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가스라이팅
* * *
결론만 말하자면, 예의 몽마를 죽이는 데엔 실패하고 말았다.
뭐, 당연한 이야기지.
갑자기 나타나 스스로를 모친이라 주장하는 몽마.
거기에, 그 자칭 모친을 죽여버려도 되겠느냐 묻는 담임교사.
이런 상황에서 곧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그건 여고생이 아니라 악마다.
때문에, 얻어맞고 날아간 틈을 타 허겁지겁 도망치는 몽마의 뒷모습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아쉽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완전히 내가 미친 놈이었지 싶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 앞에서 모친을 죽여도 되겠느냐 묻는 선생이라니.
당장 몬스터가 눈 앞에 있었다지만, 통제가 안 돼도 너무 안 됐다.
나도 모르게 자괴감이 들어 얼굴을 손바닥 위로 파묻었다.
'돌겠네 진심.'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몽마가 나뒹굴고 있던 거리는, A+랭크 몬스터와 S랭크 헌터의 격돌이 있었다기엔 지나칠 정도로 한산했다.
그 주변 벤치.
나와 지희는 바로 거기에 앉아 있었다.
싸늘한 침묵.
알싸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에, 절로 한숨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억눌렀다.
'서아한테 또 욕 한 번 신명나게 얻어먹겠는데.'
바로 얼마 전, 남해 지부에서 있었던 일로 한층 화를 낸 서아다.
분명히,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 물었던가?
나로서는 확실하게 우두머리의 목을 따기 위해선 양동 작전이 필요하다 판단했을 뿐이지만.
말해주지 않았던 이유 또한 마찬가지.
생동감 있는 연기를 위해선 굳이 말해주지 않는 편이 더 낫다 생각했을 따름이다.
실제로 양동을 맡던 서아 쪽에도 구미호가 두 마리나 나왔다는 판국이었으니.
물론 서아는 이런 내 말을 듣고 더욱 크게 화를 내긴 했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현역 시절부터 단독 행동파였다.
내 쪽이 맞춰 내응하는 거라면 몰라도, 하나하나 다른 녀석들한테 설명할 기회 따위는 여태까지 없었고.
그렇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 직면하고 있으면, 역시 나라도 후회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배워둘 걸 그랬구만.'
또 혼자 멋대로 자리를 비운 나를 향해 화를 낼 서아.
거기에,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는 지희.
어느 쪽이든, 멋들어진 말솜씨로 화려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면 편했을 테지.
물론 그런 투정을 부려도 이제 와서 내 말재주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때문에, 나는 당장 부족한 언변을 갈구하는 대신 슬쩍 지희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지희의 안색은 방금 전에 비하면 확연히 안정되어 있는 편이었다.
제 어미가 모습을 감추었기 때문이겠지.
몽마의 여왕.
아니, 모든 우두머리는 좋든 싫든 구성원들의 감정에 그 영향을 미친다.
애초부터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게 일인 몽마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모르긴 몰라도, 방금 전 지희 또한 여왕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고 있었을 거다.
하물며, 그 여자는 일단지희의 생물학적인 어머니.
당사자인 지희가 그 사실을 얼마나 실감하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동요가 없기도 힘들 테고.
그런 상황이라면, 감정을 유도하는 일도 손쉽다.
방금 전까지 동요를 내비치고 있던 지희 또한 바로 그 일환이겠지.
여하간, 나는 알고 있다.
류지희.
요 맹랑한 꼬마가 연기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속내는 단순한 여고생인 주제에 혼인회와 아카데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벌였을 정도니까.
누군가는 고작 10분을 번 게 전부라고 말하겠지.
그렇지만 일개 여고생의 몸으로 두 조직 사이에 10분이라는 시간을 만들어낸 성과는 무시할 수 있을 만한 게 아니다.
그런 그녀가 이토록 쉽게 감정을 드러냈다는 건 역시 몽마의 개입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뭐, 상황 자체에 문제는 없지만.
'적어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진 못했을 테니까.'
바로 엊그제.
그녀가 지희의 모친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접촉한 이후, 나는 도시를 담당하는 길드 측에 연락을 넣었다.
내용은 물론 몽마 출몰 신고.
당장엔 별다른 증거도 없는 판국이니 크게 움직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대책 정도는 취하고 있겠지.
일단 연락을 넣은 게 나니까.
한 달 전, S랭크 구미호를 토막낸 헌터가 한 말이라면 쉽게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몽마의 은폐 능력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나라면 모를까, 길드에 속한 전원이 몽마를 찰지할 수 있을 만한 감지 능력이 있을 거라 기대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고.
다만.
반대로 말하자면, 감시 정도는 할 수 있다.
몽마의 힘을 쓰지 않으면 쉽게 돌파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내겐 그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이 도시에 잔류하고 있다면 언제든 찾아가는 건 일도 아니니까.
거기까지 상황을 정리한 뒤에야, 나는 어느덧 지희가 내 쪽을 흘끔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좀 진정했냐?"
