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여우의 털은 왜 노랄까?
* * *
"이야, 냄새나는 거 봐라."
주변에 널린 요호 시체를 보며, 나도 모르게 그런 탄성을 흘렸다.
완전히 피떡을 내놓은 현장.
지금은 방독면을 쓴 덕택에 한층 여유가 있었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여기서 뒹굴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휘적휘적, 칼끝으로 요호들의 뱃가죽을 가르고 이런저런 사실들을 확인한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예은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어? 뭐가?"
"저는 분명 여우형 몬스터들한테 트라우마가 있으신 거라고……."
"엉? 그런 거 없는데."
"……?"
갑자기 뭐야, 트라우마는.
상당히 뜬금없는 발언이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자,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예은이의 얼굴이 보였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원.
이처럼, 여고생들의 사고는 다소 짐작하기 어려운 면이 없잖아 있었다.
아카데미 교사 생활을 맡으며 체득한 사실이다.
때문에, 나로서는 당장 무어라 답하는 대신 고개를 돌리고 내가 알아낸 사실을 입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예은아. 문제는 그게 아니다."
"아, 네……."
"얘네, 우두머리가 없어."
"네?"
그 말엔 과연 예은이도 놀라움을 표했다.
여하간, 몬스터라 해도 그 본질은 결국 과다 비만인 짐승 새끼들이니까.
요컨대, 이만한 집단이라면 당연히 우두머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설령 D랭크 몬스터로 구성된 그룹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역으로 그런 만큼 머리가 좋은 놈이 우두머리가 됐겠지.
하지만.
적어도 내 판단으로는, 여기에 우두머리의 시체는 없었다.
털의 고르기나 덩치만 봐도 일목요연한 사실이다.
같은 D랭크라 한들, 우두머리라면 자연스레 몸집이 커질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여기에 있는 요호들의 시체는 어딜 살펴도 다 비슷비슷한 크기였다.
확실히, 방금 전의 습격만 해도 그랬다.
명확한 지휘 개체 하나 없이 달려들던 여우들.
나름 D랭크 무리 치곤 선전하긴 했지만, 실력차를 보고도 퇴각을 지시하는 녀석이 단 한 마리도 없었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반대였을지도 모르겠군."
"네?"
"처음부터 정답을 뽑은 게 아니라, 전부 정답일지도 모르겠어."
만약 내가 운 좋게 몬스터 무리를 발견한 게 아니라면?
……지도를 보고 수상쩍다 지목했던 세 장소.
어쩌면, 이 주변 일대를 몬스터들이 장악한 걸지도 모른다.
내가 은연중에 내린 결론을 듣고, 예은이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요컨대, 내 말은 남해 일대의 게이트가 전부 돌파당했다는 소리나 진배없었으니까.
허나,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도 이해할 수 있다.
이만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우두머리만 없는 게 아니다.
이만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고작해야 선발대에 지나지 않는 거다.
그 사실에, 비로소 예은이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
이후, 나와 예은이는 퇴각을 선택했다.
그대로 여우굴을 습격하고 싶은 기분 또한 없잖아 있기는 했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
준비되지 않은 채 사냥을 시작했다간, 오히려 요호들이 도망칠 수도 있다.
그렇게 도망친 요호들이 붙잡힐 때까지, 과연 얼마나 되는 피해를 낼까.
이런 점을 고려하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후퇴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라는 경우도 있고.
게다가.
'썩 보여주고 싶은 광경은 아니지.'
만약 내 예상이 맞아떨어진다면, 적어도 예은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광경은 아닐 거다.
아니, 다른 녀석들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다녀왔쑝~"
"어우, 사부! 거기 장난 아니야, 진짜!"
그렇기에, 귀환한 남해 지부 담당 팀의 평가 또한 내게는 영 달갑지 않았다.
아무래도, 남해 지부는 본인들이 여우에게 홀렸다는 자각조차 없었다는 듯하다.
