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몽마는 꿈을 꾸지 않는다
* * *
"그래서?"
"엉?"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묻고 있는 거다."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아무 일도 없었지."
그 후, 교장실.
나와 최승준은 바로 오늘 아카데미 옥상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주제는 물론 이번 사태.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희와 그 모친이 관련된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였다.
"허,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군."
"아니, 영약을 소화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있잖냐."
그 말에 최승준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음, 거짓말은 아닌데 말이지.
실제로도 그랬으니까.
꼴깍.
기묘한 소리와 함께, 기억 속 지희는 억지로 구슬을 삼켰다.
목울대 너머로 도드라질 만큼 큼지막한 물건이었던 탓이다.
때문에, 거의 반강제로 구슬을 끌어내린 지희는 이윽고 한껏 얼굴을 찌푸린 채 감상평을 토했다.
"맛없어."
"야, 맛있다고 했으면 깜짝 놀랐지 나도."
지희는 내 핀잔에도 아랑곳하는 기색 하나 없이 스스로의 배를 문질렀다.
삼키긴 삼켰지만, 아무래도 속이 더부룩한 모양이다.
뭐, 몽마의 힘이 어쩌니 말이야 했지만 결국 그 본질은 마력 결정.
말하자면 비슷한 크기의 돌을 하나 통째로 삼킨 셈이다.
염소도 아니고, 위석 삼아 넘어갈 수도 없겠지.
"어, 우왓?!"
다만.
그런 만큼 효과도 즉각적이었다.
지희의 주변으로 넘실대는 마력.
본래 지희가 다루던 마력과 달리, 불길한 마력이 섞여드는 게 보였다.
그렇게.
지희의 몸 밖으로 새어나가던 마력까지 한 순간 지희의 몸 안으로 결집해──.
"엥."
푸슈슛.
김 빠진 콜라처럼, 곧이어 잠잠해졌다.
"아니, 뭐야 이거?!"
그야 당황할 법도 하지.
물론 변화가 없지는 않았다.
지희의 마력량 자체는 확실히 늘어났으니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
딱히 극적인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늘어난 마력량도 얼마 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다수는 아직도 지희의 몸 안에 따로 남아있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오, 깜짝이야."
"잠깐, 전 아직도 놀라고 있는 중이거든요? 아니, 뭔데 이거?"
"지희야, 말이 짧다."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왜 정색하고 그래, 선생님 섭섭하게……."
"아무튼!!"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영약이란 본디 그런 법이다.
애시당초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마력.
무작정 우겨넣는다고 해서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리 있나.
무협 속 운기조식과 같이, 영약 속의 마력을 흡수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런 방법을 모른다는 거고."
"응? 왜요?"
"한 번도 써 본 적 없으니까."
당연하지만, 대다수 영약은 몬스터의 소재로 이루어져 있다.
가깝게는 웅담이나 멀게는 용의 심장 등.
즉.
'오히려 전투력이 떨어지겠지, 내 경우에는.'
영약을 먹어 늘어난 마력량보다, 몬스터의 신체를 삼켰단 사실에서 오는 자괴감이 더 클 거다.
물론 몬스터 소재가 아닌 영약도 더러 있지만, 그만한 물건을 구할 수 있게 되었을 땐 이미 영약의 도움이 필요 없는 수준이었고.
"뭐, 열심히 해 봐라."
때문에, 영약 흡수 촉진법 따위는 몰랐던 나로서는 그리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옥상에서 있었던 때 아닌 만남도 끝이 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퍽 우스꽝스러운 결말이었다.
"정말로 거기서 끝인 건 아닐 텐데."
"그건 그렇지."
말이야 쉽지만, 결국 여왕의 마력이 지희 안에 잔류하고 있다는 건 변함없다.
지희 또한 곧바로 몽마가 되지는 않았으나, 반대로 모든 마력을 소화할 때까지 방심할 수도 없는 상황.
당장 내 손으로 제자의 목을 치는 비극은 피할 수 있었으나, 우리들은 장차 몽마의 여왕이 될지도 모르는 폭탄을 떠맡은 셈이다.
"반대로 사용할 수는 없나? 몽마로 만들 수 있다면 몽마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모든 좌타수가 뛰어난 외야수라고는 말할 수 없는 법이지."
"끄응."
까놓고 말해 불가능하다.
몽마로의 승화는 결국 종을 늘리기 위한 기능.
