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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07화 (107/371)

〈 107화 〉 몽마들의 여왕

* * *

와르륵, 무너진 건물의 잔해 위로 천천히 발을 딛는다.

끔찍한 참상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최고급 호텔이 서 있던 장소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행 중 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다.

예의 몽마를 습격하기 전, 호텔 직원들을 미리 내쫓은 덕이다.

물론 거기에는 호텔 하나를 통째로 대절한 몽마의 행동도 한 몫 거들었다 말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 감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폭삭 주저앉은 잔해 밑바닥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몽마의 여왕을 마주했다.

"끄흑, 끄흐윽."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 죽어가는 몽마라고 해야 하겠지만.

앞서 예의 벌레 괴물을 토막낸 탓일까.

그녀에게 작렬한 일격은 미묘하게 조준이 엇나가고 말았다.

덕분에, 목 대신 다리를 절단당한 몰골이 퍽 처참했다.

몽마의 물리 내성.

고작해야 그 정도로 견딜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던 탓이다.

"삼진 아웃제 성능 확실하고."

호텔 내의 전투에서 팔을 잃고, 방금 전의 일격으로 다리를 잃은 그 모습은 마치 토르소처럼 보이기도 했다.

언젠가 두 번 만나면 팔다리라고 말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당연하지만, 이제 와서 팔다리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지금 이 만남으로 세 번째고.

세 번째는 모가지.

사나이 박우찬,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사실 하긴 하지만, 그거야 뭐 필요할 때고.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를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다.

반대라면 모를까.

"으흑, 으흐윽."

그런 나를 올려다보며, 몽마의 여왕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애 쓴다, 애 써.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몽마 특징, 뒤질 때 오면 무조건 즙 짬.

혹시 살려줄지도 모르니까.

물론 나로서는 그런 동정심 유발 전략에 넘어갈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어이, 아줌씨."

때문에.

다음 순간, 내가 입을 연 건 순전히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이제 곧 뒈지실 텐데, 뭐 남기실 건 없수?"

"……?"

"거 왜, 뭐라도 말요."

당연하지만, 이제 와서 몽마의 유언을 들어주고 싶은 기분이 든 건 아니었다.

몽마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비를 구걸하던 시선이 어처구니없음으로 물든다.

그러나.

이윽고 몽마의 머리 위로 마력이 결집하기 시작했다.

훼방을 놓는 건 간단하겠지만, 지금은 가만히 내버려 두기로 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던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간.

끊임없이 뿜어지던 마력이 마침내 뚜렷한 형태를 이루었다.

자그마한 구슬.

몽마의 여왕, 그 힘의 태반이 담긴 마력 결정이었다.

'쉽구만.'

뭐, 당연하지.

몽마가 어떻고 몬스터가 어떻고, 결국 그 본질은 단순한 짐승 새끼들이다.

자신이 죽고 무리가 와해되기 직전인 상황에 몰렸다면 당연히 가장 먼저 종의 보존을 우선시하기 마련.

눈 앞의 이 여자로 따지자면, 목전까지 닥친 죽음에 가장 먼저 자신의 힘을 인계할 후계자를 찾아야 한다는 점에 생각이 미친 셈이다.

아니, 생각이 미치고 뭐고 내가 유도한 거긴 한데.

요컨대, 그런 이야기.

몽마의 여왕은 자신의 후계자로 지희를 지목했다.

그리고 그 스승인 나를 중계자로 삼아 스스로의 힘을 양도한 것이다.

비록 자신을 살해한 대상이라곤 해도, 여태까지 내 모습을 보건대 후계자를 맡기기엔 충분하리라 판단한 모양이다.

'역겹단 말이지~'

집단의 이익. 예의 조직의 일원으로서 내린 판단.

혹은, 자신을 죽인 살해자에 대한 원한보다도 지희에게 힘을 양도하길 우선한 것이다.

몬스터 나름대로의 모성애라고 해야 할까.