당장 인수인계도 문제였지만, 그 사실에 어처구니없음을 느낀 서아가 들이받으니 어째 이상한 점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아니, 걔네들 끝까지 부정하더라니까? 우리 수정이가 그럴 리 없다면서? 그치?"
"맞아요, 맞아. 나 참, 우리 수정이가 누군데 그래서~"
서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해 지부가 여우에게 홀린 건 바로 얼마 전.
남해 지부의 헌터들 사이에서 있었던 집단 미팅 때문인 듯하다.
누군가의 연줄이 닿아 운 좋게 성사된 만남.
모델이나 스튜어디스 등으로 구성된 여자들에게, 남해 지부에 속한 헌터들은 푹 빠져버렸던 모양이다.
문제는, 매료가 깬 후 어느 누구도 자신이 만난 여자가 누구였던 건지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
오히려, 전화 기록 하나 남지 않은 핸드폰을 보고 자신들이 요호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던가.
이하는 예의 헌터들이 남긴 후기 내지는 자기변명이다.
사랑은 언제나 허리케인!!
좋은 꿈을 꾸었습니다. 이제 저와 혜인이의 사랑은 불멸로 남을 겁니다.
아시잖아요, 남해에선 여자 만나기 정말 힘듭니다…….
무슨 입대라도 한 줄 알았다.
뭐, 덕분에 사건을 재구성하는 건 쉬웠지만.
내 추론에 따르면, 요호들의 행동은 다음과 같다.
협회에서 근무하는 일반 직원 한 명을 매료해, 자신들을 미끼로 미팅 자리를 주선한다.
그 경우, 십중팔구 먼저 미팅에 나오는 건 힘 있고 돈 많은 헌터들이 되겠지.
여하간, 저들의 말에 의하면 이 남해는 여자 한 명 만나기도 힘들다는 모양이니까.
그렇게 헌터들을 꾀어내는 데에 성공하면, 그 뒤는 손쉽다.
좋답시고 헤실대는 헌터들을 매혹하면 그걸로 끝.
이후, 지부 내에 있는 일반 직원들을 찾아가 억지로 매료해버리면 그만이다.
손쉬운 일이었겠지.
어느 쪽이든, 참으로 비참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음, 이 쪽은 딱히 특별한 건 없었구나."
그렇게 서류가 지부에서 받아온 서류를 살피고 있자니, 티아마트 또한 입을 열었다.
말마따나, 현장 조사 측에서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모양이었다.
실제로, 티아마트와 윤하가 들었다는 이야기 또한 이미 서아를 통해서 들었던 바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새하얀 안개가 낄 때마다, 수평선 너머에 처음 보는 섬이 나타난다.
자세히 살피려 해도, 안개가 끼어 확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안개 너머에서 보이는 그림자는 틀림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개가 걷히고 난 뒤, 다시 한 번 바다를 바라보면 거기에는 무엇 하나 온데간데없다…….
"영 심심한데?"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긴 한다만, 아무래도 어쩔 수 없구나."
"흠. 따로 특이한 건 뭐 없었냐?"
"어디 보자. 어부의 개인적인 감상 정도였다만, 있기는 있었지?"
"말해 봐."
"으음, 어땠더라."
"그 섬이라는 놈이 어째 날이 갈수록 가까워지는 것 같다, 뭐 그런 이야기였죠 뭐."
애매한 태도로 중얼거리는 티아마트 옆에서, 퉁명스레 부연하는 윤하.
어떤 의미로는 전형적인 이야기다.
허나, 그 말을 들은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다가온다고?"
"어, 옙. 아저씨들 말로는 그렇다던데요?"
"허어, 왜 그렇게 생각했대?"
"아저씨들 중 제일 눈 좋은 양반이 그랬대요. 매일같이 점점 커진다나 뭐라나."
"흐음. 윤하야, 네가 보기엔 어떠냐? 믿을만해?"
