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스탬피드
* * *
그리고.
산마루 위.
산등성이 너머를 내려다보며,두두리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떤 사냥꾼의 예상대로, 지금 이 스탬피드를 주관하고 있는 건 바로 이 고대의 나무 정령이었다.
협회의 기준으로 셈할 경우, 그 강함은 C~A.
성장의 척도에 따라 그 랭크가 변동하는 몬스터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문자 그대로 산만한 지금 이 두두리의 랭크는 A.
거기에 던전 특유의 환경적 우위와 게이트의 마력이 더해지면 실질적인 공략 난이도는 S랭크에 가깝다.
바로 그런 두두리이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두두리가 장악하고 있는 영역 너머로 이어진 동포들의 기척이 삽시간에 사라진다.
부모. 형제. 자식.
그렇게 불러야 할 생명들이 수도 없이 피고 지는 가운데, 그들의 종주 된 두두리는 실로 냉정했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마뜩찮았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날아드는 공격이 두두리의 단말을 제거한다.
두두리는 알고 있었다.
포격.
이건 인간들이 그렇게 부르는공격 수단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달랐다.
다만, 착각해도 어쩔 수 없겠지.
A+랭크 필두, 신서아 헌터에 의한 화살 세례는 이미 사격이라기보단 폭격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다.
만약 지금 이 공세가 원거리에서 가해지는 지원 공격이라고 한다면.
지금 자신을 찌를 듯 노려보고 있는 이 살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도깨비가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린 다음 순간.
박우찬의 공세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쿵!
빗소리 사이로 무거운 추락음이 들린다.
소리가 울린 장소를 향해 느지막이 시선을 돌리는 도깨비.
그제서야 두두리는 깨달았다.
방금 전.
산봉우리 아래로 추락한 건 자신의 오른팔이었다는 사실을.
───────!!
고통은 통곡이 되어 휘몰아쳤다.
아득한 둔통.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가 따라잡질 못했다.
그에 비해, 박우찬의 사고는 참으로 심플했다.
죽이면 된다.
방금 전까지 어울리지도 않게 주절주절 생각하던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당연한 이야기지.
대범람Stampede.
마을은 물론이요, 몇 개나 되는 도시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대재해.
허나 박우찬에게 있어선 단순한 경험치 열 배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에만 해도 얼마나 고생했던가.
떠벌떠벌 사고를 전개하면서 억지로 살의를 밀어내길 10분.
그조차도 가시거리에 거물이 들어온 순간 깔끔하게 날아가고 말았다.
백열하는 두뇌.
지금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서아는 알고 있을까.
박우찬이 지원 사격을 부탁한 건 우두머리 주변의 몬스터들을 견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
작전을 수행하기 전.
자신이 주변에 널린 몬스터들에게 들이받지는 않을까 걱정해 미리 치워달라 부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신서아의 눈물겨운 지원사격 덕택에 따로 새는 일 한 번 없이 우두머리와 마주한 지금.
사실상 사태는 종료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붕, 가로로 대검을 휘젓는다.
떨어지는 빗물 사이로도 대검을 적신 독액은 조용히 그 존재감을 주장하고 있었다.
핏물 따위는 없었다.
결국 나무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가.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삐걱이는 칼날을 뒤틀며, 박우찬이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그런 박우찬의 앞길을 가로막듯 솟아오르는 나무들.
이를 향해 박우찬이 무기를 고쳐쥐었다.
동시에.
두두리 또한 깨달았다.
방금 전, 자신의 팔을 휩쓸고 사라진 일격이 도대체 어떤 물건이었는지.
역수로 고쳐쥔 대검의 날밑.
이빨처럼 돋아난 톱날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 밑동에 쳐박혔다.
실로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거기에.
콰득 하는 소리와 함께 박우찬의 신발 밑창이 쳐박힌다.
억지로 쳐박힌 톱날.
이를 뽑아내듯 한껏 비튼 손목과 함께, 나무가 뚜둑 하는 단말마를 내질렀다.
우악스러운 톱질.
거의 분지르듯 뽑아당긴 톱날이, 나무를 두 동강으로 쥐어뜯었다.
언뜻 보기엔 비효율적인 공격이다.
나무 한 토막을 써는 데에 자그마치 세 공정.
이래서야 차라리 검날로 베는 편이 낫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
일단 마력으로 코팅된 나무를 벌목에 비효율적인 검날로 벨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차처하더라도.
