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팬미팅
* * *
도주진이라는 헌터에 대해서.
누차 말했다시피, 내가 이 젊은 헌터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은 그렇게 많지 않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실에 더해, 바로 어제오늘 서아가 떠든내용이 사실상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그렇게 몇 다리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도주진은 어릴 적부터 이 업계에 몸담은 유망주였다고 한다.
주된 동기는 몬스터가 부모님을 살해했기 때문에.
다소 스테레오타입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일찍부터 헌터를 지망했기 때문일까?
서아가 이제 막 헌터가 되었을 때, 도주진은 이미 B랭크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도저히 동년배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격차다.
물론 서아가 두각을 드러낸 지금은 거의 턱밑까지 쫓아가긴 했지만…….
'실력은 별개지.'
랭크는 둘 다 A+.
하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대침공 기준으로 셈했을 때, 서아는 대략 A랭크.
저번 남해 지부 사건과 같은 경험을 앞으로 몇 번은 쌓아야 랭크에 어울리는 실력을 쌓을 수 있겠지.
그에 비해, 도주진은 진짜배기다.
대침공 당시 기준으로도 A+랭크는 거뜬하지 않을까.
'S랭크는 몰라도.'
과연 강원도 지부.
언제 시간 되면 서아도 한 번 다녀오라고 해야겠다.
아니, 이야기가 조금 탈선하긴 했는데.
요컨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도주진이라는 친구가 근래에 보기 드문 실력파 헌터라는 뜻이다.
"아, 제가 박우찬 선배님을 어떻게 알았는지 이야기하려면 먼저 로스앤젤레스에서 있었던 할리우드 공략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겠는데요……."
"그, 그래."
그리고.
바로 그 도주진 헌터.
근래에 보기 드문 실력파이자 동시에 차세대 헌터들 중 필두라 불리고 있는 당사자는 지금 내 앞에서 온갖 아부를 떨고 있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딴에는 나름 진심일지도 모르겠지만.
본인의 변에 따르면, 아무래도 도주진 이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이런저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본 모양이었다.
뭐, 헌터니 뭐니 해도 결국 당장엔 부모 잃은 아이.
먹고 살려면 뭐라도 해야 하는 법이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불법적인 일에도 손을 댔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보호자를 잃은 어린애가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환경도 아니고.
그러던 와중, 도주진은 어떤 헌터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도축업자.
무엇을 숨기랴, 바로 내 이야기였다.
가라사대, 일찍이 몬스터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복수자.
가라사대,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괴물을 사냥하는 사냥꾼.
가라사대, 어떠한 타협 한 번 없이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살아가는 구도자.
'실화냐.'
당장 내가 들어도 낯뜨거운 이야기 뿐이었다.
다만.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소년에게 있어, 그 이름은 어느덧 목표이자 롤 모델이 되었다.
부모를 앗아간 몬스터를 향해 피어오르던 복수심.
반대로,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기는커녕 하루 생계나 걱정해야 하는 현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운다 한들 실현하기나 할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일삼던 소년에게, 도축업자라는 이름은 일종의 지침이 된 셈이다.
몬스터에 대한 분노를 담기 위한 칼집처럼.
그렇게.
소년은 어느덧 청년이 되었다.
동시에 지금은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 수 있을 법한 유명인이기도 했고.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춘 도축업자의 뒤를 캐는 건 불가능했다.
그 사실에 모종의 아쉬움을 느끼던 어느 날.
청년이 된 도주진은 어떤 기사를 확인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서아의 아카데미 전출관련 기사였다.
"크윽, 이런 통한의 실수를."
확실히, 서아가 처음으로 출근했을 당시 내 이름을 들먹이며 제자 운운했었던가?
아무래도 그 때 내용이 언론사에도 흘러들어간 모양이다.
뭐, 서아 정도 되는 유명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
것보다, 헌터 활동에 누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서아의 스승에 대한 정보.
협회로서도 귀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반길 만한 먹잇감이었을 테고.
정작 당사자인 서아는 저리 말하며 이를 갈고 있을 따름이었지만.
아니, 애시당초 대다수 사람들은 눈 앞의 청년처럼 환호하는 대신 그래서 박우찬이 누구냐고 반문했을 거다.
하여튼.
"사부, 속지 마. 이 놈 이거 딱 봐도 개구라야. 말이 돼? 도대체 사부의 어딜 보고 존경한다는 거야?!"
"서아야, 아가리 닥쳐라!! 하늘같은 사부님의 팬 분 앞에서 무슨 망발이냐 그게!!"
"사부?!"
현실을 부정하는 서아의 어깨를 때리며 타박하자, 황급히 몸을 피하는 서아.
그렇게 무력 진압을 끝마친 뒤, 나는 씰룩대기 시작한 입꼬리를 혼신의 힘으로 제어하며 물었다.
