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몽마의 딸
* * *
오랜만에 출근한 교실은, 여전히 쓸데없는 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야, 너 이번 방학 동안 뭐 했냐?
나? 나야 뭐 능력 개발이나 했지.
뭐? 놀았다고?
이 새끼 봐라, 아주 살판 났네…….
저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역시 이 녀석들은 헌터라기보단 고등학생에 가깝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4교시.
딱딱하기 그지없는 개학식으로 적당히 시간을 떼운 끝에, 마침내 수업 시간이 돌아왔다.
어차피 개학 첫 날인데 수업은 무슨 수업.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거지같은 학사 일정에 등을 떠밀려 어쩔 수 없었다.
"자, 얘들아. 이제 정말로 수업 시작해야 하니까 조용히 하자."
"아니, 무슨 개학 첫 날에 수업을 해요?!"
"나도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해야 한다더라고. 다들 나 대신 교장 선생님을 욕하렴."
"선생님도 같이 욕해주세요!!"
"안 돼, 인마. 너희는 괜찮지만 선생님은 모가지야, 알간?"
"선생님, 손에 빵꾸 나셨는데요?!"
"아, 이거? 모기 잡다가 좆됐지 뭐냐. 너희도 조심하렴."
정말로 사소한 잡담이긴 한데, 이 나라의 몬스터 중에선 주먹만한 모기 따위도 존재한다.
고작해야 E랭크긴 하지만, 실제로 만나면 더럽게 좆같단 말이지~
크흑, 강감찬 선생님.
모기 새끼들을 잡기 위해 공략법을 남겨주신당신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일단 감도 좀 살릴 겸 예전에 했던 거 복습이나 하자. 솔직히, 새로 진도 나가기는 또 귀찮잖아. 그렇지?"
"네!!"
"하하, 솔직한 놈들."
학생들이랑 한 마음 한 뜻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아니, 애시당초 수업을 진행해야 할 나조차 내키지 않는 판국인데 녀석들은 또 오죽할까.
물론, 내가 내키지 않는 건 학생들과 다소 상이한 이유가 있었지만.
개학이 여파가 없잖아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 때문이다.
왼손에 난 빵꾸가 아직도 쑤셨다.
아프긴 더럽게 아프지만, 사실 치료하려면 지금 당장 치료할 수도 있겠지.
보관해 둔 포션만 몇 개인데.
문제는, 이런 식으로 경계해두지 않으면 당장 내가 무슨 행동을 벌일지 나조차 예상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창 밖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억지로 외면하며, 나는 손바닥을 쥐락펴락했다.
다행히, 수업은 준비했다.
그보다, 지금 당장엔 이 수업밖에 준비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럼 오늘은 몬스터가 부여하는 환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시험해 보자. 예를 들면 몽마처럼."
"애초에 전투 상황에선 매료를 쓰기 힘들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말이야 그렇지만, 전투에 들어가기 전 매료를 거는 게 특징인 녀석들도 있잖냐. 예를 들면 몽마처럼."
"먼저 자기가 환각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게 중요하죠. 감각에 위화감이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찾는 게 좋아요."
"그렇지. 하지만, 너희보다 고위의 몬스터 내지 매료에 특화된 몬스터는 위화감 하나 없는 환각을 구축할 수도 있단다. 예를 들면 몽마처럼."
"……선생님, 몽마라도 만나셨어요?"
"아닌데?"
말이야 아니라고 하긴 했지만, 내심 놀랐다.
시발, 어떻게 알았지?!
하여튼 이 녀석들도 눈치 하나는 빠르다니까.
몽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이 정도라면 처음부터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 반대거나.
'혹시 그 아줌마 때문인가?'
채신머리없게 학교 주변을 들쑤시고 다니던 여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결국 오늘은 지희의 찝찝한 시선을 받으며 몽마에 대한 대처법을 주저리주저리 떠들 수밖에 없었다.
