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현장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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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에 대해서.
사실대로 말하자면, 당장 아카데미에 입학한 학생들 사이엔 상당한 수준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이제 막 문을 연 탓이겠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식적인 헌터 교육 기관 따위는 일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학생들 또한 각자 개별적인 훈련법을 고수했을 테고.
당연히 그런 훈련법도 몸에 맞는 녀석들부터 두각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반대로, 그러지 못했던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다른 학생들보다 뒤쳐진 것처럼 보일 따름이다.
그렇지만, 아카데미는 어디까지나 교육 기관이다.
우수한 학생들을 받아들여 그 능력을 꽃피울 수 있게 하는 일도 중요하겠지.
허나, 두 번에 걸친 대침공으로 인해아직까지 제대로 된 헌터 육성법을 정립하지 못한 지금.
아카데미 측에서 중시하는 건 장기적으로 몇 명이나 되는 헌터를 배출할 수 있는가…….
나아가서는, 그런 헌터들을 길러낼 만한 교육법을 확립하는 게 곧 평가 기준이 된다.
때문에.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은 어디까지나 다수의 학생들을 중점에 두고 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몇 명이 아니라.
여하간, 아무리 그래도 앞으로 입학할 학생들 전원이 정필연 급은 되길 바라도 곤란할 뿐이고.
전제로 두는 건 E랭크.
이제 막 능력을 각성한 햇병아리들이다.
그런 도토리들을 기준으로 학년마다 한 단계.
1학년 과정을 끝냈을 땐 D랭크.
2학년 과정을 끝냈을 땐 C랭크.
3학년 과정을 끝냈을 땐 B랭크.
이런 식의 수준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중견층의 양성이라고 해야 할까.
뭐, 당연한 이야기.
아무리 대단한 헌터라 한들, 동시에 대한민국 전역을 커버할 순 없다.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이준구라 해도 마찬가지.
옥석을 가리기 위해 99개의 돌을 버린다?
무능한 돌은 사석으로 삼겠다?
그런 게 가능한 건 서브컬처 속 학원물 뿐이다.
현실은 엄격한 법.
한반도 전역의 게이트를 관리하는 데에 필요한 건 한 명의 뛰어난 헌터가 아니라 수많은 중견급 헌터다.
그러므로.
아카데미의 커리큘럼 또한 저랭크 헌터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를 포함한 담임 교사들에게 주어진 건 어디까지나 수업의 내용에 대한 재량권.
언제 어느 때 무엇을 가르치면 좋을지 가이드라인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제 1차 대침공으로부터 어언 20년 하고도 3년.
헌터를 키우려면 적어도 어떤 순서대로 지식을 주입하는 게 좋을진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상황이니까.
학사 일정 또한 마찬가지.
1학기 때는 헌터 개인의 능력과 경험을 보충한다.
2학기 때는 실질적으로 헌터 생활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학습한다.
매 학년마다 이를 반복해 양질의 헌터를 완성시킨다.
그게 바로 아카데미의 청사진이다.
즉.
"다들 알고 있지? 다음 주부터 현장 학습이다, 얘들아!"
아카데미에도 현장 학습 시기가 찾아왔다는 뜻이다.
개학으로부터 2주차.
통상적인 고등학교 일정에 비하면 꽤나 빠른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학생들 입장에서 보자면 현장 학습 직후에 중간고사를 보는 셈인데…….
"야후우우우!!"
"우휘이이이!!"
하하, 원숭이같은 놈들.
조삼모사라는 사자성어가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그런 건 모르겠다는 듯 일단 환성을 내지르고 있으니, 역시 이 녀석들은 아직 애라는 게 실감이 들었다.
……뭐, 말했다시피 아카데미의 현장 학습은 결국 헌터로서의 직업 체험에 가까운 바.
당면한 중간고사의 목적이 헌터로서의 기량 향상인 만큼 차라리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이번 중간고사 범위에 현장 체험 감상문이 들어갈 거라는 뜻이다.
그 속내를 모르는 채 좋아하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은 참으로 무어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해맑았다.
아니, 설령 눈치챘다 한들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아카데미의 학급 구분은 어디까지나 성적순.
나로서는 차라리 전법에 따라 구분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거야 뭐 탁상행정의 결과라 치고.
그런 만큼, 이 반에 모인 녀석들은 대개 우등생이었다.
'적어도 성적만큼은!!'
나를 엿먹이려는 건지 아니면 뭔지.
우수한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문제 있는 꼬마들을 내게 떠맡긴 최승준 탓이다.
그리고 이런 나이에 실력이 있다는 건 즉 건방지다는 뜻과 동의어라 할 수 있다.
애초에 1학기만 봐도 그렇고.
나 참, 내가 이 녀석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벌써부터 2학기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뭐, 어쨌든.
덕분에 다들 실력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물론 전원이 정필연이나 이예은 수준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그 밑줄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 녀석들에게 1학년 커리큘럼은 꽤 여유 있는 내용이 아닐까.
당장 D랭크 수준도 버거울 녀석들은 드물고.
여유가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
물론, 더더욱 실력을 갈고닦고자 하는 녀석들 또한 있었다.
당장 열광하고 있는 면면들만 봐도 성적으로 치면 중간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
정작 이 반에서 첫손에 꼽히는 두 명.
다시 말해, 정필연과 이예은 쪽은 오히려 조용했다.
최근 검술에 맛을 들인 정필연.
그리고 새로운 전법에 눈을 뜬 이예은.
이 둘은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당장 아카데미를 졸업하겠다 해도부족함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랭크를 매기자면 B랭크.