"흐음. 그래서? 자네가 나를 존경한다, 이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하하하. 이거 참, 쑥쓰럽구만. 자네처럼 훌륭한 헌터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될 거라곤 생각한 적도 없는데 말이야."
"무슨 소리이십니까? 모르는 사람이야 어쨌든, 알고 있는 헌터들한테 선생님의 이름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호, 호오."
"어쩌면 이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있는걸요."
"허허, 허허허."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 예상 이상으로 빡셌다.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표정 관리가 힘들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서아는 마치 남의 일처럼 조용히 뇌까렸다.
"이 남자, 추하다……. 특히나 자신이 추하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 점이 더, 아악!!"
빠악!!
탁자 밑으로 다시 한 번 서아의 조인트를 깠다.
끄으윽, 다 죽어가는 소리와 함께 조용히 침몰하는 서아.
그 밑으로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래.
이쯤 되면 순순히 인정하도록 하자.
까놓고 기분 겁나 째진다.
씹, 그러면 안 되냐?! 살면서 처음 만나는 내 팬인데?!
"아니, 안 된다고 말하진 않으마. 다만, 조금은 더 주의를 기울여야지."
"닥쳐!! 내 팬이라잖아. 좋은 녀석일 게 분명해!!"
"본인은 이제 네 녀석의 기준을 모르겠구나."
티아마트는 지나가듯 그리 탄식했다.
물론 나로서는 하등 상관 없는 일이었다.
왜냐고?
기분이 좋기때문이다.
아니, 나도 내가 명예욕에 눈이 먼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반대로 명예욕에 완전히 초탈한 성격은 또 못 되는 모양이다.
사람은 결국 사회적 동물이니까.
요컨대 남의 입에서 나오는 칭찬은 상상 이상으로 듣기 좋았다는 거다.
더, 더 칭찬해!!
"쉬, 쉬워……. 이 양반, 겁나 쉬워……!!"
"오히려 여태까지 쉬웠던 게 아닐까? 서아야, 이렇게 좋은 사람을 멋대로 모함하면 안 된단다."
"잠깐, 사부. 지금 만난지 한 시간도 안 된 놈팽이를 귀여운 제자보다 더 우선하는 거야?!"
"그러는 넌 하늘같은 사부의 평판보다 네 선입견을 우선한 거냐?!"
"난 그래도 돼!!"
"이런 호로 자식을 봤나."
그런 식으로 투닥대는 우리들을 도주진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아 쪽을.
"그렇지만, 신서아 헌터."
"또 뭐요."
"박우찬 헌터님 제자였구나? 조금만 귀띔해 주지 그랬어. 내가 얼마나 존경하는 분인지 알면서."
"아니, 모르거든요? 뭔 씹, 내가 이 양반 별명을 어떻게 알아. 알려주지도 않던데."
"어허, 서아야."
"하긴,나라도 알려주긴 싫겠다. 도축업자는 또 뭐래?"
"도축업자가 뭐 어때서? 멋있기만 하잖아."
"작명 센스 실화냐?"
마치 애처럼 떽떽거리는 서아의 몰골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런 이런.
어른스럽기 짝이 없는 도주진 헌터에 비하면 우리 제자는 아직 애로군 애.
"사부 반응 진심 개빡쳐."
"그렇지만, 이렇게 뵐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이고 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평생 뵐 수 없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엉?"
다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런 발언엔 의문 부호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어, 왜?"
"은퇴하셨다고 들었으니까요."
"거야 뭐, 잠깐 은퇴하긴 했지."
"이해합니다.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은퇴란 마음을 갉아먹는 독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엇, 어어."
뭐야 그건.
아니, 일단 표현은 멋있긴 하네. 응. 마음을 갉아먹는 독.
다소 떨떠름한 기분이 드는 걸 억지로 감추며 마저 도주진의 말을 경청했다.
다행스럽게도, 도주진 또한 이런 내 반응을 따로 추궁하진 않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스로가 흘리는 말에 도취되어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마침내 찾아온 평화의 시대.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된 바로 그 날, 우리에게도 언젠가 잊어버린 일상이 다시금 찾아왔죠."
"으, 으음."
"그렇지만 그 속에 우리가 잃어버린 건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뭐, 그렇지?"
"예. 설령 우리들의 일상을 앗아간 이들을 쓰러뜨렸다 한들, 잃어버린 건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지, 응."
"오히려 이 들끓는 마음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런지, 그 해답만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어, 일단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긴 한데…….
아마도 이 친구의 상상 속에 있는 나와 실제 나 사이엔 상당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때문에 저는 이 강원도 지부에 자원했습니다."
"훌륭한 자세네."
"감사합니다. 허나, 억지로 칭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응?"
