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19화 (119/371)

〈 119화 〉 스탬피드

* * *

대범람Stampede.

말 그대로 생물들이 특정한 요인에 의해 일정 방향으로넘쳐 흐르는현상을 의미한다.

주된 요인은 인간이나 재해 등에 의한 생태계 압박.

요컨대, 본디 머무르고 있던 장소의 생명 부양력이 더 이상 해당 생태계에 속한 생물들을 감당하지 못할 때.

생태계 내의 생물들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잡아먹고 공격한다.

생태계 내의 자정 작용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정 작용의 일환으로서, 일부 무리는 보다 식량이 풍부한 장소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주로 우수한 우두머리가 인솔하는 집단이 그러하다.

우수하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싸움을 반복해선 미래가 없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몬스터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

게이트라는 풍부한 환경 속에서 떠밀린 녀석들이 던전을 이룬다는 건 이미 이야기한 바가 있다.

허나.

몬스터에게 있어, 먹이란 다른 생물의 육체 따위가 아니다.

농도 짙은 마력이다.

그리고.

두 번의 대침공을 걸쳐,게이트에서 유출된 마력이 대기 중에 섞여들어간 지금.

던전 이상으로 마력의 농도가 짙은 장소는 십중팔구 하나.

도심지다.

때문에, 몬스터에 의한 스탬피드가 발생할 시 그 희생양이 되는 건 대부분 게이트 인근에 위치한 도시다.

소위 말하는 던전 브레이크라고 해야 할까.

문자 그대로, 비경Dungeon이라는 형태로 구축된 게이트 방위의 한계선이 붕괴Break하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게이트 주변의 몬스터를 솎아내야 하는 이유 또한 바로 이런 사정이다.

임계치 이상으로 축적된 몬스터들은 언젠가 도시의 파멸이 되어 돌아온다.

대기 중에 섞인 마력과 접촉해, 호흡할 때마다 마력을 내뿜는 대침공 이후의 인간들.

개중에서도 헌터와 달리 싸울 줄도 모르는 민간인들은, 굶주린 몬스터들에게 있어 군침이 돌 정도로 달콤한 먹이다.

덕분에 현장은 완전히 아비규환이었다.

단순한 스탬피드일 뿐이었다면 강원도 지부에서도 나름대로 대응을 했겠지.

애초에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메뉴얼도 따로 준비되어 있을 테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런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응하길 바라는 건 다소 지나친 기대가 아닐까.

슬쩍, 주변을 살핀다.

누군가 외친 스탬피드라는 소리에 바짝 얼어붙은 학생들.

게다가 현장학습 지도를 위해 변변찮은 무장 하나 없이 지금 이 자리에 모인 헌터들.

하물며 갑자기 사라진 도주진 헌터까지.

이만큼 악재가 겹치면 그야 사고가 마비될 만도 하다.

'어쩔 수 없지.'

쯧, 혀를 찬다.

동시에, 아직도 얼타고 있는 서아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 이름을 부른다.

"서아야."

"어, 응?!"

"여기 잠깐만 맡기자."

"엇."

"우리 반 애들 지키면서 계속 지원사격 해. 주변 몬스터들만 쳐내면 되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는 말고."

"잠깐만, 사부?!"

잠깐만이고 나발이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거의 통보하다시피 말을 마친 나는 그대로 방금 전 위치를 봐 두었던 지부 담당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S랭크 헌터, 박우찬입니다. 강원도 지부 담당자 맞으십니까?"

"예?"

사실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도 아니었다.

애초에 담당자라는 거 알고 왔으니까.

"각 학급 통제 관련으로 고민하고 계신 거 압니다."

"으, 으음."

"아카데미 담임 교사들은 현역 시절 최소 B랭크 이상의 헌터입니다. 교통 정리는 그 쪽에 맡기시면 될 겁니다."

"아니, 잠깐……."

"교생 측 전력도 있으니 참고하십시오. 야! 티아!"

목소리를 높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는 빨간 머리가 보였다.

스탬피드 자체를 처음 겪는 건지,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서아에 비하면 훨씬 빠른 반응이었다.

"A+랭크에 준하는 회복 능력자입니다. 회복이 필요하실 땐 저 쪽에 말씀해주세요."

가급적 담담하게 던진 말에 잠시 무어라 입술을 삐죽이던 담당자도이윽고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의식해서 억양을 억누른 덕분일까?

아무래도 지금은 주도권 싸움으로 왈가왈부할 때가 아님을 깨달은 모양이다.

물론 거기에는 방금 전 내가 건넨 제안 또한 나름 제 몫을 했겠지.

내가 한 말을 정리하면 결국 서로 해야 할 일을 하자는 뜻으로 귀결된다.

