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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18화 (118/371)

〈 118화 〉 던전 체험

* * *

'귀찮아…….'

그리고 그 시각.

황윤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영 내키지 않는 마음에 대충 끝내고 잠이나 자려 했던 게 문제일까.

나중에 별다른 탈 없도록 적당히 써낸 답이 속속들이 들어맞을 때부터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더라니.

자신도 모르게 황윤하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까놓고 말해, 이번 오후 일정을 설명하던 가이드 앞에서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이다.

아니, 평소의 고민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 쪽이든, 덕분에 황윤하는 별다른 고려 없이 오후 일정에서 최고 득점을 거두고 말았다.

설마 그 보수가 이런 물건일 줄이야.

그리 생각하며 던진 시선 너머로 울창한 수풀이 솨아아 시원하게 손을 흔든다.

태백산맥 어귀.

이 강원도 지부에서 제공한 특수 훈련장이었다.

요컨대, 오후 일정 끝자락.

예의 퍼즐 게임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황윤하와 그 짝은 강원도에 속한 던전 중 하나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임시 던전이라 해도 그 실체는 단순한 훈련소겠지.

아무리 그래도 일개 생도들을 한 마디 예고도 없이 던전에 밀어넣을 리도 없고.

문제는 정작 당사자인 짝궁부터 어른들의 으름장에 속아넘어갔다는 점이다.

"유, 윤하야. 괜찮을까? 여기, 던전이잖아……."

"뭐, 그렇지."

당장 여기서 사실은 거짓말일 거라 말하기엔 믿을 것 같지도 않다.

애초에 납득시킬 근거도 없고.

윤하 쪽도 심증 뿐인 건 마찬가지니까.

무엇보다.

'곤란하지.'

어설프게 용기를 되찾아도 귀찮을 뿐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황윤하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귀찮다니.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도저히 자신이 할 만한 말은 아니었다.

평소같았으면 설령 가짜였다는 걸 깨달았다 한들 오히려 더 열심히 탐사를 시작했을 거다.

여기가 진짜배기 던전이 아닌 일개 훈련장이라는 건 다시 말해 안전이 확보되었다는 뜻이니까.

후일 헌터로서 자립할 때를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을 테고.

……그래.

문제는 결국 거기에 있었다.

헌터.

여태까지와 달리 앞으로 헌터가 될 거라는 확신이 없으니 만사가 귀찮게 여겨지는 거겠지.

시간 낭비가 될 수도 있으니까.

요컨대, 자신의 우유부단함이 문제다.

정말로 그만둘 거라면 다른 조한테 기회를 양도하는 편이 좋았을 텐데.

황윤하가 보기에, 스스로의 인생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시대에 태어났다.

어쩌다 보니 헌터로서 각성했다.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헌터가 되기로 했고, 마침 문을 연다는 아카데미에 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고작해야 그 정도 각오와 함께 시작된 헌터행은,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끝이 났다.

물론 이 또한 당연한 이야기.

어떠한 마음의 준비 하나 없이 입에 올린 장래희망이다.

현실의 벽 앞에선 산산히 부서져 흩날리는 게 도리겠지.

다시 한 번 황윤하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갈까.'

그래. 역시 돌아가자.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자퇴서를 내는 거다.

더 이상 열심히 하는 애들 발목이나 잡고 늘어지는 건 단순한 민폐다.

나름대로 확고하게 결론을 내리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정말로?'

시끄러, 닥쳐.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동요에 일갈을 넣는다.

그러자 더 이상 시끄러운 군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익숙한 일이었다.

"……흡!"

한껏 산뜻한 기분으로 기지개를 켰다.

어디 보자.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까?

내려가고 싶은 건 이 애도 마찬가지인 것 같으니 따로 설득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서.

'이 애 능력이 은신이었던가?'

그런 걸 생각하며 주위를 훑었다.

만약 지금 이 장소가 그녀의 예상대로 태백산맥 속 훈련장이라고 한다면, 주변에 이 쪽을 감시하고 있는 헌터들이 있을 거다.

"아."

찾았다.

문득 그녀의 시선이 저 멀리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를 향했다.

역시 있었군.

스스로의 판단력에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잠시, 곧 황윤하는 뒤를 돌아 아직까지 벌벌 떨고 있는 짝꿍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선생님들한테 말하고 올게."

