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두메산골
* * *
솔직히 말하자면, 강원도 지부 자체엔 별다른 기대도 하지 않았다.
산악 지형에 대한 훈련이나 되면 다행일까 싶었던 정도?
그렇지만.
"씨발, 개쩐다."
"사부, 묘하게 생생한 촌뜨기 행동 그만해……."
"오라질 년."
저게 하늘같은 사부한테 할 말이냐?
그리 생각하며 시선을 흘기자, 서아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아주 되먹지 못한 년이었다.
물론 내가 생각하기에도 지금 이 태도는 모던 뽀이 답지 못하긴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새하얀 시설 내부.
바닥을 달리는 마력선이 한데 모이는 장소 너머로 이 주변 일대의 지도가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마력,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강원도 지부를 통과하고 있는 용맥Dragon Line 덕택이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해 발생하는 마력의 편향성.
다시 말해, 마력이 고이기 쉬운 장소에 설치한 시설이 대기 중의 마력을 동력원으로 삼아 구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작동한 기계는 동력원으로 사용한 용맥 너머의 마력 반응을 검출해 지도의 형태로 출력한다.
요컨대, 지부 주변의 헌터와 몬스터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뭐, 원리를 따지자면 그렇다는 거고.
내가 열광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디스플레이가 존나 멋있었기 때문이다.
푸르스름한 마력광과 함께 허공에 두둥실 떠오르는 화면들.
대침공 이전, 사람들이 어설프게 상상한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모습들은 어딘가 동심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빌어먹을 몬스터 새끼들만 없었다면 지금쯤 저런 기술들도 상용화되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아쉬운 점도 있었다.
'하여튼 몬스터 새끼들은.'
하등 도움이 안 된다니까.
멸종, 시급.
……현장학습 2일차.
나를 포함한 인솔 교사들의 지도 하에 학생들은 강원도 지부의 시설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강원도 지부.
혹은 태백산맥 지부.
그렇게 불러야 할 이 지부에선 실로 다양한 업무를 소화하고 있었다.
강원도 일대의 헌터 관련 민원 처리.
각종 게이트 전반에 대한 관리.
허나, 개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업무는 역시 태백산맥 곳곳에 자리를 잡은 던전의 공략이다.
던전.
다른 세계에서 열어젖힌 관문Gate의 현관.
밀집된 마력을 통해 발생하는 게이트가 이 세상에 흩뿌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민폐다.
게이트는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그 너머에서 흘러드는 마력을 가지고 몬스터를 불러낸다.
첨병이자 호위.
동시에 밀집된 마력 덩어리라 할 수 있는 괴물들을.
그렇게 소환된 몬스터들이 임계치 이상에 달하면 게이트는 스스로를 확장한다.
말하자면, 디펜스 게임에서 병력 한도 제한을 해금하기 위해 시설을 증축하는 플레이어와 같이.
문제는 게이트 또한 생태계의 일부라는 점.
언제나 딱딱 맞춰서 확장이 진행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여건으로 볼 때 그러기는 힘들다.
헌터들의 공습에 의해 줄어든 몬스터.
혹은 게이트를 운영하기 위해 소비한 마력 등.
이렇게 결산이 맞지 않을 경우, 대다수 게이트 내에선 내분이 일어난다.
몬스터는 어디까지나 마력이라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소환한 첨병.
장부의 결산이 어긋나게 된다면, 정리해고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대다수 몬스터들이 동족상잔을 벌이며 제 몸을 불릴 때.
게이트 밖으로 쫓겨나거나 분쟁을 피해 게이트를 등진 몬스터들이 밖에서 구축한 별도의 생태계.
이를 던전이라 칭한다.
한 마디로, 게이트 안에서 알 까던 놈들이 이젠 밖에서도 까겠다고 지분거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눈 앞의 지도는 바로 그런 던전을 공략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자,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점들이 보이시죠? 네,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이번에 우리 꼬마들을 안내하고 있는 건 도주진 헌터가 아니었다.
듣기로는 이 시설에서 고용한 가이드라던데…….
하긴, 도주진이라는 놈이 어제 서아가 말했던 그대로 몬스터 사냥에 혼을 판 놈이라면 저런 설명엔 영 젬병이겠지.
'나부터 그랬으니까.'
아니, 마력 공학인지 뭔지 존나게 어렵더라고~
나야 뭐 상대가 몬스터라면 이론이 어떻고 원리가 어떻고 할 필요도 없이 몸에 익은 기술인 것도 있겠다만.
"그러면 몬스터들을 남겨두고 있는 이유가 있나요?"
"이런 물건이 있으면 던전도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삐약거리며 연신 질문을 던지는 병아리들.
역시 첨단 기술은 사람의 이목을 끄는 뭔가가 있다.
뭐, 그렇지만.