인원 대다수가 생도인 아카데미로서는 스탬피드에 대처할 수 없다.

허면, 전문가인 강원도 지부가 대처할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는 쪽이 훨씬 현명한 일이다.

넋빠진 강원도 지부 소속 헌터들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필요한 인력을 지원한다.

학생들의 통솔은 담임 교사들에게 맡겨라.

걱정할 필요 없이 전력을 발휘해라.

이런 식으로.

학생들의 힘을 빌린 기발한 전략 따위는 어디까지나 서브컬처 속 이야기.

지금은 그냥 조용히 있는 편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

"해서, 중요한 건 스탬피드 쪽입니다만."

"예. 현재 전체적인 규모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대처엔 문제가 없을 겁니다."

확인이라.

방금 전부터 시끄럽게 경고음을 내고 있는 저 용맥 지도를 이야기하는 걸까.

그렇다면 안심이다.

문제는 역시 저 쪽이겠지.

흘끔, 담당자의 시선이 저 멀리 웅혼하게 포효하고 있는 거체를 향한다.

……산을 탄다는 표현이 이토록 정확한 서술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듯한 광경이었다.

문자 그대로산 위에 올라탄나무 거인이, 제 몸으로부터 수많은 나무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쏟아낸 나무들은 이윽고 생명을 얻어 산어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다.

몇 번을 확인해도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모르긴 몰라도, 서아가 넋이 나간 건 거의 산 하나 크기에 가까운 저 거체 때문이기도 하겠지.

수많은 대형 몬스터를 사냥한 나로서도, 문자 그대로 산만한 크기의 몬스터를 사냥한 경험은 그닥 흔하지 않았다.

반대로 말하자면, 없지는 않았단 뜻이다만.

"저 몬스터를 상대할 전력이 부족한 모양이군요."

내 말에 담당자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나로서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여하간, 방금 전 도주진 헌터가 자리를 비웠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은 참이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현역 A+랭크 헌터의 빈자리는 쉬이 메꿀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고작해야 헌터 한 명의 유무로 전선에 구멍이 나진 않겠지만, 반대로 부담이 없다 말하기에도 버거운 상황.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럼 저 놈은 제가 잡겠습니다."

"예?"

"지원은 필요 없습니다. 혹시 강원도 지부에 저 몬스터랑 관련된 기록이 있다면 그 쪽을 제공해 주십시오."

대충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현재 강원도 지부엔 여유가 없다.

다른 선생님들 또한 담당하고 있는 반을 지키기에도 버거울 것이다.

하물며 당장 강원도 내의 민가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

고작해야 학생 두 명을 위해 구조대를 파견하자 말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다기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도 않을 거다.

그러니.

'내가 갈 수밖에.'

씨발, 도주진인지 뭔지 귀찮게 하기는.

그리 생각하며 나는 무장을 점검했다.

평소라면 오랜만에 대형 몬스터를 썰어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내심 환호성을 질렀겠지.

사실 지금도 기분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하필이면 아카데미가 강원도로 현장학습을 온 상황.

하필이면 오후 일정으로 인해 일부 학생들이 분단된 지금.

하필이면 도주진 헌터가 홀로 자취를 감춘 이 때.

우연히 스탬피드가 일어났다기엔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다.

……바닥 없는 수렁에 발을 들이는 기분이 이러할까.

보이지 않는 올가미가 점차 목을 옥죄는 느낌.

허나, 지금 당장으로선 일단 행동하고 볼 수밖에 없었다.

*

다행스럽게도, 강원도 지부의 데이터는 나름 풍부한 편이었다.

강원도의 식생. 이 주변에서 서식하는 몬스터.

이를 바탕으로 엄선한 식물형 몬스터들 중 지금 눈 앞에 있는 거구랑 엇비슷한 건 대충 세 종.

개중에서도, 내가 의심하고 있는 건 역시 세 번째였다.

'두두리.'

경주의 목신??.

삼국유사 속에 등장하는 기인, 비형랑으로부터 유래했다 전해지는 괴물이다.

그 본질은 신체??가 나무로 이루어진 도깨비.

즉, 나무 방망이에서 유래한 도깨비라고 하는 설도 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특징만 가지고 비교했을 때 다른 두 후보에 비해 두두리가 우세를 점할 까닭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으로 이번 상대가 두두리일 거라고 사실상 확신하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두두리가 가진 성질 때문이다.

가라사대, 두두리라는 이름은어쩌면 두드린다는 동사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던가.

이 때, 두두리는 도깨비의 일종이자 동시에 도깨비 출신 대장장이로 여겨지기도 한다던가.