*
거의 한 시간을 날림으로 보냈다는 자괴감과 별개로, 점심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공교롭게도 오늘 식사는 홀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남해 지부에서 있었던 일을 최승준에게 보고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뢰를 명분으로 휴가를 냈으니, 의뢰 수행을 증명할 서류 등을 제출해야 했다.
물론 증명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남해 지부에서 손수 해체해 보내준 유성신의 대가리도 있었으니까.
원칙적으로, 의뢰 수행 도중 발생한 몬스터 소재는 대부분 담당 헌터에게 귀속된다.
유성신의 대가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정작 내가 몬스터 소재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
아니, 기분 나쁘고…….
민간인 구호 등에 필요할지도 모르니 최저한의 물량은 확보해두고 있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애초에 S랭크 소재까지 가면 그런 식으로 쓸만한 물건도 못 된다.
그래서 대충 남해 지부 쪽에 처리를 맡겼다.
나야 환전을 위해서였지만, 정작 남해 지부 쪽에서는 자신들에 대한 배려라 생각한 모양이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나로서는 단순한 취향 문제였으나, 남해 지부로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하간, 안타까운 사정과는 별개로 이번 사건에서 남해 지부가 보인 추태는 도저히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상대는 단독으로 일국을 멸망시킬 수 있는 괴물.
그렇다 쳐도, 지부 하나가 통째로 넘어갔다는 건 역시 용납하기 힘들다.
능력의 차이야 어쨌든, 신상필벌을 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사건의 주범인 S랭크 몬스터의 소재를 손에 넣었다는 실적이 생긴다면?
음, 내가 생각해도 배려해 준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어차피 쓰지도 못할 소재, 환금을 위해 맡긴 건데 말이지.
이런 거래 자체가 실적이 된다니, 협회의 구조는 신기하단 말이야.
"시간 괜찮으실까요?"
"아이, 씨팔!!"
"……아, 안 되나요?"
그래서.
최승준에게 이런저런 설명과 함께 넘긴 여우 대가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니, 바로 옆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카페.
서아는 물론이요 다른 교사들까지 먼저 식사를 끝마친 탓에, 나는 따로 학교 밖에서 끼니를 떼우는 중이었다.
한 손에는 샌드위치, 한 손에는 커피.
때 아닌 뉴요커가 된 기분이다.
그런 내게 있어,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몽마의 목소리는 잘 먹던 음식 속에서 튀어나온 파리 상반신에 지나지 않았다.
요컨대 좆같다는 뜻이다.
"아니, 씨발. 안 되고 자시고, 꺼져주시라고 부탁드리지 않았습니까?"
"어, 부탁이었나요?"
"니기미, 누구한테 물어도 부탁이라 할 걸요."
알쏭달쏭한 얼굴로 그리 반문하는 몽마에게, 나는 확신을 가지고 답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허락 한 번 구하지 않고 내 앞자리를 점거한 몽마.
다시 말해, 오늘 아침 마주친 지희네 어머니셨다.
이름도 듣긴 했는데, 굳이 기억하자니 뭔가 기분 나빠서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여신이랍시고 이름을 기억해버린 티아마트 측이 내게 얼마나 무례한 일을 저지른 건지 알 수 있다.
시발, 내 머리를 몬스터 개인 정보 따위로 오염시키다니.
이렇게 끔찍할 수가 있나.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가 지희네 어머님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아니,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예의 집단의 힘을 빌어, 평범한 헌터인 척 위장 입학한 지희다.
이제 와서 생활 기록부 따위에 어머니가 몽마라는 사실을 기입해두었을 리도 없고.
것보다, 부친 쪽이 몽마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눈 앞의 몽마를 지희네 어머니라 판단한 이유는 단 두 가지.
하나는 지희랑 비슷한 외모 때문이요, 둘째로는 언젠가 체단실에서 지희가 불러낸 적 있는 몽마와 비슷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기보다, 지희랑 비슷한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해 지희가 성년이 되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외모였다.
오똑하게 선 콧날. 자그마한 감정으로도 우수에 젖은 듯 요동치는 눈썹.