본래도 C랭크 수준은 됐지만, 요 근래의 성장세는 정말로 무서울 정도였다.
게다가, 지희는 더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능력은 대충 D랭크 가량.
하지만.
대침공 시절부터 이런저런 일에 말려든 지희의 실력은 실질적으로 B랭크에 준했다.
혼혈로서의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한다면 틀림없이 저 둘을 상대로도 좋은 승부가 되겠지.
거기에, 최근 손에 넣은 여왕급 몽마의 마력까지 제어할 수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A랭크까지 손에 닿을 거다.
최대한 많은 B랭크 헌터들을 확보하겠다는 아카데미의 방침이 오히려 족쇄가 되는 녀석들이다.
'씁.'
물론,녀석들이 조용한 건 전적으로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앞의 둘이야 어쨌든, 적어도 지희는.
개학 초에 있었던 혼혈 공표 사건.
예의 사건의 여파가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최승준의 활약 덕택에 지희의 출생이 이러쿵저러쿵 떠들던 기사들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다만.
이후의 분위기는, 역시 별개다.
……다른 학생들이 나서서 지희를 왕따시키고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나도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겠지.
단지, 거 뭐냐.
'조금 그렇지~'
아니, 정말로.
말하자면, 같은 반 친구의 가정사를 신문 기사에서 접한 셈이다.
대다수 녀석들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곤란해하고 있을 뿐이겠지.
심지어 혼혈이라니.
그야 당연히 뭐라고 말하기 힘들겠지.
하물며, 혼인회 사건을 듣고 무작정 혼혈들을 욕했던 녀석들도 있으니 더더욱.
게다가, 아무렇지 않은 양 접근하기도 힘들다.
예의 사건 당시 지희가 보인 반응 때문이다.
역정을 내며 아카데미를 뛰쳐나갔던 지희.
그런 탓에, 당장 학급 내의 분위기도 영 어수선했다.
이런 일엔 언제나 앞장서 환호성을 터트리던 지희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서서 지적할 정도는 아니지만, 자연스레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태도다.
물론 지희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정 반대겠지만.
그냥 그런 식으로 화를 냈었던 만큼 어떻게 해야 다시 평범하게 대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
여하간, 류지희의 속내는 상상 이상으로 평범하다.
혼혈. 몽마의 딸. 거기에, 혼인회의 간부.
간판만 보면 특이하기 그지없지만, 정작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일개 여고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라, 적당한 학교 생활을 위해 예은이에게 접촉했다는 사실로 몇 년을끙끙 앓던 녀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뜻 나설 수 있을 리가 없지.
"끄으응……."
실제로도 그런 모양이었다.
방금 전부터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게 영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변변찮은 해법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소, 소심해…….'
덕분에 지희와 다른 아이들의 관계는 그 날 이후로도 별반 차도가 없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다른 애들 입장에서 보자면 갑자기 개학하자마자 남의 가정사에 휘말린 셈이니까.
문제는 지금 이 분위기다.
여하간,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자연스레 지희에 대한 악담이 나돌 수밖에 없을 테고.
자기가 먼저 화를 내더니 지금까지 줄곧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는 식으로.
아무래도 사연이 사연이다 보니 지금은 자제하자는 분위기였지만, 과연 어디까지 갈런지.
그런 생각을 삼키며,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이런 분위기에도 개의치 않는 사람.
단순히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그런 분위기를 알고도 성큼성큼 발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즉.
'윤하야, 헬프!'
양아치라고도 말한다.
자연스레 내 시선이 향한 건 아카데미 개교 이래 처음으로 수업을 땡땡이쳤다는 영예의 수훈자인 우리 황윤하 씨였다.
그렇지만.
"……."
정작 그 황윤하 씨는 말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흥을 탄다면 모를까 먼저 다른 사람들한테 다가가 떠벌거리는 타입은 또 아니지만.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윤하의 태도는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평소라면 지희가 조용한 만큼 족히 두 배는 난리를 피웠을 녀석인데.
비단 오늘만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개학 이후로 줄곧 저랬으니까.
수업 시간만 해도 마찬가지.
처음부터 끝까지 멍한 태도로 칠판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정말로 정신을 놓고 있는 건 아니라는 듯, 해야 할 일이나 과제는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다만.
딱 거기까지.
최소한의 수업 등을 제외하면, 윤하는 마치 무언가를 생각하듯 대다수 시간을 저렇게 허비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도움을 청하긴커녕 본인부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해야 할 판국이었다.
'쓰발.'
역시 그거 때문인가?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남해 지부 출장.
방학 도중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아무래도 이 도토리들에겐 너무 일렀던 모양이다.
예은이만 해도 그렇고, 심지어 지희까지 무언가 고민했던 듯하니.
하긴, 나조차 단순 체험이라 생각했던 판국에 갑자기 협회 지부 하나가 통째로 넘어가 당황했던 판국이고.
'때 아닌 미스테리 스릴 서스펜스였지.'
의뢰 수행조차 처음이었을 꼬마들에겐 너무 가혹한 광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러모로 고민해야 할 일. 언젠가 접해야 할 일.
그건 틀림없지만, 역시 순서라는 게 있으니까.
여러모로 고민해야 할 일.
언젠가 접해야 할 일.
그런 건 좋지만, 역시 순서라는 게 있으니까.
씁,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혀를 차고 만다.
여름방학을 지나, 다시금 개학.
그렇게 맞이한 2학기는, 아직까지도 여름방학의 내음이 진하게 묻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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