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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96화 (96/371)

〈 96화 〉 여우의 털은 왜 노랄까?

* * *

그리고 우리들은 움직이는 섬에 도착했다.

아니, 정말로.

평범하게 노 저어서 정박할 수 있었다.

"뭔가 맥빠지네요, 오…… 호호호호."

"그렇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완고하게 입을 다물고 있던 하연이가, 갑자기 요란스러운 웃음소리를 내며 그리 말했다.

일단 대답하긴 했지만, 뭐지 저건? 유행인가?

슬쩍 하연이 쪽을 돌아봤지만, 정작 하연이는 내가 아닌 다른 학생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답을 기대하긴 힘들 듯하다.

그리 생각하며 보트를 해안가에 묶어두고 있자니, 내게 다가온 서아가 속삭이며 물었다.

"사부, 뭐야 지금 이거?!"

"또 왜."

"아니, 이렇게 올 수 있는 거였어?! 도대체 반 년 동안 뭘 한 거야, 남해 지부는?!"

"서아야, 지금이 몇 시냐."

"아."

서아가 조용히 탄성을 내질렀다.

그 말대로.

지금은 아침 6시.

새벽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시간대다.

이런 시간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아지랑이를, 도대체 공무원이 어떻게 알고 있겠나.

반년이란 시간이 있었다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고작해야 6개월.

새벽 여섯 시, 신기루를 보았다는 말에 조기 출근하는 공무원 따위는 없다.

하물며 달리 주변에 열린 게이트도 없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바로 어제, 서아가 인계한 보고서에도 그렇게 써 있었지.

남해 일대 게이트에 이상 없음. 단순한 신기루일 가능성 높음, 이라고 했던가.

뭐, 타당한 판단이다.

아무래도 결과는 따라주지 않은 듯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쉬울 줄은 또 몰랐네. 왜 여태까지 아무도 이런 생각을 못 한 거지?"

"글쎄, 미신 때문에 그런 거 아냐?"

"미신?"

"뭐, 흔하잖아. 모르는 섬에 가까이 가지 말라."

"흐응~"

영 미심쩍다는 듯 콧소리를 내던 서아도, 곧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이렇게 간단한데, 어째서 여태까지 단 한 명도 이 섬에 오르고자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서아는 그리 말했지만, 반대로 그런 마음을 먹지 않아서 다행인 점도 분명 있었으니까.

"만약 그랬으면……."

"십중팔구 죽었겠지."

예를 들면, 이 섬의 환경이 그렇다.

스윽, 주변을 살핀다.

항구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농밀한 마력.

그리고 그 속에 섞인 몬스터 특유의 악취.

"이 섬, 이미 몬스터들이 점거했어."

"아이고, 이 년아."

따악!!

짐짓 심각하게 중얼거리는 서아의 뒤통수를, 내 손바닥이 후려쳤다.

"아악!! 사부, 진짜 이러기야?!"

"내가 할 소리다, 이 화상아. 속 터져 죽겠네, 진짜."

"아니, 또 왜?!"

"점거했다는 수준이 아냐. 이 섬이, 몬스터다."

"……뭐?"

어느 정도 염두에 두긴 했다.

여하간, 남부 해안가에 있어 움직이는 섬 전설은 대개 이상향을 의미한다.

무릉도원과 같은, 아무리 나아가도 닿을 수 없는 낙원.

때문에, 육지를 향해 점차 다가오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내게 움직이는 섬 전설은 완전히 염두 밖이었다.

허면, 반대로 뭍을 향해 다가오는 이 섬의 정체란 무엇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한민국엔 여기에 정확히 부합하는 전승이 존재했다.

즉.

"귀수산?山. 들어본 적 없간?"

"귀수산……."

말 그대로, 거북 대가리가 달린 산.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A­랭크 몬스터다.

먼 옛날, 신라 신문왕 시기에 동해 바다에서 나타났다는 영물.

신라 삼기팔괴 중 삼기에 해당하는 비보, 만파식적의 재료로 유명한 괴물이기도 하다.

가장 큰 특징은, 그 장구한 스케일.

마치 거대한 산이 동해 바다에서 흘러 들어오는 듯했다 전해지는, 압도적인 거체다.

요컨대,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섬 자체가 하나의 몬스터라는 뜻이다.

"으엑."

"처음이냐? 이만한 몬스터랑 싸우는 건."

"그야 처음이지! 애초에 흔한 일도 아니잖아."

"잘 됐네. 열심히 해 봐."

"엥?"

뜬금없는 내 발언에, 서아가 맥빠진 소리를 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허나, 진심이었다.

"이번 토벌, 나는 낄 생각 없다."

"아니, 사부!!"

"왜? 잘 됐잖아. 이만한 기회가 어디 있냐?"

말했다시피, 귀수산은 A­랭크 몬스터다.

그리고 A­랭크라는 건, 다시 말해 A랭크 몬스터에 비하면 하자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귀수산의 경우, 압도적인 건 역시 그 장대한 신체에서 나오는 초질량.