"어?"

얼빠진 소리를 내는 여학생을 뒤에 내버려 둔 채 윤하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후회했다.

왜냐하면, 기껏 발견한 헌터가 그녀 이상의 속도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던 탓이다.

"아니, 씹!"

욕이 나오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불러도 돌아볼 기색 하나 없이 쭉쭉 나아가는 헌터.

결국 윤하로서는 당장에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하늘 아래 때 아닌 추격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시발. 도민준인지 도주진인지, 하여튼 잡히기만 해 봐.'

*

이후 일정 또한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애초에 가장 먼저 퍼즐을 해결한 게 윤하네 조일 뿐, 다른 조도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조들의 문제 해결 속도로 보건대 두 번째로 던전 체험 자격을 손에 넣는 건 퍽 요원한 일일 듯했다.

"어우, 시발. 윤하는 잘 하고 있는지 몰라."

쩌억, 몰래 하품을 내쉰다.

컨닝 따위를 경계하고 있는 건지, 당장 이 자리에서 윤하네 현황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인솔교사인 내가 자리를 뜰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니, 애시당초 학생들에겐 진짜 던전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판국이니.

설령 컨닝 문제가 없었다 해도 결과적으론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르겠다.

"야, 서아야. 사부가 예전부터 수정구 하나 마련하라고 했냐, 안 했냐?"

"아니, 사부가 사 줄 것도 아니면서 왠 참견?"

"나 참, 어이가 없네. 야, 너도 돈 벌면서 무슨 나한테 사달라 마라야?"

하늘같은 사부를 뭘로 보고.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윤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건 서아 정도였다.

서아의 능력은 천리안.

말이 천리안이지, 능력이 향상될 때마다 투시나 동체 시력 따위도 들고 오는 안력의 총체다.

그리고 수정구는 그런 천리안 너머의 풍경을 투사할 수 있는 도구고.

요컨대, 지금 서아는 심심하니 TV 좀 틀어보라는 말에 리모콘 없다고 대답한 셈이었다.

오라질 년.

"에라이, 썅."

뭐,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다마는.

상대는 윤하다.

우리 동아리 애들이 비교 대상이라 그렇지 학년 전체로 치면 충분히 상위권이고.

특히 이런 상황에서의 판단 능력은 개중에서도 제일이니까.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역시 그 태도인데…….

당장엔 어쩔 도리도 없으니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즉.

"거 존나게 심심하네."

지금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에라이 제기랄, 쉰소리를 내며 뒤로 드러누웠다.

지부 부지 내에 마련된 공터는 주변에 무성한 산림과 달리 그런 내 몸을 푹신하게 받아주었다.

잔디라도 깐 게 아닐까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그렇게 드러누우니, 정말로 별의별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중충한 하늘.

그 밑으로 마련된 점포 비슷한 천막들 너머각종 문제를 수행하는 학생들의 얼굴도 보였고.

허둥지둥 뛰어다니는 진행 요원들이 있는가 하면, 흡족한 듯 지금 이 풍경을 내려다보는 지부 담당자도 있다.

나와 마찬가지로 인솔교사 역할을 떠맡은 담임들은 여전히 차도 하나 없는 학생들의 모습에 속이 뒤집힐 듯 가슴을 친다.

당황한 얼굴의 진행 요원.

문제를 풀기 위해 고심하는 학생들.

급히 달려가는 진행 요원.

학생들을 응원하는 선생님.

지부 담당자를 향해 귓속말을 전하는 진행 요원.

급격히 얼굴이 굳는 지부 담당자…….

"음?"

"응? 사부, 또 왜?"

"아니, 서아야. 뭔가 어수선하지 않냐?"

"어라, 그러게?"

과연 이 정도가 되면 서아라 해도 눈치챌 수밖에 없다.

방금 전부터 이상할 정도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진행 요원들이 많았다.

물론 때 아닌 현장학습을 맞아 넋이 빠지게 뛰어다니는 건 어디라 해도 마찬가지겠지만.

문제는 여기가 헌터 협회 강원도 지부라는 점이었다.

요컨대, 지금은 진행 요원 점퍼를 걸치고 있는 저 양반들도 실제로는 지부 소속 헌터라는 건데.

