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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09화 (109/371)

〈 109화 〉 몽마는 꿈을 꾸지 않는다

* * *

먼저 내 명예를 위해 말하자면, 처음부터 엄한 생각으로 찾아온 건 아니었다.

단지.

지희의 모친이 죽었다.

물론 나로서는 환영, 이 아니고 안타까운 일이긴 했지만 어쨌든 부모는 부모.

지희에게도 이번 사건의 전말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유품도 있고.

살려줄 생각이야 처음부터 없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유품까지빼돌리진 않는다.

애시당초 내가 가지고 있어봤자 달리 쓸 데도 없고.

고작해야 A+랭크 소재, 탐낼 정도도 아니다.

처음부터 지희한텐 쓸모 있지 않을까 싶어서 받아온 거니 더더욱.

솔직히 말해, 버려도 상관 없다.

물건을 넘긴 시점에서 소유권은 지희에게 있으니까.

뭐,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만.

반대로 몬스터의 기대를 걷어차는 일이라 하면 통쾌한 기분도 들고.

것보다 난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도 모르겠다.

서큐버스가 마력 구슬 따위로 힘을 전달한다는 이야기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으니.

'오히려 이건 서큐버스가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일까.

손에 들린 구슬을 내려다보던 지희가 문득 흘린 말에, 나는 눈에서 불똥이 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럼, 이걸 사용하면 몽마가 될 수도 있는 건가요?"

"뭣이?!"

"까, 깜짝이야."

"아, 미안."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금 전 지희가 내뱉은 발언이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기독교 계통의 악마, '카인의 아이들'이 동족을 늘리는 방법은 대충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평범하게 애를 까는 거고, 두 번째로는 타인을 악마로 승화 내지 감염시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흡혈귀 등이 그렇다.

예의 몽마의 여왕이 지희를 위해 안배해 둔 방법 또한 마찬가지겠지.

마력을 하사해 몽마로 만든다.

반은 몽마, 게다가 본인의 직계니 어렵지도 않을 거다.

다만.

"갑자기 왜 그러니? 기대되게……."

"네? 기대요?"

"아니, 네 어머니의 기대 때문이냐 이거지."

꼭 몽마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몽마의 마력과 접한 모든 이들이 몽마가 되는 건 아니니까.

마력을 하사하는 악마의 의지, 혹은 당사자의 의지 등 여러 조건이 결부되어야 할 필요가 있겠지.

일찍이 티아마트가 따로 설명한 축복과 거의 비슷한 조건이다.

둘 다 중동 출신이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저건 단순한 마력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무협 등에서 자주 나오는 영약과 비슷한 경우라고 해야 할까.

물론 반인반마인 지희가 사용한다면…….

"그냥, 그러셨잖아요?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전 그대로 몽마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그러긴 했지."

"사실 그 때 한 가지 말하지 않은 점이 있었답니다."

"뭔데 그게?"

"저, 몽마를 싫어해요."

그리 말하며, 류지희는 생긋 하고 웃었다.

처음 옥상에 올라와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꽃이 피듯 화사한 미소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가 몽마 혼혈이라는 사실이 싫어요."

"흐음."

이유는, 물론 짐작할 수 있었다.

것보다, 남상원에게 들은 이야기.

거기에 이번 남해 사건을 겪고도 몽마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단 한 명 뿐일 거다.

그리고 그 한 명은 진짜로 몬스터가 되어서 내 손에 죽었고.

"그래서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내가 몽마가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처음이라. 그러면 지금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몽마가 싫다.

그 생각에 변함은 없다.

그렇지만.

"신물이 났구나."

"어라, 정확하시네요. 어떻게 아셨어요?"

처음부터 그런 기분이 들도록 충동질한 걸테니까.

그렇게 답하는 대신, 나는 침묵을 고수했다.

……최승준의 대처는 신속했고, 그 이상으로 효과적이었다.

지희의 출신에 대해 입방아를 찧던 수많은 찌라시 기사들은 하루만에 문을 내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당사자가 바라지 않던 형태로, 당사자가 원하지 않았던 진상이 드러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기사를 내린다 해서 지희가 받은 상처까지 사라지진 않는 법이다.

별다른 고민 없이 그녀를 향해 악의 어린 기사를 휘갈긴 언론.

자신의 고민을 한낯 소일거리로 허비한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혈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진 않았으니 차라리 다행이라 말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

어느 쪽이든, 염증이 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예의 몽마의 여왕이 노린 것 또한 마찬가지겠지.

말했다시피, 사람을 몽마로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허나, 그런 수단 대부분은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몽마의 여왕은 예의 집단의 힘을 빌어 이런 상황을 준비했다.

지희가 몽마 쪽으로 돌아설 수 있도록.

동시에, 지희가 완전히 인간 사회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꽤 공들인 술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공들인 술책은 지금까지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거, 무기로 만들 수도 있겠죠?"