단점은 이를 제외한 전부다.

애시당초, 귀수산은 전투에 적합한 개체가 아니다.

전설부터 그렇다.

등 뒤에 난 대나무, 만파식적의 소재를 갈무리하자 사라졌다는 그 기록처럼.

귀수산에겐, 제대로 된 공격 수단이 부족하다.

뭍으로 올라오려 든다는 그 특성 상, 사전에 막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참사가 일어날 뿐.

일개 헌터가 귀수산의 진격을 방해하기도 어렵지만, 반대로 귀수산이 먼저 나서서 헌터들을 요격하려 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귀수산은 등 뒤에 완전히 별도의 생태계를 구축한다.

문자 그대로, 하나의 산이라 착각할 만한 위용.

여기에, 대침공이라는 특수한 상황.

추가로 귀수산 자신의 마력이 더해지면,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예상하는 건 그닥 어렵지 않다.

때문에, 대침공 당시 귀수산은 귀수산 자체보단 그 등 뒤에 둥지를 튼 몬스터들의 종류에 따라 위험도를 판별하곤 했다.

……과도하게 밀집된 마력.

게이트가 한층 더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칠 정도로 누적된 숫자에 떠밀려 게이트 밖으로 쫓겨난 몬스터들.

혹은, 자신이 발생한 게이트가 닫혀 돌아갈 장소를 잃은 몬스터들 따위가 정착하기 딱 좋은 환경.

말하자면, 귀수산은 말 그대로 비경Dungeon.

현실에 정착한 몬스터들이 쌓아올린, 또 하나의 둥지라 할 법했다.

한 마디로, 몬스터판 항공모함이라는 소리다.

필시 이번 사례 또한 마찬가지겠지.

대침공 당시부터 남아있던 귀수산이, 어쩌다 보니 눈을 떴다.

덕분에 귀수산 위에 똬리를 틀고 있던 요호들 또한 행동에 나섰다.

혹은, 귀수산이 눈을 뜬 뒤 새로 찾아온 걸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든, 정말로 나쁘지 않은 기회다.

정착한 몬스터는 요호 수준.

다시 말해, 어지간히 실수하지 않는 한 문제가 불거질 구석은 없다.

학생들은 던전 공략이라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을 테고, 서아 또한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지.

"아니면, 계속 나한테 물어보고 다닐 거냐?"

"으윽."

"교사가 됐으면 적어도 어떻게 애들을 가르칠 건진 생각해 봐야지. 언제까지 신입 교사라는 핑계를 댈 순 없잖아."

"으으, 알겠어. 알겠다구! 진짜, 곱게 좀 말해주면 좀 좋아……."

물론 서아로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겠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나야 서아를 가르친 적이 있다고 쳐도, 서아는 정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일 테니까.

자신이 직접 학생들을 통솔하는 역할에 서야 보이는 점도 더러 있겠지.

게다가, 서아의 실력도 문제다.

방금 전, 이만한 크기의 몬스터와 싸워본 적은 없다 실토한 시점에서도 알 수 있는 사실.

대침공 이후의 헌터들은, 상대적으로 실력이 뒤떨어지는 편이다.

실제로, 서아의 실력 또한 말이 A+랭크지 대침공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A­랭크에 가깝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국제 기준 상, 헌터의 랭크를 가르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실력.

서아를 예시로 들자면, A랭크 몬스터를 1대 1로 토벌할 수 있기에 A랭크.

거기서, 상성 등이 맞물려 운 좋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경우 등에 한해 마이너스가 붙는다.

반대로, A랭크 몬스터를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플러스가 붙겠지.

단, 공식적으로 대침공이 종료된 지금은 아무래도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작금의 헌터들이 몬스터와 마주치는 경우라고 해 봐야, 협회의 관리 하에 있는 게이트를 점검할 때 정도니까.

위험 부담 따위도 없는 협회의 지원.

풍부한 정보.

거기에, 서아도 말했듯 길드에서 붙여주는 전속 오퍼레이터도 있다.

이래서야, 실력이 무뎌질 수밖에 없겠지.

같은 A+랭크 헌터라고 해도, 대침공에서 살아남은 A+랭크 헌터와 철저한 준비 끝에 정해진 몬스터만을 토벌한 헌터.

어떻게 해도 실질적인 전투력은 전자가 앞설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로서는 서아가 경험을 쌓아줬으면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앞으로 있을 대침공은 물론이요, 온갖 수단을 불사하는 예의 미친 놈들을 상대로도 말이지.

"뭐, 충분히 할만할 거다. 그렇게 생각해서 맡기는 거니까."

"아, 진짜. 그러면 어쩔 수 없네~"

"쉬워……."

"응? 뭐라고?"

"아니, 귀수산이면 보수도 괜찮은 편이니까 열심히 해 보라고. 영 힘들면 도와줄 테니."

"에이,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말해놓고 그건 아니지!! 걱정 단단히 붙들어 매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그렇게 말하며 파닥파닥 뛰어가는 서아.

