그 취미라는 게 뭐였수?"

"사교 클럽이었지."

"엥?"

씨발, 존나 뜬금없네.

훈련만 중시하던 폐급이 갑자기 사교 클럽?

그런 내 기분을 알아챈 모양인지, 한바탕 유쾌한 듯 웃음을 쏟아낸 아저씨가 다시 한 번 설명을 시작했다.

"당시 동기 중에 조금 잘 사는 집안이던 친구가 있었거든."

"허어. 빌더버그 클럽 같은 거구만."

"어려운 말 쓰지 말도록. 당황스러우니까."

"앗, 예. 그래서?"

"음?"

"결국 그 클럽이라는 게 뭐 하는 물건이요?"

사교 클럽이라 해도 한 마디로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종류가 있다.

경마 클럽. 독서 클럽.

말이 클럽이지, 결국 그 본질은 친목 동호회니까.

사교 클럽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자들의 친목회로 변질되었다 한들 이는 마찬가지다.

클럽에는 중심이 있어야 하니까.

설령 친목을 클럽의 본래 목적보다 중시하더라도, 친목의 발단이 될 계기는 필요한 법이다.

"파티 클럽이었다더군."

"니미."

설마 했던 대답이었다.

한 마디로, 정말 노는 게 목적이었다는 뜻이다.

방금 전까지 들었던 태시영의 과거는 물론, 내가 알고 있는 태시영과도 영 상반되는 이미지였다.

군인 출신 살인자가 파티 클럽에……?

아니, 또 대부 따위를 생각해 보면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한 기분으로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자, 아저씨 또한 신나서 설명을 계속한다.

"회원제 살롱을 하나 소유하고 있는 모양인데, 거기에서 매일같이 연회를 벌인다더군."

"매일?"

"과장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단 참여가 필수가 아닌 거겠지."

"아하."

요컨대 매일 문이야 열어 두겠으니 올 사람은 오라는 식인 모양이다.

"생각보다 본격적인데."

솔직한 감상이었다.

완전 회원제로 운영되는 살롱.

매일같이 살롱을 관리하기 위한 인건비.

그 살롱에서 소비하는 음식이나 주류 또한 클럽의 성질을 생각해 보면 결코 값싼 물건은 아니겠지.

고작해야 군바리 몇 명이 들렀다기엔 아무래도 스케일이 꽤 크다.

"아마 자네가 알고 있는 사람도 몇 있을 게야."

"엥?"

"지금은 숫제 젊은이들의 사교 클럽이 다 됐지만, 본래는 사회 상류층이 모이던 장소였거든."

"과연."

그런 거라면 납득할 수 있다.

난 또, 군바리 아들 몇 명이 살롱 대절하고 다니나 했다.

"내가 처음 자네들의 말에 회의적인 생각을 품었던 이유가 바로 그거야."

청준필 준장은 그리 말했다.

하긴, 아저씨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이만한 저명인사들이 모이는 장소다.

갑자기 제 3차 대침공이 어쩌고저쩌고 말해도 그야 실감이 가질 않겠지.

그러나 나로서는 정 반대였다.

본디 군에 관심이 많아 자발적으로 입대를 선택한 태시영.

허나, 그러던 어느 날 동기들의 추천으로 인해 어떤 사교 클럽에 들린다.

이후 지나친 단련을 지양하며 동기들과 어울린 끝에, 퇴역.

그리고 갑자기 S랭크 수준의 실력을 갖춘 채 비밀 조직의 하수인으로 들어갔다?

글쎄.

내가 보기엔 오히려 클럽을 계기로 군에 흥미를 끊은 모양새다.

만약 태시영이 제 3차 대침공을 노리고 있는 비밀 조직에 몸을 담았다는 말이 사실이라 한다면,그건 과연 언제부터였을까?

냉정하게 따져봤을 때, 가장 의심스러운 건 역시 저 사교 클럽이다.

사교 클럽을 전후로 바뀐 태시영의 행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단련 끝에 어마어마한 강함을 손에 넣은 작금의 태시영.

무언가 빌미가 있었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사교 클럽에서의 만남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토록 절묘한 타이밍이었으니까.

애초에말이야 저렇지만 실은 아저씨도 같은 생각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일개 사교 클럽에 대해 저토록 자세히 조사할 이유가 없다.

십중팔구 머릿속으론 이미 클럽이 수상하단 결론을 내렸을 거다.

내 질문을 대비해 정보를 모아둔 이유 또한 마찬가지일 테고.

다만.

객관적으론 그리 판단할 수 있어도, 역시 제 3차 대침공이라는 단어는 무겁고 버겁다.

아저씨가 생각하고 있는 건 딱 그런 감상이리라.

뭐, 아무리 그래도 저 클럽에 속한 전원이 예의 집단의 끄나풀이라 생각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점조직에 가까운 구성을 취하고 있는 예의 집단.

개중에서도, 혼인회에게 약속했듯 국회에서의 화두를 올릴 수 있는 정치인.

혹은, 고랭크 헌터조차 턱끝으로 부릴 수 있을 만한 진짜배기들이 정기적으로 모일 장소는 딱 거기 뿐이다.

"그럴 줄 알았다."

내 표정에서 대답을 읽은 듯, 아저씨는 그리 말하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자."

"엉?"

"그럴 줄 알고 준비했지. 초대장이다."

군인 특유의 딱딱한 손아귀 너머로, 고급스러운 편지 두 장이 팔락인다.

아, 하긴.

완전 회원제라고 했었지.

그럼 당연히 초대장도 있겠지.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했대?"

"어디서 구하긴 어디서 구해, 내 거지."

"아하."

과연, 어떻게 여기까지 조사했나 했더니.

하긴, 이 아저씨 정도면 그야 저만한 클럽에서도 초대하고 싶겠지.

현 군부 내에서 최고 실세라 불리는 양반이니까.

문제는 정작 당사자가 이런 사교 활동에 젬병이라는 건데.

슬쩍, 표면을 살핀다.

겉보기에도 고급스럽기 짝이 없던 종이의 감촉은, 직접 어루만지자 차라리 비현실적일 정도로 부드러웠다.

그 위.

봉투 한 구석에, 화려한 필기체로 흘리듯 새겨진 금빛 서명이 보였다.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

"그 클럽 겸 살롱 이름이라던데. 듣기로는 제 1차 대침공이 안정되었을 때 만들어져서 그렇다던가."

"흐음."

미국 국장의 두 번째 표어인가.

확실히, 새로운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하면 이처럼 적절한 이름도 없다.

정작 찾아온 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두 번째 대침공이었지만.

뭐, 일단 머리에 넣어두도록 할까.

"그런데 왜 두 장이야?"

"응?"

"엉?"

"아니, 너야 말로 무슨 소리냐? 그야 이런 자리면 당연히 남녀 동반 참석이지."

"뭣이라?"

그리고.

하나는 서비스냐고 농담할 생각으로 그리 질문한 나를 향해, 청준필 준장의 미묘한 시선이 꽂혔다.

응?

남녀 동반?

아니, 말마따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고 보면 문득 떠오른 사실이 있었다.

청준필 준장.

제 2차 대침공 당시, 윗선이 모조리 갈려나간 끝에 지금 위치에 오른 군부의 실력자.

동시에, 그에 어울리는 전공으로 낙하산이라는 비판을 모조리 잠재운 사나이.

불세출의 지휘관이자 구국의 영웅이라 불리는 이 양반은, 나이로 따지면 아직 젊은 축에 속한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그 후줄근한 넥타이.

그리고 저 아찔한 패션 센스가 말해주듯이, 그는 아직도 홀아비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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