짐승 새끼들에게 종의 확장을 스스로 거세하는 능력 따위가 탑재되어 있을 리 없다.
지희를 사람으로 되돌리는 게 가능한 건 기독교의 성인들이 발휘하는 기적 정도겠지.
그조차 반인반마인 지희에게는 몸의 절반을 불사르는 고행일 테고.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물어보는 거다."
"흠?"
"여왕의 힘. 너는 그렇게 말했지만……."
"뭐, 몽마의 기능은 아니지."
최승준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진 나 또한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혹시나 싶어 조사해봤으니까.
허나, 몽마가 구슬의 형태로 힘을 주고받는다는 전설 따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요컨대, 여왕이 마지막으로 건넨 구슬은 몽마로서 타고난 기능 따위가 아니다.
지희가 배운 격투기와 같이, 그 모친이 따로 배운 기술일 테지.
문제는.
"다른 몬스터한테 배운 기술이겠지만."
"도움이 안 되는군."
쯧, 최승준이 혀를 찼다.
예의 구슬을 이루고 있는 게 만약 몽마가 타고나는 기능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쩌면 지희 또한 별다른 리스크 없이 여왕의 마력만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던 거겠지.
다만.
"우리한텐 도움이 된다고."
"뭐?"
"조금 살펴봤지만, 그건 동양계 몬스터들에게서 유래한 기능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예를 들면 여의주.
승천한 용이 품고 있는 지보. 수양을 통해 쌓아올린 내력의 결정체.
몽마의 여왕이 내게 넘긴 구슬은 굳이 따지자면 그런 계통의 물건이었다.
단지.
여의주는 본디 영험한 힘을 담는 것.
아무리 그래도 여의주를 기반으로 한 물건에 몽마의 요력을 담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다.
예의 몽마가 여의주의 근간마저 뒤틀어버린 게 아니라면, 비슷하지만 다른 기술을 동원했다 판단하는 쪽이 현실적이겠지.
"예를 들면, 여우 구슬이라던가."
최승준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
여우 구슬이라고 하면 딱 맞아 떨어진다.
동양의 몽마라 불리는 구미호의 주물.
요호가 훔친 정기를 담는 구슬이다.
그 안에는 구미호가 훔친 타인의 정, 혹은 수양을 통해 쌓은 신기가 담겨있다고 하던가.
실제로 요호들 또한 이를 통해 힘을 행사한다는 전설도 있고.
게다가, 각종 전설에 따르면 여우구슬은 삼키는 걸로 그 효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여우구슬 덕택에 지상의 이치를 체득했다는 토정 이지함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리고 요 최근 구미호가 모습을 드러낸 사태라고 하면…….
"역시 남해 지부 사건도 그 집단의 사주라고 생각하나?"
"뭐, 아닐 가능성도 없잖아 있겠지."
어쩌다 보니 우연히 만난 구미호에게서 배운 기술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어, 높게 잡아도 대략 1할 미만이긴 하겠지만.
"실질적으로 거의 확실하다, 라. 고무적인 성과군."
"그렇지?"
그 말대로였다.
저번 남해 사건.
거기에 이번 몽마 사건.
만약 이 두 사건에 예의 집단의 술수가 개입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사실상 처음이다.'
저들이 저지른 일 중 처음으로 하연이와 관련 없는 사건들이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그들이 벌인 사태는 대부분 하연이의 신병과 관련되어 있었다.
때문에, 알기는 쉬운 대신 그들의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 짐작할 수는 없었다.
하연이를 노리는 건 알겠지만, 그래서 하연이를 데리고 무얼 하려는 속셈인가?
예의 집단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거기에 대한 해답은 손에 넣기 힘들었으니까.
그러나.
만일 이번 사건들이 정녕 저들의 입회 하에 벌어진 일이라 한다면.
'답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이 두 사건은 명확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즉.
"몬스터다."
구미호의 머리통을 넘기길 고작해야 하루.
최승준은 그렇게 단언했다.
"예의 구미호는 귀수산을 제어하고 있었고, 몽마 또한 그렇다고 했지."
"어. 존나 큰 몽골리안 샌드웜? 대충 그런 느낌."
"거기에, 추가로 몽마를 늘리려 한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거의 확정이겠지."
놈들은 몬스터를 제어할 수단을 찾고 있다.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저렇게 가정하면 확실히 맞아떨어지는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요호들이 거점으로 삼았던 귀수산.
