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팬미팅
* * *
도주진의 제안에 우리들은 자리를 옮겼다.
아니, 거절할 명분이나 이유도 없고.
강원도 지부, 그 안에 마련된 단련실이었다.
시설 자체는 아카데미의 체단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재질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여하간, 엎어지면 바로 코 닿을 거리에 던전이 도사리고 있는 장소다.
환각 능력이 담긴 마력 결정 따위로 타일을 도배할 필요 따위는 없겠지.
반대로, 덕분에 빈 자리를 특수한 방식으로 마감질된 재료가 뒤덮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특수한 소재로 만들어진 방입니다. A+랭크 헌터가 전력으로 날뛴다 해도 견딜 수 있겠죠."
"오, 그래?"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래도 부족하진 않을까 생각하곤 있습니다만."
"에이, 그 정도면 충분하지 뭘."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리자 문득 도주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이쿠, 이런.
보기랑 다르게 꽤나 자존심 강한 성격이었던 모양이다만.
뭐, 헌터들 중 그렇지 않은 녀석들이 세상 천지 어디 있겠냐마는.
'몬스터도 아니고 말이지~'
미리 말해두겠는데, 딱히 도발할 생각은 아니었다.
여하간, 이런 상황이고 말이지.
나로서는 전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A+랭크 헌터가 난동을 부려도 견딜 수 있다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은 충분하고도 남겠지.
'질 생각은 없지만.'
그리 생각하며 창고를 열었다.
이 쪽이 사용할 무기는, 언제나 그랬듯이 우악스러운 거검.
대인전에서 사용할 만한 물건은 도저히 못 되지만, 나로서는 가장 손에 익은 병기다.
"헌데, 그런 무기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엉? 괜찮아 괜찮아, 다른 무기 썼다가 나중에 손이라도 꼬이는 쪽이 더 큰일이거든."
내가 이런 괴상한 무기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고.
한계까지 관련 기능을 우겨넣은 거병 아닌 괴병.
어떤 몬스터가 상대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염두에 둔 무기다.
특정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에 효율적인 무기도 있기야 하겠지만…….
뭐, 나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무기를 사용한다는 리스크를 감수하느니 차라리 한 우물을 파겠노라 작정한 거고.
애초에 해체소에서 배운 기술이 아까워 어떻게든 활용할 여지가 없을까 고민한 끝에 발주한 무기.
이제 와서 다른 무기술을 배워 봐야 단순한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다양한 보조 도구까지.
내 나름대로 궁리한 전법이다.
"과연. 어느 때라도 일정한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도록 염두에 둔 스타일이라는 거군요. 훌륭합니다."
"칭찬 감사. 뭐, 그러는 너도 꽤 독특한 무기인데."
"손에 익은 녀석이거든요."
정작 그렇게 말하는 도주진 또한 독특한 무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글레이브라고 해야 할지, 펄션이라고 해야 할지.
문화권을 고려하면 언월도라고 말하는 편이 보다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반반한 생김새에 비하면 참으로 흉악한 무기였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언월도의 가장 큰 특징은 먼저 장병기로서 지니는 리치.
그리고 할버드 등과 달리 여러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대응력을 깎은 대신 원심력을 활용하는 데에 특화된 구조다.
백병전에 있어 가장 강렬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냉병기.
도주진의 스타일을 고려하면 최적이라 자신할 수 있는 무구다.
역시 A+랭크 정도 되면 전법에 빈틈이 없다고나 해야 할까.
최소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전법이 무엇인지 이래저래 고민한 티가 난단 말이지~
"사부!! 발라버려!!"
"히, 힘내거라~?"
훈련실 구석에서 들리는 응원 소리.
이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천천히 생각한다.
'어디 보자.'
만약 카메라라도 있었다면 화려한 접전 끝에 패배하는 장면을 연출해도 좋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
반대편에 있는 도주진의 모습을 슬쩍 확인한 뒤, 나는 결론을 내렸다.
"할까?"
"예. 언제든지 와 주십시오!"
확신을 얻기 위해 던진 말을, 도주진은 그렇게 받았다.
동시에.
양손으로 창대를 단단히 파지한 채 굳게 버티고 선다.
내 선공을 기다리는 모양새.
존경하는 헌터에 대한 예우일까, 그렇지 않으면 몸에 익은 전법일까.
전자도 틀리진 않겠지만, 후자 쪽이 정답에 가까우리라.
집채만한 몬스터를 상대로는 장병기의 장점인 사거리를 살리기 힘들다.
