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94화 (94/371)

〈 94화 〉 여우의 털은 왜 노랄까?

* * *

요호.

소위 말하는 여우형 몬스터들에 대한 전설은, 동아시아 삼국 전반에 걸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중국의 요호들이 지니는 특징은, 개중에서도 넓은 서식처를 바탕으로 둔다종다양한 전설.

일본의 요호들이 지니는 특징은, 생각 이상으로 체계적인 분류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

허면, 한국의 요호들은 어떨까?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요호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전근대까지만 해도 여우를 신으로 섬기던 지역이 더러 남아있었던 탓이다.

설화 속에서 신이라 일컬어지는 게 아닌, 실존하는 여우 신앙.

때문에, 대한민국의 여우 설화는 타국에 비해 사뭇 다른 면모가 있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선 신의 사자 내지는 요사스러운 괴물로 여겨지는 여우.

이에 비해, 한국의 요호들은 상대적으로 인간 친화적인 경우가 잦다.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는 점을 포함해, 오히려 인류 사회에 녹아들고자 노력하는 편이지.

……본래는 딱 거기에서 끝날 이야기.

문제가 불거진 건 대침공이 시작된 이후였다.

삼국의 문화적 차이에 지나지 않았던 설화가, 정부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즉.

대한민국의 여우 설화를 바탕으로 한 몬스터들은, 역겨울 정도로 악독했다.

일전에도 말했다시피, 몬스터가 인간 행세를 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완전히 다른 종족. 완전히 다른 사고.

그런 차이를 뛰어넘어 인간인 척 가장해야 하니까.

일단, 인류 사회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지능을 갖춘 종족부터 그렇게 많지 않다.

거기에,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마법적 능력까지.

처음부터 변신에 특화된 종이나 개체가 아닐 경우, 양쪽 조건을전부 갖춘 종족은 그야말로 드래곤 정도다.

그조차 드래곤 특유의 아득한 자존심이 방해가 된다는 걸 고려하면, 실질적으론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허나, 이 빌어먹을 여우 새끼들은 달랐다.

바로 그 얼마 되지 않는 예외였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마법적 능력. 인간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높은 지능.

추가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열의까지.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의 요호들이란 곧 인간으로 위장하기 딱 적절한 종이었다.

물론, 여우들이 무슨 도플갱어마냥 변신에 특화된 몬스터는 아니었다.

실제로, 대다수 요호들은 도플갱어와 달리 어디까지나 둔갑술을 폭로당하는 역할이고.

허나, 이번엔 바로 그게 문제였다.

요컨대, 변신 능력만 따져도 도플갱어 바로 밑인 몬스터가 무력까지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저 쯤 되면 도플갱어보다 변신이 허술하다는 건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무기가 되겠지.

그렇기에.

갑자기 몰려든 여우떼를 보고 욕지거리를 내뱉은 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씨바랄."

물론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애초에, 매료는 전투에 있어 그다지 효율적인 능력이 아니다.

전투 도중, 갑자기 눈 앞에 몽마가 나타난다면?

칼침이 먼저 나가겠나, 성욕을 우선하겠나.

아무리 강력한 매료의 권능이라 할지라도, 성욕을 위해 목숨을 포기하는 이들은 매우 적다.

실제로, 중국의 경국지색 또한 나라가 멸망할 땐 창칼 앞에 무력히 쓰러지지 않았던가.

격투 능력을 중점적으로 단련해, 빈틈을 만드는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희 쪽이 오히려 희귀한 사례다.

즉, 우리가 맞닥뜨린 남해 지부의 상황은 아무리 그래도 무언가 어색했다.

일단, 남해 지부의 규모부터 문제다.

남해 일대의 게이트 전반을 관리한다는 그 특성 상, 단순한 규모로 따지면 각종 지부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장소가 바로 여기다.

그만한 규모의 지부를 통째로 잡아먹은 매료라니.

단순히 생각해 봐도,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기습.

대치 혹은 전투에 돌입하기 전, 완전히 방심한 남해 지부 소속 전원을 상대로 매료를 시도하는 식이다.

다시 말해, 이번 사태를 일으킨 몬스터들에겐 헌터들의 방심을 유도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이 있었을 게 분명하다.