즉, 두두리 신앙 자체가 건설이나 토목 내지는 야금술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불과 쇠에 익숙한 종족.

그게 바로 두두리다.

그리고 이런 두두리의 성질은 대다수 헌터들에게 있어선 지독한 함정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식물형 몬스터들은 대부분 불이나 쇠에 약하니까.'

자연의 물화, 자연이 형상화된 존재라 일컬어지는 몬스터들이 공유하는 특성이다.

때문에, 식물형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불과 쇠를 가지고 온 헌터들은 두두리 앞에선 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실제로 강원도 지부에서 제공한 데이터에도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고.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나는 저 몬스터가 두두리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절묘한 타이밍에 발생한 스탬피드.

만약 누군가의 의도가 지금 이 상황에 개입되어 있다면, 그 누군가는 상당히 악질적인 성격일 테니까.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얼추 보기엔 식물형 몬스터처럼 보이는 두두리는 실로 지독한 함정이라 말할 수 있겠지.

급박한 상황에 일단 되는대로 불꽃과 강철을 챙기고 일어선 헌터들을 피곤죽으로 만들어버리기 위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놈들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지금 이 스탬피드가 인위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거다.

실제로, 강원도 지부 또한 어째서 이토록 급격하게 스탬피드가 발생한 건지 의문을 감추지 못했으니까.

스탬피드란 결국 생태계 작용의 일종이다.

만약 강원도 지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스탬피드가 일어날 리 없겠지.

사전에 스탬피드를 일으킬 만한 몬스터들을 솎아냈을 테니까.

특히나 오늘은 아카데미의 현장학습 당일이다.

못해도 요 며칠은 철저하게 주변 환경을 단속했을 테고.

그리고 내가 보기에 강원도 지부는 나름대로 훌륭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적어도 오늘같은 날에 스탬피드를 일으킬 만큼 얼빠진 녀석들은 아니었다는 소리다.

즉,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탬피드가 발생했다는 건…….

'스탬피드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결과는 동일하다.

몬스터들의 대이주.

지금 몬스터들이 밀어닥치고 있는 현상은 그리 설명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생태계의 압박. 가용 마력의 고갈.

그런 이유로 들이닥친 건 아마도 아닐 거다.

굳이 말하자면,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던 생태계가 돌연 이상 행동을 시작한 듯한 위화감.

말 그대로, 누군가 몬스터의 행동을 나서서 조작한 듯한…….

'만파식적?'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을 쫓아낸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적을 몰아낸다.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지금 당장 이런 행동을 취할 연유를 모르겠다는 점이다.

아니, 진짜로.

하연이를 데려가려는 수작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허술하다.

막말로 이런 혼란 와중 외부에서 하연이를 빼내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까.

반대로, 처음부터 내부에 잠입하고 있었다면?

이 쪽도 마찬가지겠지.

자리를 뜨기 전, 하연이의 모습은 이미 확인해두었다.

거기에 지금은 서아도 있고, 내키진 않지만 티아마트도 있으니.

아무리 그래도 저 포진을 뚫고 하연이를 납치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애초에 정말로 납치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버스 폭파 테러라도 하는 편이 낫겠지.

하연이를 데려가기 위한 틈을 만듦과 동시에, 부실한 강원도 지부의 현황을 성토한다?

설마.

그래서야 단순히 적만 만드는 꼴이 아닌가.

요 최근 언론전으로 재미를 본 적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만약 정말로 그럴 생각이라면 애초에 경계할 필요도 없겠지.

……결국 당면한 목적은 어디까지나 수수께끼인 가운데.

나는 산등성이 위로 군림하고 있는 거구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문제는 오히려 이 뒤겠지.'

지금 당장 윤하를 구하러 갈 수는 없다.

그리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여하간, 한창 스탬피드가 진행 중인 지금 이 상황 속에서 윤하의 흔적을 발견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두두리가 부린다는 부하 도깨비들.

혹은, 두두리의 본산인왕가수王家?에서 자란다는 어린 두두리들.

방금 전부터 수많은 나무 괴물이 준동하고 있는 가운데, 인간 두 명의 흔적을 골라 찾는 건 아무래도 힘들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은 두두리를 토벌한다.'

윤하와 그 짝꿍의 능력은 각각신체 경화와 은신.

우두머리인 두두리만 때려잡을 수 있다면 일단 큰 피해는 입지 않을 거다.

만약을 대비해 챙겨둔 최고급 포션들도 있고.

별다른 문제는 없다.

지금 이 플랜대로만 흘러간다면.

……투둑, 투둑.

한 방울, 두 방울.

비가 쏟아지는 하늘 아래에서, 나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알싸하게 목덜미를 간질이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무시한 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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