때문에.
장병기를 사용하는 헌터들의 전법은 십중팔구날아든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을 때려박는 형식이 된다.
카운터 위주라고 해야 할까.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언월도는 몬스터 사냥에 그럭저럭 적합한 무기라고 할 수 있겠다.
전신을 사용하는 참격.
원심력을 이용한 사용자의 근력 이상의 파괴력.
어느 쪽이든, 카운터를 사용하기엔 최적이다.
실제로 언월도가 포기한 찌르기는 몬스터가 상대일 경우 어지간해선 효과를 보기 힘드니까.
장병기가 발휘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공격인 찌르기는, 그 특성 상 중간에 멈추거나 무기를 회수하기 힘들다.
반격보단 기습이나 선공 등에 적합한 구조라는 뜻이다.
몬스터의 체급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고.
좁쌀만한 인간의 찌르기가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건 몬스터의 신체 중에서도 극히 일부분.
그렇기에, 장병기를 사용하는 헌터들은 대부분 찌르기로 대표되는 선공에 익숙하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지.
대인전과는 정 반대라고 할 수 있겠다.
대인전에 있어 가장 우선시되는 장병기의 특색은 사거리.
그리고 이를 살린 찌르기나 견제 등이 중심이 된다.
구조 상 찌르기가 힘든 언월도라 해도 이는 마찬가지.
오히려 월도 특유의 한 손으로 풀어놓는 휩쓸기는, 수많은 장병기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범위를 자랑하니까.
즉.
'역시.'
도주진은 대인전에 익숙하지 않다.
그렇다기보다, 아마 월도술 자체를 접한 적이 없겠지.
보폭만 봐도 대충 티가 나고.
당연한 이야기다.
헌터들에게 있어, 주적은 어디까지나 몬스터.
극히 드물게 헌터들끼리 싸우는 경우가 아니라면 애초에 무기술을 연마할 이유가 없다.
대부분 상황에선 헌터 특유의 힘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으니까.
때문에 헌터들 또한 자연스레 무기술을 도외시하게 된다.
나처럼 혹시 몰라 지분거리는 녀석들을 제외하면.
대인전에서 사용하는 기술과 괴수전에서 사용하는 기술은 기본적으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도주진 또한 마찬가지일 테고.
나를 제쳐두고 도살자라는 별명이 붙을 만한 전법.
거기에 몬스터를 향한 증오 따위를 고려해 보면 구태여 무기술 따위를 배웠을 리도 없다.
우리들은 결국 사냥꾼Hunter.
싸워야 할 대상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아닌 몬스터니까.
'그건 나도 동의하지만 말이지~'
저런 사정과는 별개로, 최소한의 무기술 정도는 배워두는 게 좋다.
일단 자신이 어떤 식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점검해볼 수 있으니까.
헌터가 초상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사실이지만, 신체 구조 자체는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신체 변이 따위의 능력이 아닌 한 갑자기 키가 크지도 팔다리가 늘어나지도 않고.
즉, 이론 상 헌터가 취할 수 있는 움직임 자체는 보통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요컨대.
수박 겉핥기나마 무기술을 익힌 내게 있어 도주진의 자세는 영 빈틈 투성이처럼 보였다.
아니, 전법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역시 그걸로 갈까.'
뭐, 대충 정했다.
지금은 이기자.
그게 자신의 팬이라 자칭한 이 친구에게도 도움이 되겠지.
대침공도 끝난 지금이라면 다소 여유도 있고, 뭐라도 배울 마음이 든다면 서로 좋을 일이다.
툭, 그리 생각하며 대검의 끝을 찬다.
대검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동작.
원심력을 싣기 위한 행동이었다.
동시에.
"크윽?!"
투웅!!
거리를 좁히며 내려친 대검을, 도주진이 받아낸다.
거의 반사적인 행동이었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물론 받아냈다 해도 완벽하진 않았지만.
애초에 원심력을 실은 내려베기.
고작해야 두 팔로 받아낼 수 있을 만큼 가볍지도 않다.
그대로 양 손에 힘을 싣는다.
언월도의 장대를 압박하는 듯한 동작에 자연스레 도주진의 전신에도 힘이 들어갔다.
바로 그게 내가 의도한 점이었다.
"엇?!"
휘릭, 언월도를 중심으로 내 몸이 하늘을 날았다.
도약과 함께, 검신이 그리는 기기묘묘한 곡선을 따라 분산된 힘이 내 몸을 붕 하고 띄워올렸다.