"……뭐, 그렇지. 특성을 살리려면 환각 파훼용 부적으로 만드는 편이 현실적이겠지만."

"네. 그럼, 다른 방법으로 쓰면 어떻게 될까요?"

"다른 방법이라."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예를 들면, 영약처럼 삼켜본다던가?"

불가능하진 않겠지.

말했다시피, 결국 저건 단순한 마력 덩어리.

일종의 마력 결정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삼킨다면 그 마력의 일부를 흡수할 수도 있겠지.

허면.

몽마의 딸인 지희가 저 물건을 영약처럼 사용한다면?

자신의 힘을 불리기 위해 저걸 그대로 삼킨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상성이 나쁠 리는 없겠지.

저 힘을 제공한 몽마 본인의 직계니까.

물론 단박에 여왕급 힘을 손에 넣을 순 없을 거다.

내공만으로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겠는가.

다만, 지희 본인의 실력만 해도 대략 B­랭크.

혼혈 특유의 본능이나 습관 등을 극복할 수 있다면 B랭크에 준할 거다.

그런 상황에서 저만한 마력을 손에 넣고, 제어할 수 있게 된다면?

못해도 여왕급은 될 수 있겠지.

문제는 상성이 괜찮다 못해 지나칠 정도로 좋다는 점이다.

마력을 하사하는 여왕의 의지.

직계 몽마의 마력.

거기에, 갈팡질팡한 지희 본인의 마음까지.

한 마디로 말해서, 지희 본인이 자력으로 몽마가 되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조건만 따지자면 불가능할 것도 없고.

어림잡아 견적을 내자면 대충 50%?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대충 그 정도다.

"에이, 너무 노려보신다~"

"네가 농담이라고 말하면 선생님도 조금 안심할 수 있겠는데."

"뭐, 농담은 아니지만요!"

"그럼 나도 그럴 순 없겠구나."

"음, 몽마니 뭐니 말은 했지만 결국 몬스터가 되겠다는 소리니까?"

"그리고 지희 너니까."

"어머, 설레라."

아무리 그래도 제자가 몬스터 지망이라는데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하물며, 몽마가 될 확률이 얼추 반반이라 치자.

일전 말했다시피, 나로서는 몽마로 거듭난 지희가 사람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요컨대.

몽마가 된 지희는 십중팔구 사람들을 해치고 다니게 될 거다.

때문에.

"네가 몽마가 된다면, 선생님은 널 토벌할 거다."

가급적 담담하게 그리 고했다.

쓰지 말라던가, 달리 사용할 방법이 있지 않겠냐던가.

그런 건 어디까지나 지희가 결정할 사안이다.

까놓고 말해서, 완전 남일이니까.

따로 끼어들 이유도 없고, 참견할 자격도 없다.

물론 나는 지희의 담임이다.

개인적으론 제자라 생각하고 있다.

다만.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 혼혈로서 보낸 17년은, 고작해야 생활 기록부 몇 번 봤다고 알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잖은가.

조언이 필요하다면 해줄 수 있다. 함께 고민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머리를 맞대줄 수 있다. 필요하다면 매도 들 거다.

그렇지만.

고작해야 담임이라는 명찰 하나로 타인의 인생에 왈가왈부할 순 없는 법이다.

애시당초 나부터가 지희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이 별로 없기도 하고.

뭐, 이것도 결국 지희가 몽마로 거듭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

몬스터가 되어 그 손에 다른 사람들의 피를 묻히려 든다면, 거야 뭐 토벌할 수밖에 없겠지.

거기까지 가면 담임이기 이전에 헌터로서 해야 할 일이다.

"어휴, 하여튼 우리 선생님도 참. 무서워 진짜~"

농담처럼 그리 말하며 어깨를 좁히는 지희.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농담이었다곤 말하지 않는다.

죽인다. 토벌한다.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지희는 몽마의 딸.

감정을 먹고 사는 몽마의 아이가, 자신을 죽이려 드는 의사를 느끼지 못할 리 없다.

그렇기에 나로서는 더더욱 지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희의 행동 자체는 대충 알겠다.

뭐, 힘이 필요한 모양이지.

힘을 원하는가?

그래, 힘을 원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다소 고전적인 문답이다.

나도 여름철 뙤약볕 아래 있다 보면 자주 생각하곤 할 정도로.

게다가, 이런 시대고.

여왕급 몽마의 힘.

일단 있어서 손해볼 건 또 없다.

여기까진 알겠다.

'결국 난 왜 부른 거지?'

문제가 되는 건 바로 거기다.

이번 사건이 마무리되길 고작 하루.

지희의 출신과 관련된 모든 기사들이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지희는 다시 한 번 땡땡이를 쳤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 상황에서 모습을 감추면 내가 찾아올 거란 사실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겠지.

아니, 센티멘탈한 기분이 들었을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예의 구슬을 받은 지희가 취한 태도 쪽이다.