물론 제대로 된 이유가 있었다.
첫째, 식물형 몬스터는 톱날 구조에 약하다.
예로부터 나무를 꺾는 건 톱날 혹은 도낏날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일까.
불과 쇠에 강한 편인 두두리라 해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둘째, 톱 특유의 엇날 구조 때문이다.
동서고금 식물형 몬스터의 특색이라 하면 역시 그 재생력이 가장 먼저 손꼽힌다.
자연의 권화.
자연이 형체를 이룬 존재.
그렇게 일컬어지는 몬스터들이 지니는, 대자연 그 자체나 다름없는 생명력 덕분이다.
요컨대, 예리한 공격 따위는 순식간에 회복해버린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단면 자체를 너덜너덜하게 물어뜯는 톱날은 그런 회복력을 저해시키는 데에 최고의 효율을 발휘한다.
마지막으로 셋째.
그렇게 잡아 뽑은 단면 사이사이로, 세세하게 독을 침투시킬 수 있다.
식물을 죽이는 독.
중세의 고엽제라고 해야 할까.
마법적인 가공이 가해진 독초가, 식물의 재생과 성장을 저해한다.
결과적으로 말해, 박우찬의 발목을 붙잡기 위해 전개한 나무 줄기들은 고작해야 박우찬에게서 세 수를 빼앗는 데에 그쳤다.
톱날을 쳐박는 데에 한 수.
이를 걷어차 한층 더 깊게 쑤셔넣는 데에 한 수.
추가로 베어 끊는 데에 한 수.
당연하지만, 오른팔을 잃고 막무가내로 내지른 수.
세 수를 벌었다 한들, 그걸 살릴 수 있을 만한 여건은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아니, 애초에 식물형 몬스터들은 본질적으로 수 싸움에 익숙하지 않다.
움직이는 일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시간을 벌어도 유효하게 활용할 줄 모른다.
시간을 벌 수단이야 많지만, 그 이상으로 행동에 시간이 소요된다.
일반적인 동물과 완전히 다른 생체주기를 가진 식물형 몬스터들의 특징이다.
때문에.
한쪽 팔을 내어주고도 변변찮은 방비 하나 남지 않은 지금.
두두리에게 남은 건 지옥행 뿐이다.
간격 안.
발작적으로 두두리가 일으킨 나무 뿌리 너머.
여기는 두두리의 거체에 어울리는 간격이 아니다.
식물형 몬스터 특유의 거리도 아니다.
사냥꾼Hunter의 영역이다.
쩌저저저적!!
빗물을 가르며, 섬광이 솟구쳤다.
무기 채로 쳐박는 듯한 올려베기.
대검 특유의 원심력을 살린 동작이 아니다.
칼날이 닿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듯한,건성건성인 일격.
그러나 그 공격이 일구어낸 결과는 사뭇 달랐다.
사람과 비슷한 형태를 이룬 나무. 거인의 형상을 취한 식물.
그렇게 말해야 할 생물의 발가락에 대검의 옆면이 닿았다.
동시에, 발검.
달리 어떻게 형언할 수 있을지,그조차 의심스러운 동작이었다.
어느덧 단단하게 쥔 대검의 손잡이.
마찬가지로 반대쪽 손은 대검의 보조 손잡이를 굳게 움켜쥔다.
이후, 축지.
발끝으로 마력을 튕기며, 박우찬이 솟구쳤다.
드드드드득!!
비상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강렬하고, 비행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우직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대검 옆면에 달린 대패를 나무 밑동에 건 채 그대로 축지를 밟은 것이다.
그렇게.
이 별의 자전, 그 극히 일부라 할 수 있는 힘이 두두리의 왼발을 벗겨 갈았다.
나무 껍질을 벗겼다고 표현하기엔 퍽 화려한 몰골이었다.
처음엔 정말로 나무 껍질 한 줄기만 벗겨내던 대패의 상흔이, 위로 갈수록 점차 커진다.
껍질. 수액. 나뭇결. 나무속. 나뭇고갱이.
마침내 무릎 위까지 이르렀을 땐,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다리가 멋대로 꺾였다.
쿠웅!!
다시 한 번, 무거운 소리.
실로 순식간에, 두두리는 두 개의 사지를 잃었다.
물론 이대로 끝날 상황은 아니었다.
