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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26화 (126/371)

〈 126화 〉 신세계 질서

* * *

그 이후.

우리들은 별다른 문제 없이 아카데미로 귀환할 수 있었다.

동시에, 아카데미는 중간고사 기간에 진입.

덕분에 나 또한 자습을 핑계로 최승준을 만날 짬을 낼 수 있었다.

"제 3차 대침공이라."

"개쩔지?"

그리고.

이번 현장학습을 계기로 내가 눈치챈 사실들은 저 최승준의 입에서도 앓는 소리가 나오게 하기 충분했다.

……대침공의 인위적인 재현.

거기에 오로지 스스로의 안위를 위하여 나라를 팔아먹기로 결정한 일부 상층부.

바야흐로 현대판 을사오적이나 다름없었다.

"과연, 그 정도면 납득이 가는군."

처음엔 현실을 부정하던 최승준도 이윽고 긍정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저렇게 가정하면 맞아떨어지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승준 본인이다.

누차 말했듯이, 최승준은 본인부터 이 나라에 손꼽히는 재벌 중 한 명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회 상층부들이 얽힌 예의 집단에 대한 정보는 최승준에게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 이유 또한 마찬가지겠지.

최승준은 기업가이기 이전에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들 중 한 명이다.

자신의 부모가 눈 앞에서 몬스터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유로 기업인임에도 불구하고 업계 최전선에 투신했던 괴짜.

녀석의 인맥이나 자금은 저들 입장에서도몹시 탐이 났겠지만, 아무래도 회유할 수는 없다 판단했던 모양이다.

다만.

'기업가 쪽은 꽤 단단히 엮여 있는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최승준 정도나 되는 녀석에게 누구 하나 이야기를 흘리지 않다니.

나불나불 잘도 떠들던 예의 가이드와 달리, 저 쪽은 입단속이 꽤 확실한 모양이다.

뭐, 어느 쪽이든.

얻은 건 많았다.

놈들의 목적을 확정했다.

강원도 지부가 이번 사건에 의문을 품었다.

어쩌면 남해 지부 쪽도 포섭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이런 판단은 내가 아닌 최승준 쪽이 할 일이다.

아카데미의 머리인 건 어디까지나 녀석이니까.

사실 세세한 정치 공작 쪽은 나로서는 완전히 문외한이기도 하고.

두 개 지부의 협력.

어떻게 사용해야 할진 아직 감이 잡히지 않지만, 일단 손이 많아서 나쁠 건 또 없겠지.

"꽤나 적극적이군."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최승준은 그리 소평했다.

하긴, 녀석에게는 다소 기묘하게 비칠 수도 있겠지 싶다.

자랑은 아니지만, 여태까진 몬스터가 오면 죽이고 혼혈이 오면 반만 죽이는 게 내가 하던 일 전부였으니까.

복잡한 일은 이준구나 최승준에게 떠맡기고 그냥 몬스터만 죽이며 꿀을 빤다.

그게 나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적이니까."

"……그래."

최승준도 그 이상 묻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옷깃을 단정하게 정리한다.

평소에 이런 걸 신경 쓰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사람이니까.

"그럼 마지막으로 점검하지. 이번 밀담의 목적은?"

"예의 교전 대상을 중심으로 한 조직의 구조 파악."

"나아가서는?"

"이를 미끼로 삼은 군부의 포섭. 혹은, 군부 쪽의 세력 떠보기."

"마지막으로 자하연에 대한 정보 탐색이다."

내가 곧바로 답하지 않자, 최승준은 천천히 제 앞에 깍지 낀 손을 올렸다.

"알고 있겠지만, 여태까지의 행적으로 볼 때 녀석들의 최우선 목표는 자하연 그 학생이다."

"나도 알아."

"그렇다면 이야기도 빠를 텐데."

틀린 말도 아니었다.

처음에 하연이를 만났을 땐 단순한 미끼 능력자라 생각했지.

녀석들의 전모가 밝혀지고 난 다음엔 하연이의 저주 능력을 탐내는 거라 생각했고.

하지만.

녀석들의 뜻이 제 3차 대침공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자그마치 17년 전부터 녀석들이 하연이를 안배한 게 고작해야 저주 능력 하나만 보고 그런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라. 그 학생을 스파이 취급하는 건 아니야."

"그건 그렇지."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단순한 개인 보호.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하연이의 위험도가 단박에 뛰어오른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게 곧 하연이가 위험 인물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연이에게 얽힌 사연 쪽이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다 말하는 쪽이 정확하겠지.

오히려 하연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녀석들이 하연이를 노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 조사해봐야 한다.

다만, 그래도 싱숭생숭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알겠다, 알겠어."

물론 그렇다 한들 마땅한 대안이 있는 건 또 아니었다.

때문에, 나로서도 녀석의 시선에 못 이겨 양 손을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진짜 간다."

"음. 그 쪽은 맡기마."

여하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 중간고사 기간동안 아카데미의 머리인 최승준이 자리를 비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반대로 다른 녀석들 중 달리 마땅한 인원도 없었다.

학생들은 당연히 제외.

