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두메산골
* * *
다행스럽게도, 도중에 버스 전복 사고 따위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녀석들은 효율적인 전방위 타격을 중시한다.
이 쪽의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지희를 회유할 겸 언론전을 시도해 아카데미의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등.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버스 폭파 사고 따위는 고작해야 한 번의 비극에 지나지 않는다.
안타깝긴 하겠지만 딱 거기까지.
이제 와서 아카데미를 피해자로 만드는 식의 행동을 취할 리 없다.
어디까지나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경계했을 뿐.
때문에.
우리들을 태운 버스는 별다른 문제 하나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헌터 협회, 강원도 지부.
바야흐로 두메산골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장소였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울창한 삼림.
게이트의 출몰과 몬스터의 정착에 따라 사람의 관리를 받지 못한 환경은, 이미 야생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정도였다.
그 안.
비행형 몬스터의 눈으로도 쉬이 쫓을 수 없을 숲지붕 너머.
협회 지부는 바로 그런 자리에 우뚝 솟아 있었다.
부자연스러운 콜라주 같았다.
사람의 손조차 닿지 못할 비경 속.
홀로 동떨어진 듯, 혹은 그런 비경조차 정복할 생각이라는 듯.
자연에 대적하는 문명의 첨병처럼, 건물은 거기에 서 있었다.
기실, 틀린 이야기도 아닐 거다.
한반도의 등줄기라 불리는 태백 산맥.
이를 다시금 대한민국의 적법한 영토로 되돌리겠다는 헌터 협회의 포부가 바로 저 건물에 담겨 있었으니까.
디자인 자체는 남해 지부와 엇비슷했지만, 묘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겠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부산스레 떠들던 학생들마저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우리들은 건물 안으로 발을 들였다.
다행히 안쪽은 비교적 평범한 편이었다.
덕분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굳어있던 학생들 또한 슬슬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고.
솔직히 말해, 인솔교사로서는 조용한 쪽이 더 편하긴 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강원도 지부 소속 헌터, 도주진이라고 합니다."
"우엑."
물론 이제 와서 조용히 하라는 둥 시시콜콜하게 떠들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다음 순간 학생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했다.
말했다시피, 현재 강원도 지부는 사실상 한반도 내 최전선 취급이다.
때문에 강원도로 파견되는 헌터는 십중팔구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 시대에 있어 뛰어난 헌터라는 건 다시 말해어지간한 연예인 이상의 팬덤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눈 앞의 사내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주진.
요 최근 차세대 실력파 헌터 하면 첫손에 꼽히는 사냥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깨를 나란히 하던 서아가 한층 기세가 꺾인 뒤로는 사실상 독보적인 1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실력도 마찬가지인가.'
단순한 마력량만 셈해도 그랬다.
길드 내에서 일어난 사건 탓에 거의 슬럼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던 서아.
그에 비해, 강원도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도주진.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실력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거기에 그럭저럭 괜찮은 마스크까지.
이래저래 의혹이 있었던 서아랑 비교하면…….
"아, 이건 힘들어요~"
"사부, 지금 누구 놀려?!"
씩씩대며 성질을 부리는 서아.
이런 이런.
그렇게 열을 내도 그릇의 차이가 부각될 뿐이거늘.
슬쩍 고개를 가로젓자, 서아는 다시 한 번 역정을 냈다.
아니, 그런데.
"무슨 일 있냐?"
"갑자기 또 왜?"
"아니, 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서."
정말로 화를 낸 건 아니지만, 얘가 또 밖에서 남이랑 비교하지 말라고 바락바락 대들 애는 아닌데.
단순히 비교하지 말라는 쪽이라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투덜거리는 건 솔직히 예상 밖이다.
처음부터 상대를 내 밑이라 깔보고 있었거나, 다소 꺼림칙한 관계인 게 아니라면.
고슴도치 부모라 불러도 할 말은없지만, 전자보단 차라리 후자이길 바라는 마음도 있고.
"조금?"
과연 그랬던 건지, 서아는 조금 뾰로통한 기색으로 팔짱을 꼈다.
그렇게 말해도 사실 대단한 사정은 아니었다.
"마인드가 안 맞아."
"허어."
"쟤, 별명이 도살자거든."
"씨발?"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나름 정식으로 헌터 협회에 가입한 몸.
은근슬쩍 별명도 바꿀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던 이름인데……!!
"그래서?"
"이름대로 싸우는 편이야, 쟤."
"아하."
과연 그렇게 들으니 조금은 짐작이 갔다.
도살자.
그런 별명이 붙을 만한 녀석이라면 전법도 쉽게 예상할 수 있으니.
무엇보다.
'드문 타입도 아니고.'
복수.
혹은 분노.
그런 이유로 이 업계에 발을 들인 녀석들 대부분은 퍽 난잡하기 그지없는 싸움법을 고수하곤 했다.