때문에, 남해 지부의 참사를 본 직후 나는 십중팔구 인간으로 의태하는 능력의 몬스터가 있을 거라 짐작했다.

만일 강력한 단일 개체에 의한 집단 매료였을 경우, 출근하지 않은 이가 한 명은 있었겠지.

반대로, 다수의 몬스터가 정면에서 매료를 시도했다 가정할 경우.

무리에 소속된 몬스터 한 마리 한마리가 남해 지부의 헌터들을 능가하지 않고선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 예측하는 데에 성공했다 할지언정 이 역겨운 털뭉치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D랭크 몬스터, 요호.

문자 그대로, 마력을 그득그득 눌러 담은 여우 비스므리한 생명체.

허나, 공교롭게도 그 생김새는 도저히 여우라고 착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상 사람 어느 누구도 수직 3m 가까운 이 괴물을 여우라 착각하진 못할 테니.

그런 괴물들이, 주둥아리를 벌리며 달려든다.

도대체 저만한 거체를 어디다 숨기고 있었던 건지.

여태까지 현지인들이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도리어 놀라울 정도였다.

물론, 말이야 그렇지 실제론 나와 예은이 중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진 않았다.

뭐, 요호 특유의 환술이라도 사용하고 있었던 모양이지?

어느 쪽이든, 그런 건 전부 찢어 죽이고 난 다음에 알아봐도 충분하다.

기습은 읽었다.

요호니 뭐니 지껄여 봐야, 결국은 몬스터.

내 능력 앞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달려드는 여우를 향해, 수평으로 휘두른 거검이 작렬한다.

말도 안 되는 덩치의 괴물 여우와, 인간 남정네 한 마리.

크기만 보면 도저히 상대가 안 될 외견이었으나, 결과는 달랐다.

휘두른 검기가, 여우의 아가리를 둘로 쪼갠다.

주둥아리부터 꼬리까지, 일자로 양단당해 추락하는 요호.

흩뿌려지는 핏방울을, 제어한 마력으로 튕겨낸다.

이제는 퍽 익숙한 공정.

문제는.

"우와아아악!! 크아아아악!!"

"선생님?!"

바로 여우들의 피 냄새였다.

전설에 전하길, 요호의 피는 강장제 가까운 효과가 있다.

이는 요호의 거죽을 쓰고 나타난 몬스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요호의 피에 담긴 매료의 마력이 발휘하는 효과다.

그리고.

이렇게 베어 죽인 요호의 피.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속에 담긴 마력은, 대기와 접촉한 즉시 기화하기 시작한다.

나로서는 당연히 요호의 마력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다.

물론 D랭크 몬스터인 요호의 매료 따위는 내게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단순히 냄새가 기분 나쁘다.

때문에, 나로서는 요호들을 베어 죽일 때마다 오히려 기분이 나빠질 정도였다.

평소와는 정 반대인 기분에, 나로서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씨, 씨발……!!'

중학교 때 생물학 수업이라도 잘 들어둘걸!!

만약 그랬으면 후각 세포에서 요호의 피 냄새를 분리할 수 있었을까?

쓸데없는 생각과 함께, 떨리는 손으로 품 안을 더듬는다.

'방독면, 방독면!!'

이러한 사정 때문에, 나에게도 요호종은 그렇게 달가운 상대가 아니었다.

죽이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일단 기분이 나쁘다.

방독면이 있으면 상관 없지만, 일단 가성비도 문제다.

솔직히 말해, 혼혈 이하니까.

나로서는 요호종 백 마리를 상대하는 것보다야 차라리 국운을 걸고 S랭크 몬스터랑 단판 승부를 벌이는 쪽이 더 마음 편할 지경이었다.

'씨발, 바닷가인 주제에 요호 나오고 지랄……!!'

지금만 해도 그랬다.

떨리는 손가락 탓에 품 속의 방독면을 잡을 수가 없다.

그런 나를 향해 달려드는 요호.

비록 D랭크 몬스터라 해도, 마력조차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헌터의 모가지를 따는 데엔 부족함이 없다.

때문에, 나로서도 지금 당장은 응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선생님!!"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들던 여우의 피륙이 갈가리 조각났다.

섬찟하다기엔 차라리 장렬한 굉음과 함께, 눈 앞에서 달려들던 요호가 문자 그대로 찢어발개진 탓이다.