꼬꼬마들은 시험이나 쳐라.

그렇다고 서아를 데려갈 수도 없다.

내가 자리를 비운다는 건 반대로 말하자면 하연이의 호위에 구멍이 생긴다는 뜻이니까.

학교와 하숙집, 양 쪽에서 하연이의 호위를 담당할 수 있는 서아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다.

물론 나름대로 생각한 바는 있다.

이번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도 내 마력 감지 범위 안이고.

만약 하연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합류할 수 있다는 자신도 있다.

그러나.

슬슬 시인해야겠지.

여태까지는 이래도 상관 없었다.

상대가 보내는 몬스터만 죽이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녀석들을 적이라 시인한 지금은 그래선 안 됐다.

막말로, 여태까지 이런 허술한 태도였음에도 문제가 없었던 건 어디까지나 녀석들이 내 실력을 보고 지레 겁을 집어먹은 탓이다.

아무리 이런 시대라 해도, 고랭크 헌터를 움직이면 흔적이 남는다.

하물며 상대는 S랭크 몬스터와 A+랭크 대인전 특화 헌터를 쓰러뜨린 괴물.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S랭크 헌터를 움직여선 안 된다.

저만한 거물이라면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을 뿐더러, 결과도 확실하지 않으니까…….

그런 생각이 없잖아 있었겠지.

강원도 지부에서 있었던 일로 이런 인식은 심화되면 심화되었지 사라지진 않을 거다.

하지만.

나까지 그렇게 생각해선 아니 된다.

언제까지고 녀석들의 인식 따위에 의존할 수는 없으니까.

까놓고 말해, 어느 날 눈이 돌아가 돌연 자폭 테러를 벌일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실력을 키워야 할 때가 왔을지도 모르겠군.'

몬스터를 잡기 위해선 이 정도면 충분하다.

허나, 지금부터 싸워야 할 건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 또한 칼을 다시 벼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삼키며, 나는 교장실을 뒤로했다.

*

헌터들의 시대가 열린 지금도, 사람들은 청준필 준장이라는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제 2차 대침공.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는 표현을 단순한 비유가 아닌 사실 묘사를 위해 사용해야 했던 시절.

당시 대한민국에선 헌터들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이었다.

제 1차 대침공의 종식.

상대적으로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입지.

때문에, 사람들은 물론이요 정부까지 헌터들을 내심 애물단지처럼 여기고 있던 시대다.

그로 인한 감정의 골은 제 2차 대침공이 시작될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군부에서는 더더욱.

국가 내에 군 외의 무력이 존재한다는 사실.

폭주하던 헌터에게 가족을 잃은 당시 군 내의 실권자.

저런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정부를 불신하고 역으로 경계하던 헌터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제 2차 대침공 초기 대한민국은 문자 그대로 멸망 일보 직전까지 몰리고 말았다.

서울이 평지가 되었고, 정부의 손으로 부산을 불살라야 했던 상황.

그럴 때, 저런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나선 것이 바로 청준필 준장이었다.

여타 군부의 실세들과 달리, 청준필 준장은 군부의 무력 독점에 구애되지 않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직화가 특징인 군대에 개인의 무력을 앞세운 헌터들은 맞지 않는다 여겼다고 해야 할까.

그렇기에 청준필 준장은 빠르게 헌터들의 강제 징병을 포기하고, 이를 정부 측에 넘겼다.

그게 바로 지금의 헌터 협회다.

물론 실상은 변하지 않았다.

징병의 주체가 군에서 정부가 되었을 뿐.

허나, 같은 말이라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헌터 번호 등록 대신 주민 등록이라는 표현을.

헌터 징병 대신 대침공에 맞서는 영웅들이라는 표어를.

고작해야 그 정도 효과만으로도 대한민국은 당시의 혼란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이를 틈타, 게이트를 통제하지 못해 무너진 북한으로부터 흘러들던 몬스터를 상대로 저지선을 구축.

마침내 서울 탈환전을 지휘한다.

말하자면, 대다수 사람들에게 있어 청준필 준장은 제 2차 대침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탱한 불세출의 명장이었다.

"아저씨, 시간 좀 피하쇼. 뭐 이렇게 세월을 직빵으로 맞았어?"

"야, 네가 이 자리에 있어 봐라.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냐?"

"그랬으면 이 나라 망했지."

"하긴."

"거 참, 너무하네. 부정 좀 해주시지."

물론 내게 있어선 예전에 몇 번 같이 작업 뛴 적 있는 양반에 지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괴수전 교리 창안자. 불세출의 지휘관. 서울 탈환자.

동시에, 군 입장에서 바라본 헌터라는 전술 자원의 용도 등 아카데미의 각종 교본을 저술한 저술자.

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후줄근한 아저씨.

그게 바로 눈 앞에 있는 청준필 준장이었다.

"일단 네가 말한 쪽도 조사는 해 봤다."

"오, 역시."

당연하지만, 내가 지금 이 아저씨랑 만나고 있는 건 평소처럼 잡담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저씨 쪽도 알고 있겠지.

눈에 띄지 않기 위한 사복 차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론에 들어서는 태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탁, 탁.

