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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02화 (102/371)

〈 102화 〉 몽마의 딸

* * *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 이 말인가?"

"바로 그거요."

"……가끔 보다 보면, 자네는 대담한 건지 무례한 건지 구분하기 힘들 때가 있어."

"하긴, 자기들 앞날 때문에 다른 애들 앞날에 강짜 놓던 양반이 보기엔 그럴지도 모르겠구먼."

"크흠!"

내 핀잔에, 남상원은 멋쩍은 얼굴로 헛기침을 터트렸다.

쓸데없이 거인다운 헛기침에, 머리 위로 얹은 모자가 들썩대는 모습이 퍽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그 날 오후.

수업도 없었던 나는 그대로 아카데미 경비실을 찾았다.

그리고 거기서 남상원을 필두로 한 혼인회 출신 경비 몇 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일찍이 있었던 아카데미 습격 사건.

그 끝에, 최승준은 습격의 주체가 되었던 혼인회를 아군 측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기자들 앞에서 발언했던 바와는 달리 거기엔 고도의 정치적인 안배가 있었다.

대중 앞에서 혼혈들을 포용하겠다 천명함에 따라, 혼인회를 비롯한 혼혈들의 호감을 사는 게 첫째.

혼인회를 저들과 분리시켜 예의 집단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게 둘째.

그렇게 합류한 혼인회를 전력으로 삼아 몸집을 불리는 게 셋째다.

거기에, 찔끔찔끔 공허한 약속으로 혼인회를 부리던 저들과 달리 대대적으로 혼혈에 대한 지지를 공표한 점.

이를 통해 혼인회 내부의 신뢰를 살 수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론 일거삼득 이상의 이득을 보았다 말할 수 있겠지.

다만, 저런 정치적인 입장을 제외하고 최승준이 혼인회에게 얼마나 마음을 열었느냐 묻는다면…….

'솔직히 미묘하지.'

막말로, 혼인회가 하려던 일은 결국 테러에 지나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어찌저찌 미담으로 포장했을 뿐, 아카데미를 제 진열장처럼 여기는 최승준이 보기에 유쾌할 리도 없고.

때문에, 역으로 최승준은 그들에게 아카데미의 경비를 맡겼다.

어떤 의미로는, 일찍이 그들이 속했던 집단을 상대로 아카데미 방위에 공헌할 기회를 준 셈이다.

혹은, 예의 집단에게 가장 내응하기 쉬운 위치를 맡겼다 판단할 수도 있겠지.

당연히,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 나는 물론이요 최승준까지 나서 혼인회를 즉결처분하려 들겠지만.

거기에 추가로 혼혈을 믿고 맡겼더니 배신당하고 말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흘린다면?

사람들은 아카데미에 동정표를 보내며, 혼혈이라 한들 결국 그 본질은 몬스터나 다름없다는 식으로 쑥덕거릴 게 뻔했다.

요컨대, 현재 혼인회는 자신들을 포함한 대한민국 모든 혼혈들의 미래를 인질로 잡힌 셈이다.

이래서야, 최승준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점과는 별개로 최선을 다해 근무할 수밖에 없겠지.

그게 바로 혼인회가 아카데미 경비팀에 참여하게 된 경위다.

그리고.

처음엔 아카데미를 습격한 일에 대해 속죄하고자 열과 성을 다하여 근무하던 혼인회 출신 경비원들은, 지금에 와선 교사인 내 부름에 합법적으로 땡땡이를 칠 수 있겠다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으, 으응…….

그렇지, 직장 다니면 저럴 만도 하지…….

아무래도 완전히 업무에 적응한 모양이다.

"그래서? 지희네 애미는 또 왜?"

퍽 걸걸한 말투로 그리 되묻는 남상원의 얼굴은, 썩 내키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방금 전, 저 입을 통해 들은 지희네 모친에 대한 이야기를 상기하면 더더욱.

아무래도 그녀는 대침공 당시 생존자 캠프 내에선 퍽 화려한 입지를 자랑했던 모양이다.

통칭 '여왕벌'.

그렇게 불리던 서큐버스였다고 하던가.

십중팔구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지희는 서큐버스 혼혈이었던 모양이다.

뭐, 그거야 어쨌든.

그녀가 생존자 캠프에서 특히나 악명이 높았던 이유는, 바로 그 성질에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 그녀는 한국 사회에 완벽히 적응한 서큐버스였다.

중동, 혹은 서양 출신의 몽마라 여겨지는 그녀가 어째서 대한민국까지 건너오게 된 건진 아무도 알지 못했다.

현재 중동에서 이슬람이 세를 불리고 있듯이, 유럽에선 기독교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그런 게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하기만 할 뿐.

단지, 그녀는 그런 스스로의 사정을 짐짓 구슬프게 풀어놓길 좋아했다.

눈물 없인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까운 사연.

가련한 목소리.

거기에, 이국적인 용모까지.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의 싸움에 생존자 캠프가 개판이 나는 건 실로 당연한 일이었다.

몽마로서의 본능이라도 되는 건지, 아니면 뭔지.