"처음부터 알고 계셨어요?"
"어."
비록 내가 원한 대답은 아니긴 했지만, 말해줄 수는 있었다.
지희의 어머니.
방금 전, 그렇게 자칭한 몽마.
혹은, 그녀가 저지른 일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 거겠지.
조금 덧붙이자면, 그녀와 지희의 관계 정도?
뭐, 어느 쪽이든 사실 바로 어제 들은 이야기긴 하다만.
그런 내 대답에 지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너희 모친 좀 죽여도 되겠느냐 물은 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유야무야된 모양이다.
"그럼,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엉? 뭘?"
"그 사람이 했던 이야기."
"사람 아닌데?"
그리 생각하며 내심 한숨을 돌리고 있자니, 지희는 문득 그런 말을 던졌다.
흐음, 어디 보자.
'하나도 안 들었는데?'
그렇게 말할 분위기는 또 아니었다.
결국나는 기억 밑바닥에 가라앉은 방금 전 대화를 최대한 박박 긁어 상기해보기로 했다.
"분명히, 몽마로서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했던가?"
"네."
확실히 그렇게 말했었지.
멍청해서 그런 걸까,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블러핑인 걸까?
덕분에 그 여자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딸에게 몽마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찾아왔다.
즉.
그 여자는, 지희를 몽마로 만들 셈이었다.
혼혈 따위가 아닌, 온전한 몽마로.
'지희가 몽마짓에 재능이 있나?'
생각하기만 해도 교육부에 민원이 올라갈 듯한 주제였다.
덕분에 확답은 내릴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갔다.
자신의 수하를 불리기 위해서겠지.
그리고 그건 내 입장에서 보자면…….
"일단,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또 아닐걸?"
"어? 그래요?"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었던 건지, 지희 또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그야 뭐, 모를 만도 하지.
유명한 일화도 아니고.
그렇지만.
반대로 또 드문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헤라클레스.
혹은 데메테르의 일화에서 등장하는 불길 등이 그러하다.
사람으로 난 이를 신으로 승화시키는 불꽃.
후일 수많은 밀교의 근간이 되었다 전해지는 의식과 같이, 사람을 완전히 다른 종으로 승화시키는 비법이 없는 건 또 아니다.
애초에 저주를 받아 괴물이 된 부류 또한 더러 있고.
게다가.
'실제로 보기도 했으니 말이지~'
김민철.
여신 티아마트의 은혜가, 사람 한 명을 순식간에 몬스터로 탈바꿈시키는 모습 또한 본 적이 있다.
비록 그 놈이 타고난 미치광이였던 탓에 스스로의 변화를 거부하기는커녕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몽마로서의 삶을 알려주겠다 선포한 만큼, 방법이 없는 건 아니겠지.
그러니, 가부를 따지자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단지.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런 걸 물으려던 건 아니겠지?"
"네."
다시 한 번 지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만약 그 뿐이었더라면 평소처럼 허풍이라도 떨었을 테고.
그러지 않았다는 건, 따로 묻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거겠지.
정말로 자신이 몽마가 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예를 들면?"
"왜, 몽마는 조금 그런 종이잖아요?"
"굳이 설명하고 싶냐 물으면 그건 아니지."
"네. 그래서 그런데, 만약 몽마가 되고 나서도 평범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평범한 삶이라. 꽤 철학적인 주제구나."
"음, 저는 직접적인 의미로 말씀드린 거지만요."
"흠. 요컨대, 여태까지와 별다를 것 없는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라고 보면 되겠지?"
"정확하세요."
"힘들지, 그건."
뚝, 잘라 말했다.
너무나도 단호한 대답에, 지희마저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고야 만다.
내 대답에 실망했다기보다는, 내 대답을 인식하지도 못한 듯했다.
이해는 뒤늦게 따라붙었다.
천천히 표정을 갈무리한 지희가, 앞으로 슬쩍 몸을 기울이며 되물었다.
본인은 몰랐겠지만, 조금 욱한 기색이 있었다.
"왜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왜긴 왜야, 호르몬 때문이지."
"넹?"
그렇지만.
당장 내가 돌려줄 수 있는 말은 고작해야 그 정도 뿐이었다.
아니, 당연한 이야기 아니냐?
근성론. 마음의 힘.
말이야 쉽지, 결국 정신을 구성하는 건 육체의 전기 신호다.
단지 그것 뿐이라 말하진 않겠지만, 그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우울증 등 정신적인 병에 듣는 약이 신경 전달 물질을 만지작대는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다.
건전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드는 법.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생각 이상으로 육체의 상태에 좌우되기 쉽다.
헌데, 갑자기 몽마가 되었다?
몽마의 육체. 몽마의 생태.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주장하는 쪽이 오히려 뜬구름 잡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갑자기 개가 된 누군가가 있다고 해 보자.
허면, 그 누군가 다른 개와 짝을 짓고 살 수 있을까?