여신이라 자칭하는 티아마트의 우아함과는 달리, 다소 퇴폐적인 면모가 없잖아 있긴 하다만…….
'그거야 종족적인 문제고.'
뭐, 어느 쪽이든.
객관적으론 예쁘장한 얼굴이라 평할 수 있겠지.
내겐 얼굴을 찌푸리는 갑각류로 보인다는 점만 제외하면.
때문에, 내가 굳이 눈 앞의 몽마를 살려두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지희의 어머니라는 자격으로 나를 찾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씨팔, 또 그 좆같은 부탁하러 오신 거 아닙니까?"
"……어미가 딸아이를 보고 싶다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인가요?"
"부탁이 좆같은 게 아니라 댁이 좆같은 건데요."
"물론 선생님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진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 알긴 뭘 알아~
그리 쏘아붙이고 싶은 기분이었다.
시발, 부탁이고 뭐고 모르겠고 그걸 왜 나한테 말하냐 이거다.
지희를 만나고 싶다.
눈 앞의 그녀는 내게 그리 말했다.
무심코 지희 어머니 운운해버린 내 주둥이 탓이다.
아무래도 내가 지희네 담임이라는 걸 눈치챈 거겠지.
그리고 그 때부터 줄곧 부탁 세례.
제발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는 식으로 내게 애걸복걸하는 게 아닌가.
물론 나로서는 헛소리 말라며 내칠 수밖에 없었다.
이유?
'좆같으니까.'
무슨 기구한 사정이 있던지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그냥 기분 나빠서 싫다.
애초에 학부모만 아니었다면 당장 토막을 내버렸을 테고.
지금 이 상황만 해도 내게 인내심의 한계를 요구하고 있는 판국에, 추가로 뭘 더 해달라고?
죽어도 싫은데.
그렇게 말하자 이번엔 또 나를 붙잡고 구구절절 사연이나 늘어놓고 있는 판국이었으니.
결국 더 있다간 정말로 죽여버릴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허락해주긴 했다.
그래.
수업 참관이라는 이름 하에 방치해두고 있던 시선의 정체는 바로 그녀였다.
뭐, 그거야 수업의 주체가 나였기 때문이고.
아무리 그래도 가족 사정까지 내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지 않겠나.
말마따나, 정말로 개인적인 사정이라면 따로 불러서 만나던가!!
'개빡치네 진심.'
애시당초 뭘 어떻게 생각하긴 어떻게 생각해, 지금도 죽여버리고 싶다 생각하고 있는데.
지희의 어머니고 뭐고, 결국 그 정체는 몬스터.
혼혈에 대한 역차별이라느니 뭐라느니 그런 건 모르겠고, 빡치는 건 빡치는 거다.
게다가.
'수상쩍단 말이지~'
말마따나, 왜 하필이면 나한테 온 건지.
결국 그건 여전히 오리무중 아닌가.
뭐, 어느 정도 짐작이야 가긴 하는데.
사실 눈 앞의 몽마를 처음으로 목격한 경위만 따져도 그렇다.
체단실의 맞춤 훈련.
다시 말해, 지희가 가장 꺼려하는 상대로서 마주했었으니까.
그리고.
예의 환각을 상대로 지희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만약 상대가 환각이 아니었다 해도 그대로 죽여버릴 기세였지.
아무리 그래도 가출한 딸내미와 신출내기 엄마 사이의 갈등이라기엔 지나친 면이 있다.
요컨대, 단순한 가출 수준은 아니다.
뭐, 자세한 사정까진 모르겠지만.
아니, 어떻게 알아~
막말로 심심풀이 삼아 물어볼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러니 나한테 온 거겠지만.'
담임인 내가 다리를 이어주길 바란다던가, 그런 느낌이겠지.
무엇을 위해서?
사과? 화해?
글쎄, 이 쪽도 거기까진 모르겠다.
솔직히 별로 관심도 없고.
