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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12화 (112/371)

〈 112화 〉 현장학습

* * *

"하연아, 너는 괜찮니?"

"네?"

"아니, 거 있잖냐. 요즘 반 분위기."

"아하."

하숙집 반지하.

아카데미에서 퇴근한 이후에야, 나는 하연이에게 줄곧 신경 쓰였던 점을 물어볼 수 있었다.

즉, 예의 남해 지부 사건에 대해서.

……그 이후로 줄곧 위축된 동아리의 분위기는 결국 학급까지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예은이는 물론이요, 평소 쉴새없이 떠들던 지희까지 구설수에 휘말린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남해까지 내려간 건 그 둘 뿐만이 아니다.

그러나.

자칭 여신이며, 애초에 몬스터인 티아마트는 비교적 아무래도 좋다.

썩어도 헌터인 서아 또한 이제 와서 마음이 약해지지는 않겠지.

속이야 어쨌든, 겉으로는.

그렇지만.

학생들은 다르다.

여하간, 현장의 상황부터 내 상상 이상이었으니까.

것보다 까놓고 말해서 나도 지부 하나가 통째로 넘어갔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으니.

'그런 일이 어디 흔한 것도 아니고…….'

때문에, 나로서도 하연이의 안색을 살필 까닭이 있었다.

하연이 또한 남해 지부를 방문한 당사자이기도 하니까.

그야 신경이 쓰일 수밖에.

"요즘 좀 어색하긴 해요."

하연이 또한 부정하진 않았다.

뭐, 애초에 나보다 잘 알면 잘 알았지 모르진 않을 거다.

학급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결국 여자애들이 대부분이고.

보편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 반은 더더욱 그렇다.

남학생 중에선 정필연. 여학생 중에선 이예은.

반의 중심이 될 만한 녀석들을 꼽자면 딱 이 정도인데…….

정작 정필연은 반의 분위기 따위에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니까.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러다가 정필연도 나랑 비슷하게 솔로 헌터 루트를 타지 않을까 싶다.

불쌍한 새끼.

"아, 역시? 여자애들 쪽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는 모양이네."

"모르기 힘들죠."

물론 예은이도 그닥 다르지 않다.

솔직히 말해, 그런 쪽엔 소질이 없는 편이니.

애초에 본인부터 우중충한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는 판국이고.

다만, 예은이한텐 정필연에게 없는 무기가 있다.

즉, 특유의 기품이다.

다시 말해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뜻이다.

내가 기대한 부분도 바로 그 점이고.

문제는 평소와 달리 당장 옆에 있는 지희조차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이겠지만!

이래서야 원, 분위기가 쾌청할래야 쾌청할 수 없겠지.

"뭐, 남해 지부 일 때문도 있을 거에요."

"아, 역시?"

"네. 솔직히 말하자면 지나치게 자극 강한 이야기였구요."

"반성하고 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으리라 약속하겠다."

"대국민 사과 하세요?"

키득키득, 짧게 웃음을 터트리는 하연이.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미안한 건 진짜였다.

그래서, 정작 당사자 중 한 명인 하연이는 어째서 그런 기색이 없는가 하는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그 애들은 여러모로 생각하던 게 있었을 테니까요."

"흠?"

"으응,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민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럼 하연이는 평소에 고민이나 생각이 없니?

그렇게 물으려다 참았다.

다행히 하연이도 재빠르게 부연을 더했다.

그러면서도 나를 슬쩍 흘겨보기까지.

결국 가볍게 한번 어깨를 으쓱이고 난 뒤에야, 하연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잖아요? 한 명은 영웅님의 여동생이고……."

"한 명은 혼혈이지."

"네. 그에 비해, 저는 1년 전까지만 해도 헌터인 줄도 모르던 고아인걸요."

"너무 스스로를 비하하진 말렴."

"그렇게 말해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살짝 하연이에게 주의를 주며, 동시에 생각에 빠진다.

요컨대 예은이나 지희는 그 사건에서 무언가를 느낄 만한 여건이 있었다는 뜻이다.

허면.

"윤하는?"

"으음, 글쎄요."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동아리 애들 중 상대적으로 가벼운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게 바로 윤하다.

아니, 생계 걱정을 얄팍하다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허나, 언제든지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이라는 점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윤하는 헌터니까.

막말로, 오빠처럼 되고 싶다거나 혼혈로 태어났다는 점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손이 닿는 목표고.

평범하게 아카데미를 졸업해 헌터가 되기만 해도 가정 부양은 가능할 거다.

덕분에 한층 여유가 생긴 뒤로는 차라리 전업 해체사나 해볼까 농담을 던지던 게 바로 윤하다.

