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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08화 (108/371)

〈 108화 〉 몽마는 꿈을 꾸지 않는다

* * *

류지희에게 있어, 몽마의 혈통이란 곧 바란 적 없는 낙인에 지나지 않았다.

혼혈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단 하나.

통칭 여왕벌이라 불리는 몽마.

다시 말해, 그녀의 생물학적인 모친 때문이었다.

일찍이 수많은 생존자 캠프를 와해시켰다 전해지는 서큐버스.

혼인회에 속한 이상, 그녀에 관련된 이야기는 좋든 싫든 귀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그 딸인 지희 앞에선 말을 삼가려 했다.

허나, 사람의 입에 자물쇠를 채울 순 없는 법.

하물며 상대는 몽마의 딸이다.

흘러나오는 감정. 무심코 입 밖에 낸 쓴소리.

거기에 가벼운 추론을 더하면 그녀의 어머니가 어떤 존재였는지 예상하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오히려 고역인 건 그 뒤의 상황이다.

지희가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혼인회 사람들은 역으로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과해야 하는 건 내 쪽 아냐?'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어른들은 완고하기 짝이 없었다.

태어난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는 판단.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려질 수밖에 없는 외모.

때문에, 혼인회에 속한 사람들은 지희를 보며 거리를 두는 스스로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그렇기에 지희 또한 이를 점차 내색하지 않게 되었다.

……정보를 모으되, 실제로 그 모습을 본 적 있는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진 않는다.

담임인 박우찬조차 감탄한 지희의 연기 실력은 바로 여기서 나온 셈이었다.

놀라운 건, 고작해야 열 살도 되지 않는 꼬맹이의 연기에 모두 속아넘어갔다는 점.

대침공 시절, 살아남기 위해 익힌 각종 기예들을 고려해도 썩 이례적인 결과였다.

바야흐로 악마적인 재능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몽마적인 재능이라 칭해야 할지.

어느 쪽이든, 류지희는 그 사실에 오히려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을 보며 지나가듯 정말로 닮았다 중얼거리는 사람들보다, 자신에게도 그런 능력이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이 더 낯설었다.

일부러 거리를 두려 한 적도 있었을 정도로.

어줍잖은 뱅글이 안경을 쓰거나, 남자를 멀리하거나…….

중학교에 올라가고 난 이후로도 화장 한 번 안 해본 건 바로 그 일환이었다.

뭐, 효과적이라곤 농담으로도 말할 수 없었지만.

화장할 필요도 없었다. 안경으로 감출 수 있는 미모도 아니었다.

가볍게 빗질하기만 해도 머리칼엔 윤기가 흘렀고, 밤을 새도 피부엔 잡티 하나 생기지 않았다.

심지어 남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여타 사춘기 학생들과 달리, 그녀는 다른 아이들의 속내조차 쉬이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눈웃음을 치는 방법.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되고, 저렇게 하면 그렇게 된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으나, 지희는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이를 깨달았다.

여타 혼혈들이 그러하듯이.

그 힘. 그 마력.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때가 무르익으면 무르익을수록.

지희는 점차 몽마에 가까운 방향으로 성장하는 자신을 느꼈다.

동시에, 공포도.

……누군가는 부럽다 이야기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희에게 있어 이는 자신이 몽마의 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표식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희는 그런 자신이 싫었다.

말하자면, 류지희에게 있어 몽마의 딸이라는 건 일종의 치부에 지나지 않았다.

결단코 드러나선 안 될 비밀.

그렇기에.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정체가 폭로당한 상황에서 학교를 뛰쳐나간 건 지희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류지희는 몽마의 딸이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류지희라는 개인이 오로지 몽마의 딸이라는 대명사로 여겨지는 것.

어떤 행동을 해도 몽마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건 그녀로서는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살조차 생각했을 정도로.

뭐, 진지하게 고려했다기보단 앞으로 더 살아갈 의미가 있을까 자조한 결과에 가깝긴 했지만.

류지희에게 있어 몽마의 딸이란 낙인은 그 정도로 반기기 힘든 요소였다.

차라리 학교를 때려칠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정체가 들통난 이상,앞으로도 자신은 몽마의 딸로서 살아가야 할 테지.

어쩌면 평생.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류지희는 때 아닌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렇게.

요동치는 마음을 잠재우고 막무가내로 눈을 붙인 다음 날.

류지희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찌라시 기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여.'

물론 이유야 있었다.

아카데미 교장인 최승준의 적극적인 변호.

마찬가지로, 전면에 나서 그녀를 비호한 혼인회의 어른들.

입장 발표부터 기사 1면 장식까지, 그녀가 그토록 걱정했던 사실들은 피어올랐을 때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권력의 힘이라 말하면 딱 그 뿐이겠지.

다만.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그녀에겐 지금 이 상황은 마치 마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족히 17년.

장장 17년에 걸친 그녀의 고민은 사실 별 것도 아니었노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고작해야 하루 들끓고 사라진 찌라시를 보고 시끄럽게 호들갑 떠는 학생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애시당초 제대로 된 근거 하나 없는 추측성 기사들 뿐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오히려 지희가 정말로 혼혈이었다는 사실에 놀라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바로 어제 자신이 보였던 추태는 도대체 뭐였던 걸까싶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물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다.

손을 놓고 있었을 뿐인데 자연스레 일이 이렇게 풀렸다.

진심으로 그리 생각할 만큼 지리는 어리지도 않았고, 어리석지도 않았다.

지희가 옥상으로 나온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 모든 흐름을 고안한 누군가에게, 그 의도를 듣기 위해.

"내가 수업 들어가라고 했냐, 안 했냐?"

"히히, 쏘리."

그리고.

홀로 기다리고 있던 그녀 앞에, 범인이 나타났다.

