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던전 체험
* * *
결론만 말하자면,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실제로, 시원하게 한바탕 당한 도주진도 연신 감탄사를 토할 뿐이었다.
"과연. 무기술도 도움이 될 때가 있군요!"
그런 식으로 떠들다 시간이 되었다며 자리를 뜨던 도주진의 뒷모습엔 변변찮은 구김살 하나 없었다.
고작 한 시간 치고는 썩 나쁘지 않은 팬미팅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겠다.
단지.
"괜찮겠어?"
정작 서아 쪽이 걱정스럽다는 듯 그리 되물을 뿐이었다.
……뭐, 이해할 수는 있었다.
도살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헌터, 도주진.
녀석이 내게 기대한 건 이런 무기술 특강이 아니었을 테지.
하지만.
"뭐 어때. 어차피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일도 없을 텐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또 할 말이 없네."
솔직히 어떻게 거기까지 배려해 주냐?
이 정도면 팬 서비스도 착실한 편이지.
실제로 도움은 될 테고.
이제 와서 원하던 서비스가 아니었다 해도 곤란해~
애초에 난 서비스직도 아니다.
물론 팬이라 칭하는 친구를 만나서 기뻤던 건 사실이지만.
단지, 그 쪽의 기대를 맞춰주기 위해 경우에도 없던 연기까지 하는 건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단 뜻이다.
"그래도 기분 나빠 보이던데."
"뭐 어때. 우리도 슬슬 가자. 점심시간 다 끝나겠다."
"구랭."
이러니저러니 해도, 본격적으로 일정이 시작되는 건 점심시간 이후다.
팬미팅도 좋겠지만, 지금은 아카데미의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할 때다.
아니, 정작 도주진 쪽을 살피느라 윤하 쪽은 신경도 못 써주긴 했지만.
그 쪽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쪽이든, 골치 아픈 일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었다.
*
'녹슬었군.'
도주진은 방금 전 자신과 도축업자 사이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그리 평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도주진에게 있어 이번 만남은 정말로 예상 밖의 일이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애초에 기사에서 도축업자라는 별명을 확인한 시점부터 그랬다.
소문 너머로 그가 그리고 있던 도축업자는 이런 식으로 들을 수 있을 만한 이름이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그가 은퇴한 이후 줄곧 행방불명이었다는 이야기 쪽은 차라리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만약 이 나라에서 가장 강한 헌터가 누구냐 묻는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준구라고 답하겠지.
만약 이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헌터가 누구냐 묻는다면, 사람들은 일단 최승준의 이름을 거론할 것이다.
허나.
만약 이 나라에서 가장 사냥꾼다운 헌터가 누구냐 묻는다면?
도축업자의 소문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하나같이 그를 떠올릴 거다.
그런 존재였고, 그런 이름이었다.
도축업자.
고작해야 네 글자밖에 되지 않는 별명엔, 바로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 업계의 뒷면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인 자들이라면 누구 하나 모를 수 없는 사냥꾼.
가장 강한 헌터는 따로 있다. 가장 뛰어난 헌터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터라는 직업의 본질이 결국 사냥에 있음을 고려했을 때.
가장 우수한 사냥꾼은, 역시 도축업자였다.
실제로 그의 행적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냥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협회에 발을 들이지 않은 수렵자.
오로지 사냥에 집중하기 위해 협회에 적을 올리지 않은 도축업자의 모습은, 마치 완고한 장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불순물 투성이다.
도축업자에 대해 처음으로 조사했을 때, 도주진은 스스로를 그리 평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를 죽이고 싶다. 몬스터에게 복수하고 싶다.
몇 번이나 그리 되뇌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여태까지 생계를 위한 선택이라며 몇 번이나 타협을 반복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말하는 건 쉽겠지.
밥을 먹지 않고선 힘을 낼 수 없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선 일단 살아남을 필요가 있다.
도축업자 본인에게 물어도 마찬가지인 대답을 돌려줄 거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사냥에 할애한 듯한 그 모습에, 도주진은 동경을 품었던 것이다.
……차라리 사내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면 이토록 놀라진 않았겠지.
하물며 이토록 실망하는 일 또한 없었을 테고.
대침공이 종식된 이후, 세태에 적응하지 못하던 사내가 야인으로 살아가던 와중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생각했을 거다.