그렇게 몇 개나 되는 캠프를 분열시킨 그녀였지만, 공교롭게도 협회는 그녀를 상대로 헌터를 출격시키지 못했다.

아니, 대침공 도중이었으니까…….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캠프가 분열된 건 결국 치정 싸움 때문.

몬스터가 얽힌 일이었다고는 하나, 아무리 그래도 헌터들이 치정 싸움까지 간섭하기엔 그럴 능력도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캠프를 해산시킨 그녀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이 바로 남상원이 운영하던 혼혈 캠프였다.

'아니, 그걸 왜 받아줬대 또.'

물론 혼혈들의 인권 운운하는 남상원의 성향을 고려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긴 했지만, 그거야 어쨌든.

어찌저찌 남상원의 캠프에 정착한 그녀는, 족히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용수철이 그러하듯, 잠복기가 길었다면 폭발 또한 그만큼 화려한 법.

하필이면 몬스터가 쳐들어왔을 때 남자들을 선동한 몽마 탓에, 남상원의캠프는 문자 그대로 전멸할 뻔했다고 한다.

아니, 만약 우두머리가 남상원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전원 뒈져버렸을지도 모르지.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듣기로는, 스스로의 안위를 확보하기 위해 최우선으로 자신을 보호하라 명령했다던가.

"아이까지 낳은 여자가 이제 와서 그럴 줄이야."

남상원은 그리 한탄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캠프까지 망가뜨린 몽마는, 다시 한 번 자취를 감추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변변찮은 소식 하나 없이.

헌데, 자그마치 17년이나 되는 시간이 지난 지금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고?

과연 남상원이라 해도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겠지.

"애초에, 이제 와서 어미 노릇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틀린 말도 아니었다.

여하간,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희의 아비 노릇을 한 건 어디까지나 남상원이었으니까.

……친부는 저 소동 당시 몬스터에게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친모인 몽마는, 그 이후 지희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런 주제에 이제 와서 어머니 운운하는 소리를 해도 말이지~'

정상인이라면 어머니가 아니라 니애미 창녀 소리가 나올 수밖에.

무엇보다, 17년.

자그마치 17년이다.

만약 모습을 감출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한들,정말로 17년 동안 편지 한 번 쓸 틈 없었을까?

그리 생각하면 남상원의 분노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참, 고작해야 D랭크 몽마 주제에.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은 건지, 원."

"엥?"

"음? 왜 그러나?"

"아니, 못해도 A+랭크는 하겠던데?"

"뭐?"

단지, 이와는 별개로 남상원의 발언엔 그리 첨언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말마따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D랭크 수준으로 마력을 억제하고 있긴 했는데.

뭐, 결국 몬스터니까.

고작해야 그런 술수로 마력을 감추려 한들, 이제 와서 놓칠 리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내가 보기에, 그녀는 거의 A+랭크에 준하는 마력을 품고 있었다.

"정말인가?"

"거럼. 다른 건 몰라도, 몬스터에 관한 일이잖수."

"확실하다는 뜻이군. 으음, 이 17년 동안 힘을 늘린 건가?"

"어쩌면 처음부터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여하간, 몽마라는 종은 참으로 심플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니까.

좋은 몽마는 강한 몽마.

그리고 강한 몽마란 곧 수많은 이성을 자빠뜨린 몽마를 뜻한다.

타인을 매료하고 그 증거로 몸을 섞을 때마다, 몽마들은 한층 더 고위의 존재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인간의 정에 마력이 깃들었다는 건 다소 보편적인 사상이기도 하고.

그렇게 타인의 마력을 갈취한 몽마가 마침내 A랭크 상당의 힘을 지니게 되면, 그 때부턴 문자 그대로 한 단계 높은 영역에 오르게 된다.

몽마의 여왕.

흔히 말하는 판타지 속 '서큐버스 퀸'이라 불리는 개체로 변생하는 것이다.

물론, 그 기원은 웹소설 쪽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전설.

다시 말해, 성서 등에 기록된 '몽마들의 우두머리 된 여악마들'이겠지만.

카발라에 이르길, 대천사 사마엘과 교접했다 전해지는 세 명의 대악마.

추가로, 후일 더해진 릴리트를 포함해 넷.

이들이 바로 소위 말하는 몽마들의 여왕이라 할 수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애시당초 서큐버스라는 종 자체가 저 넷의 후손으로부터 났다고 하는 판국이니.

어쨌든, 충분한 힘을 모은 몽마들은 이를 통해 저들과 같은 상위종으로 거듭날 수 있다.

거기까지 가면 사실 몽마라 칭하기 민망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자랑하기도 하고.

그 강함은 오히려 근간이 된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악마들에게 두고 있다 할 정도니까.

아무튼 인간만 꼬시면 그만인 대갈 텅텅 종족과는궤를 달리하는 셈이다.

그리고.

아무리 험난한 시대라지만, 몽마의 여왕에 필적하는 힘이 있다면 살아남는 일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헌터만 잘 피할 수 있다면 말이지.

