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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24화 (124/371)

〈 124화 〉 사냥감이 사냥꾼을 사냥하는 방법

* * *

'개꿀인데?'

그리고.

경악과 별개로, 녀석의 반응을 확인한 나는 무심코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런 씨발, 나도 모르게 그만.

억지로 이 쪽의 사고를 되돌린다.

다른 게 아니라, 만약 이 추론이 사실이라 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넌 뭐냐 그럼?"

"흠?"

아니, 정치인들이야 이해할 수 있다.

그야 다시 한 번 대침공이 시작된다 들으면 눈이 돌아갈 수도 있겠지.

시칠리아 에트나 화산 밑에서 시작된 제 1차 대침공.

남미 아타카마 사막에서 시작된 제 2차 대침공.

어느 쪽이든, 이 대한민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재앙이다.

여기서 한 번 더 대침공을 맞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꺾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눈 앞의 남자는 헌터다.

대침공이라는 미증유의 재난에 직면해 무력하게 휩쓸릴 수밖에 없는 일반인이 아닌, 사냥꾼.

그런 그가 놈들에게 협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 일감? 아니면 마찬가지로 구명?

"뭐, 여러모로 사연이 있답니다."

"어이구, 그러셔?"

"애초에 별로 상관 없는 일이기도 하구요."

"엉?"

"고작해야 인간 몇 명이 협력하는 걸로 무너질 나라라면 어차피 제가 없어도 무너졌겠죠?"

"아하."

과연, 미친 놈이군.

고개를 끄덕인다.

허나, 덕분에 한 가지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군부는 관계 없는 모양이군."

쩌적.

그런 소리가 들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태연하기 그지없던 사내의 얼굴.

마치 가면과 같은 표정에, 선명한 균열이 달린다.

잠시 멈칫.

이윽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입을 여는 남자에게선 묘한 초조함이 느껴졌다.

"……이야, 이상하네요~ 제가 그런 말을 했었던가요?"

"뭐?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애초에 놈이 사용하는 무기만 봐도 일목요연한 사실이다.

요즘 세상에 총을 쓰는 헌터가 어디 있어.

중세 시절의 연금술사가 남긴 현자의 돌 제조법도 마력만 있으면 재현할 수 있는 시대다.

별다른 전설 하나 남기 힘든 총화기는 헌터들이 선호하는 무기가 아니었다.

때문에, 총을 사용하는 건 대부분 군인 혹은 군 소속 헌터 정도였다.

총이라는 무기의 특징만 봐도 그렇다.

냉병기와 달리 누구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무기.

사용자의 근력과 별개로 일정한 위력.

미리 마력을 주입하기만 하면 누구라 해도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물건이 바로 총이다.

헌터가 사용해도, 일반인이 사용해도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후자가 사용하는 편이 효율적이고.

문제는 사전에 그만한 마력을 넣어두어야 한다는 점.

덕분에 일개 개인인 헌터로서는 사용하기 버겁지만, 이러한 조건을 문제 없이 만족할 수 있는 군부로서는 애용하는 무기.

그게 바로 총의 현주소였다.

물론 눈 앞의 사내가 단순히 총기를 선호하는 헌터일 가능성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동작만 봐도 눈에 밟혔으니까.

저 놈, 십중팔구 군 출신이다.

말뽄새로 보면 아마도 퇴역 군인 쪽일까?

"이런."

결국 사내 또한 혀를 내두르며 사실상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군부와 함께 작전을 진행한 적 있었다는 사실까진 몰랐던 모양이다.

합법적으로 거론할 만한 사안도 아니라서 은폐됐던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그래서, 어쩌시겠습니까? 언론에 공표라도 하시렵니까?"

"설마."

저 놈도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겠지.

제 3차 대침공.

인류가 두 번의 대침공을 겪은 지금, 사람들에게 있어 대침공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픈 손가락이 된 지 오래다.

아카데미의 목표가 제 3차 대침공의 방지에 있다는 사실조차 함구해야 하는 판국에 언론 공표?

좋게 끝날 리가 없다.

잘못하면 이 나라의 상층부가 대침공에 한쪽 발을 담갔다는 소리까지 들리겠지.

그렇게 되면 의심병이 창궐하는 일도 시간 문제다.

놈들이 노리는 것 또한 바로 그 일환일 테고.

사회가 분열당하는 틈을 타 몸을 숨기고, 의심 위로 세력을 확장할 수 있을 테니.

"흠. 머리엔 사냥밖에 없는 무대포라 들었는데, 그건 아니군요."

"엉? 누구야, 그딴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놈들은. 뒈질래?"

"죄송합니다, 일단은 제 상사라서 말이죠."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는 남자.

숫제 잡담이라도 나누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건대, 한 가지 제안을 해볼까 합니다."