꺼내든 서류로 가볍게 테이블을 두드리는 동작.

뜻은 약한 재촉이다.

"그런데, 그 말은 사실이냐?"

"뭐가?"

"군에도 예의 작전 세력의 끄나풀이 있을지 모른다 했던 말 말이다."

"작전 세력이라니."

너무 군바리같은 단어 선정에 무심코 웃음을 터트린다.

뭐, 아저씨로서는 쉽게 웃어넘길 수 없는 이야기겠지만.

제 3차 대침공.

여러 업계 중에서도 세 번째 대침공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 가장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건 역시 군이다.

지금은 사회 분위기 상 쉬이 거론할 수 없지만, 제 2차 대침공의 종식마저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말한 적도 있을 정도니.

그런 아저씨에게 있어, 내가 이번에 넘긴 정보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나라에서 세 번째 대침공을 획책하는 세력이 있다.

예의 세력은 몬스터와 손을 잡고 있다.

몬스터에게 이 나라를 세 번째 대침공의 무대로 제공하는 대신, 본인들의 안전을 담보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런 작전 세력의 협력자 중에, 군 출신 헌터가 있다.

아저씨한텐 그야말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였겠지.

물론 군대 또한 결국 사람이 모이는 조직이다.

저만한 위치까지 올라가려면 사실상 정치력도 필수인 상황.

다만, 이 양반이 지금 직위를 손에 넣은 건 어디까지나 그 압도적인 군공 때문.

덕분에, 청준필 준장에게는 상대적으로 이런 부류의 정치력이 미흡했다.

그런 면모가 대중에게는 오히려 천생 무골처럼 여겨지는 면도 있겠지만.

몇 번이나 되는 쿠데타를 경험한 이 나라에 있어선 중요한 어필 요소다.

정치 쪽으로 진출할 생각이 없다면 단순한 악플 방지용에 지나지 않긴 하겠지만.

것보다, 이 양반이 가진 타이틀을 생각해 보면 설령 정치력이 충분했다 할지라도 예의 집단과 관련된 제안이 오지는 않았겠지.

그렇기에 나나 최승준도 이처럼 마음 놓고 이 양반에게 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거고.

"일단 그렇게 파악하고 있어요."

"일단이라니, 진지한 문제야. 아저씨 이 나이에 짤리면 어디 가서 재취직도 못해."

"엄살은. 국회만 가도 승승장구하겠더만."

피식 웃으며 못 미더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아저씨가 건넨 서류를 확인한다.

거기에는 몇 명이나 되는 군 소속 출신 퇴역 헌터들의 신상 명세가 기입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나와 최승준의 목적이기도 했다.

강원도 지부에서 나와 교전한 예의 가이드.

놈의 정보를 본격적으로 캐내기 위해선 역시 군부의 협력을 받을 필요가 있겠다 판단한 덕택이다.

"자료 괜찮네. 시간 많이 걸렸수?"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걸리진 않았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군속 헌터가 다 그렇죠 뭐."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청준필 준장이 헌터들의 규격화와 군인화에 사실상 손을 뗀 이후, 군에 투신하는 헌터들은 확 줄어들었으니까.

것보다 애초에 자발적으로 입대한 헌터들이 과연 몇이나 됐을까.

대부분 강제 징병이었겠지.

그런 상황에서, 군속 헌터라고 하면 사실상 모종의 사정이 있어 군에 투신한 이들.

먹고 살기 팍팍해 군에 들어오거나 군대에 쓸데없는 로망을 가진 타입이 대부분이었다.

정말로 보기 드물게 국방을 위하여 스스로 몸을 바친 젊은 헌터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전국적으로 보면 상당한 숫자가 있었을 텐데.

내 말만을 듣고 막무가내로 나서 조사해 준 아저씨한텐 고개를 들기 힘들 정도였다.

해서.

얼마간 아저씨가 넘겨준 서류를 살피던 내 시선이 문득 어떤 헌터의 신상명세 앞에서 멈췄다.

"찾았다."

"뭐? 어디?"

말이야 그렇게 해도 관심이 없지는 않았겠지.

내 말에 아저씨도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나.

"네가 말한 인상착의랑은 영 다른데?"

내가 가리킨 사진을 보며 그리 고개를 갸웃거리는 청준필 준장.

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놈이에요."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말하는 거야?"

"골격이 똑같음."

얼굴이야 뭐 뜯어고치면 되는 일이고.

성형 대국 대한민국 만만세다.

"……그, 그러냐?"

뭐, 그런 내 말에 정작 당사자인 아저씨는 다소 떨떠름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지만.

어휴, 이래서야 원.

군과 헌터, 헌터와 민간의 유리를 막았다 평가되는 이 양반조차 이럴 정도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참으로 어둡다 말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어쨌든.

'찾았다, 개자식.'

서류 위에 남은 사진을 향해 나는 내심 그렇게 뇌까렸다.

태시영.

얼마 전, 강원도 지부에서 마주친 가이드의 얼굴 바로 옆에 적힌 이름 석 자를 두 눈에 똑똑히 새기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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