"구와아아악!! 갸아아아악!!"

"어, 어디 다치셨어요?!"

덕분에 다치진 않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한계였다.

체감상으론 방금 전 완전히 넝마짝이 된 요호보다 더 심했다.

씨발, 도대체 어떤 새끼가 내게 이런 시련을? 티아마트 그 년인가?

하늘을 노려보며 그리 뇌까린다.

사나이 박우찬, 헌터가 된 이래 처음으로 울고 싶은 날이었다.

그러나.

척, 가벼운 발소리.

그런 내 비명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기라도 한 건지, 내 눈 앞을 찬란한 레몬색 머리카락이 가득 채웠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방금 전 잡담과, 같은 듯 다른 말.

그렇게 이야기하는 예은이의 뒷모습은 퍽 믿음직스러웠다.

문제는, 아마도 그녀 또한 내가 어째서 이러고 있는 건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리 말해주는 건 참으로 기특한 일이긴 했지만, 정작 내가 처한 상황을 해소하는 데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음 순간 예은이가 전력으로 운용한 염동력이 요호 무리를 갈아버렸기 때문이다.

"테챠아아앗!! 마마아아앗!!"

당연하게도, 그렇게 갈아버린 요호들의 마력은 오히려 나를 한층 더 돌아버리게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마력 감응 능력을 갖춘 내게는 똑똑히 보였다.

내 비명소리에 맞추어, 오히려 한층 더 날을 세우는 염동력의 칼날이.

마력의 채찍.

그리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형상으로, 예은이의 주변을 감싸는 염력의 파동.

우웅, 공기가 떨린다.

준동하는 염동력이 대기를 휘젓는 소리가, 소름끼칠 정도로 선명하다.

겉으로 보기엔, 연약한 소녀 한 명을 둘러싼 몬스터들이 머잖아 피의 살육을 벌일 듯한 광경.

그러나, 실상은 정 반대였다.

지금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건 예은이가 방출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염동력이었으니까.

요호들이 주춤대고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방금 전, 예은이는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지금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내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그건 단순한 자격지심에 지나지 않는다.

요 최근, 성적을 따라잡히는 일이 잦았던 탓에 일어난 의구심.

예은이의 고민은, 말하자면 딱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애시당초, 얼마 전에 치렀던 기말고사에서 특히나 두각을 드러냈던 게 바로 정필연과 이예은임을 상기하면 더더욱.

그리고 지금 예은이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깐깐한 선생이라 해도 같은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겠지.

피부 위로 옅게 흐르는 염동력.

일전과 달리, 그 안에서 염동력을 순환시키지는 않는다.

예은이의 신체 능력이 스스로의 염동력을 따라가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오히려 부담만 될 뿐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대신, 한층 더 견고하게 쌓아올린 염동력의 갑옷을 공격에 활용한다.

말하자면, 염동력을 방출하는 게 아니다.

염동력의 갑옷, 그 말단.

손가락 끝에 두른 부분을 길게 늘려, 채찍처럼 휘두른다.

저게 바로 예은이의 새로운 전법, 염동력 장갑이다.

신체를 두르는 갑주와 공격, 둘로 나누어 운용해야 했던 염동력을 일원화한 싸움법.

문자 그대로, 공방일체의 능력이다.

물론, 궤적이 읽히기 쉽다거나 공격이 착탄할 때까지 딜레이가 있다거나 하는 문제는 있지만…….

적어도, D랭크 몬스터를 상대로 하기엔 과분할 정도다.

타고난 센스.

거기에, 본디 둘 이상의 염동력을 동시 운용하며 다진 세심한 컨트롤.

이를 일점에 집중함으로써 발휘할 수 있는 섬세함까지.

비유하자면, 마치 폭풍과 같았다.

요호를 토막낸 염력의 채찍이, 지친 기색조차 없이 다음 타겟을 추적한다.

어마어마한 효율.

한 번 공격할 때마다 마력을 소비하는 대신,이미 형태가 구축된 염동력을 휘두른다.

덕분에, 지금까지 예은이가 행사한 염동력의 총량은 도저히 일개 학생 수준이라 폄하할 수 없을 정도였다.

본디 단순한 능력만큼은 현역 C랭크 헌터에 준하던 예은이다.