머리를 땅으로, 발끝을 하늘로.
완전히 뒤집힌 채 도주진의 몸을 그대로 넘어간 내 공격이 그 뒤통수를 향해 이를 드러낸다.
"큭!"
당연하지만, 도주진도 바보는 아니었다.
즉각 자세를 바꾸며 언월도의 장대로 공격을 걷어내는 도주진.
그러나 격돌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따닥, 따닥, 따닥, 따닥!!
얼떨결에 수세로 돌아간 도주진의 얼굴이 난색으로 물든다.
대검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공격 속도.
물론 이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공격 수단은 대검의 칼날이 아니었으니까.
칼등에 달린 보조 손잡이를 쥐고, 대검을 역수로 잡는다.
그 결과.
손잡이 끝의 무게추를 머리로 삼는 봉이 완성되었다.
노도의 찌르기.
대검이나 월도의 간격이 아닌 영거리.
대검이라 부르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인 무기가 간극을 지배한다.
뭐, 진짜배기 봉이라 하기엔 어색함이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일단 무게 중심부터 문제고.
헌터 특유의 근력이 있다면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상대 또한 헌터라는 사실.
일반인이라면 눈치챌 수조차 없을 미세한 차이가, 헌터 앞에서는 노골적인 빈틈이 된다.
그걸 만회하는 게 바로 기술이지만.
칼날의 무게를 역으로 이용해 오히려 검신 쪽을 아래로 내리누른다.
그러자 마치 시소처럼 솟구친 무게추가 단순한 찌르기를 상회하는 위력으로 들이닥쳤다.
"흡!"
턱끝을 젖혀 간신히 공세를 회피한 도주진.
그 얼굴엔 때 아닌 당혹이 서려 있었다.
그야 이해가 가질 않겠지.
힘이나 속도가 압도적인 건 아니다.
헌터로서 수많은 몬스터를 사냥한 도주진은 알 수 있었다.
몬스터에 비하면 오히려 느린 편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잡을 수가 없다──.
아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건 순수한 기술.
사냥꾼인 도주진에겐 완전히 낯설 영역이다.
……무술은 결국 체급 싸움이라는 소리가 있다.
어떠한 기술도 체급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이야기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만, 거기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첫째, 아예 종이 다를 정도로 압도적인 체급차가 전제되거나.
둘째, 상대 또한 어느 정도 격투기를 익히고 있거나.
요컨대, 기술이 엇비슷한 수준일 때에나 통용되는 가정이다.
정말로 체급 하나만 가지고 모든 기술을 무용지물처럼 만들 수 있을 리가 있나.
실제로, 격투기를 익힌 저체급 전문가와 체격만 큰 일반인이 부딪히면 승리하는 건 십중팔구 전자고.
애초에 비슷한 기술이라는 조건조차개개인에 따른 적성 등을 고려하면 완전히 대등한 사례 따위는 존재할 수 없는 법.
덕분에 엇비슷한 기교파 사이에서도 체급 차이가 뒤집히는 경우 또한 빈번히 일어난다.
즉.
"크악?!"
무기술 하나 익히지 않은 A+랭크에게 내가 뒤질 까닭은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다.
설령 상대가 몬스터 아닌 헌터라 한들 마찬가지.
하물며 지금은 체급조차 내 위라고 말하기 힘들다.
도주진의 능력은 신체 점진 강화.
처음엔 미약하지만 전투 도중 공격의 반동 등을 살려 점차 강화폭이 상승하는 능력이다.
최고 출력에서는 S랭크 육체 강화 능력자조차 상회할 수 있다던가.
유용한 능력이라는 건 틀림없다.
다만.
이런 영거리.
게다가 본격적으로 강화가 시작되지 않은 지금은, 단순한 신체 능력으로도 내 쪽이 우위다.
우직!!
내려친 무게추가 도주진의 쇄골을 강타한다.
까득,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건 어쩔 수 없겠지.
지금 내 무기의 쓰임새를 따지자면 대검이라기보단 차라리 단봉에 가깝고.
아무리 그래도 이 거리에서 내지르는 단봉을 장병기 따위로 막을 수 있을 리 있나.
멋대로 풀리려 드는 무릎에 억지로 힘을 불어넣는 도주진.
동시에 그 눈꼬리 너머로 불이 붙었다.
'오.'
그리고.
도주진의 파지법이 바뀌었다.
방금 전까진 장병기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칼에 가깝게.
단단히 손잡이를 붙잡은 모양새 또한 오히려 도법에 가까운가.
