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23화 (123/371)

〈 123화 〉 사냥감이 사냥꾼을 사냥하는 방법

* * *

마치 지독한 악몽처럼 보였다.

십중팔구 범인이라 생각했던 도주진의 시체.

경직된 사고.

흩날리는 피.

그 너머로, 윤하의 몸이 풀썩 하고 쓰러진다.

"윤하야!!"

솔직히 말하자면, 사고가 따라잡질 못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도대체.

갑자기 어디에 숨어있던 윤하가 튀어나와 총을 맞고 쓰러졌다.

……막아준 건가? 나를?

그럼, 지금 총을 쏜 건 또 누구야──.

"이런."

바보같을 정도로 늘어진 사고의 틈새.

그제서야 간신히 누군가 총을 쏘았다는 사실을 인식한 내 앞으로 누군가 걸어나왔다.

건들건들한 태도.

조용히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가.

거기에, 아직도 연기를 내뿜고 있는 권총까지.

누가 보아도 한 눈에 범인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희미한 인상의 사내였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지금만 해도 그랬다.

방금 전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누군가.

윤하를 쏘아 맞춘 당사자.

그리고 십중팔구 도주진을 죽인 범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쩍 총만 버리고 나면 문제 없이 군중 사이로 섞여들 수 있을 법한 흐릿함.

인위적으로 조작된 위화감이 거기에 있었다.

"누구냐?"

"음?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한데요. 이미 몇 번이나 뵙지 않았습니까?"

"뭣이?"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퍽 익숙한 얼굴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바로 어제 만나본 듯한.

아니, 잠깐.

진짜로 만났잖아.

"너, 너!"

"오, 기억하시는 모양이로군요."

그야 그렇게 생각하긴 했다.

도주진의 동선을 고려하면 예의 집단이 도주진과 접촉한 장소는 십중팔구강원도 지부 안쪽이 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도주진이 누리고 있는 명성.

차세대 헌터 필두라 불리는 그 인기를 생각하면, 범인은 필시 면식범일 테고.

아이돌 이상의 인기와, 군인 이상의 책무.

지금 이 시대에 있어, 고랭크 헌터란 저 쪽이 먼저 부르지 않는 한 만나보기도 힘든 게 현실인 탓이다.

나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하지만.

"애미 씨발."

아무리 그래도 이런 조역까지 경계하는 건 역시 힘들다.

바로 오늘.

나와 도주진이 만난 점심시간 당시, 내게 도주진의 부름을 전했던 가이드.

그 남자가 바로 눈 앞에 서 있었다.

아니, 그야 그렇겠지.

잠입한 스파이가 굳이 화려한 외견을 하고 있을 리도 없다.

심야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그렇지만, 설마 바로 옆에 범인이 있었을 줄이야.

"혹시나 해서 묻겠지만, 도주진을 죽인 건 너겠지?"

"음, 아니라고 말씀드려도 믿진 않으실 듯하네요."

"스탬피드를 일으킨 것도 너겠고."

"글쎄요, 몬스터들이 아닐까요?"

"본래는 도주진한테 스탬피드를 일으키게 할 생각이었던 거냐?"

"하하, 이러고 있은니 꼭 추리소설 같지 않나요?"

남자는 어깨를 좁히며 능청스레 답했다.

도대체 어디서 배운 말뽄새인지, 죽어도 책잡힐 소리는 흘리지 않는 게 퍽 얄밉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날 죽일 생각이었겠군."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에는 침묵이 오히려 대답이 되는 질문 또한 있는 법이다.

지금 이 질문 또한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의문스럽긴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스탬피드를 일으킨다 해도 저들에게 무슨 이득이있단 말인가.

하연이는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

정말로 몬스터를 제어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기엔 굳이 내가 있는 장소에서 저럴 이유가 없다.

허나, 반대로 가정한다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만약 저 자식들이 처음부터 나를 죽여버릴 생각이었다면?

도주진을 꾀어낸다. 그리고 스탬피드를 일으킨다.

이 시점에서, 스탬피드를 지휘하는 우두머리 개체를 사냥하기 위해선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두머리를 사냥하는 데에 성공한 시점에서 당연히 내 칼끝은 마침 딱 자리를 비운 도주진을 향할 테고.

도주진이 저들의 제안에 넘어갔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맞이하는 건 정말로 도주진이 되었겠지.

……우두머리 몬스터와의 전투. 그리고 도주진과의 전투.

그렇게 지친 나를 기습할 생각이었던 건가.

문제는 정작 당사자인 도주진이 제안을 거절했다는 점.

슬쩍, 시신을 향해 시선을 흘긴다.

심장에 뚫린 구멍이 퍽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래서야 무작정 의심한 게 도리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미안하게 됐다.'

사과를 건네며 창고를 연다.

동시에, 최고급 포션을 한 병 더.

녀석이 보고 있는 눈 앞에서, 천천히 윤하를 향해 허리를 숙인다.

옆구리를 적시는 핏물.

뻥 하고 뚫린 윤하의 옆구리를 향해 병을 기울였다.

똑, 똑.