몬스터에 대한 살심이 깊은 건지, 그렇지 않으면 가족에 대한 복수와 실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건지.
좋든 싫든 자기파멸적인 녀석들이다.
실제로 서아 또한 저렇게 될 뻔했고.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은 건 서아도 똑같다.
그렇기에 더더욱 질색하는 거겠지.
어쩌면 자신도 저렇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일종의 동족 혐오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어, 아니면 라이벌 의식?
뭐, 어쨌든.
'아깝네.'
그런 감상이 가장 먼저 나왔다.
실력은 괜찮다. 이름을 날릴 재능도 있겠지.
다만.
서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딱 거기까지다.
우리들의 본업은 어디까지나 사냥꾼Hunter.
단순히 분노에 눈이 멀어 몬스터를 향해 이를 드러내는 건 전사나 복수귀가 할 일.
가슴은 뜨겁게.
허나, 머리는 차갑게.
사냥꾼이란 본디 그렇게 싸워야만 한다.
안타까운 사연이야 있을 수 있겠지.
슬픔 어린 비극은 익숙해지려 해도 익숙해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며, 익숙해져서도 아니 될 감정이니까.
애초에 대한민국 국민의 3할이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었다 일컬어지는 정신 나간 시대다.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렇지만.
막말로 집 앞에 몬스터 나왔길래 일단 헌터부터 부르고 본 민간인들이 알아야 할 사정은 아니었다.
까놓고 그딴 걸 이제 막 죽게 생긴 일반인들이 알 게 뭐란 말인가.
헌터에게필요한 건 확실하게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을 만한 수단과 실적.
분루를 삼키는 건 나중에 사냥이 끝난 뒤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일단 감정을 제어하는 것.
넘실대는 감정에 고삐를 채우지 못하고 흩뿌리는 녀석들이 가장 먼저 죽어나가는 게 바로 이 업계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버텼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
그런 건 단순한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
여태까진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뿐.
만약 그 운이 동나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겠지.
그게 솔직한 내 감상이었다.
뭐, 아무리 그래도 저런 부분까지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는 법이고.
'조금 아깝긴 하네.'
저 멀리서 학생들을 향해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하고 있는 싹싹한 인상의 청년 헌터가 눈에 들어왔다.
슬쩍.
내 시선을 눈치챈 듯, 나와 서아를 향해 목례하는 사내.
서아는 아무래도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 홱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쓴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
그렇게 도주진 헌터의 설명이 끝난 후.
황윤하는 자신에게 배당된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직 짐을 풀기도 전이었으나 아무래도 진이 빠져 어쩔 수 없었다.
다행인 건, 이 강원도 지부에 그녀들을 위한 숙소가 준비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군과 제휴할 때를 대비해 마련해 둔 거겠지만.
어쨌던 거의 호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잠자리가 있다는 건 그녀로서도 반길 만한 사안이었다.
십중팔구 일정 때문이겠지.
이번 현장학습은2박 3일.
이래서야 현장학습이 아니라 거의 수학여행이다.
애초에 그 둘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물론 윤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현직 여고생인 그녀에게 있어선 현장학습이나 수학여행이나 조금 고급스럽게 설명한 소풍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쓰으읍."
그녀는 지금 당장 본인의 심산이 마음에 들질 않았다.
적어도 그녀가 생각하기로 소풍이란 신나고 즐거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질구질한 고민이나 하고 있다니.
방금 전, 도주진 헌터가 소개한 현장학습 일정표를 떠올린다.
말이야 2박 3일이라 하긴 했지만, 실질적인 활동은 2일차에 집중되어 있다.
강원도 지부까지 오는 데에 하루를 꼬박 소비했기 때문이다.
아니, 가벼운 식사나 뒤풀이 정도는 준비되어 있겠지만.
그러므로, 윤하의 마음이 가는 건 외려 둘째 날의 스케줄 쪽이었다.
일정 자체는 알찬 편이다.
강원도 전체를 담당하고 있는 지부 내 시설 소개.
강원도 지부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
상기 업무에서 파생된 던전의 개념 설명.
이에 따른 태백산맥 탈환 임무에서 발생하는 난항.
제대로 된 흔적 하나 찾기 힘든 강원도에서 던전을 색출하는 방법.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
태백산맥 지형에서 나타나는 몬스터의 종류와 그 대응법.
고작해야 하루아침에 소화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은 아니지만.
뭐, 도움이야 되겠지.
헌터에게는.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아, 좆되네 진짜."
턱, 이마에 손등을 얹는다.
차갑게 식은 손이 기분 좋게 머리의 열을 식혀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윤하 또한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게 얼마나 염치없는 짓인지.
즉.
"이걸 관둬, 말아."
황윤하는 아카데미를 그만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던 박우찬이 듣는다면 기가 찰 일이겠지.
적어도 황윤하는 그리 생각했다.
