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몽마의 딸
* * *
오늘도 류지희는 잠을 설치고 말았다.
딱히 잠자리가 불편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정 반대.
영 익숙해지기 힘들었던 남해의 침대에 비하면,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차라리 아늑할 정도였으니까.
요컨대, 이유는 달리 있었다.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리는 장례식 풍경.
물씬 풍기던 죽음의 냄새가 도저히 잊혀지질 않았다.
낯선 경험이냐 묻는다면, 그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
허나.
그녀가 지금까지 잠을 설치고 있는 이유는, 같은 반 친구인 윤하나 예은이랑 비교하면 조금 달랐다.
……사람들이 울고 있던 모습을 기억한다.
상실이 익숙해진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해를 덮친 시련은 결코 가볍게 입을 놀릴 수 있을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인간을 희롱하는 듯한 악의.
언어가 통한다 한들, 근본적인 사고가 다르다.
문자 그대로 괴물Monster.
게이트 너머에서 찾아온 이방인들을, 어째서 그렇게 부르는 것인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
간을 먹기 위해, 방해가 되니까…….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남해 지부 전원의 가정을 파탄낸 요호들.
윤하 등은 그런 요호들의 만행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화를 내기도 했지만, 그녀는 반대였다.
'이해할 수 있어.'
어째서 요호들은 그런 행동을 한 걸까?
세력 확장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리의 우두머리와는 별개로, 헌터의 간을 먹고 성장한 요호들은 무리의 중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중진들을 더러 내포한 무리는, 안정감에 있어 차원이 다르다.
실제로 그녀들 또한 귀수산을 공략한 당시 갑작스레 나타난 구미호들에게 고전하지 않았던가.
허면, 요호들이 굳이 남해 지부를 침략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
반대로,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실컷 방심하고 있는 헌터들.
먹어치우려 들면 단번에 목덜미를 끊어놓을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진수성찬을 보고도 달려들지 않는 쪽이 바보 아닐까?
……그렇다면.
어째서 요호들은 이처럼 수많은 슬픔과 죽음이 동반되는 방법을 택한 걸까.
이미 가정을 이룬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매료를 걸기 힘들었다.
거기까진 알겠다.
하지만, 지부 대다수를 손에 넣은 시점에서 과연 거기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 묻는다면 역시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부하를 움직인다거나, 혹은 다수를 동원해 억지로 제압한다거나.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을 테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호들은 굳이 그들의 가족을 살해해, 수많은 가정을 붕괴시켰다.
장장 6개월에 걸쳐, 누군가의 아내나 남편을 연기하기까지 하면서.
도대체 왜?
어째서 그런 일을 한 걸까.
비단 인간 측의 관점만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몬스터에게 있어, 인간의 사고방식이란 도리어 미지에 가깝다.
완벽한 둔갑술을 체득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허면, 어째서 요호들은 굳이 그런가시밭길을 택한 걸까.
'재미있으니까.'
마찬가지로, 결론은 순식간에 나왔다.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가족을 죽인 원수가 지금 제 눈 앞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하하호호 떠드는 인간들의 모습이 퍽 유쾌하니까.
류지희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대답이 나왔다.
어째서 저런 걸까?
저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스스로 자문할 때마다, 멋대로 그런 대답이 튀어나온다.
마치 신탁처럼.
물론, 신탁이라 해도 답하는 건 신이 아닌 악마겠지만.
그녀의 몸 안에 있는 피.
몽마로서의 본능이, 류지희가 품은 의문에 답을 주는 것이다.
결국, 요호란 동양의 몽마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요호들의 행동에 스스로를 대입할 때마다, 몽마의 성질은 그렇게 속삭인다.
자신이라면 십중팔구 저런 이유로 행동했겠지, 라고.
그리고.
류지희는, 그런 자신이 싫었다.
요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이해해버리는 자신이 밉다.
생물학적인 본능이라 해도, 요호 쪽에 이입해버리는 자신이 역겹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자신 또한 반쯤 그런 생물이라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
……류지희에게 있어, 헌터란 결국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한 면피성 직업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헌터로서의 의무감 이전에, 류지희는 몽마가 싫었다.
그렇기에, 몽마 따위의 피를 이어받은 자신도 싫다.
올려다본 거울 너머로, 파랗게 질린 새벽 하늘이 지나간다.
덩그러니 눈 앞에 떠오른 자신의 얼굴을, 류지희는 찬찬히 살폈다.
벌써 며칠이나 잠을 설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잡티 하나 없는 얼굴.
싱그럽게 늘어진 은빛 머리칼은 맑게 빛나고 있으며, 석류색으로 반짝이는 눈동자 또한 핏발선 듯 보이지는 않는다.
몽마.
사람을 매료하기 위해 태어난 종족.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의 미모는 빛바래지 않는다.
고등학생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고, 그러나 우아하지는 않게.
거기에.
'또 변했네.'