"저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여기에 있는 건 단순한 현실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엇, 어어."
"네. 결국 저는 전장의 공기를 잊지 못했던 겁니다. 지금까지도 몬스터에 대한 증오를 가라앉히지 못한 겁니다."
"거 참 안타까운 일이군……."
"이 강원도 지부에게도, 말이죠. 제가 여기 온 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니까요."
뭔가 겁나 무거운 내용이었다.
현실적인 이야기라면 확실히 그렇지만.
제 2차 대침공이 종료된 이후, 갑자기 일상을 되찾은 헌터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던 헌터들이 과연 일상에 적응할 수 있을까?!
다음 편, 헌터들의 PTSD!!
이런 느낌이다.
물론 새삼스레 주변을 살펴도 이 쪽을 촬영하고 있는 방송국 카메라 따위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제, 제기랄.'
어느 정도 예상이야 했지만 역시 이런 부류인가.
본인의 복수심에 매몰된 타입.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못해 휴식을 취하는 행동 자체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배신이라 생각하는 경우.
딱히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대화를 나누긴 아무래도 버거운 타입이다.
아니, 전혀 공감 안 가고 나는.
내가 몬스터를 죽이고 싶은 건 태어나길 그냥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니까.
'이제 와서 잃어버린 일상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말이지~'
최근에 취직한 기념으로 본가에 연락 한 번 넣은 적이 있는데, 다행히 부모님도 아직 잘 계시더라.
무 농사 지으실 거라던데.
"그렇지만, 박우찬 헌터님께서는 다르셨죠."
"응?"
"은퇴 이후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들었습니다."
"뭐, 그랬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딱히 이 녀석과 비슷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지만.
아니, 나도 강원도 지부까지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협회 광고가 날 방해하더라고.
그렇다고 강원도 지부랑 드잡이질이나 하면서 강행돌파라도 하기엔 그건 단순히 미친 놈이고.
"필시 어마어마한 수행을 하고 계셨겠죠."
"어?"
"아아, 말씀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속세를 등지고 몬스터만을 사냥하는 목가적인 살육의 나날, 도저히 가벼운 건 아니었을 테니까요."
"어어, 그래. 고맙다."
"하하.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군요. 구 북한 지대의 벌판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사부, 그냥 방에 틀어박혀 있었잖으아악!!"
잠시 눈을 감으며 상상의 나래에 빠진 도주진을 내버려둔 채 다시 한 번 서아를 진압한다.
뭐, 거짓말은 아니고?
일단 최근엔 뭔가 비밀 조직 비슷한 거랑 싸우면서 몬스터도 썰어대고 있고?
사나이 박우찬,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아마도.
"때문에, 이런 식으로 마주치게 될 거라곤 솔직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거야 저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
설마 아카데미 교사나 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할 수 없을 테니까!!
것보다 당사자인 나조차 상상하지 못했고.
만약 내가 아카데미 교사가 될 거라는 사실을 3년 전부터 예상했던 놈이 있다면 그 자식이 바로 신일 거다.
성좌 말고 진짜배기 신.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거지."
"그렇군요."
다행스럽게도, 녀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물어봤다 해도 제대로 된 대답은 돌려줄 수 없으니만큼 나로서도 다행인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녀석은 다시 한 번 침묵에 빠졌다.
깊은 고민에 잠기기라도 한 듯 찌푸린 미간이 영 부담스러웠다.
'또 뭐야, 시발.'
내 팬이라는 건 좋지만, 아무래도 저 이상한 착각은 무어라 말하기 힘들었다.
섣불리 환상을 깨기도 조금 그렇고.
나도 모르게 눈치를 살피게 된다고 해야 할까.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용히 말을 아끼고 있던 도주진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박우찬 헌터님?
"음?"
"다소 무례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저 도주진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뭔데? 말이나 해 봐."
뭐, 듣기만 하는 건 공짜고.
솔직히 말하자면, 강원도 지부가 청탁을 넣는 쪽이 차라리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분도 없잖아 있었긴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할 수도 없으니, 나로서는 순순히 그리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별 건 아닙니다. 앗, 물론 귀찮으시다면 얼마든지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도대체 뭐길래 그리 부산을 떨어?"
"다름이 아니라, 저와 한 번 대련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렇기에.
다음 순간 그리 말하는 도주진의 말엔 아무리 나라 해도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엇, 씹."
"이름 높은 도축업자의 솜씨, 한 번 맛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디 고려해 주십시오!"
그리 말하며 꾸벅 고개를 숙이는 도주진.
그런 그를 보며, 여태까지 떨떠름하게 이 광경을 관조하고 있던 티아마트가 나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속삭였다.
"얘야."
"넌 또 뭐야 시발."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 녀석은 돌아버린 게 아닐까 싶구나."
반박할 말이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