동생들 또한 마찬가지일 거다.
아니, 애초에 자신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만한 방법이 달리 또 어디 있겠는가.
거기에, 아카데미를 관둔다 치면?
대안은 있나?
마찬가지로, 황윤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인 이유 또한 발목을 잡았다.
앞으로의 탄탄대로.
헌터라는 직업에서 나오는 고소득 인생.
마지막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다는 메리트까지.
이런 이점을 포기할 만한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황윤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대다수 사람들 또한 그리 말할 테지.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윤하는 생각한다.
생각해버리고 만다.
아카데미.
아니, 지금이라도 헌터라는 직업을 포기할 수는 없을까 하고.
이유는 있었다.
남해 지부.
이번 여름방학 때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비단 황윤하에게만 있었던 일도 아니고.
단지.
요호들에 의한 남해 지부 장악 사건.
거기에 부속된 수많은 피해는, 일단 돈을 벌고자 헌터가 되기로 한 황윤하조차 경각심을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평소부터 헌터라는 직업 자체에 열의를 가지고 있던 이예은은, 그 일로 한층 더 마음을 다잡았다.
동양의 몽마라 할 수 있는 요호들이 벌인 사건에, 몽마의 피를 품은 류지희는 번민을 거듭했다.
자하연 쪽은 잘 모르겠지만.
평소부터 맹한 얼굴이니까.
역시 몬스터는 나쁘구나 힘내서 죽여야지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지 않을까.
뭐, 어쨌든.
황윤하가 품고 있는 근본적인 고민은 그녀들과 달랐다.
물론 저런 고민도 없진 않았겠지.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겠다.
몽마는 정말로 무서운 몬스터로구나.
그러나, 예의 남해 지부 사건을 겪은 황윤하가 가장 먼저 생각한 건 단 하나.
'좆같네.'
부담스럽다는 점이었다.
몬스터를 사냥할 때까진 좋았다.
자신의 힘이 과연 어디까지 통용될까 시험해 보는 기분도 있었고.
비록 두 교생 선생님들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마치 게임 속 사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단지.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니다.
박우찬이 몇 번이나 강조했던 바와 같이, 그토록 가볍게 생각한 이자는 어김없이 그녀를 찾아왔다.
전적으로 따지자면 퍼펙트 클리어.
단 한 명도 별다른 부상 하나 없이 요호들의 거점을 공략하는 데에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시원시원한 에필로그가 아니었다.
요호들이 찢어죽였다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지도 않았고, 남해 지부의 피해가 사라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남해 지부 사람들은 요호들에게 지부가 넘어간 책임을 물어야 할 거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반년 전.
그녀들이 남해에 내려가기 반년 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는 요호들.
당시 요호들이 입힌 피해는 그녀들로선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게 결론지을 수 있었다면 차라리 편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조리해.'
황윤하는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 우리들 꽤 잘 하지 않았나?
누구 하나 큰 피해를 보는 일도 없이 요호들의 굴까지 슥삭 처리했는데.
딱히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요호들을 죽였다고 해서 요호들이 입힌 피해가 사라지지도 않았다.
사악한 악의 무리를 쓰러뜨렸다 한들, 기분 좋은 엔딩 롤이 내려오진 않는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을, 황윤하는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도 잔혹한 방법으로 실감했다.
만약 이 세상이 게임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리셋 버튼이 아니라 에필로그가 없기 때문일 거다.
담임인 박우찬은 그렇게 말했었던가.
'아니, 씨발~'
이딴 게임이 있었으면 그야 욕 한 번 오질나게 쳐먹었겠지.
노 히트 노 데스 클리어를 해도 성적과 관계 없이 마왕군이 왕성을 날려버리는 결말이라니.
십중팔구 게임사에 항의를 보냈을 거다.
문제는, 인생에 게임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일까.
그렇기에 황윤하는 무력감을 느꼈다.
부조리한 세상의 구조에 어처구니가 없었고, 마지막으론 탈력감이 찾아왔다.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만한 실적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서 벌어지던 축제 아닌 장례식.
식장 안에서 맴돌이치던 그 슬픔을, 자신은 감당할 수 있을까.
고작해야 돈 좀 벌겠답시고 헌터가 되겠다 결의한 자신은, 앞으로 몇 번이나 이런 사태를 마주해야 할까.
그런 사실을 불현듯 깨닫자 황윤하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이런 것도 예상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박우찬은 어땠을까.
이런 경험도 해봤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날 우리들이 품었던 번민 또한 담임은 예상했던 걸까.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랬을까 싶은 기분이 반.
동시에, 그 양반이라면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은 감상이 반이었다.
어느 쪽이든.
황윤하는 박우찬이 몇 번이나 이야기했던 감정에 좀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즉, 무력감.
이 업계에 있어, 사냥꾼이 은퇴하는 이유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감정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