보편적인 시선으로 말하자면 참으로 쓰레기같은 어머니였다만,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지희를 아꼈다는 뜻이다.

몽마 기준으로는 말이지.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동족으로 끌어들이려 했을까.

실제로, 모든 힘을 토해낸 몽마의 여왕에게선 이제 E랭크 몬스터 수준의 힘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뭐, 어느 쪽이든 내가 보기엔 징그러울 뿐이지만.

그렇기에.

장갑 낀 손으로 예의 구슬을 주워든 나는, 다시금 검을 움켜쥐었다.

받을 건 받았으니 끝낼 건 끝내야지.

그런 생각으로 목을 딸까 심장을 쑤실까 생각하길 잠시.

퍼억!!

"으악, 씨발."

다음 순간, 여왕의 머리통이 폭발했다.

씨발, 깜짝이야.

"또 뭐야 이건."

이번엔 진짜로 내가 터트린 거 아닌데!

아니, 원래도 터트린 적은 없지만!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이런 상황이 오면 몬스터는 집단의 이득보다 종의 이익을 우선한다.

허면.

이런 상황을 대비해 목줄을 채우는 일 또한 자명한 행동이다.

문제는.

'미쳤군.'

상대가 몽마의 여왕이었다는 점이다.

젠장, A+랭크 몬스터를 상대로도 이런 제약을 부여할 수 있다고?

그 실력만 해도 놀라울 일이지만, 여왕급 몬스터가 이만한 제약을 순순히 받아들였단 점이 문제다.

단순한 힘으로 따지자면 S랭크 헌터가 몇 명이 있어도 부족할 판국이니.

'도대체 뭐지, 이 새끼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높게 어림잡고 있던 예의 집단의 힘.

그 세력도를 추가로 상향 조절해야 할 줄이야.

아니, 그거야 어쨌든.

"크흑, 어째서 이런 일이!! 비겁하다, 네 놈들!! 사람의 마음도 없느냐!!"

나는 일단 주변을 향해 그리 외쳐두기로 했다.

휴, 다행이지 뭐야.

안 그래도 지희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그렇게.

시민들의 신고를 듣고 출동한 헌터들이 도착할 때까지, 나는 추적추적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

*

결과적으로 말해, 이번 싸움은 크게 화제가 되진 않았다.

다름이 아니라, 뚜렷한 피해자가 없었던 덕택이다.

굳이 피해자를 꼽자면 호텔 건물주 아저씨가 되겠지만, 현찰 박치기로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었고.

사실 이번 배상금은 내게도 만만한 금액이 아니었으나, 다행히 협회 측에서도 일정 비율을 부담해주는 제도가 있었다.

시발, 헌터 협회는 신이다. 보험은 무적이고.

나 박우찬,오늘부로 헌터 협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나와 협회는 오늘부터 한 몸으로 간주하며, 협회에 대한 프로파간다는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겠다…….

말이야 이렇게 하긴 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협회로서도 마음 놓을 일이었겠지.

상대는 A+랭크 몬스터.

총력을 동원할 경우 문자 그대로 나라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괴물이다.

거기에 종별도 몽마.

사회를 좀먹기엔 최적이라 일컬어지는 종이다.

실제로 대침공 당시엔 몽마의 술책에 공중분해된 나라도 있을 정도고.

그만한 거물을 고작해야 건물 하나 피해로 잡았다?

본격적으로 날뛰기 전이었다고는 하나, 이 정도면 오히려 훌륭한 전과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움직인 건 나만이 아니었다.

따로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최승준 또한 유언비어에 적극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희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 측에서 혼혈 학생의 정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사전에 알고 있었지만, 이를 공개할 경우 미칠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묻어두기로 했다!

그런 식으로 말이다.

뭐, 틀린 말도 아니다.

지희가 혼혈이라는 사실.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음.

묻어두기로 결정함. 틀린 말도 아니고.