추가로 거기에 알맞는 전법까지 취하고 있는 지금은, 어쩌면 B랭크 몬스터까지 단독 사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달려둘던 요호가 둘로 나뉜다.

이빨을 드러내던 요호가 가죽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갈려나간다.

꼬리를 털던 요호가 마치 반죽처럼 짓이겨진다.

뼈가 뒤틀리는 요호.

전신이 마른 걸레처럼 뒤틀리는 요호.

그런 시체의 산을 넘어, 마침내 접근한 요호가 발톱을 내밀고 달려든다.

콰자작!!

거대한 질량.

염동력으로 지탱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은이의 몸이 주욱 뒤로 밀려나간다.

왈칵, 팔에서 샘솟는 핏방울.

다만, 그 모습을 보고도 예은이는 슬쩍 미간을 찌푸리는 게 다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키에에에엑!!"

요호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금 전, 요호와 격돌한 염력의 장갑이 순식간에 형태를 바꾼 탓이다.

단순한 염력만으론 몬스터의 공세를 받아넘길 수 없다.

내 조언 탓에 백병전 능력 행사를 멈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체술을 연습해야 한다는 불합리.

예은이는 이를 본인의 탁월한 감각으로 충당했다.

마치 가시처럼 밀집된 염동력이, 맞닿은 여우의 발톱 밑을 파고든다.

그대로, 변형.

송곳.

혹은 고슴도치처럼, 요호의 체내에 파고든 마력을 순식간에 조작한다.

여우의 체내 마력을 꿰뚫고 솟아오른 염력의 바늘이, 뇌장을 후벼판다.

발톱을 저민다. 가죽을 뽑는다. 뼈를 발라내고, 살을 도려낸다.

그렇게.

달려든 요호는, 스스로의 내부에서 치솟은 마력의 창날에 당해 넝마짝이 되고 말았다.

내장을 포함한 전신이 뜯겨져나간 모습.

예은이를 한 번 공격한 댓가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가혹하다.

하지만.

쓸모 없는 행동은 또 아니었다.

그 틈새를 노리고, 세 마리의 요호들이 다시금 예은이를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접근한 요호를 상대하기 위해 한 순간 빈틈을 보인 탓이다.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했다고는 하나, 예은이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

즉, 백병전 거리에서의 판단이다.

이건 센스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

필요한 건, 보충하기 위한 노력과 충분한 시간이겠지.

동족들을 내리 희생한 끝에, 간신히 비집어 연 틈새.

거의 동시에 가까운 요호들의 도약은, 사실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한 마리라도 대응하려 드는 순간, 동시에 다른 두 마리의 발톱이 예은이의 육체를 찢어놓고 말겠지.

실로 여우다운 함정이었고, 실제로 예은이가 이 사실을 눈치챘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상대가 나빴다.

그런 건 대등한 실력의 상대에게나 먹히는 기술이니까.

제딴에는 나름 간합을 맞추겠다고 미묘하게 타이밍을 엇갈리게 해 봐야, 찰나 속에서 수백 번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이에겐 역으로 빈틈을 제공할 뿐이다.

다음 순간, 도약하던 여우들이 바닥에 쳐박혔다.

어느새 그 앞발에 휘감긴 쇠사슬을, 내가 그대로 잡아당긴 탓이다.

콰작!!

대지와 격돌한 요호의 머리통이, 내 힘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난다.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매료의 마력.

물론,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예은이가 시간을 벌어준 덕택에, 방독면을 쓸 수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마력으로 이루어진 독가스 따위를 걸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특주품이다.

당연히, 요호의 마력 냄새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제작자들도 이런 용도를 기대하고 만든 건 아니겠다만.

"고맙다, 예은아. 요호들의 마력도 지긋지긋하던 차였지. 이제는 도축업자 박우찬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어, 괜찮아요. 감사 인사 맞죠?!"

"거럼."

이런, 요즘 애들이라 그런가?

설마 이 고전 명작을 모를 줄이야.

멋쩍은 반응에 뒤통수를 긁적이기도 잠시, 나는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요호라 해 봐야, 결국 D랭크 몬스터.

방독면이 없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 내겐 별다른 문제도 아니었다.

실제로, 갑자기 나타나 우리들을 포위한 요호 무리를 정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 이후로 고작해야 10분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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