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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05화 (105/371)

〈 105화 〉 몽마들의 여왕

* * *

"도대체 뭐죠, 그 선생은?!"

"아니, 그걸 저한테 물으셔도 말입죠."

비교적 진심으로, 교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갑자기 그녀가 자신을 조직의 이름까지 써서 호출했을 땐 과연 놀라고 말았지만, 설마 수다 떨 상대가 부족해서 부른 거였을 줄이야.

처음엔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싶었지만, 지금 와선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몽마의 여왕.

모든 몽마들의 위에 군림하는 네 마리 대악마와 필적하는 존재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경우 없는 행동이었다.

"남해 건만 해도 그래요. 그 남자, 우리를 방해하는 일에 맛이라도 들린 거 아닌가요?"

물론 당사자인 여왕은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애초에 지금 말한 내용만 들어도 그랬다.

남해 사건.

모종의 목적 하에 예의 집단이 손을 벌리고 있던 프로젝트다.

듣기로는 A랭크 이상의 몬스터만 한 손으로 다 셀 수 없을 만큼 달라붙었다고 하던데.

공교롭게도, 여기에 훼방을 놓은 것이 바로 박우찬이라는 그 선생이었다.

그야 저런 반응이 나올 만도 하겠지.

다만, 한때 협회와 대립하는 입장에 서 있었던 교주의 생각은 달랐다.

'A랭크 이상 헌터가 흔한 것도 아니고.'

거의 반 년에 걸쳐 남해 바다 인근을 들쑤신 초대형 프로젝트.

단순히 면적만 계산해 봐도 대한민국 인구의 1/6은 알음알음 예의 프로젝트와 접했을 공산이 컸다.

하물며, 당시 남해 방면을 담당하고 있던 몬스터는 조사차 찾아온 A랭크 헌터를 습격했다는 상황.

자신이 협회장이라 해도 다음엔 A+랭크 헌터를 보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1/6이 예의 프로젝트의 범위 안에 있는 판국에, 추가로 차출할 수 있을 만한 헌터를 솎아냈을 때.

한두 다리 너머로 박우찬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건, 아무리 그래도 단순한 놀부 심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몽마의 여왕은 이토록 단순한 계산조차 안중에 없는 듯했다.

왜냐?

'빡대가리니까!'

교주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이 작달막한 나라에 A+랭크 이상의 헌터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아니, 애초에 당장 박우찬이 내려오지 않았다 한들 마찬가지 아닌가.

그야 A+랭크 헌터를 잡으면 다음엔 S랭크 헌터가 오겠지.

언젠가 박우찬과 마주치는 건 필연일수밖에 없다.

때문에, 남해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담당하는 몬스터의 인내심이다.

겸사겸사 무리를 키운답시고 남해 지부를 습격하거나 헌터의 간을 빼먹는 건 단순한 실책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리고.

남해 지부를 담당하던 몬스터는 겸사겸사 무리를 키운답시고 남해 지부를 습격했다.

하는 김에 별미랍시고 헌터의 간까지 빼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마의 여왕이라는 작자는 이처럼 간단한 계산조차 하질 못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교주 또한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몽마들은 빡대가리다.

지혜와 관련된 설화가 있는 구미호는 그렇다 치더라도, 머리에 성교밖에 없는 서큐버스는 또 오죽하겠는가.

아니, 실은 구미호조차 본능을 못 이겨 쫓겨나는 이야기가태반인 판국이니 그 년이 그 년일지도 모른다.

"결정했어요. 역시, 그 남자는 죽여버려야겠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저럴 리가 있나.

방금 전, 속절없이 쳐맞고 들어와 훌쩍대던 여자와 정녕 같은 생물이긴 한가 싶은 발언에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아니, 애초에 S랭크 몬스터조차 도륙해버린 상대를 뭐 어떻게 쓰러뜨리겠다는 건지.

기습, 방심.

방법이 없지는 않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S랭크라는 작자가 그토록 쉽게 마음을 놓을까 묻는다면…….

'힘들겠군.'

아무래도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여러모로 준비하기는 했지만, 박우찬은커녕 유성신과 그녀 사이의 격차나 줄일 수 있을런지.

물론 구태여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눈 앞의 여왕은 내심 유성신이라는 구미호에게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그가 보기엔 그 나물에 그 밥이었지만.

"아아, 그렇지. 이번 협력 고마워요."

"별 말씀을."

"후후, 귀여운 반응. 어때요? 내게 따로 귀여움 받을 생각, 있나요?"