'힘들겠지.'
녀석들의 의견과 달리, 나는 지금 이 시설의 완성도를 그리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넓은 범위에 걸쳐 마력을 감지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다.
단순한 감지 범위라면 어지간한 감지 능력자를 능가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지도 위로 표시되고 있는 마력의 반향.
다시 말해 마력 보유자들은 어디까지나 점의 형태로 표현되어 있을 뿐이었다.
즉, 세밀함에서 뒤떨어진다는 이야기.
주변 일대에 마력을 가진 생물이 어디에 있는진 알 수 있다.
숫자를 세면 몇이 있는진 알 수 있을 거다.
다만, 마력을 품은 개개인이 헌터인지 몬스터인지 그렇지 않으면 마력을 머금은 영약인진 알 수 없다.
기상청으로 따지자면 이건 어디까지나 위성 사진.
한반도 전역을 포착한 사진 속에서 구름 너머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찾아 묘사해보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난이도일 테니까.
'안 그랬으면 저 년부터 좆됐지.'
슬쩍, 시선을 돌린다.
그러자 저 멀리 옆반 행렬에 끼어 몰래 한숨을 돌리고 있는 티아마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제 봐도 여신이라기엔 어설프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니, 저 모습만 보고 사실 저 여자가 성좌의 분신이며 동시에 몬스터라는 사실을 눈치채는 건 아무래도 힘들겠지만.
어쨌든.
실제로 가이드 또한 나와 비슷한 논지로 대답을 건넸다.
정작 애들은 화려한 손놀림으로 스크린을 조작하는 가이드의 행동에 시선을 빼앗긴 듯했지만.
완전히 박물관에 처음 온 어린애 꼴이었다.
그야 이 정도라면 주변에 박물관처럼 개방해도 되긴 하겠지만.
그러는 사이 시간이 되었다.
점심 시간.
오전부 일정이 이걸로 마무리된 셈이다.
"자, 자. 가이드 아저씨 힘들게 하지 말고, 조용!"
"저 아저씨 아닙니다만."
억울하다는 듯 그렇게 첨언하는 가이드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어디 보자.
이걸로 시설 소개나 업무 설명은 끝났고.
그럼 남은 건 오후 일정.
사실상 실습 뿐이다.
거기까지 판단을 마친 나는 두어 번 짧게 박수를 쳤다.
"지금부터 점심 시간이니까 자유롭게 행동해도 상관 없다."
"언제까지 모여요?!"
"한 시간 줄 테니까 느긋하게 주변 돌아보고 와. 협회 사람들한테 폐만 끼치지 말고."
"네!!"
"대답만큼은 우렁차서 참 좋아. 목소리의 반만 가도 좋을 텐데 말이지. 어제 팀 배분한 거 잊지 말고, 해산!"
그렇게 호령하자 아이들 또한 어제 나누어진 순서대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뭐, 실제론 2인 1조밖에 안 되지만.
팀이라기보단 짝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인원 수가 부족하니 어쩔 수 있나.'
그런 생각을 삼키며, 슬쩍 학생들 쪽을 살핀다.
다행스럽게도, 걱정하고 있던 지희는 하연이와 같은 팀이 되었다.
문제는 역시 윤하 쪽일까.
공교롭게도, 하연이와 지희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한 짝이 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알지만.
바로 어제 뒤풀이 시간을 통해 분배한 이 조는 2일차 오후 실습조도 겸하기 때문이다.
윤하랑 예은이는 이미 같은 팀으로서 연습에 참가한 적이 있었고.
아무리 그래도 무슨 일인진 잘 모르겠지만 어째선지 예감이 안 좋으니 편의를 봐 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괜찮겠지?'
영 아니다 싶으면 나중에 따로 찾아가 보기라도 할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나를 향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전기를 지분거리고 있던 가이드가 입을 열었다.
"어, 박우찬 선생님?"
"응? 뭐야, 댁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압니까? 혹시 내 팬?"
"아뇨. 혹시 유명인이십니까?"
"이런 제기랄."
혹시나 했지.
하지만 역시나였다.
"다름이 아니오라, 따로 찾으시는 분이 계셔서요."
"엥? 누가?"
"도주진 헌터이십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던 내 점심 시간에 때 아닌 불청객이 찾아왔다.
*
솔직히 말하자면, 도주진 헌터가 나를 찾을 이유 따위는 조금도 짐작이 가질 않았다.
그야 뭐, 시설들을 보면서 이런 게 있으면 몬스터 죽이기 편하겠다 뜯어가면 안 되나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그런 걸로 흠을 잡을까.
"아니, 혹시 몰라. 사부, 조심해."
"으음. 다른 건 몰라도, 네 녀석은 자만이 너무 심해. 하여튼, 그만한 힘은 있다만……."