"존나게 뜬금없군."

"하하, 사실 방금 막 생각한 제안이거든요."

"오, 기대하기 힘든 서론 고맙고."

"그럼 거두절미하고. 당신의 실력이 탐나기 시작했습니다."

"뭐?"

그리고.

그런 분위기 그대로, 남자는 돌연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날 스카우트하겠다 이거냐?"

"네, 말 그대로입니다. 물론 제 상사들은 가능할 리 없다며 반대했습니다만."

"확실히 사람 보는 눈은 네 상사들이 낫지 싶은데."

"흠, 그렇습니까?"

"그래."

"왜죠?"

너무나도 담담하게 그리 되묻는 사내.

그 말에, 무어라 답하려던 내 말문도 콱 막히고 말았다.

"허어."

"왜 안 된다는 건지, 그 이유를 묻고 싶군요. 우리가 적이었기 때문입니까?"

"어, 그런 이유도 있지."

"상관 없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입힌 피해는 분명히 크지만, 만회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아니, 애초에 내가 너희 쪽으로 넘어가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뭔데?"

"넘어오지 않는 대신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또 뭡니까?"

"말꼬리 잡는 애새끼도 아니고……."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제 상사들은 그렇게 말했거든요. 당신 같은 사냥꾼에게 회유책이 먹힐 리가 없다고."

으쓱, 가볍게 어깨를 좁히며 말을 잇는다.

"허나, 저는 반대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대?"

"네. 사냥꾼이니까 더더욱 이 제안의 가치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사냥꾼이라."

"그렇지요? 정부는 당신들을 영웅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본질적으로 당신은 사냥꾼이니까요."

남자는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남자의 제안은 꽤나 그럴듯하기도 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자신이 저 제안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있던가?

하숙집 반지하에 쳐박혀 죽은 듯 지내던 3년을 떠올린다.

다 지난 지금은 마치 좋은 추억이었다는 듯 이야기하곤 있지만, 까놓고 말해 별로 좋은 기억도 아니었지.

오히려 대침공이 일어나길 바랐던 적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남자의 제안은 썩 나쁘지 않았다.

당장에 협력하겠다고 말만 하면 세 번째 대침공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거야 뭐 사실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몬스터 냄새가 좆같아서 죽이고 다녔다말하는 건 쪽팔린 일이긴 하겠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한 순간의 쪽팔림만 감내하면 별다른 고뇌 없이 몬스터만 찢어 죽일 수 있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고민. 번민.

거의 영원에 가깝게 잡아늘려진 시간 끝에서.

"안할랜다, 씨팔~"

나는 결정을 내렸다.

아니, 정말로 고민하긴 했는데 말이지.

애시당초 자신이 저 3년 동안 협회의 헌터들과 충돌을 피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준구가 지랄할 게 뻔해서?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건 초등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나 자신의 가치관이 별 거 없는 일반인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상실의 시대였다.

슬픔과 작별, 비탄과 한탄.

그리고 사람의 죽음이 당연시되는 시대.

향후 100년에 걸쳐 수도 없이 최악이었다 구가될 지금.

여태까지 무엇 하나 잃어버린 적 없던 나이기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시대에 태어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았던 덕택이라고.

그렇지 않은가.

제 1차 대침공으로부터 고작해야 23년.

세상엔 성좌라는 이름으로 인류를 돕는 몬스터가 있고, 몬스터와 몸을 섞은 사람도 있다.

허면.

앞으로 100년, 앞으로 200년 뒤에는 어떻게 될까?

지금이야 대다수 사람들에게 있어 몬스터란 씻을 수 없는 적, 불구대천의 원수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겠지.

그러나.

앞으로도 줄곧 그럴까 묻는다면, 나로서도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아니, 그러겠냐고~

나야 그렇게 주장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리 없다.

가치관이 다르다. 언어가 다르다. 문화가 다르다.

그렇지만 벌써부터 인간과 협력하는 몬스터가 있고, 몬스터와 사람 사이에서 난 혼혈들도 있다.

'이건 힘들겠지.'

때문에, 사실은 알고 있었다.

미쳐버린 상실의 시대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하나 잃어버린 적 없는 나이기에 더더욱.

결핍과 이별 하나 없이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어서 헌터가 된 나는, 근본적으로 그냥 사이코패스 살인마랑 다를 바 없다고.

우연히 몬스터를 죽여도 되는 시대에 태어난, 우연히 그 대상이 몬스터일 뿐인 살인마.

만약 몬스터와 인간의 협력이 당연시되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단순히 눈 돌아간 범죄자에 지나지 않겠지.

지금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사냥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있지만, 딱 거기까지.