"눈깔에 마력 쓰던데요."
"믿을만하네."
아무래도 뱃일하다 각성한 양반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해양 게이트랑 접촉했다거나.
세상에 기인도 참 많지, 그렇게 중얼거리기도 잠시.
나는 슬쩍 턱끝을 쓰다듬었다.
움직이는 섬에 대한 전설은, 사실 흔하디 흔했다.
그야말로 차고도 넘칠 정도로.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움직이는 섬 전설을 고려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게이트라는 녀석이 내 흥미에 맞추어 움직이진 않겠다만.
아무리 그래도, 섬이 움직이길래 확인해 봤더니 움직이는 섬이더랍니다 하는 이야기는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고작해야 그 정도 사연이었다면 애시당초 남해 지부 측에서 진즉 사건을 정리했겠지.
나나 서아가 나설 필요도 없었을 거다.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다.
움직이는 섬이 아니라 섬과 같은 규모의 배.
저 장보고의 전설에서 등장하는 바와 같이, 섬에 필적하는 크기의 선박이 아닐까 예상했었다만…….
'다가온다고?'
아니, 왜?
존나 뜬금없네.
당연하지만, 설령 섬 크기의 배가 맞다고 쳐도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함선.
뭍에 올라와도 움직일 수 있을 리 없다.
한 마디로,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예의 움직이는 섬은 시시각각 스스로의 죽음을 향해 직진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반대일 수도 있겠군.'
거기서, 잠시 반대로 생각해보고자 했다.
움직이는 섬.
혹은, 섬과 같은 크기의 배.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만약 어느 쪽도 아니라면?
'섬이 움직이거나, 섬처럼 거대한 배 따위가 아니야.'
섬처럼 크고 강력하되, 배처럼 움직일 수 있는 무언가.
거기에, 요호들의 능력.
추가로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규모의 요호 무리.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과연 내게도 짐작이 가는 게 있기는 했다.
"아, 과연."
"오, 뭔가 눈치챘어 사부?"
"야,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너는 설화 공부도 좀 해라. 아직 현역이잖아."
"에이, 요즘 누가 그런 걸 한다고 그래?"
"뭣이?"
"그런 건 다 전속 오퍼레이터들이 알려주고 그래요, 이 화상아."
"세상에, 그딴 직업이 있어?"
아주 염병할 일이었다.
물론, 통신이 차단될 경우 등을 고려하면 따로 공부해두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서아를 놀려먹을 요소가 사라진 게 문제다.
다만.
'예상보다 사태가 심각한데.'
추론한 바에 따르면, 지금 이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달은 내 예상보다 꽤 컸다.
어느 쪽이든, 가급적 빨리 해결하는 게 좋겠군.
"사부, 그럼 내일은 뭐 할까? 똑같이 정보 수집?"
"만약 그럴 거면 나라도 좀 바꿔주세요, 선생님. 거기 사람들, 계속 훔쳐본단 말이야."
철없이 칭얼거리는 서아 뒤로, 지희의 불평불만이 따라들어왔다.
과연 몽마의 혼혈, 그런 시선엔 예민한 모양이다.
저렇게 싫어할 거라면 왜 놀러가자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상대가 학생이니 굳이 말하진 않겠지만, 정말로 바닷가에 놀러가기라도 하는 날엔 100% 주목받을 게 뻔한데 말이지.
성희롱이 아니라, 지극히 생물학적인 문제다.
모르긴 몰라도, 졸업 후 어른이라 부르기 적합한 나이가 되면 단순한 매력은 여신인 티아마트조차 능가할 테니까.
뭐, 지금은 일단 고개를 끄덕여두기로 했다.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예쁘게 차려입고 싶은 거지, 성희롱의 대상이 되고 싶을 리도 없다.
"그럼, 모레는 놀러 갈까?"
"응?"
"대신 내일은 빡세게 일하고."