"하하, 죄송합니다. 신앙 상의 문제라."

"싱겁기는."

맥빠지는 대답에, 몽마의 여왕 또한 피식 하고 웃음을 머금었다.

마치 농담이라는 듯한 분위기였으나, 교주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내키는 기색을 보였다면 저 몽마의 여왕 또한 여기서 발을 빼진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이 때만큼 자신의 직함에 감사한 적도 없다.

물론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눈 앞의 그녀는 교주에겐 다소 과분한 여인이었다.

강력한 힘.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외모.

뭇 사내들이 흠모할 만한 무기를 하나도 아닌 여럿 갖추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에이즈 걸릴 것 같지…….'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슬슬 자리를 떠야 할 때였다.

애초에 이 이상 함께 있으면 괜한 불똥이 튈지도 모르고.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교주의 위기 감지 능력은 진짜배기였다.

왜냐하면.

"너를 죽이겠다."

교주가 자리를 뜨길 10분.

여왕의 침소에, 박우찬이 찾아왔다.

*

사실대로 말하자면, 처음부터 지희의 모친을 의심했던 건 나름 이유가 있었다.

자하연과 처음 만났을 당시.

박우찬의 말을 들은 이준구는 몬스터의 군락지를 찾기 위해 신도심을 쥐잡듯 뒤진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하나.

예의 몬스터들이 머무르던 장소가 게이트 안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 또한 마찬가지.

비록 몽마라고는 하나, 의태 능력에도 한계는 있다.

족히 17년.

다른 종족도 아닌 몽마가, 장장 17년에 걸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타인의 정기를 섭취하지 못하면 말라죽고 마는 몽마의 생태를 고려해보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물며 그 사이 제 2차 대침공이 일어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리고 그 시점에서 박우찬은 자잘한 고민 따위 그냥 관두기로 했다.

본디 박우찬이 걱정하던 건 저 몽마가 이제 와서 지희의 어미 노릇이나 하려고 찾아왔을 경우.

만약 그랬다면 박우찬 또한 뼈를 깎는 심정으로 눈 앞에 몽마가 싸돌아다니는 꼴을 봐야 했을 테지.

허나, 몽마의 목적은 사실상 확정되었다.

인간의 몽마화라니, 농담으로도 칭찬할 수 있는 사유가 아니지.

그렇다면,이 이상 망설일 필요도 없다.

저 여자의 행동은 이미 학부모가 어쩌고저쩌고 할 수준을 넘었으니까.

도심 외곽, 화려한 호텔.

겉으로 보기엔 온갖 상류층의 별장처럼 보이는 그 최상층.

몽마의 여왕이 거처로 삼은 건 바로 그 장소였다.

몬스터로서 지닌 최면 능력인가,그렇지 않으면 예의 집단의 백업 덕택인가.

어느 쪽이든,허영심 가득한 몽마의 선택은 박우찬의 발걸음을 조금도 지체시킬 수 없었다.

오히려 정 반대.

하루 묵는 데에도 어마어마한 금액을 지불해야 할 이 건물을, 감히 통째로 대절하셨겠다?

'나야 편하지.'

달리 말하자면, 굳이 주변을 배려해야 할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박우찬은 망설임 없이 호텔 최상층을 향해 뛰어들었다.

물론 방해는 있었다.

이토록 사치스러운 물건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 호텔 또한 수많은 이권이 얽혀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도심 개발지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을 리가 없지.

단순히 수사차 조사하기엔 영 힘들다는 뜻이다.

문자 그대로, 몽마의 거처 삼기엔 딱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박우찬에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애시당초 박우찬은 전문 프로파일러도 아니니까.

하필이면 몽마가 이런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거나, 수사장을 들먹이기엔 제대로 된 증거가 없다던가.

그런 건 형사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나 고민할 일이었다.

박우찬은 수사관이 아니다.

사냥꾼Hunter이지.

법? 이권 청탁?

알 게 뭐람.

대충 견적 내 보니 여기에 몽마가 있었고, 그러니까 찾아왔을 뿐.

박우찬은 그런 세세한 사정엔 관심이 없었다.

한층 더 공교롭게도, 박우찬에겐 힘이 있었다.

사냥꾼으로서의 실력 이전에,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힘.

즉, 인맥.

다른 말로는 최승준의 돈과 이준구의 권력이라고도 말한다.

그렇게.

박우찬이 최상층에 발을 들이길 2초.

쨍그랑!!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창밖으로 몸을 날린 몽마가 그림자 닮은 날개를 펄럭였다.