'눈치가 없진 않아서 다행이군.'
월도의 가장 큰 특징은 장병기의 사거리를 가졌으나 본질적으론 대도라는 점이다.
실제로 월도의 사용법 중엔 영거리에서 도법을 펼치는 경우도 있으니.
그걸 깨달을 수 있었다면 충분하다.
아직 어설픈 자세.
월도의 장대를 걷어차 거리를 벌린다.
그러자 도주진은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세가 무너졌기 때문은 아니다.
도법의 간격에서 단번에 늘어난 거리.
지금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이거야 원.'
장병기가 사거리를 살리지 못해 쩔쩔매는 꼴이라니.
심지어 저렇게 아둔한 반응 속도라면 사거리를 살릴 수도 없다.
잠시 기다려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도주진 쪽에서 달려들 거란 기대는 포기하는 게 나을 성싶다.
그럼.
'어떻게 할까?'
사고는 찰나.
애초에 이 이상 생각할 시간을 주기에도 영 마뜩찮다.
허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
몸으로 배우게 하자.
촤르르르륵!!
다음 순간, 견제를 위해 내던진 쇠사슬이 정확히 도주진의 월도를 휘감았다.
반사적으로 무기를 쥔 손에 힘을 넣는 도주진.
무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겠지만, 나로서는 의도한 바였다.
도주진과 달리 역으로 힘을 뺀다.
동시에, 대지를 박차며 질주.
나와 도주진 양쪽의 힘에 의해 방금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간격이 좁아진다.
그런 나를 향해 날아드는 월도.
하지만.
'궤도 한 번 뻔하고~'
사슬에 묶인 손잡이. 반사적인 행동.
이런 조건 하에서라면 눈 먼 봉사라 해도 쉽게 피할 수 있을 거다.
코앞을 스쳐 지나가는 월도를 가볍게 회피.
동시에.
철그럭!
금속과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화려한 헛손질 끝에 힘이 빠진 월도의 날을, 대검의 칼등에 달린 톱날로 물어 잠근 것이다.
'본래는 이런 용도로 쓰는 물건이 아니지만…….'
나중에 날이라도 한 번 갈아둬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도주진과 시선을 마주친다.
양쪽 다 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
평소라면 당장에라도 주먹을 날렸겠지만, 아무래도 그래서야 배워가는 게 없겠지.
때문에.
"흡?!"
이번에는 조금 다른 식으로 나갈 생각이다.
월도를 내리누른 칼날에 힘을 불어넣는다.
동시에, 전진.
방금 전까지 내가 딛고 있던 자리에서 걸음을 옮긴다.
정말로 사소한 변화.
허나.
멋대로 육감이 반응한 거겠지.
무기술은 몰라도, 수많은 사선을 넘어 지금까지 살아남은 그 직감은 헛것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 당한다!!
내 걸음걸이가 주는 압박감이, 도주진에게 행동을 강요한다.
거리를 벌려라!!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도주진의 반응은 썩 빠른 편이었다.
무기를 놓고 거리를 벌린다.
거의 찰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판단이었다.
단지.
예상할 수 없는 수준까진 역시 아니었다.
척.
무작정 거리를 벌린 도주진의 목에 칼날을 겨눈다.
"더 할래?"
……도주진이 손에서 무기를 놓음과 동시에 휘두른 대검.
아무리 간격을 벌린다 해도, 단숨에 대검의 사거리 밖까지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물며 그 행동을 내가 예측하고 있었다면 더더욱.
그런 내 모습에 도주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 스스로가 취한 행동이 사실은 내가 유도했음을 깨달은 듯했다.
"아뇨. 졌습니다. 지도 편달에 감사드립니다."
"음."
뭐, 뛰어난 헌터라 해도 대인전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렇게 되는 법이지.
도주진의 항복 선언과 함께 나 또한 칼날을 내렸다.
동시에.
슬쩍, 도주진의 시선이 주변을 훑는다.
시합 전 내가 말했던 것처럼, 훈련장엔 변변찮은 상흔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대인전에서 중요한 건 화려한 힘겨루기가 아닌 테크닉.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면 다행이겠다만.
'아니, 내가 할 말은 아닌가.'
평생 몬스터만 잡을 거라면 어차피 몰라도 되는 사실이다.
만에 하나 도움이 될 때도 있다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과연 어떻게 생각할런지.
그런 사고를 삼키며 나 또한 도축업자를 동경했다는 눈 앞의 사내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온 몸에서 힘을 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