처음엔 단순한 요새라고 생각했지만, 귀수산에 관련된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건 사실 따로 있다.
만파식적.
귀수산의 등 뒤에서 돋아난 나무를 소재로 만든 악기.
적을 쫓아내고 나라에 안녕을 가져오리라 일컬어지는 신기다.
'어떻게 잘 쓰면 몬스터를 제어할 수도 있겠지.'
적을 쫓아내는 대신 그 움직임을 제어한다던가.
그렇게 생각하면 놈들이 이제 와서 지희에게 손을 뻗었던 이유 또한 일목요연하다.
몽마의 매료 능력을 탐냈던 거겠지.
당장 몬스터를 제어 하에 두고 있던 여왕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니, 애시당초 몽마의 여왕이 그만한 몬스터를 어디서 찾았겠나.
누군가 협력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허면.
'왜?'
가장 먼저 든 의문이 있었다.
어째서?
막말로, 예의 집단은 이미 몬스터와 협력하고 있는 처지 아니었던가?
이제 와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몬스터들은?'
몬스터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라 함은, 몬스터들에게 있어선 목줄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스터들은 예의 집단의 목적에 적극 동참하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서?
몬스터를 제어한다.
그 목적 너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몬스터의 완전 제어만 해도 어지간한 테러리스트들의 최종 목표나 다름없는 판국인데…….
쉬이 상상할 순 없지만, 틀리진 않았으리라.
다름이 아니라, 하연이에게도 저런 능력이 있었으니까.
저주 능력의 일환.
혹은, 다른 무언가.
일찍이 예의 집단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던 내가 미끼라고 명명했던 능력이다.
물론 지금은 그런 능력 이전에 모종의 이유가 있다는 게 거의 확실해진 시점이지만, 반대로 하연이 또한 못 할 건 또 없을 것이다.
저주라는 건 그런 능력이니까.
그럼 녀석들이 하연이를 납치하려는 것도 그런 계획의 일환일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말솜씨도 꽤 번드르르 해졌군."
"엉?"
"그냥 유품이라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넘긴 건 아닐 텐데."
그제서야 나는 그게 지희와 관련된 이야기를 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뭐, 그건 아니지."
그렇게 묻는다면, 나 또한 이리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지희가 새로운 여왕이 되는 건 저들로서도 나름 반길 만한 이야기다.
예의 집단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희는 다시 회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장기짝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 집단은 몽마의 여왕이라는 팻감마저 숙청했다.
어째서?
차라리 여왕을 살리려 노력한다면 모를까, 굳이 여왕에 대한 숙청까지 감행하며 내게 경각심을 심어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보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예를 들면, 여왕이 남긴 구슬.
예의 집단이 경계한 건 바로 그 물건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예의 집단이 여왕을 숙청한 건 그녀가 내게 구슬을 넘긴 직후였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그 구슬 안에는 여왕의 마력 외에 다른 것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들 또한 그렇게 의심했던 건 확실하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제약을 걸 리 없다.
허면.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역시 예의 여왕의 기억이다.
무리를 운영하기 위한 우두머리의 지식.
그 안에 예의 집단에 대한 정보가 내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덕분에 우리는 앞으로몽마의 여왕이 나타날 위험을 감수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만."
"아니, 시발아~ 애초에 너도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거든?"
"인터뷰 말인가? 그야, 아무리 그래도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틀린 말도 아니었다.
확실히, 지희가 혼혈이란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그렇다고 해서 혼혈이 아니라고 잡아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에 하나 나중에 지희가 혼혈이라는 증거가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아카데미로서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방을 피할 수 없겠지.
그리 단언하며 최승준은 어깨를 좁혔다.
뭐, 확실히.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예의 집단의 속셈 또한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지희를 빼내서 이 쪽의 결합을 약화시키고, 지희로부터 우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일거양득을 노렸던 거겠지.
"그래서?"
"엉?"
"의뭉스레 넘어가려 하는 건 알겠다만, 우리가 그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 필요가 있나?"
"그럼?"
"대충 기억만 캐내고 쳐내는 것도 방법이겠지."
즉, 지희를 숙청한다.
혹은, 구미호의 머리처럼 이용한다.
담담하게 그런 말을 토하는 최승준을 보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만약 진심이었다면 나 또한 화를 내고 말았겠지.
그러나 놈이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할 리는 없다.