호텔 밑에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떨어지는 유리조각.

이를 따라 고개를 들어 올린 사람들이 하늘 저편에 도사리고 있는 몽마의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행동은 신속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삼삼오오 걸어가던 행인들이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다.

동시에, 이 구역을 담당하는 길드를 향해 각자 신고를 넣는 사람들.

증거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원거리 촬영을 시작하는 모습도 보였다.

바야흐로 이 헌터 사회에 적응한 시민들다운 대처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번엔 그들의 훌륭한 대처가 상찬받을 일은 없었다.

지금 이 호텔 상공에서 날개를 펄럭이고 있는 건, 협회의 감시를 피해 도망친 저랭크 몬스터 따위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를 상대하는 사냥꾼 또한 고만고만한 헌터가 아니었다.

담당 길드의 헌터가 대피령을 내리고, 현장에 찾아오기까지 3분.

길게 잡으면 대략 5분 정도 걸릴까.

'그 사이에 결판을 낸다.'

그럴 각오로 박우찬은 지금 여기에 있었다.

여왕의 반응 또한 실로 경이적이었다.

망설일 겨를도 없었다.

넘실대는 듯한 살의가 문을 열기 전부터 그 피부를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협상. 약한 척. 자신의 몸을 내미는 거래.

어느 쪽도 먹히지 않을 상황이라는 건 실로 자명했다.

때문에.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며 거리를 확보.

동시에, 전투 태세를 취한다.

일전과 달리, 상한까지 해방한 힘.

억누르고 있던 마력을 아낌없이 휘두른다.

자욱한 안개. 넘실대는 그림자.

중세 유럽에 있어, 서큐버스의 상징이라 여겨진 형태로 변형하는 마력.

호텔 하나를 통째로 가라앉히고도 남을 마력의 홍수가, 뒤늦게 방 안으로 난입한 박우찬을 향해 쏟아졌다.

당연하지만, 박우찬에겐 별다른 문제도 되지 않았다.

상대는 몽마.

여왕급이라고는 하나, 수치화할 경우 고작해야 A+랭크.

게이트 안도 아니고, 던전을 꾸린 것도 아니다.

심지어 인질조차 없다면, 다짜고짜 시그니처를 휘두를 필요조차 없다.

다음 순간.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윽?!"

지레 겁을 집어먹은 몽마가 한층 더 거리를 벌리고 만다.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창문 너머로 넘실대는 저 천조각을 보라.

한 눈에 봐도 뚜렷하기 그지없는 성성??.

서유럽에서 공수한 성해포.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모사품이었다.

아무리 박우찬이라 해도 진품은 손에 넣을 수 없었지만, 지금 당장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겠지.

부정한 마력이 흩어져 무산된다. 몰려들던 몽마의 안개가 사그라든다.

기독교 특유의 가호다.

눈에 밟힐 정도로 강력한 효과는 아니지만, 기독교 계통의 악마에게 있어선 천적이나 다름없는 힘.

그 효과가 여실히 빛을 발했다.

한 번.

스페인의 투우사들처럼 가볍게 천을 휘두른다.

동시에.

빌딩 채로 무너뜨리기 위해 쏟아지던 몽마의 마력이, 삽시간에 힘을 잃는다.

성스러운 천 테두리에 금실로 새겨진 주기도문이 한층 더 빛을 발하는 듯했다.

이를 마치 망토처럼 두른 박우찬은 그대로 창공을 향해 도약했다.

축지.

평소엔 일방적으로 거리를 잡는 데에 사용하는 경신공이자 보법.

그러나.

지금 눈 앞에 있는 건 A+랭크 몬스터다.

거기에, 방금 전 공격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주변에 마력을 흩뿌리는 기술이 특기.

하물며 몽마라는 특성 상 지금도 박우찬의 성질을 건드리려는 수작이 빈번하다.

감각은 당연히 최고치.

설령 S랭크 몬스터라 해도 이러할까 싶을 만큼 곤두선 신경이 멋대로 살심을 노래한다.

뭐, 이 정도로 조건이 갖추어졌다면 어울려주지 못할 이유도 없다.

터덕.

박우찬의 발이 그대로 허공을 딛었다.

주변에 넘실거리던 마력을 일시적으로 발판삼던 이전과 달리, 완전한 보행.

축지라 말하기엔 차라리 답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공중전도 오랜만인데."

마치 남의 일처럼, 박우찬은 그리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와중에도, 사내의 두 발은 굳건하게 하늘을 밟고 서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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