핏방울 너머로 떨어진 포션이 그 색채를 덧칠한다.

내가 사용했던 물건과 마찬가지로 마력을 소비하는 포션이었다.

물론 지금 윤하의 상태를 고려하면 마력을 소비하는 일 자체가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

그러니 그렇게 망울져 떨어지는 포션을 향해 천천히 내 마력을 흘려 넣었다.

정확히 윤하의 피부와 접촉하는 타이밍에 맞추어 내 마력을 머금는 포션.

덕분에 윤하의 마력 대신 내 마력을 소비한 포션이 그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점차 안정되는 혈색.

뻥 하고 뚫렸던 윤하의 옆구리가 포션이 바닥을 드러냄에 따라 점차 메워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포션 한 병을 완전히 비우길 잠시.

이윽고 윤하의 안색과 숨소리 또한 처음에 비하면 뚜렷할 정도로 안정된 게 느껴졌다.

윤하가 공감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관통된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총알이 박혔으면 오히려 고생했을 테고.

이처럼 내가 윤하의 치료를 마칠 때까지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내 머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일도, 기습을 준비하지도 않은 채.

조용히 나와 본인 사이의 간격을 재고 있을 뿐.

'역시.'

도주진이 협력하지 않았던 건 필시 녀석들로서도 예상 외의 상황이었을 테지.

때문에, 도주진을 살해한 녀석은 그대로 도주진의 시체를 방치했다.

나를 죽이기 위한 함정의 일환으로서.

그렇게 내가 도주진의 시체를 발견해 경직된 바로 그 순간.

녀석은 내게 기습을 가했다.

문제가 있었다면 두 가지.

하나는 물론 윤하의 방해다.

당연하지만, 도주진을 정면에서 때려잡은 놈이 숨어있던 윤하를 발견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일부러 방치한 거겠지.'

만에 하나 기습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서.

윤하를 우선해 노리는 식으로 후일을 도모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거기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했다.

즉, 지금 내 상황이다.

나는 여태까지 놈들의 계획을 정면에서 분쇄했다.

그러니 녀석들도 대책에 대책을 겹쳐 이런 상황을 조성한 거겠지.

우두머리 몬스터로 내 힘을 빼고, 도주진으로 영격해 그 뒤를 노린다.

허나, 도주진이 녀석들과 합류하길 거부한 지금.

녀석들이 믿을 수 있는 수단은 우두머리 몬스터의 강함 정도였을 테지.

그렇지만.

이제 와서 그 정도 몬스터를 상대로 고전할 만큼 미숙하진 않다.

실제로 내가 입은 데미지도 단순한 반동 정도고, 그조차 포션으로 회복한 상황.

녀석들이 보기엔 상처 하나 없이 두두리를 쓰러트린 모습처럼 보이겠지.

과시하듯 포션에 마력을 사용한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체력에도 마력에도 문제는 없음.

그렇게 어필하기 위해서.

덕분에, 눈 앞의 사수 또한 초연한 얼굴과 달리 섣불리 움직이진 못하고 있는 거고.

저만한 몬스터를 상대로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사냥꾼을 상대로, 정면에서 싸워 이길 수 있을까?

그런 이미지를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물론 실상은 다르겠지만.

상대는 인간이었다.

유감스럽게도.

혹시나 싶어 두어 번은 더 살폈지만, 역시나였다.

그럼.

'정면에서 도주진을 압살한 놈이다.'

과연 어디까지 상대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상당히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스탬피드가 한창인 상황이니, 시그니처를 병행하면 공멸할 수는 있겠지.

반대로 말하자면, 딱 거기까지.

어쩌면 예상 외로 쉽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더 버거울지도 모른다.

사냥꾼에게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상황.

정보의 부재다.

그런 상황이니만큼, 나 또한 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나를 상대로 환상을 보고 있는 만큼, 내게도 현실이 보였으니까.

만약 여기에 있는 것이 나 혼자 뿐이었다면 공멸할 각오로 달려들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힘들다.

만약 내가 여기서 죽으면?

기이한 형태로 발생한 스탬피드.

정황 증거 등을 고려한다면 강원도 지부 또한 이 스탬피드가 인위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면.

가장 먼저 의심받는 건, 스탬피드 발생 직전에 모습을 감춘 도주진 헌터가 된다.

'그건 좀 불쌍하잖아.'

마지막까지 놈들의 제안을 거부한 끝에 죽음을 맞이한 도주진.

그런 녀석이 범인으로 몰리게 되는 건 역시 내키지 않는 일이다.

하물며 지금은 윤하도 있고.

포션을 쓰긴 했지만, 포션도 만능은 아니다.

게임처럼 체력을 최대치까지 회복한다 해서 무병장수할 수 있는 무안단물은 아니라는 뜻이다.

까놓고 말해, 지금 저 놈이 한 발이라도 더 추격을 가하면 윤하는 정말로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노릇이니까.

가급적 그런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때문에.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번에는 칼이 아닌 혓바닥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순수한 의미로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내가 녀석들의 계획에 훼방을 놓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다짜고짜 죽이려 달려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물며 나를 죽이고자 도주진에게 손을 대는 건 더더욱.