푸욱, 한숨이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힘을 쌓으면 쌓을수록, 혼혈은 자신의 근간이 된 원종에 가까워진다.
류지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물결치는 눈꼬리.
요염한 빛을 띄는 입술.
점차 몽마와 같은 방향으로 변모하는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류지희는 때 아닌 낯설음을 느꼈다.
이대로 가면, 류지희 또한 자연스레 몽마와 같은 체질을 손에 넣겠지.
그렇다면.
언젠가, 그 끝.
자신의 몸이 몽마와 같은 아름다움을 손에 넣는 날.
자신의 정신마저 몽마와 같이 변하지 않으리라 감히 그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남해에서 보낸 방학은, 틀림없이 즐거웠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에겐 무거운 의미가 되어 다가왔던 것이다.
언젠가 자신 또한 그렇게 되어버리는 걸까.
사람의 생명을 희롱하며 기뻐하고, 사람의 죽음을 보고 조소하던 그 요호들처럼.
마침내 찾아온 개학식 당일.
결국, 지금까지도 해답은 찾지 못했다.
*
"아, 인생 씨이팔~"
"사부. 말, 말!"
"왜. 말이 또 뭐. 말은 Horse야, Horse. 알간?"
"돌겠네 진심."
그리고.
새벽 바람 시원한 아침, 나는 때 아닌 절망을 곱씹고 있었다.
왜냐하면, 개학이 벌써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미친, 실화인가?
"서아야, 좆됐다."
"왜? 또 시간 가속 몬스터의 습격 운운하려고?"
"……내가 그렇게 많이 말했던가?"
"오늘로 열 세 번째거든?"
"끄으응."
아니,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남해에 내려가기 전, 애들이랑 일정 맞추기.
그렇게 내려가서 사건 해결하기.
그 다음, 도의적으로 장례식 참여하기.
이후, 업무 재개한 남해 지부 상대로 상황 검증.
마지막으로 토벌로 인해 발생한 소재 분배까지.
이런저런 일들을 전부 마치고 귀환하자, 어느덧 개학까지 남은 시간이라고는 고작해야 1주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뎃? 와타시의 장기 휴가는 어디로 간데스?
"사부, 추해."
"추해도 좋으니까 휴가를 내놔!!"
"아니, 나한텐 교사 생활도 괜찮다느니 뭐라느니 했으면서……."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서아야. 그건 출근이라는 유리 천장에 갇혀있던 나를 위로하기 위해 짜낸 거짓말에 지나지 않아."
이젠 나를 위해 살겠다.
물론 교사 생활이 나름 괜찮은 취미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요 3년, 백수 생활로 단련된 내겐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였던 모양이다.
다른 게 아니라, 정시 출근부터 문제다.
크윽, 아무 것도 하기 싫어.
이미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어째서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
"다들 알고 있는데 굳이 말하지 않는 거라곤 생각 안 해?"
"뭣이?"
진짜냐, 직장인 개쩔어.
이런 기분으로도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샘솟았다.
달칵.
그런 내 앞으로 달걀 담긴 반찬 그릇이 슬쩍 고개를 디밀었다.
"자,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그래, 사부. 애 앞에서 민망하지도 않아?"
"아니, 내 말은 그냥 그만큼 힘들다 이거지……."
결국 나 또한 어깨를 늘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말마따나, 아무리 그래도 학생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조금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런 내 모습에, 하연이 또한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동시에, 다시 한 번 접시를 내 쪽으로 미는 게 실로 마음 아플 지경이었다.
숫제 어린애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으니까.
아직은 새벽이었지만, 평소와는 달리 우리 모두 일어나 있었다.
나랑 서아야 출근하기 위해서였지만, 하연이는 달랐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전부터 이랬다고 해야 할까.
예전, 김민철과 관련된 사건으로 입원했다 퇴원한 이후.
그 날부터, 하연이는 갑자기 요리 따위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어느 정도 맛이 안정된 이후론 내게 꼬박꼬박 아침을 차려주는 게 아닌가.
솔직히 말해, 처음엔 부담스럽기도 했다.
몇 번 물어보니, 아무래도 제 딴에는 내게 조금씩 은혜를 갚고 싶었다는 모양이지만…….
'별로 큰 돈도 아닌데 말이야.'
고작해야 월세 몇 번?
뭐, 당사자인 하연이가 그렇게 느꼈다면 나로서는 무어라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나름대로 경각심을 가지는 게 나쁜 일도 아니고.
나야 그렇다 쳐도, 앞으로 하연이가 만날 사람들 전원이 나처럼 돈이 썩어나진 않을 테니까.
처음엔 조금 섭섭하기도 했지만!!
혹시 하연이에겐 지금 이 생활이 모종의 빚처럼 느껴지는 걸까?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긴 했다.
우중충한 반지하.
도심 한가득한 몬스터 광고를 피해 도망친 내게는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지였지만, 하연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별다른 불평 한 마디 없던 애고.
으음, 곤란해라.
아니, 나도 처음엔 몬스터 미끼 삼을 생각으로 데려오긴 했지만.