놈에게 있어 이 아카데미는 자신의 소지품을 늘어놓는 진열장.
리스크고 뭐고, 애초에 그런 걸 고려할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놈의 이야기.
내겐 아니다.
필시 최승준 또한 궁금한 거겠지.
어째서 도축업자는 새로운 몽마의 여왕이 탄생할 가능성을 방치하고 있는 건가?
그토록 예의 집단에 대한 정보가 궁한 것인가?
말하자면, 녀석은 내게 이런 의문을 답할 기회를 제공한 셈이었다.
"지희는 몽마가 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나로서는 그리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정말로.
"본인 앞에서 했던 말이랑은 정 반대로군."
"아니,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는데 말이지~"
여왕의 마력을 삼켰음에도 불구하고, 지희는 몽마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입회했던 나로서는 어째서 지희가 몽마로 변하지 않았던 건지 그 이유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걔는 그냥 천생 여고생이야."
"뭐?"
"그것도 몽마를 싫어하는 여고생."
……지희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신이 몽마인지 아닌지.
자신의 절반을 이루고 있는 몽마의 피에 완전히 잡아먹히는 건 아닌지.
어쩌면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자신이 완전히 몽마에 가깝게 전락해버리는 건 아닌지.
허나, 구슬을 삼키는 지희의 모습을 보고 있던 나로서는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그건 그냥 혼혈이라그런 것 뿐이라고.
문자 그대로, 자신의 절반을 이루고 있는 몽마의 피 덕에 한층 더 몽마의 사고에 익숙할 뿐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지희라는 개인은 어디까지나 일개 여고생에 지나지 않는다.
힘껏 허세를 부리며 나와 남상원 앞에 떨리는 다리를 감추고 섰던 그 날처럼.
말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개로 변한 인간과 마찬가지다.
개가 된 인간이 본능적으로 개의 심리를 이해하듯, 몽마를 이해할 순 있겠지.
그렇지만.
개가 되어 더 이상 사람을 상대로 마음이 동하지 않고, 동족인 개를 보고 마음이 흔들린다 해도.
대다수 사람들은 개와 몸을 섞진 않을 거다.
지희 또한 마찬가지였다.
본인에게 평범한 감성이 남아있는 이상, 류지희는 몽마가 되지 못한다.
말하자면, 옥상에서 있었던 일은 이를 위한 증명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죽여달라던데."
"뭐?"
"자기가 몽마가 되면 나보고 죽여달라더라."
"……그래서?"
"알겠다고 했더니, 오히려 안심하더라고~"
요컨대, 그런 이야기다.
몽마는 꿈을 꾸지 않는다.
헛된 몽상도 하지 않는다.
몽마는 꿈을 꾸는 게 아니라 꿈을 주는 쪽이니까.
그러므로.
그 계집애에게 필요했던 건, 아무튼 자신은 몽마가 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 쪽이 아니다.
만약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몽마가 되어버렸을 때, 자신의 목을 날려버릴 누군가.
몽마가 되어버린 류지희를 긍정하는 게 아닌, 철저하게 부정할 만한 누군가였던 셈이다.
현실적인 안전 장치라고 해야 할까.
내 대답을 들은 류지희가 두려워하는 대신 오히려 안심했던 이유 또한 마찬가지겠지.
덕분에 류지희는 몽마의 마력을 향해 도전할 수 있었다.
"제가 정말로 몽마가 되면, 그냥 죽여주세요."
스스로 그렇게 말했듯이.
……언제가 자신이 몽마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역설적으로, 류지희가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건 바로 그런 의심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몽마가 되어도 그 삶을 끝내버릴 누군가를 손에 넣은 순간.
류지희는 몽마의 마력을 삼키고도 몽마가 되지 않음으로서 스스로를 증명했다.
그런 내 말을 들은 최승준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아니, 뭐라고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네. 너, 그렇게 시적인 성격이었던가?"
"씨발놈아."
"솔직히 기분 나빠."
그러더니, 이제는 아주 대놓고 저렇게 말하는 것이다.
개새끼.
결국 나 또한 당장엔 그리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뭐, 최승준 녀석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설명하자면 대충 그런 이야기.
그토록 자신의 핏줄을 미워한 탓에, 여태까지 남학생 손 한 번 안 잡아본 아가씨다.
아무리 그래도 몽마처럼 남자와 몸을 섞으며 살아갈 수 있을 리 없다는 뜻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