"진짜요?!"
"으랴아아앗!!"
"아니, 잠깐. 당신 누구야, 사부 아니지?!"
갑자기 터져 나오는 환성.
감히 하늘같은 사부를 모함한 서아를 철권제재하고 있자니, 문득 한숨이 나왔다.
……반 년이라.
꽤나 빡세게 준비한 모양이다만, 이 이상으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은 없다.
바로 내일, 몬스터를 토벌하고 전부 끝낸다.
여하간, 내 예상이 맞다면 그 이후로도 꽤나 바빠질 테니까.
'적어도 뒷처리는 도와야겠지.'
아마도 서아를 포함한 전원이 겪어본 적 없을 광경을 상상하며, 나는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머리를 눌렀다.
그렇게, 그 날 새벽.
밤이 지나고 서광이 움트기 직전, 우리들은 부둣가로 향했다.
대뜸 오늘 내로 사건을 해결하겠노라 선언한 내 등쌀에 떠밀려, 체통 없이 쩌억 하품을 반복하는 여고생 조.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멀쩡하지만 어째 뚱한 태도의 성인 조.
양 쪽의 모습을 확인하며, 나는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쯧쯧. 야, 애들은 몰라도 너희는 정신 차려야지."
"아니, 졸려서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럼 뭔데."
"사부야말로 뭐야, 이 쪽배는."
"뭐, 그럼 모터 보트라도 몰 줄 알았냐?"
아무리 그래도 모터 보트 자격증을 요구하는 건 곤란하단 말이지.
결국, 우리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은 단순한 쪽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새벽을 노려 움직이기로 결정한 뒤, 어정쩡하게 반나절을 보내는 대신 수소문해 구한 물건이다.
솔직히 말해, 이런 걸 구할 수 있었던 내 수완에 감탄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아예 보기도 힘들 정도로 단촐한 디자인의 보트.
듣기로는,몇 년 전 커플 항해 이벤트 따위를 할 때 사용했던 물건이라고 하던가.
아니, 그런데 다들 자연스레 나한테 노를 맡기고 있는뎁쇼?
물론 서로의 무기나 전법을 고려하면 지금 이게 최적이긴 하지만, 설마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줄이야.
살짝 상처다.
"야, 그래도 너무 그러지 마라. 내가 누구냐? 모터 보트보다 더 빨리 나갈 수도 있어."
"아니, 어지러우니까 됐어……. 뒤집힐지도 모르니까 천천히 가."
"그랭."
거 참, 사람 섭섭하게.
결국 나 또한 혀를 차면서도 열심히 노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뭐, 아무리 그래도 심심해서 이런 시간대를 잡은 건 아니다.
현지 조사반에 따르면, 예의 사태는 주로 새벽 아니면 한낮에 자주 발생하는 모양이니까.
하긴, 그러니까 신기루 소리를 들었겠지.
해 다 떨어지고 난 다음 뭐가 움직인다는 소리를 들으면, 섬이 움직인다 운운하는 게 아니라 유령선 소리가 가장 먼저 나왔을 거다.
……찰팍, 찰팍.
조용히 노 젓는 소리만 울려퍼진다.
사실 헌터로서의 근력을 동원하면 아예 바다 가르는 소리도 낼 수 있겠지만, 우스꽝스럽겠지 싶어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렇게.
새벽 바람에 식은 공기를 맛보며 기다리던 우리 사이로, 문득 동요가 퍼졌다.
"어, 뭐야?!"
"진짜 나왔다!!"
도대체 누가 말하는 건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 새벽 하늘 아래로, 보트가 삐걱이는 소리를 낸다.
출렁이는 해수면을 노로 때려 잠재우고선,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아지랑이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고오오오오──.
바다 일렁이는 소리와 함께, 아득히 머나먼 수평선에 걸린 그림자.
어느덧 새하얗게 깔린 물안개 너머.
저 멀리, 하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대한 거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