이만한 헌터들이 부산을 떨 이유가 있다고?

"서아야."

"거기 당신, 잠깐 나 좀 보죠."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짧은 호명과 함께, 목소리를 내리깐 서아가 주변에 쏘다니던 헌터들 중 한 명을 지목해 불렀다.

"네? 저 말입니까?"

"그래요. 방금 전부터 소란스럽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죄송합니다. 허나, 지금 이건 강원도 지부 내의 일이라서……."

"아?"

오우, 씨발.

솔직히 좀 쫄았다.

불쾌하다는 듯 성대를 긁는 서아.

차갑게 얼어붙은 냉수가 척추를 타고 흐르는 듯한 느낌.

실제로, 서아의 세례를 받은 직원 또한 움찔 하고 어깨를 떨었다.

"당신, 나 누군지 몰라?"

"예, 예?"

"아니, 됐고. 시덥잖은 입씨름 할 생각 없으니까. 현직 A+랭크, 신서아입니다."

"어, 앗!"

"됐으면 이제 설명 좀 듣죠. 그래서, 무슨 일이죠?"

숫제 윽박지르는 듯한 어조였지만,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각 지부가 지역과 유착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헌터 협회는 원칙적으로 투명한 운영을 지향하고 있으니까.

다시 말해, 계급장이 깡패라는 소리다.

즉, 현직 A+랭크인 서아 앞에서 내부 규율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지휘권이나 S랭크 사안 등과같은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말이지.

그리고 지금 이 강원도 지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무래도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도주진 헌터가 사라졌다고?"

"예, 예!"

서아가 불러 세운 헌터는 그리 말했다.

가라사대, 도주진 헌터가 점심시간 이후부터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지금 총원을 동원해 찾고 있다던가.

"똥 싸러 간 거 아님?"

"도주진 헌터는 똥 안 싸요."

"염병을 하네, 진짜."

칼같이 대답하는 여성 헌터는 둘째치더라도, 확실히 묘한 상황이긴 했다.

이 강원도 지부에서 단독 행동은원론적으로허락되지 않는다.

이유는 물론 주변 상황 때문이고.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정말 화장실을 들린다 하더라도 하나하나 동선이 남는 게 바로 이 강원도 지부다.

요컨대, 지금 이 상황은 정말로 무언가 이상하다는 거고.

당장에 이상은 없고여기에 도주진 헌터 이상의 실력자도 없으니 지금은 이 정도로 그치고 있지만…….

"실제론 긴급 상황이라는 거군요."

"네."

"알겠습니다. 가 보세요."

그리 말하며 손을 내젓는 서아에게 꾸벅 인사를 마치며 떠나가는 헌터.

잠깐 사이에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 영 보기 안타까웠다.

"그렇대, 사부."

"옹야."

"어때, 나 잘했지?"

"응. 잘했지. 잘했긴 한데, 좀 무섭다 너."

"응? 어, 무서워……?"

"그래, 인마."

잠깐 넋이라도 나간 듯 그리 중얼거리는 서아를 뒤로하며 슬쩍 주변을 살핀다.

확실히, 오전엔 쓸데없을 정도로 눈에 띄었던 그 얼굴이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흐음.'

그렇게 들으니 역시 조금은 신경이 쓰이긴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점심시간 이후에 모습을 감췄다면 마지막으로 만난 게 나라는 이야기나 다름없으니.

갑자기 사라졌다고?

사라졌다 해도, 어딜?

"에라이."

그렇지만.

나로서도 당장에 짐작이 가는 점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난 여기 지리도 모르고.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현지 출신 헌터들에게 맡겨두는 편이 나을 거라고 결론을 내린 바로 그 순간.

쿵!!

대기가 떨리는 충격과 함께, 대지가 울렸다.

"응?"

"뭐야, 지진?"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문득 학생들 사이에서도 소요가 일었다.

물론 머잖아 잠잠해지고 말았지만.

왜냐하면.

코오오오오────!!

산 위에 또 다른 산이 직립보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도 잡담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나무로 이루어진 거인.

혹은, 거인의 형상을 취한 수해??.

그리 칭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엇 하나 없었던 산봉우리 위에 나타났다.

동시에.

"대, 대범람Stampede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응하듯, 산을 빼곡히 덮고 있던 나무들이 육지를 향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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