이윽고, 무어라 외치는 서아의 목소리에 맞추어 내 쪽을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런 녀석들을 향해, 건성으로 손을 흔들어주기도 잠시.

적당히 역할을 나누고 있는 우리 계집애들에겐 들키지 않도록, 나는 조심스레 몸을 감췄다.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애초에, 의뢰를 받은 건 내가 아니라 서아고.

의뢰 해결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게 서아라는 사실도 틀림없다.

단지, 그뿐만인 건 아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럴 때마다, 자욱하게 낀 안개가 내 몸을 휘감으려 드는 게 영 불쾌했다.

여우비.

서아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이 안개의 정체는 바로 여우의 환술이었다.

요호가 움직일 때, 스스로의 걸음을 감추기 위해 불러일으킨다는 잔비.

귀수산이 움직일 때마다 자욱하게 깔렸다는 안개의 정체는, 귀수산 위의 요호들이 흩뿌린 마력이었을 테지.

여우들이 움직인다고 해야 할까, 귀수산에 실려 움직인다고 해야 하겠지만.

'차 타면서도 쓸 수 있겠네.'

마음 속으로 정리해 둔 여우비의 발동 조건에 한 줄을 덧붙인다.

어쨌든.

남해에서 귀수산이 관측되길 어언 반 년.

우리들이 올 때까지 단 한 명도 귀수산에 오르고자 생각한 적 없었다는 무리한 가정보단, 차라리 환술 쪽이 합리적이다.

미신을 고려한다 해도 마찬가지겠지.

반 년이라는 건 그만한 기간이니까.

이를 고려해, 내가 재구성한 사건의 흐름은 실로 간단하다.

어느 날, 귀수산이 눈을 떴다.

때문에, 귀수산 위에 자리를 잡은 요호들 또한 활동을 개시했다.

요호들은 귀수산의 움직임에 여우비를 곁들였고, 본인들의 거점을 철저하게 감추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바로 새하얀 안개 속에서 움직이는 섬에 대한 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현지에 자연스레 녹아든 요호들은 이윽고 활동을 개시했다.

남해 지부를 장악했고, 협회의 눈과 귀를 막았다.

귀수산에서 행차한 요호들은, 지상에 거점을 만들었고.

자그마치 반 년.

반 년에 걸쳐, 여우들은 남해를 손아귀에 넣었다.

말하자면, 이번 신기루 사건의 핵심은 예의 소문의 정체가 귀수산이냐 아니면 단순한 신기루냐 하는 부분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되길 어언 3년.

이는, 남해에 대한 요호 무리의 침공이었다.

때문에, 나는 지금 여기에 있었다.

여우들을 죽일 자신은 있다.

그러나, 내가 여우 둥지를 들쑤시고 다니기라도 하면?

요호들은 어떻게 할까.

한두 번은 응전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서너 번 당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와의 싸움을 기피하게 될 거다.

최악의 결말이다.

잠깐 잠적했다돌아오면 그만인 녀석들과는 달리, 내게는 방학이란 시간 제한이 있으니까.

말하자면, 이번 귀수산 공략은 일종의 강습 작전이었다.

보나 마나, 뭍에 오른 여우들은 조바심이 나겠지.

도대체 누가 여우비를 뚫고 귀수산에 상륙한 건지, 귀수산을 감추기로 한 동포들은 어떻게 된 건지.

실제론 내게 몬스터 따위의 환각은 통하지 않을 뿐이지만, 녀석들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으리라.

만일 놈들이 숙련된 군인이었다면, 녀석들의 본토라 할 수 있는 귀수산에 선발대를 파견했겠지.

허나.

놈들은, 짐승이다.

게다가, 만일 이번 의뢰가 내 생각처럼 귀수산을 거점으로 한 요호들의 상륙 작전이라면?

'우두머리는 귀수산에 있다.'

저번에 싸웠던 요호 무리에 우두머리가 없었던 이유 또한 마찬가지겠지.

먼저 선발대를 보내고, 남해의 장악이 끝나면 상륙할 생각이었을 테니까.

당연한 이야기다.

그리고.

우두머리의 지시를 받을 수 없어 우왕좌왕하는 육지의 요호들이 내릴 판단이야, 불을 보듯 뻔하다.

단체로 돌아오려 들겠지.

여하간, 나랑 예은이가 선발대의 거점 중 하나를 완전히 뒤집어놓은 게 바로 어제 일이었으니까.

……여우비가 뚫린 걸 보면, 이미 무리에 피해가 닥쳤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리의 힘을 총동원한다.

침략자를 짓뭉개버린 뒤, 다시 귀환하면 된다.

군대도 아닌 짐승 새끼들에겐, 그게 합리적인 결론이다.

동시에, 내 노림수이기도 했다.

하나하나 귀찮게 여우 꼬리 따위를 밟고 있을 생각은 없다.

한 마리라도 살려보낼 생각 따위는 더더욱 없다.

일망타진.

내가 여기에 온 건, 오로지 그걸 위해서였다.

살 에이는 소리와 함께, 나는 무구를 들어 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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