주민등록 조사라는 단어가 꿈 속의 꿈이 되어버린 시대였지만, 도주진은 차세대 헌터 필두라 불리는 유망주.

그만한 헌터가 갑자기 실종되거나 변사체로 발견된다면 흔적이 남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적은 늘리고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는, 전형적인 우책이라고 할 수 있겠지.

몬스터와는 다르다.

게이트는 천재지변.

아직까지도 그런 인식이 남아있는 괴물들과 달리, 헌터의 죽음은 어떻게 무마할 수 없으니까.

어쩌면 강원도 지부 전체가 적으로 돌아설지도 모르는 행동이다.

저들의 세력이 강대하다는 건 사실이지만, 굳이 사서 적을 만들 줄이야.

"글쎄요, 짐작하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그러나.

내 물음에 남자는 다시 한 번 능청스럽게 그리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랬다.

방금 전까진 의혹에 가까웠던 의심이, 지금 이 대답을 통해 거의 확실해졌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다.

놈들은 강원도 지부를 적으로 돌렸다.

자신들의 흔적을 남긴다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도주진이라는 거물을 죽였다.

달리 말하자면, 놈들은 나의 죽음에 강원도 지부와 본인들의 흔적 이상의 가치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어째서일까?

내 목숨이 그렇게 가치있는 물건이라곤 아무래도 생각할 수 없었다.

단순히 내가 녀석들의 목적에 방해가 되서 그런 거라면 차라리 회유를 시도했을 테지.

여태까지 녀석들이 내비친 모습을 고려하면 그 쪽이 보다 합리적이다.

십중팔구 내가 거절할 거라는 점은 차처하더라도.

그렇지만.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식으로 이런저런 회유를 던지던 녀석들이 나를 향해선 곧바로 칼을 꽂은 이유.

생각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뿐이다.

'내가 회유에 응할 리가 없다고 판단했군.'

왜?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당장 이준구나 최승준까지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다곤 말할 수 없는 판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나를 절대로 회유할 수 없을 거라 결론을 내렸다.

이럴 만한 사정은 단 하나.

도축업자.

대한민국 최고의 수렵자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 뿐이다.

……놈들의 진정한 목적은 몬스터와 관련되어 있다. 몬스터에 대한 제어권을 손에 넣으려 하고 있다.

거기까진 안다. 짐작하고 있다.

허면?

여태까지 근거가 부족했던 추측에, 이번 심증을 더하여 확신을 빚는다.

녀석들의 행동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녀석들은 본인들의 목적에 도축업자가 협력할 리 없다 생각하고 있다.

동시에, 방해가 될 거라 여기고 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살수를 보낼 리도 없고.

여기에서 한 가지.

'어째서 놈들은 지금 이 타이밍에 살수를 보냈지?'

첫 번째 습격. 녀석들은 내가 누군지도 몰랐다.

두 번째 습격. 녀석들은 처음으로 내가 누군지 깨달았다.

세 번째 습격. 녀석들은 내 실력을 실감했다.

네 번째 습격. 녀석들이 내보낸 패를 꺾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놈들이 차례차례 보낸 팻감을 정면에서 전부 때려눕혔다.

사람 잡는 헌터.

혼혈.

고랭크 몬스터.

어느 누구도 나를 당해낼 순 없었으니까.

때문에 녀석들 또한 무력이 아닌 언론전 등으로 방법을 바꿨고.

그조차 최근엔 소강 상태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놈들의 행동에 변화가 생길 만한 계기를 되짚는다.

서아네 길드 등으로 얽힌 게이트 안 몬스터 군락지.

남해 지부 사건.

혹은, 거기에 더해 몽마의 여왕 사건까지.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내게 놈들의 목적을 추론할 만한 근거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급격한 돌변을 설명할 수 없었다.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목적.

다른 건 몰라도, 도축업자는 절대로 협력할 리 없는 무언가.

그렇기에 놈들은 나를 매장하려 하는 것이다.

허면, 놈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점을 하나하나 되짚는다.

몬스터에게 목줄을 채우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몬스터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이유.

요컨대, S랭크 몬스터에게도 이득이 될 만한 무언가.

동시에, S랭크 몬스터 이상의 무언가──.

"아."

알싸한 확신.

그 이상의 전율.

동시에 경악이 달렸다.

'어쩌면 반대였을지도 몰라.'

몬스터들과 협력하고 있는 게 아니다.

정 반대로 생각해보자.

실로 간단한 이야기.

손을 벌리고 있는 건 몬스터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쪽이다.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나라의 상층부조차 한쪽 발을 담근 이 집단의 목적은…….

"대침공이냐?"

제 3차 대침공, 그 발생과 통제.

혹은, 제 3차 대침공에 맞춘 거래.

자신들의 안전을 담보받기 위한,대한민국의 매각이다.

"하하, 어떨까요."

마침내 입 밖으로 낸 의문.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여전히 얄미울 정도로 뻔뻔한 얼굴을 한 채 대답을 회피할 뿐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침묵이 오히려 대답이 되는 질문 또한 있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이 질문 또한 바로 그런 부류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