도주진 자신부터 그랬으니까.
그러나 박우찬은 태연하게 다시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엔 신서아 헌터의 스승으로서.
다음엔 아카데미의 인솔 교사로서.
마지막으론 여전히 현역 시절 그의 별명을 기억하고 있던 도주진 앞에, 도축업자로서.
그 사실이 도주진은 못내 슬펐다.
방금 전 대련만 해도 그랬다.
만약 그가 기억하고 있던 도축업자였다면, 애초부터 그렇게 싸움을 질질 끌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자신은 초격에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겠지.
도주진이 바라던 결과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축업자라 불리던 사냥꾼이 가진 힘을 온몸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결과는 반쯤 성공적이었다.
확실히 그 실력은 뛰어났다.
그렇지만.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소문 속 도축업자와 박우찬 사이엔 그만한 차이가 있었다.
물론 당사자인 박우찬이 들었다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도주진으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도축업자는 녹슬었다.
녹슬고 말았다.
심각한 부상이라도 있었던 건지, 그렇지 않으면 뭔지.
그 결과, 아카데미에서 짬짬이 교사 노릇이나 하며 시간을 떼우고 있는 셈이었다.
도주진의 이런 생각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오후 일정을 진행하던 도중, 도축업자 특유의 기교가 얼추 모습을 내비치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소문으로 들은 도축업자라기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작해야 스무 살도 안 된 꼬맹이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떼어 팔고 있다니.
……자신의 상상 속 도축업자에게 매몰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무어라고 해야 할까.
어느 쪽이든, 도주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덕분에 오후 일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그 기억조차 희미할 지경이었다.
일찍이 도축업자라 불렸던 헌터의 추락 아닌 추락은 도주진에게 있어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이런, 아무래도 노고가 심하셨던 모양이로군요."
잠시 빠져나와 자신이 받은 심고를 다스리고 있었을 때.
누군가 도주진에게 접근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오후 일정은 일종의 퍼즐 게임이었다.
지금까지 강원도 지부가 처한 상황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들었던 학생들.
그런 꼬맹이들을 위해 강원도 지부 측에서는 총 다섯 가지 게임을 준비했다.
즉, 현장학습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각종 지식 점검 테스트다.
사전 정찰.
정찰로 확인한 지형 내에서의 생존 요령.
산악 지형 내에서 서식하는 몬스터들에 대한 분석.
이러한 몬스터들이 구축한 던전의 특징.
이후 공략을 위해 필요한 밑준비 등.
순서는 일절 상관 없음.
총 다섯 항목에 걸쳐 준비된 문제를 해결해, 가장 빠른 조가 상을 거둔다.
심플한 구조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가장 먼저 두각을 드러낸 건 역시 우리 반 쪽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
다른 반 녀석들이 화려한 능력 위주로 단련할 때, 기초 다지기부터 들어갔던 게 바로 우리 반이다.
이런 조건 하에서의 판단력은 다른 반 녀석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허나.
개중에서도 특히나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건 역시 한 조.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중에서도 한 명이었다.
"A반 4조! A반 4조, 파죽지세입니다!!"
황윤하.
귀찮다는 듯 게슴츠레하게 뜬 눈 너머로, 윤하는 자신에게 부과된 과제를 순식간에 해결하고 있었다.
"쟤, 저렇게 실력 좋았던가?"
그 모습을 본 서아가 무심코 그리 반문할 정도였다.
뭐, 그야 그렇겠지.
1학년 A반, 혹은 아카데미 전체를 통틀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정필연과 이예은일 테니까.
다만.
말했다시피, 이 1학년 A반은 실력파라는 이름 하에 최승준이 떠넘긴 문제아들로 가득한 반이다.
성격은 나쁘지만 실력은 확실하다고 해야 할까, 벌써부터 실력이 있다고 떠받들어주니 건방진 성미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지만, 개인적으론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A반에서도 단 두 명, 실력이 확실하고 어쩌고 이전에 이제 막 헌터가 된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물론 이 쪽의 사정 때문에 입학하게 된 하연이.
다른 한 명이 윤하였다.
허면, 여태까지 아르바이트 뛰느라 바빠서 제대로 된 능력 개발 한 번 못 했다는 윤하는 어떻게 A반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우등생을 한 반에 몰아넣자니 눈치가 보인 최승준이 적당히 넣은 땜빵 요원일까?