거야 뭐, 고민이 없지는 않겠지만…….

'전혀 모르겠고~'

아무리 그래도 남해 지부에서 있었던 일로 고민할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예전부터 그랬지만, 여고생 심리 따위는 전혀 모르겠다.

것보다 요 최근 애들 고민에 시달리는 일이 이상할 정도로 잦지 않나?

처음 아카데미에 들어왔을 땐 몬스터만 줄창 죽이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3년 전에 비하면 상당히 풍족한 환경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수확 체감의 법칙이라고 해야 할까?

고작해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몬스터 한 마리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판국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몬스터 한 마리 잡는데 학생들의 사연과 얽혀야 한다는 것 자체가 귀찮게 느껴지는 판국이니.

인생 참 폈다고 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익숙해지는 건 무섭다고 해야 할런지.

"하연이 너는 괜찮고?"

"네?"

"아니, 너도 남해 같이 갔었으니까. 괜찮다고 듣기야 했지만, 혹시 윤하처럼 뭔가 고민이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어, 아뇨? 역시 몬스터는 죽이는 게 약이구나 생각하긴 했는데……."

"그, 그러니?"

하긴.

방학이 끝나기 직전 내게 찾아와 자신도 무언가 배울 만한 게 있을까 묻던 하연이다.

그 때는 단순히 예은이에 대한 경쟁 심리일까 싶어 얼씨구나 하고 꽁꽁 싸매고 있던 김민철의 전법을 가르쳐주긴 했다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고작 경쟁 심리로 자신을 납치한 납치범의 기술을 배우고 싶을 것 같지는 않다.

어쩐지 얼굴을 팍 구기더라니.

'그렇다 쳐도, 역시 몬스터는 죽이는 게 약이라니.'

도저히 여고생이 할 만한 대사가 아니었다.

도대체 누구야? 하연이한테 저런 걸 가르친 건.

보호자 자격으로 항의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하연이의 담임은 나였다.

그래서 동아리 선생을 탓할 생각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였다.

결국 내가 무어라 힐난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하연이네 보육원 원장 정도였다.

젠장, 고아원 원장이라는 새끼가 애들한테 이런 걸 가르쳐?

현 대한민국의 보육원, 그 실상에 분루를 삼키며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

다행스럽게도, 현장학습 당일이 될 때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무지성 몬스터 투하. 아카데미 생도 납치. 몬스터 목장 건설. 남해에 똥 뿌리고 아카데미엔 찌라시 뿌리기.

온갖 방법으로 공격을 감행하던 예의 집단도 지금은 잠깐 그 손속을 늦췄다.

과연 그게 현장학습 버스 테러로 학생들을 날려버릴 생각인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어휴, 또 시작했네 또 시작했어."

"뭐 인마."

"아니, 얼마 전부터 계속 뭐 마려운 개처럼 그러잖아 사부가~"

"야, 최소한 고양이라고 해라."

"어, 그게 중요해?……하여튼, 버스 밑창에 폭탄이 붙어있진 않을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셔."

"하여튼 과장은."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걱정까지 하진 않았다.

혹시 몰라서 확인해 봤을 뿐이지.

여하튼, 그렇게 찾아온 현장학습 당일.

나와 서아는 인솔교사 자격으로 버스 앞 좌석에 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교생인 서아까지 따라올 거라곤생각도 못 했는데.

어쩐지 남해 내려갈 때처럼 이것저것 지분거리더라니.

주말 내내 서아랑 하연이에게 시달렸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했다.

뭐, 교생만 내버리고 갈 수도 없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한데…….'

그리 생각하며 이번 현장학습 일정표를 살폈다.

목표지는 신도심 밖 동해안 부근.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쪽에 있는 헌터 협회의 지부 쪽이었다.

"또 협회고 지랄."

"사부, 쫌!"

"아니, 내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냐?"

까놓고 정말 단순히 지나가는 길일 뿐이었다면 나도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거다.

다만.

요 최근 사건으로 이미지를 조진 협회가 로비를 통해 일군 결과라는 걸 알고 보면 쓴소리 하나 하지 않긴 힘들다.

뭐, 이해는 할 수 있다.

예의 길드 사건으로 인해 대대적으로 이미지를 망친 협회.

이를 만회하기 위해 최근 상승세인 아카데미와 제휴를 노리고 있는 거겠지.

나야 어차피 반응을 확인할 방법도 마땅치 않아서 그 뒤로는 찾아볼 마음도 들지 않았을 뿐.

협회의 신뢰도 자체와 직결되는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최승준의 설명에 의하면, 실제로 그 여파 또한 지금까지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협회는 업계 각지에서 얻어터지고 있는 도중이라던가.