"응? 티아 선생님, 갑자기 말투는 왜 그러세요?"
"……예전에 할아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거든요!"
"아, 그래요? 엄청 대단한 집안이셨나 보네."
"염병, 너한테 할애비가 어디 있어."
"씁! 박우찬 선생님, 지금 탈룰라 거시는 거에요?"
"……하긴.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그래, 가 봅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이 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먼저,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가 선약 있다는 소리에 쫄래쫄래 따라온 우리 서아.
예의 도주진 헌터를 따로 알고 있던 우리 제자님은 이게 어쩌면 협회의 간사한 함정이 아닐까 경계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함정이 있다는 건지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을 지경이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여두기로 했다.
나 참, 예전 길드 사태 이후로 애가 아주 음모론 신봉자 다 됐단 말이야.
어쩌면 살짝 이야기해 준 예의 집단의 범행 목록 때문에 이러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거기에.
'서아는 그렇다 쳐도 이 녀석까지 그럴 줄이야.'
다른 선생들 앞에선 중동 이민자티아 빈트 라흐만 빈 압둘라 무함마드를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방금 전 마력 감응 지도를 보고 도둑이 제 발을 저린 걸까.
거의 일반인 일보 직전 수준으로 힘을 줄인 티아마트 또한 우리 쪽에 합류했다.
아니, 그냥 밥 같이 먹을 사람이 없는 것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무례한 상상의 냄새가……."
킁킁, 그리 말하며 개처럼 콧소리를 내는 자칭 여신.
퍽 추레한 꼴이었다.
무심코 따라할 뻔했던 걸 간신히 그만둔다.
마력을 억제해 힘을 감추는 몬스터들과 달리, 분신은 본체의 의향에 따라 실제로 힘의 총량을 조정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이 년과 마스크 하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고.
다만, 그렇다 쳐도 실제론 숨을 참으며 이야기하는 게 한계.
솔직히 말하자면 무심코 죽여버리기 전에 대략 1초 정도는 고민할지도 모르는 수준에 지나지 않으니까.
'아니, 그런데 이 년은 왜 따라오는 거야?'
정말로 밥 먹을 사람 한 명 없어서?
시발, 그럼 혼밥 하던가~
내가 방심이 심하다고 해야 할까, 일부러 녀석들의 행동을 유도하고 있는 건 사실이긴 하다만.
까놓고 민폐다.
힘들고 귀찮은데 꺼져주면 안 될까?
그리 생각하며 녀석을 살폈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런 내 시선을 보며 두 눈을 끔뻑일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반대로 거리를 좁히며 속삭이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악, 씨발."
"걱정하지 말거라.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본신의 힘을 써서라도 도와주도록 하마."
솔직히 말하자면, 어지간한 일보단 이 녀석이 본체를 끌고 강림하는 게 더 큰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녀석이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 줄 이유가 있던가?
처음엔 단순히 거래였던 기분인데.
뭐, 거래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의사 표명이라면 나 또한 환영이지만…….
문제는 이 녀석이 협회와의 거래에서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는다는 점일까.
"후후, 그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어, 진짜로? 내 생각엔 전혀 모를 것 같은데."
"그러나 믿어주면 고맙겠구나. 본인도 그렇게 염치가 없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이거 봐, 전혀 모른다니까.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몬스터랑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고 만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방금 전부터 뭘 그렇게 속닥거려? 둘, 혹시 사귀나?"
"씨발, 서아야. 뒈질래 진짜?"
"가, 갑자기 왜 그래 사부……."
어쨌든.
서아의 재촉도 있었겠다, 우리들은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자세한 이유는 묻기도 듣기도 싫지만, 만약 여신의 저 말이 사실이라면 별다른 문제는 없겠지.
만에 하나 도주진이 자폭 테러하러 온 이슬람 성전사가 아닌 이상에야.
그렇기에.
다소 어색한 그림이 되기는 했지만, 한 쪽에는 제자를 한 쪽에는 몬스터를 매달고 나는 약속 장소로 나갔다.
말이야 이렇게 하긴 했지만, 단순한 오후 이벤트 상담일지도 모르고.
허나.
결론만 말하자면, 이번 약속은 도주진의 이름을 빌린 헌터 협회 강원도 지부 측의 비공식적인 호출 따위가 아니었다.
반대로, 서아나 티아마트 등이 걱정했던 바와 달리 예의 집단에 의한 기습 공격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였지.
즉.
"박우찬 헌터님, 팬입니다!! 악수 한 번만 해주실 수 있나요?!"
"뭣이라?!"
도주진.
요 최근 차세대 실력파 헌터 하면 첫손에 꼽히는 사냥꾼.
동시에, 내게서 도살자라는 별명을 빼앗아 간 장본인은 아무래도 내 팬이었다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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