그건 아닐 거다.
내겐 윤하에게도 충분한 싹수가 보였다.
능력이 우수한 편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르바이트로 다져진 체력도 있다.
비록 지갑 사정 때문이라고는 하나, 몬스터에 대한 학습에도 열의를 보였고.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윤하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저 성격이었다.
배포가 있다고 해야 할까, 대담하다고 해야 할까.
귀찮은 듯한 태도로 담담하게 과제를 처리하고 있는 저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누군가는 단순히 무심한 거라고 말하겠지.
혹은 게으른 게 아닌가 폄하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고.
다만.
우리들은 사냥꾼이되, 단순한 사냥꾼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대신해 누구 하나 대적할 엄두도 못 내는 괴물 새끼들을 토막치는 게 우리의 일이니까.
때문에.
결정적인 상황에서 판단을 그르치는 헌터들은 정말로 수도 없이 많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란 말에서 느껴지는 막중한 책임감.
자신의 선택 한 번에 사람들의 생사가 결정된다는 무게감.
잘못된 결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그렇기에, 수많은 헌터들은 신중함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의우유부단함을 정당화한다.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정보가 모이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물론 정보는 중요하겠지.
하지만.
현장에서 판단을 내리는 사냥꾼으로선 오히려 이런 태도를 지양해야만 한다.
시시각각 상황이 급변하는 전장에서 언제나 만전의 정보가 주어질 거라고 기대해선 아니 된다.
정보의 중요성은 인정하되, 필요하다면 부족한 정보로도 차선의 판단을 내리겠다는 기개가 필요하고.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면 과감하게 단행할 필요가 있다.
신중함이라는 간판 하에 망설이는 건 오히려 피해를 늘리는 길일 뿐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윤하의 행동은 퍽 시원스럽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는 그 모습은 언뜻 보기엔 단호하기까지 하다.
이런 부류는 주로 자신의 행동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으나, 윤하는 그 정도까진 아니고.
스스로의 선택에 자신을 가지지만 고집하진 않는다.
결과를 확인하기 전까지 돌아보진 않지만, 결과가 나왔다면 받아들이고 수정할 줄 안다.
그 전까지 고민하는 건 어차피 이제 와서 바꿀 수도 없는데 괜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듯한 뻔뻔함이 있다.
대다수 사람들도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진 못하는 호방함.
문자 그대로 대범하다 표현할 수밖에 없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어떻게 동선을 짜는게 좋을까 고민하며 시간을 날리는 친구들.
이와 달리, 윤하는 그냥 걸음 닿는 곳에서 곧바로 시험을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서 뻣뻣하게 굳어버린 친구들과 달리대답을 내미는 일에도 망설임이 없다.
어떤 의미로는 맞으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 없다 생각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미는 대답마다 족족 정답인 걸 보면 정말로 막 던지는 건 아니겠지.
육감, 혹은 직관이라고 해야 할까.
"아, 결국 순위에 변동 없이 A반 4조가 우승을 차지하네요!! 어디 보자, 황윤하 학생? 소감이 어떠신지?"
"개좆밥이네요."
"엇."
마찬가지로 귀찮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이제 와선 헛웃음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뭐, 저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지.
이번 오후 일정의 상품은 던전 체험 학습.
말 그대로, 태백산맥 근처에 강원도 지부 측이 따로 형성한 학습장이다.
물론 말이 던전 체험이지 실제로는 협회 소속 헌터들이 상주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고.
애초에 우리 아카데미 측을 위해 새로 만든 장소일 리도 없으니, 실제로는 평소부터 활용하던 훈련장일 거다.
지금 당장은 재미를 위해 실제 던전이라고 과장하긴 하겠지만.
실제로 그 으름장을 들은 학생들의 얼굴에 모호한 두려움이 서리는 게 느껴졌다.
정작 당사자인 윤하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잘 될런지 원.'
……당장 윤하가 보였던 미묘한 태도도 역시 마음에 걸린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역시 점심시간에 따로 찾아가 보는 쪽이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삼키며 나는 슬쩍 시선을 흘렸다.
올려다본 하늘 너머.
미묘하게 몰려드는 구름떼를 바라보면서.
'비가 오려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