막말로 내가 꼭 알아야 할 사정도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그걸 나한테 말해서 뭐 어쩌라는 겁니까?"
거기에, 내가 지희를 보고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지 않은가.
어디 말다툼한 수준도 아니고.
요즘이 또 어떤 시대인데 담임 권위에 의존하냐 이 말이야~
자리 세팅을 부탁하고 싶으면 최소한 지희랑 말이라도 맞춰두던가.
"그러고 싶은데, 오늘도 몽마 대책 수업만 하셨잖아요!!"
"아이, 씨팔. 눈깔에 마력 올리지 맙시다, 파버리기 전에."
"앗, 죄송."
"거기에, 댁 사정 하나만 보고 수업 일정이라도 바꿔달라 이겁니까 지금? 아니, 내가 왜요?"
"우으."
"우으는 무슨, 지랄."
사실 팔자에도 없는 몽마 수업 따위를 하게 된 이유가 바로 눈 앞의 이 여자 때문이긴 하지만, 그건 그거고.
것보다, 솔직히 빡친다.
지금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눈가에 모이던 마력.
은근슬쩍 매료 따위나 걸어서 어떻게 해 보려는 년이 도대체 뭐가 좋다고 자리까지 마련해줘야 한단 말인가.
몬스터란 사실만으로도 회쳐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는 와중이거늘.
까놓고 지희 애미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몽마 젓갈로 만들어버렸을 거다.
그런 주제에 어미 노릇은 무슨.
보호자 노릇은커녕 지희 덕에 구명하고 있는 줄 알기는 알까?
'모를 것 같군.'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근거? 내 편견.
뭔가 몽마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어, 유혹하는 거 말곤 빡대가리일 것 같은?
'지희야, 네 이야기 한 거 아니다!!'
지희를 향해 속으로 사과를 건네며, 슬쩍 한숨을 내쉰다.
왜냐하면 눈 앞의 몽마가 도저히 포기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또 올 거에요."
"삼진 아웃제 아시죠? 두 번째 오면 팔다리고, 세 번째엔 모가지에요."
"……도대체 절 뭐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무 생각 안 하는데요."
"거짓말."
"진짠디."
거짓말 이 지랄.
애초에 달리 뭐라고 생각할 건덕지도 없다.
지희가 별로 상관 없다는 말만 했어도 지금쯤 모가지로 미식축구나 하고 있었을 텐데.
제 딸내미가 얼마나 헌신적인 줄 모르는 어미다.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힘없이 떠나가는 몽마.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캬 하는 소리와 함께 감탄사를 토했다.
"성격 많이 죽었다, 박우찬!"
살다살다 몬스터를 다 살려주네, 내가.
현역 시절이었으면, 어?
학부모고 뭐고 말야, 어?
내가 팍 그냥, 어?
"후, 이것이 『늙음』이라는 것인가──."
어쩐지 비만 오면 삭신이 쑤시더라니.
낄낄대며 농담을 입가에 머금는다.
뭐, 어쨌든.
저 꼬라지로 보건대 십중팔구 다시 찾아올 모양이고.
어디 보자.
'조금 알아볼까.'
괜한 사정에 얼굴 들이민다는 기분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뭐 괜찮겠지.
만에 하나 잘 풀리면 공짜로 죽일 수 있는 몬스터 한 마리 추가다.
물론, 그래도 학부모는 학부모.
지희에겐 들키지 않도록 잘 처리해야겠지만.
사실 지희의 태도를 고려해 보면 별로 신경 쓸 일도 아닐지 모른다.
괜시리 즐거운 마음에 시시덕거리길 잠시.
나는 그대로 바닥까지 비운 커피를 휙 하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슬슬 점심 시간도 끝자락.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내겐 오후 수업도 없었다.
즉, 사정을 알고 있을 만한 양반을 찾아가기엔 딱 좋을 타이밍이라는 뜻이다.
그리 생각하며, 나는 어쩌다 보니 아예 직장 동료가 되어버린 혼혈 양반을 찾아 적당히 어슬렁거리기로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