오른팔과 달리 아직 왼발은 재생할 여지가 있다.
두두리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것이었기에 더더욱.
그리고 박우찬 또한 이를 알고 있었다.
두두리의 머리 위.
박우찬은 거기에 있었다.
두 개의 산을 누군가가 성의 없이 포개놓은 듯한 풍경을 내려다보며.
투둑, 투둑.
빗물이 흐른다.
시야가 어지럽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에 발라둔 독액이 씻겨나가는 건 아닐까 신경이 쓰인다.
결국 그 위로 한 줄기 마력을 코팅하고 난 뒤에야 그나마 안심할 수 있다.
그조차 완벽하진 않다.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흔들리는 마력을 굳건하게 잡아주어야 하니까.
상대도 만만치 않고.
목신?? 두두리.
거인에 필적하는 체구와 질량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무기다.
하물며, 이 주변 토지 전체를 장악한 듯한 어마어마한 마력과 재생력.
저 쪽의 침공으로 시작된 스탬피드라는 걸 생각해 보면, 도저히 호조건은 못 된다.
때문에.
이 모든 조건을 고려해, 박우찬은 스스로에게 5분이라는 시간을 부여했다.
허면, 앞으로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초격으로 오른팔을 앗아가고, 뒤이은 두두리의 방해를 뿌리쳐 그 왼발을 잘라낸 지금.
남은 시간은 4분 이상.
'좆밥이네.'
허공을 밟으며 선 박우찬은 그리 결론을 내렸다.
다음 순간, 두두리의 고개가 휙 하고 창공을 향해 꺾였다.
박우찬을 포착한 덕분일까?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박우찬이 화려하게 흩뿌린 마력 때문이겠지.
아둔한 식물형 몬스터라 해도 확인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선명한 마력이, 일렁이며 파동을 흩뿌린다.
물론 두두리가 얼굴을 돌렸을 때 박우찬의 모습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다시 한 번, 축지.
용맥 너머로 넘실대는 압도적인 마력을 걷어차며, 박우찬이 하강한다.
어쩌면 추락이라 말하는 편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지.
주루루루룩, 그 앞을 수놓는 나뭇가지들.
식물형 몬스터인 두두리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었지만, 거의 반사적으로 휘두른 일격이었다.
당연하지만, 신체 강화 능력자도 아닌 박우찬에겐 반사적인 공격이라 해도 충분히 치명상이었다.
때문에.
다음 순간, 박우찬의 감각이 눈을 번뜩였다.
못. 나뭇가지들을 꿰어 고정한다.
대패. 껍질들을 벗겨 속살을 드러낸다.
끌. 연약한 속살을 벗겨내 균열을 일으킨다.
추. 삐걱이는 균열을 내려쳐 넓게 퍼트린다.
톱. 그렇게 약해진 나뭇가지들을 일격에 켠다.
창공에 꽃핀, 때 아닌 수해??의 꽃.
그 한 가운데에 박우찬이 있었다.
날개 없는 사람의 몸으로, 하늘에 핀 꽃 사이를 유영하며.
후두두두둑!!
박우찬이 베어넘긴 나뭇가지들이뒤늦게 떨어진다.
동시에.
그렇게 만들어낸 틈새로, 박우찬의 칼날이 빛을 뿜었다.
검.
빈틈을 놓치지 않고 승부수를 꽂는다.
산과 같은 거목의 정령과 박우찬의 일격이 교차했다.
그리고.
서겅!!
선명한 소리와 함께, 거인의 왼팔이 하늘을 날았다.
단순한 근력만으론 박우찬은커녕 동 랭크 육체 강화 능력자도 불가능할 위업.
어마어마한 마력으로 코팅된 정령의 육체를, 참격이 정면에서 일축한다.
단, 치명상은 아니다.
박우찬의 본능이 그리 고했다.
두두리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나무 정령.
저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나무 전체를 날려버리거나, 두두리의 중심이 되는 핵을 날려버려야 한다.
말하자면, 거인보단 차라리 나무로 이루어진 슬라임이라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지.
왕가수王家?.
두두리의 핵, 두두리의 신앙.
목신?? 두두리의 근간이 되는 건 바로 그렇게 불리는 신성한 숲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후자를 찾아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박우찬의 육감이 가진 특징 때문이다.
단점이라고 해야 할까, 장점이라고 해야 할까.