허면, 어째서 지금까지 그 사실을 비밀로 했단 말인가?

그런 기자의 질문에, 최승준은 역으로 혀를 차며 답했다.

"이번 사태와 같은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지요. 천박한 호기심으로 다른 사람 사정이나 들쑤시고 다니는 양반들 때문에."

다소 강한 워딩이었다.

허나, 그런 만큼 효과도 확실했다.

실제로 언론 측의 행동이라 해 봐야 학생 한 명을 매장할 기세로 기사를 싸대고 있을 뿐이니.

덕분에 아카데미 측은 차세대 헌터들의 보루라 말한 주제에 혼혈 출신 한 명 파악하지 못한 기관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

오히려 학생을 배려하기 위해 이를 묻어두기로 결정한 미담의 주인공이 되었다 말해야 하겠지.

거기에는 이제 이 쪽 편으로 돌아선 혼인회의 지원 사격도 있었다.

교장인 최승준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혼혈 출신 학생의 정체를 묻어두기로 한 건 애초부터 합의된 사항이었다.

비록 아카데미 측에서 혼혈에 대한 입장을 밝히긴 했으나, 세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혼인회와 아카데미 측이 마찰을 빚은 이유 또한 학생의 처우 때문이었다.

그런 이야기였다.

마찬가지,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응, 거짓말은 아니지. 거짓말은.

혼인회랑 본격적으로 싸우기 전부터 지희가 접촉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덕분에, 이전까지만 해도 다소 애매하던 혼인회와 아카데미 사이의 갈등 또한 이번 사건을 통해 대강 정리할 수 있었다.

학생들 중 혼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아카데미!

그 학생이 혼인회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정식 항의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대해, 혼인회 측은 혼혈의 입학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조항은 없지 않았냐며 반발!

수많은 협상 끝에 극적인 타결을 이루었다…….

뭐, 이런 그림이다.

만약 예의 집단이 여기서 물러나지 않았다면한층 더 지저분한 입씨름이 오갔겠지.

다만, 지금은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몽마의 여왕도 뒈져버렸고.

저 놈들이 건 목줄 때문이었으니, 설마 모르지도 않겠지.

다시 말해, 저 쪽의 목적이 무엇이라 해도 당장엔 지희를 끌어들일 수단 하나 마뜩치 않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여론전을 호도해 봐야 저들이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없다.

때문에, 이번 사건 또한 해프닝 수준으로 끝났다.

얼마 전부터 벌떼처럼 들끓기 시작한 언론이 삽시간에 잠잠해진 탓이다.

그런 결말에 대해 입방아를 찧는 이들도 많았다.

보통은 시덥잖은 음모론에 지나지 않았지만.

물론 그렇게 말하는 이들도 이번 일이 이토록 흐지부지하게 끝난 이유가 신문 한구석에 적힌 호텔 붕괴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게.

예의 집단과의 암투가 끝났다.

사건의 전말.

이번에 저들은 무엇을 노리고 지희에게 접근한 것인가.

그리고 이번에 새로 알아낸 사실까지.

머리를 맞대야 할 일은 많았으나, 그 전에 일단 한 가지.

내게는 따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주머니에 든 구슬을 가급적 의식하지 않고자 노력하며 옥상으로 향한다.

선객이 있었던 모양인지, 철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평소엔 분명 잠가두긴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헌터를 상대로 일개 철문 따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리도 없다.

'나중에 대 몬스터 전용 격벽으로 바꿔두라 해야겠네.'

최승준의 통장 잔고에 액션빔.

아니, 고작해야 그런 물건 하나로 동날 재산도 아니긴 하다만.

그런 생각을 마치며 시선을 앞으로 던진다.

"내가 수업 들어가라고 했냐, 안 했냐?"

"히히, 쏘리."

그러자.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화사하게 흩날리는 은발 너머로, 장난스레 미소짓고 있는 몽마의 딸이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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