그렇게 물으면 대다수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을 테지.
다른 개들과 정신적인 교감을 이룰 순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은 사람이라면서.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스스로의 정신력을 지나칠 정도로 과대평가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개가 된다, 생물학적인 종이 변한다는 건 바로 그런 뜻이니까.
자신의 이상형.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존재.
모든 감각이 육체적 동족을 기준으로 뒤바뀌고 말 테지.
개와 뒹굴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당사자의 이상형은 사람이 아닌 개가 되고 말 거다.
개의 육체가 성욕을 느끼는 건 같은 개 뿐일 테니까.
몽마가 된다는 건 바로 그런 의미다.
몽마가 되어도 사람의 마음을 간직하겠다?
듣기야 좋겠지.
그러나.
불가능하진 않다 쳐도, 그건 고행 가득한 길이 될 수밖에 없다.
지희의 담임 교사로선 도저히 추천할 수 없는 진로라는 뜻이다.
게다가.
"너라면 더더욱."
한층 더 상처받은 얼굴을 하는 지희.
여태까지와 달리, 넘쳐흐른 감정이 표면에 드러난 듯한 모습이 아니었다.
무심코 가다듬지 못한 감정이 얼굴 틈새로 삐져나온 듯한 위화감.
나도 모르게 멈칫하기도 잠시, 곧 본래 얼굴로 되돌아온 지희는 조용히 고개를 기울였다.
"왜 저는 안 되는데요?"
"아니, 네 주변에 있는 놈들 중에 그러면 안 된다고 말릴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으엥?"
다만.
그 끄트머리에서, 지희는 다시 한 번 기묘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장난치는 거냐고 물을 듯한 기세.
그렇지만, 나도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몽마가 되고 나서도 사람의 마음을 유지한다. 그런 게 가능하려면, 결국 환경이 중요해."
"환경?"
"옹야. 몽마가 되어도 너는 아직 사람이라 믿어줄 환경."
"저는 그런 환경이 안 된다는 건가요?"
"응."
"그럼 안 좋은 환경인 거 아니에요?"
"보통은 그렇지만, 넌 반대지."
왜냐하면, 지희는 혼인회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인회는 그 특성 상 비교적 몬스터에게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이 지희의 미련이 되어줄 수 있을까?
몽마가 되어도 나는 아직 사람이라고, 사람이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을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불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이게~
"십중팔구 네가 몽마라 해도 괜찮다 말할걸."
"……아."
그런 환경 속에서 마음을 다잡는다고?
미친, 나라도 힘들겠네.
까짓거 몽마 한 번 해보죠, 뭐!
그렇게 말할 가능성이 더 크다.
때문에.
만약 정말로 지희가 몽마로 거듭난다면, 지희는 곧바로 몽마의 삶에 적응하고 말 거다.
그게 내 판단이었다.
동시에, 내가 지희에게 이 길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입 밖에 내기 힘든 몽마의 생태 따위는 둘째치더라도 말이지.
'제자를 죽이고 싶진 않으니까.'
여하간, 내게는 확신이 있었다.
방금 전, 지희의 질문에 답하며 든 확신이.
만약 지희가 그녀의 제안을 받아 몽마가 되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지희를 베어버리고 말 거다.
지희가 몽마가 되었다 들으면 그야 안타깝긴 하겠지.
어쩌면 유감을 표할지도 모른다.
허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날 때부터 몬스터였던 놈들과 달리, 스스로 몬스터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면 달리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만 하고 있지만, 그 때가 오면 망설임 한 번 없이 칼을 휘두르겠지.
그리고 별로 신경도 안 쓸 거다.
나는 내가 그런 녀석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 고민은 끝났니?"
"어느 정도는요."
"그럼 슬슬 들어갈까? 다른 애들도 기다리겠다."
그렇기에.
나는 이 이상 무어라 말하는 대신, 지희를 데리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동시에,개방한 능력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다시 한 번 이 도시 일대를 장악한 내 능력이, 순식간에 몽마의 위장을 간파했다.
찾았다.
'역시 안 되겠단 말이지~'
지희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신문사에 퍼트린 건 십중팔구 예의 몽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뒤에 있는 예의 집단이겠지.
말 그대로, 지희가 의지할 장소를 없애 몽마로 전락시키려는 속셈이리라.
막말로, 저런 기사가 나오길 하루.
세상 만사가 미울 게 뻔한데, 도대체 누가 마음을 다잡고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려 들겠는가.
아마도 녀석들이 의도한 바 또한 마찬가지겠지.
……저 멀리 보이는 교정을 향해 걷는다.
해는 중천.
오늘 하루가 끝날 때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반나절.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비로소 결심이 섰다.
저녁이 오기 전에, 오늘 일을 끝낸다.
죽이든 살리든, 두 번 다시 이딴 술책을 부릴 수 없도록 한다.
어쨌든 이 이상 지희네 모친이라 자칭하는 그 미친 몽마를 내버려 둘 생각은 어디에도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