어쩌면 협회 자체가 물갈이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 쳐도 그 뒤에 들어서는 건 협회와 이름만 다른 무언가겠지만.

최소한 그런 세탁이 필요할 만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그런 말을 들으니 나도 조금 미안하기는 개뿔, 좆도 미안하지 않았다.

씨팔, 꼬우면 나쁜 짓을 하지 말던가~

누가 들으면 부모님 목에 칼 들이밀고 나쁜 짓 협력하라고 협박한 줄 알겠네.

공교롭게도, 협회 상층부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쪽이다.

그야 억울한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그런 일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니까 돈 많이 받는 거 아니겠는가.

꼬우면 감찰 잘 했어야지.

"일정 꼬라지를 봐라, 꼬라지를. 말이 안 나오게 생겼나."

"그건 그렇긴 하지만."

실제로 서아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선 부정하지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군대 정훈교육도 이러진 않을 거다.

헌터들의 근무 실상.

헌터 업무의 고된 점.

몬스터와 상대한다는 위험.

대한민국의 한 국면을 담당하고 있는 헌터 지부 확인.

정말로 필요한 내용들만 담아둔 건 사실이지만, 어째 프로파간다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거 볼 때마다 솔직히 좀 그렇단 말이지."

"뭐가?"

"아니, 헌터 활동하려면 협회가 필요하다고 광고하는 것 같잖아."

별로 없어도 상관 없던데.

그렇게 말하려다 나를 노려보는 서아의 시선에 슬쩍 눈을 깔았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어쨌든, 이 쪽이 제일 고생하고 있다는 건 틀린 말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게다가, 아무리 그래도 방금 전 서아가 한 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헌터 협회 강원도 지부.

현재 구 남한 지역의 최전선이라 일컬어지는 오지 중의 오지다.

가장 큰 특징은 역시 그 업무 강도.

산지가 많고 산세가 험한 강원도.

이 때문에, 강원도에 게이트가 발생하면 숨어든 몬스터들을 찾아내는 건 거의 하늘에 별 따기다.

실제로, 대침공 종식 이후 대한민국 내에서 몬스터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 건 강원도 쪽이라는 통계도 있으니.

당연하지만 타 지역처럼 게이트 내에서 유출된 몬스터 따위가 아니라 여태까지 찾지 못했던 몬스터가 발각당하는 쪽이다.

말 그대로, 현재 강원도 산지는 하나하나가 비경Dungeon이나 다름없는 상황.

때문에, 강원도 지부로 파견되는 헌터들 또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여하간 이 시대에 진짜배기 던전 공략 경험이 필요한 장소니까.

그렇지 않은 신병도 머잖아 노병이 될 수밖에 없는 장소.

그게 바로 강원도 지부다.

서아 또한 예의 사태만 없었다면 강원도 쪽으로 파견되었을 테고.

'그랬으면 실력이야 오르긴 했겠네.'

A랭크 헌터조차 실력 향상을 바랄 수 있는 곳.

그만한 비경과 상시 마주하고 있는 곳.

말하자면, 강원도 지부란 구 남한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헌터들이 집결하는 장소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최승준이 이번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녀석이 로비 따위에 넘어갔을 리도 없고.

꿍꿍이와는 별개로, 이번 현장학습 자체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한 거겠지.

확실히.

조금 아니꼽긴 하지만, 그 유용성만큼은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도움은 안 될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우리 쪽엔 도움이 되겠지 그야.

헌터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진짜배기 최전선은 어떤 건지.

학생들을 데리고 던전 탐방을 가진 않겠지만, 분위기 정도는 느낄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협회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어디까지나 언론에 보여주기 위한 프로파간다.

다시 말해, 요 최근 꾸준한 이미지 상승을 꾀하고 있는 아카데미에 힘입어 협회의 악평을 반등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나로서는 협회의 판단이 다소 경솔하다는 판단을 거둘 수 없었다.

왜냐고?

'산간 지방. 몬스터 다수. 산맥 깊은 곳에 던전 다수 존재. 업계 최전선.'

이만한 조건이 갖추어진 상황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리가 있나.

아니, 그 집단의 성격을 생각하면 분명히 무슨 일을 내려고 들 거다.

환경도 딱이고.

……몬스터에 대한 제어.

최승준과 나는 녀석들의 목적을 그리 추측했다.

그렇다면.

강원도 지부는 녀석들이 날뛰기에 최적의 환경인 셈이다.

물론 최승준은 그런 식으로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쓰다간 뭐 하나 제대로 할 수도 없다고 잘라 말하긴 했지만…….

'이건 망했구만.'

나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버스가 도로를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가운데, 나는 이번 협회의 계획에 미리 명복을 빌어두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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