것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래도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나 참, 여자애들이란.
무섭다 무서워.
어쩌면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이번에 같이 요호들을 토벌한 동아리 사인방.
내게 있어선 이미 제자나 다름없다 느껴지는 그 애들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멋대로 제자라 생각하는 건 상관 없지만, 이 이상 친한 척 해도 곤란하다던가.
으윽, 그렇게 생각하니 더 출근하기 싫어졌다.
'아니, 예은이는 조금 다르려나?'
사실, 최근 달라진 건 비단 하연이만 그런 게 아니다.
이번에 남해로 내려간 끝에, 나를 목표로 정진하겠다 선언한 예은이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선생님 대신 뭐라고 불러드릴까요? 선배? 아니면, 박우찬 씨?"
그렇게 말하며 장난스레 웃던 모습을 생각하면, 첫 만남 당시의 악인상은 어찌저찌 벗어던질 수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오빠 친구 정도만 되도 다행이겠지만.
"알겠다, 알겠어. 그럼, 나 먼저 간다?"
"바이~"
"곧 따라갈게요, 오빠."
그 즈음에서 생각을 정리한 뒤, 먼저 자리를 뜨기로 했다.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긴 했지만, 저 둘은 나보다 준비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던 탓이다.
계집애들이라 그런가?
도대체 여자애들은 준비할 게 뭐 그리 많은지 원.
가볍게 머리만 감고 10분컷 때리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하숙집을 나서면, 청량한 새벽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어제만 됐어도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이라 말했겠지만, 오랜만에 출근하는 내가 보기엔 마치 내 앞날을 가리키는 징조처럼 보였다.
지금은 그럭저럭 창창한 내 기분도 출근하고 나면 흐려지고 말겠지…….
아침 햇살 앞에 녹아내리는 새벽 하늘처럼…….
센티멘탈이라는 단어를 이런 데에 쓰는 게 맞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충 센티멘탈한 기분이었다.
분명 교사 생활은 나름대로 재밌긴 했다.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출근하긴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 출근이란 단어는 이토록 마법적이다.
아무리 즐거운 취미 생활이라 해도 아무튼 꺼림칙한 기분이 들도록 하는 힘이 있으니까!!
'땡땡이 각인데.'
만일 내가 교사가 아닌 학생이었다면 지금쯤 땡땡이치고 있었을 거다.
애초에 개학 첫 날이면 수업하기도 힘들잖아, 왜 굳이 담임들까지 학교로 부르는 거야?
머릿속에 쌓아올린 가상의 최승준을 번뇌의 숫자만큼 참살하고 있자니, 슬슬 저 멀리 아카데미의 모습이 보였다.
거기에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는 순간.
턱, 골목길 너머에서 누군가 나타나 내 가슴팍에 부딪혔다.
동시에.
"끄아아아악!!"
"어머, 괜찮으세…… 꺄아아아악?!"
미칠듯한 고통이 내 왼쪽 손등을 파고들었다.
왜냐하면, 내 오른손이 어느새 뽑아든 단검으로 내 왼쪽 손등을 쑤셔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습격자의 화려한 유술이 빚은 결과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 반대.
만약 가만히 있었다면, 방금 전 나도 모르게 눈 앞의 여자를 토막내버리고 말았겠지.
그런 확신이 빚은 행동이었다.
즉.
"저, 저기?!"
"아니, 씹! 아지매, 좀 꺼지쇼!!"
눈 앞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몬스터였다.
이 사실만으로도 눈이 돌아갈 듯한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만, 평소 나라면 이딴 식으로 몬스터의 접근을 허락하진 않는다.
아니, 그 뿐이랴.
이런 식으로 참으려 들지도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예외가 있었다.
예를 들면, 당장 눈 앞에 있는 이 아지매도 그렇다.
본의는 아니지만, 평소 나는 의도적으로 일부 몬스터들의 기척에서 눈을 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잘 되진 않지만, 그렇지 않으면 학생이나 일부 혼혈들의 모가지로 참수 쇼를 벌여버릴 테니 어쩔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리고.
눈 앞의 아지매는, 바로 그렇게 내가 외면하려 노력하고 있는 일부 종족에 해당했다.
게다가, 애시당초 몬스터가 사람 행세를 하며 새벽부터 돌아다니는 일 자체가 그리 흔한 게 아니다.
다시 말해, 눈 앞의 아지매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뜻이며──.
내가 손을 멈춘 이유 또한 거기에 있었다.
……새벽 하늘 아래로 찬란하게 반짝이는 은발.
그 이상으로 새빨간 석류빛 눈동자.
무엇보다, 아지매라 말하긴 했지만 겉보기로는 나보다 어려 보이는 액면가까지.
언젠가 체단실에서, 혹은 석양 지는 교실에서 본 적 있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거, 씨팔. 혹시 지희네 자당이신지요?"
"엇."
그리고.
그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나와 부딪힌몽마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