몇 번이나 말했다시피, 박우찬의 직감은 고랭크 몬스터를 마주할 때 한층 더 크게 반향을 울린다.
즉.
당장 눈 앞에 S랭크 가까운 몬스터가 있는 판국에, 이제 와서 신성한 숲 따위를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이 들 리가 있나.
그러므로.
박우찬은 눈 앞의 몬스터를 이루고 있는 나무 한 그루 한그루를 전부 날려버리기로 했다.
휘리릭, 박우찬의 몸이 허공에서 회전한다.
거인의 왼팔을 앗아간 일격으로부터 1초 내외.
땅에 발을 붙이기도 전, 박우찬은 그대로 손잡이에 휘감긴 쇠사슬을 던졌다.
그리고.
차르르르륵!!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은 거인의 왼팔을 쇠사슬이 감싼다.
물론 박우찬의 힘으로 저 팔을 휘두를 수는 없다.
때문에, 박우찬은 팔이 아닌 자신의 몸을 휘둘렀다.
투우웅!!
추락하지 않은 거인의 팔을 축으로 삼아, 박우찬의 몸이 다시 한 번 하늘로 비상한다.
그렇게 최고 고도를 점한 상황에서, 축지.
방금 전과 정확히 동일한 행동에, 두두리가 그르릉 울음을 머금는다.
동시에.
바닥으로부터 거대한 나무가 솟아올랐다.
수많은 거목을 한계까지 쥐어짜 비튼 듯한 형상.
바야흐로 신목??의 창날이었다.
사출. 발사.
혹은, 성장.
이제 막 추락하기 시작하는 박우찬을 향해, 지상으로부터 쏘아진 나무가 만개한다.
막아낼 수도 흘릴 수도 없는 일격.
상쇄하는 건 당연히 어불성설이다.
그렇기에.
박우찬은 그대로 낙하했다.
솟구치는 나무를 등지며, 아래로.
산을 향해 유성처럼 내리꽂힌 박우찬이, 빗줄기 속에서도 자욱한 먼지를 일으킨다.
확실히, 두두리의 노림수는 뛰어났다.
압도적인 질량차를 내세운 요격.
공격도 방어도 허락하지 않는 일격은, 박우찬이 보기에도 반격할 틈 하나 없었다.
문제는 박우찬의 의도 쪽이다.
이번에 박우찬이 축지를 사용한 건 다시 한 번 상공을 점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이번 오판으로 두두리를 질책하는 건 지나칠 정도로 가혹한 처사겠지.
……꿈틀, 용맥이 뒤틀린다.
여하간, 진짜배기 도깨비라 해도 박우찬의 이번 의도를 읽는 건 거의 불가능할 테니까.
상공에서의 낙하.
축지를 사용한 추락.
왼팔을 앗아간 일격.
설마 이 모든 게 단 한 번의 일격을 위한 포석일 거라고는.
두두리의 직감이 경종을 울린다.
하지만.
최후의 요격이 허무하게 빗나간 지금, 두두리에겐 박우찬의 공격을 막아낼 만한 수단이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마지막 한 수를 아꼈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산봉우리 두 개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고고도.
단 일격에 산조차 가라앉힐 수 있을 만한 에너지를, 오로지 진각 한 번 밟는 데에 사용할 줄이야.
물론, 그런 만큼 효과도 확실했다.
낙하 에너지.
대지와 충돌하며 발생한 충격.
마지막으로, 축지를 통해 끌어올린 용맥의 동력.
"뒈져어어엇!!"
바야흐로 산맥조차 내려앉힐 힘을 담아, 박우찬은 대검을 휘둘렀다.
우악스러운 올려베기.
소리조차 두고 오는 일격이, 두두리의 동체에 작렬한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 산과 같은 크기의 거인이, 부웅 하고 하늘을 난다.
거목과 같이 대지를 딛고 있던 다리가, 압도적인 질량에도 불구하고 허공을 헤엄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두두리를 향해 시선을 향하고 있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투둑, 투둑.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늘게 떨어지던 빗줄기가, 점차 희미해진다.
쓰러지는 두두리의 거체 뒤.
박우찬이 휘두른 일검의 결과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먹구름 짙게 깔린 강원도 하늘, 저 너머.
박우찬이 휘두른 궤적대로 모습을 드러낸 새파란 하늘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