문제는, 몽마가 그렇게 때와 상황을 구분할 수 있는 종족이냐는 점인데…….

"힘들겠지."

"아, 역시?"

가장 가까운 장소에서 몽마가 일으킨 참상을 눈에 담았던 남상원은, 망설임 없이 그렇게 단언했다.

하긴, 가장 오래 참은 기록이 고작해야 1년인 여자를 상대로 인내심이라는 단어만큼 어울리지 않는 말 또한 드물겠지.

허면, 어떻게 17년이라는 기간 동안 모습을 숨겼느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되는데.

마침내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듯, 남상원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자네, 설마?"

"설마는 또 무슨 설마요. 거, 지시대명사 말고 일반 명사로 말하쇼.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이심전심인 사이는 아니잖수."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말을 그리 아니꼽게 할 수 있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군."

내 말에 푸욱 하고 한숨을 내쉬는 남상원.

허나, 조용히 들어올린 고개 너머로 형형하게 번뜩이는 사내의 눈동자엔 어느덧 부성애에 가까운 책임감이 뚜렷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들의 짓이라 생각하는 건가?"

"어, 반쯤은?"

솔직히 말하자면 그랬다.

아니, 사실 그 이전 문제다.

까놓고 말해, 나는 이번 남해 사건까지 더불어 전부 예의 집단의 소행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이유?

별 건 없고, 지금은 대침공 기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반대로 물어야 하는 게 아닐까?

고작해야 반 년 전, 남해 바다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S랭크 몬스터.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타난 A+랭크 몬스터.

이걸 예의 집단과 관계 없는 일이라 생각하라니.

'그 쪽이 더 힘들겠네.'

심지어 6개월 전이라고 하면, 하연이와 내가 처음으로 만난 시점이 아니던가.

그 때부터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귀수산과 구미호.

이후, 유성신을 처치하자마자 나타난 여왕급 몽마.

의심하지 말라는 쪽이 더 억지다.

"뭐, 확실한 근거는 없긴 한데."

잘 살피면 뭔가 연결점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장엔 팍 감이 오는 게 없다.

뭐, 어느 쪽이든.

대다수 게이트가 협회의 제어 하에 놓인 지금.

출몰 기록조차 없는 S랭크 구미호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으며, A+랭크 몽마의 여왕은 또 어디에서 숨을죽이고 있었단 말인가.

이런 의문에 대해, 예의 집단은 손쉬운 해답이 될 수 있었다.

아니면 뭐 아닌 대로 때려잡으면 그만이고.

막말로, 헛다리 좀 짚으면 어떤가. 틀릴 수도 있지.

게다가, 수상한 건 어차피 매한가지.

설령 놈들의 소행이 아니었다 해도, 뒤집어씌우면 그만이다.

바로 어제, 유성신의 대가리를 최승준에게 가져다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으니까.

몬스터가 상대라면, 굳이 심문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애초에 진실의 영약 또한 넓게 보면 매료의 일종이니.

몽마를 상대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물어도, 솔직히 의심스럽다.

즉, 뚜껑 따고 사령술사를 부르는 쪽이 낫다는 뜻이다.

뇌를 직접 까보는 게 훨씬 빠르니까.

씨발, 꼬우면 인간 해~

이번 사태 또한 마찬가지.

까놓고 말해, 그 년이 정말로 예의 집단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내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지희 눈에 안 띄게 죽여버릴 수 있을까 하는 점이 문제지.

솔직히, 그 집단이랑 관계가 있든 없든 내 앞에서 마력 숨기려고 한 거 보니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모양인데 일단 죽여둘 각이다.

"자네, 어째 처음부터 죽여버릴 생각이었던 것 같으이."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왜, 말리실 생각이오?"

"아니, 만약 그 때가 오면 나도 불러달라 부탁하려 했다네."

뚜둑, 뚜둑.

그리 말하며 손가락을 꺾는 남상원에게, 나는 스스로도 모르게 당황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이 아저씨, 진심인가?

"아니, 지희 앞에서 애비가 애미 때리는 모습을 라이브로 보여줄 생각이쇼? 거, 내가 어련히 알아서 박살을 내버릴 테니 걱정 붙들어 매십시다."

"……그렇게 말한다면 내 어쩔 수 없이 참겠지만, 굳이 그렇게 표현해야만 하겠나?"

졸지에 몽마랑 부부가 되어버린 남상원이 팍 얼굴을 구겼다.

흠, 몬스터 성애자한텐 나름 먹히는 외모라고 생각했는데.

남상원의 분노는 아무래도 그 이상이었던 모양이다.

*

그렇게,어찌저찌 대책 아닌 대책을 수립한 이후.

나랑 남상원은, 다소 방심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헌터 아카데미, 혼혈 입학 확인. 교사 측, 이를 알고 있었나?]

[아카데미와 혼혈 사이에 꽃핀 아름다운 미담, 사실은 단순한 프로레슬링?]

[결국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 실망한 반응 잇따라.]

다음 날.

지희가 혼혈이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들통났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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