어쩌면 지금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어느 날 대한민국 사회에 있어, 나는 백인 노예주나 다름없는 미치광이 취급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나는 협회 소속 헌터들을 죽여버리고 게이트에 투신하는 대신 조용히 골방에 틀어박혔다.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칼을 휘둘러서야, 정말로 살인마나 다름없지 않겠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끼로 쓰기 위해 데려왔음에도 불구하고, 게이트 안에 하연이를 던져버리지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심하지 않나 여겼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볼 때마다 죽여버리고 싶긴 했지만, 혼혈이나 티아마트를 상대로 참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성비도 나쁘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에 안 든답시고 행패를 부리는 건 단순한 미치광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도덕, 혹은 헌터로서의 윤리 의식.

무엇이든 상관 없다.

상실을 겪은 적도, 상실에 무뎌진 적도 없는 내가 최소한의 선을 넘는다는 건 단순히 정신이 나갔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내가 최소한의 금선만큼은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누구나 죽음을 앞둔 부자가 어느 날 내 앞으로 유산 100억을 남기진 않을까 바라곤 한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지나가던 부자를 잡아 죽을 때까지 칼을 쑤시지는 않는다.

설령 완전 범죄가 가능하다 해도 마찬가지겠지.

내게 있어 부자는 바로 이 시대였고, 몬스터는 100억 분량의 유산이었다.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두 번의 재난을 겪은 세상에 다시 한 번 칼침을 놓고 싶진 않았다.

안 그래도 힘든 시대가 아닌가.

방금 전 저 사내가 지적했듯이, 나는 결국 일개 사냥꾼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달리 복수에 미친 복수귀도 아니고, 하물며 영웅은 더더욱 못 될 인간이다.

그래서 때려치기로 했다.

나만 좋자고 일을 벌이기엔 지나칠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대였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내 가치관이 딱 일반인 수준이라는 건 그런 의미이기도 했다.

지나가는 듯한 슬픔.

지나가는 듯한 비탄.

눈물을 흘리는 시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야 평범하게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다.

물론 처음에 헌터가 되기로 결심한 건 단순한 살의였다.

지금도 살의가 이유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제발 복수해달라고 부탁하면 들어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면 눈물이 난다.

가끔씩 내가 늦어 피해가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하면 마음이 갑갑하다.

반대로 내게 감사하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당연한 거 아닌가?

말마따나, 나는 영웅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감사 인사 몇 마디, 단촐한 답례 한 번으로도 얼마든지 마음을 바꿔 먹을 수 있다.

오로지 살의만으로 사냥꾼이 되고자 결심했던 내가 다른 이들을 배려하게 되는 데에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주인공과 달리, 영웅과 달리.

무언가 엄청난 사연이나 가치관이 바뀔 만한 충격 따위는 내겐 필요 없었으니까.

그래서, 뭐.

"……흐음. 의외로군요."

"나에 대해 알게 된 놈들은 언제나 그리 말하곤 하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남자거든."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씹새끼."

듣는 척도 안 하네.

뭐, 그렇게 말해도.

"여기서 내가 구구절절 이유나 설명하고 있을 관계는 또 아니지."

"그렇게 들으니 섭섭하군요. 아니, 사실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너한테서 똥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어, 예?"

"하필이면 몬스터랑 같은 직장에 다니기로 결심한 스스로를 원망하도록."

그리 말하며 움직이는 칼끝에 따라, 녀석의 시선이 움직인다.

미세한 동요.

다소 떨떠름한 미소를 띤 채, 남자는 능글맞은 얼굴로 반문한다.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그럼 놓아줄 거라고 생각했냐?"

사실 방금 전까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제 3차 대침공이라는 말까지 들은 지금, 저 남자를 그대로 놓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장담할 수 있다.

만약 녀석들에 의해 제 3차 대침공이 일어난다면, 나는 틀림없이 기뻐하겠지.

얼마나 되는 피와 희생이 흐를지 짐작하면서도 즐겁게 날뛸 수 있을 거다.

그러니 더더욱 안 된다.

내가 그런 놈이기 때문에야말로, 녀석들의 계획에 찬동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네 상사들한테 가서 전해라. 도축업자가 너희들의 알량한 꿈을 죽이러 간다고."

만약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면 말이지.

뭘, 다행스럽게도 세간에 떠도는 나에 대한 소문 중에서도 사실인 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면,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사냥꾼이라는 이야기라던가.

……정보는 얻었다. 목적도 알았다.

허면, 죽일 수 있다.

지금까진 고작해야 몬스터를 보내는 놈들이라 생각했던 예의 집단.

말하자면 이는 놈들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선전포고였다.

더 이상 놈들은 가끔씩 인간을 대신 보낼 뿐인 몬스터 공급처 따위가 아니었다.

적.

이 순간부터, 놈들은 내게 있어 사냥감이나 다름없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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