저토록 위태위태한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면, 이제 와서 나를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애들도 아니고 지희다.

현역 시절 나에 대한 소문까지 알고 있는 판국에, 내가 이렇게 나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을 리도 없다.

상황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지희의 속셈에 올라탄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막말로, 내가 여왕의 힘을 건네주지 않았다 해도 마찬가지.

바로 어제, 너라면 곧장 몽마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야기한 내가 이제 와서 고개를 끄덕일 리도 없지 않은가.

"선생님이 몬스터를 싫어하신다는 사실은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러므로.

문득 지희가 전혀 관계 없는 말처럼 그리 운을 떼었을 때.

나 또한 어느 정도 그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저랑 비교하기도 민망하겠죠."

"뭐, 나는 한 종족만 붙들고 있진 않으니까. 스페셜리스트거든."

"뭐래, 진짜."

가벼운 웃음.

그리고 그런 코웃음 너머로, 마치 덧붙이듯 지희는 속삭였다.

"선생님."

"엉."

"제가 정말로 몽마가 되면, 그냥 죽여주세요."

……뭐, 그런 이야기다.

류지희.

요 아가씨는 여전히 몽마를 싫어하고 있다.

아니, 혐오하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까.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뭐라고 해야 할지.

솔직히 말하자면, 가만히 두었어도 여왕이 건넨 제안은 결실을 맺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흔들릴 여지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여왕 또한 수를 두었다.

육친의 정에 호소하기.

몽마의 여왕으로서 감정 흔들기.

지희가 사회에 정을 붙일 수 없도록 방해하기.

고작해야 열 일곱 살.

열 일곱 된 계집애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추악한 악의다.

하물며 그 상대가 부모라면 더더욱.

나나 최승준이 최선을 다해 불을 끄긴 했지만, 여전히 흔들리고 있을 만큼.

단지.

여왕이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면, 바로 지희 본인이 가진 몽마에 대한 혐오감이다.

빡대가리답다고 해야 할까?

아니, 여왕의 태도를 보면 애초부터 지희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가능성도 있다.

지희와 만날 자리만 세팅해주면 된다고 장담하던 근거 모를 자신감.

어쩌면 지희를 흔들었던 이유 또한 단순히 몬스터가 된다는 거부감을 지우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몬스터가 된다는 결론 외의 선택지를 제거함으로써.

결국 짐승 새끼라는 건지.

하긴, 지희를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니지만 몽마가 애를 유기하는 건 차라리 당연한 짓이고.

무엇보다, 남해 지부에서 겪은 일도 있다.

몽마라는 종족이 악의를 품으면 어떻게 되는가?

평범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면 눈치챌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으니.

뭐, 당사자인 여왕이 퇴장하기도 했고.

덕분에 지희 또한 몽마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진 않게 되었다.

다만.

흔들림이 완전히 가셨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자신은 결국 몽마의 딸이다.

사람들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

몽마의 딸이라는 이유로 펜을 들이댄 이들도 있다.

온갖 정이 떨어질 만한 상황이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몽마는 싫다.

여전히.

그렇기에 지희는 내게 그리 물었던 것이다.

만약 자신이 몽마가 되어도 사람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라고.

'아차~'

이런 실수.

입발린 선생처럼 말하는 게 좋았을까?

사람의 마음을 잊진 않겠지만, 위험하니 그만두렴.

만약 그랬으면 한참 나중에 지희의 힘으론 벅찬 적과 마주친 상황에서 각성 아이템처럼 사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뭐, 무리겠지만.

사나이 박우찬, 거짓말은 못 한다!!

그런 건 아니지만, 애초에 내 거짓말 따위를 눈치채지 못할 거라 생각하긴 힘들고.

상대는 몽마의 딸.

감정의 흐름 따위는 한 눈에 꿰뚫어볼 테지.

뭐, 그렇게 되서.

결론.

지희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자신은 정말로 여전히 사람으로 남고 싶은 걸까?

이렇게 정떨어지는 상황에 직면하고 나서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마음 한구석에선 차라리 몽마가 되고 싶다 생각하고 있진 않을까?

말하자면, 지금 이야기는 오로지 이를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았다.

'흠.'

솔직히 말해, 거기까지 몰려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대단한 연기력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칭찬할 수는 없겠지만.

단지.

몽마가 싫다 못해 혐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는 몽마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불합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혈이라는 사실을 무조건 긍정해주던 환경.

마지막으로, 몽마라는 종의 실체까지.

이 모든 걸 눈앞에 두고, 과연 지희는 무슨 생각을 했었던 걸까.

'전혀 모르겠네.'

아니, 나 혼혈 아니고.

다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만큼은 그래야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향해, 지희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도저히 지금 이 상황엔 어울리지 않는 표정.

그러나 여기에 대해 무어라 말하기도 전, 지희는 손 안에 든 구슬을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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