수업을 땡땡이친 그녀를 잡으러 왔다는 핑계와 함께.

박우찬.

이 아카데미의 교사이자, 동시에 그녀의 담임인 사냥꾼이었다.

……누차 말했다시피, 그녀는 박우찬이라는 개인에 대해 그리 자세한 편은 아니었다.

소문 정도는 들었지만, 딱 거기까지.

수많은 혼혈과 몬스터들을 남김없이 도륙했다 전해지는 도축업자.

이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비 인가 헌터.

모든 몬스터의 말살에 평생을 걸고 서원한 복수귀.

고작해야 이 정도일까.

박우찬 개인의 성격은 어떤지, 실제론 어떤 사람인지.

소문으로는 거기까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실제로 만난 담임은 도저히 그런 소문이 따라다닐 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몬스터를 상대할 때라면 또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가 보기에 박우찬은 차라리 공무원에 가까웠다.

뭐 그렇게 할 일이 많은 건지.

언제나 이리저리 사방팔방 뛰어다닐 뿐, 단 한 번도 차분하게 앉아 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녀가 속한 혼인회 또한 그런 일에 한 몫 거들긴 했지만…….

수상할 정도로 빡빡한 스케줄.

기이할 정도로 스케일 큰 사건들.

그리고 이 모든 사안을 어떻게든 일정 내에 소화하는 능력까지.

그녀가 보기에, 담임인 박우찬은 피에 미친 살인마가 아니라 오히려 월급쟁이같은 사람이었다.

단순한 첫인상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처음으로 박우찬에게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았을 적.

혼인회와 아카데미 사이의 전면전을 방지하기 위해, 류지희는 자신이 혼혈이라는 사실조차 미끼로 내걸었다.

박우찬이 혼혈조차 용서하지 않는 미치광이 살인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성대한 실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상원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는 단 하나.

박우찬이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어라 말했던 건지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추레한 간원.

이를 들은 박우찬은 정말로 혼인회에 속한 이들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던 것이다.

고작해야 일개 학생의 부탁 때문이라 말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깔끔한 결과.

어째서일까?

여태까지 박우찬이 죽인 혼혈들과 자신 사이엔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었던 걸까.

'얼굴?'

솔직히 그 정도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것보다, 애초에 박우찬이 혼혈들을 죽였다는 소문이 사실이긴 한 걸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싶은 기분도 물론 없잖아 있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 소문 속 박우찬과 실제로 만난 박우찬 사이엔 크나큰 간극이 있었다.

물론 대놓고 혼혈들 사이에서 칼춤 춘 적 있냐고 물어볼 순 없었다.

다만, 그런데도 쓸데없이 교사라는 직책에 충실하다.

일전, 신서아 헌터의 스승이 밝혀졌을 땐 오히려 납득해버렸을 정도로.

은인이라고는 하나, 무언가 기묘한 사람.

류지희가 생각하는 박우찬이란 그런 인물이었다.

뭐, 받은 은혜가 있으니만큼 예전처럼 꺼림칙하진 않지만…….

"그렇게 된 거야."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역시 조금은 생각해버리고 만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일까?'

아무래도 이번 일은 일전 혼인회와 접촉한 조직이 관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모친이라 자칭하던 예의 몽마 또한 그 일환이고.

……자신의 모친이라 자칭하던 몽마와 박우찬 사이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던 건진 모른다.

굳이 알고 싶지도, 묻고 싶지도 않았다.

단지.

그 결과, 그녀는 예의 조직에게 숙청당했다는 듯하다.

그렇게 말하며 박우찬이 내민 물건이 바로 눈 앞에 있는 구슬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구슬의 형태를 취한 마력 덩어리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이걸 전해주고 싶어 조직을 등졌다는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 감상도 들지 않았다.

육친이라는 이유로 진짜 엄마나 가족애 운운하기엔 지희의 가족관이 너무 현대적이었던 탓이다.

그녀에게 있어 가족이란 어디까지나 혼인회 사람들 뿐.

이제 와서 생물학적 모친이 죽었다느니 뭐라느니 말해도 고작해야 혀 한 번 차고 말 일이지,때 아닌 슬픔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진 않았다.

뭐, 마음이 살짝 무거워지긴 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딱 그 정도였지만.

오히려 왜 이런 물건을 남긴 건지 오히려 그 쪽이 더 궁금할 따름이다.

'혹시 선생님이 죽인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지 싶었다.

제대로 된 근거도 없었거니와, 굳이 죽이거나 숨길 필요가 있느냐 물으면 대답도 썩 마뜩찮았기 때문이다.

사실 있다 쳐도 마찬가지다.

서로 불편할 뿐이고.

"뭔가요 이게?"

"어, 몽마의 힘 덩어리?"

물론 그렇게 말했을 땐 조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자세한 설명을 바란다는 심정으로 박우찬을 바라봐도, 당사자는 정말 그 뿐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일 따름이었다.

뭐, 소소한 설명 정도는 덧붙여주긴 했다.

그건 한 마리의 몽마가 여태까지 모아두었던 힘이다.

그녀는 네게 이걸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다룰진 네게 맡기겠다.

내가 이걸 네게 주는 건 단순히 네게 맡겨진 유품이라 그럴 뿐이니까…….

정말로 아무 상관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장식품으로 만들거나, 심지어 내버리더라도.

그리고.

그 구슬을 내려다보던 류지희는, 문득 그녀의 모친이라 자칭하던 몽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몽마로서의 삶을 가르쳐주기 위해 온 거다.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었던가.

"그럼, 이걸 사용하면 몽마가 될 수도 있는 건가요?"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의문을 입에 올린 건,솔직히 별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그 질문 너머로 슬쩍 반짝이고 있는 박우찬의 눈빛이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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