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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93화 (93/371)

〈 93화 〉 움직이는 섬

* * *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싸우는 건 잘 못하거든. 그보다, 단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 없었으니까.

박우찬의 뒤를 따르며, 이예은은 방금 전 들은 말을 반추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그리 언급하는 박우찬이 태도에, 무심코 그녀 또한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을 리 없는데.

마치 지나가는 말처럼 이야기하던 박우찬의 모습을 떠올린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별을 맛보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슬픔을 삼킨 걸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비극을 거쳤기에, 그토록 자연스레 단념을 입에 담을 수 있게 된 걸까.

그제서야, 이예은은 진정한 의미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눈 앞의 등은, 단순히 자신의 오빠와 알고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두 번의 대침공을 겪으며, 상실에 익숙해진 퇴역 헌터.

어쩌면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거 아닐까 무심코 생각해버릴 만큼, 남에게 내색하지 않는 걸 당연시하는 사냥꾼.

박우찬은, 영웅이라 불리는 이준구의 전우였다.

"나는, 네가 나를 닮지 않았으면 해."

언젠가, 이예은은 자신의 오라비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그렇게 먼 과거의 이야기도 아니다.

얼마 전.

실습 시간 당시, 집으로 돌아온 이예은을 향해 이준구는 저리 말했다.

동시에,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어째서 그녀가 자신의 전법을 모방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건지.

자신의 시그니처, 그 실체와 리스크를.

이예은의 능력과 맞물리지 않는 성질을.

그리고.

"너도 이제 알고 있잖니."

어렸을 적, 그녀에게 있었던 일까지도.

그랬다.

이예은은 이제 알고 있었다.

자신과 오빠가 아직 다른 집에서 살고 있었을 적.

고아원이었던가, 아니면 친척 집이었던가.

마치 도서관같은 장소에 홀로 남겨진 그녀.

동시에, 그녀를 향해 달려들던 몬스터.

마지막으로, 그 몬스터를 일격에 양단하던 소년 헌터의 뒷모습까지.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비슷한 경험이, 뇌간에 파묻힌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오라비를 동경하는 건 단순히 자신을 구해주었던 덕분은 아니었다.

허나.

그녀가 되고 싶었던 헌터는, 이준구가 아닌 박우찬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여하간, 몇 년이나 믿고 있던 사실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셈이었으니까.

내게 이 사실을 납득시키기 위해, 오빠는 몇 년을 기다렸던 걸까.

어렸을 적, 구해줘서 기뻤다는 말에 고개를 가로젓던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 자신은구슬픈 미소를 짓는 오라비의 모습을 보고 있기 힘들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던가.

과연,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터무니없는 고집쟁이였던 모양이다.

이래서야, 오빠도 진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겠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토록 고집하던 능력을 단념한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빠의 설명에 납득했다던가, 박우찬에게 설득당했다던가.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박우찬을 보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본래 사용하던 전법이 몸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날이 갈수록 명백해졌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만이 흘러가던 어느 날, 이예은에게도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다소 갑작스레 시작된동아리 시간 때문이었다.

거기서, 이예은은 다른 과목 대신 박우찬의 수업을 선택했다.

어째서일까,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눈 앞에는 신서아 헌터라는 유명인도 있었는데.

모르겠다.

어쩌면 단순한 반발심이었을지도 모르지.

네게 맞는 전법은 따로 있다 하루아침에 부정당한 그 상황에.

예상 밖이었던 건 두 가지.

하나는 박우찬의 동아리 수업이 예상 이상으로 유용했다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동아리에 참석한 면면들이었다.

아무래도,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학생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던 모양이다.

답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반, 조금 어처구니없다 생각하는 마음이 반.

솔직히 말하자면, 당황스럽기도 했다.

자신에겐 일생에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추억조차, 박우찬에겐 지나가던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에, 묘한 조바심을 느꼈던 건 과연 어째서였을까.

신서아 헌터와 얽힌 일을 해결하는 박우찬의 모습에서, 이예은은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을 했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면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깨달았다.

"네가 닮고 싶은 건, 내가 아닐 거야."

도대체 그 한 마디를 꺼내기 위해 몇 년을 연습했던 걸까.

다른 때와 달리,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말을 덧붙이던 오빠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렇다.

자신이 닮고 싶은 건, 전법이 아니었다.

오빠.

혹은, 그렇게 착각하고 있던 박우찬.

이예은이 닮고 싶었던 건, 바로 그 마음이었다.

누군가를 안심시킬 수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 미소를 되찾아줄 수 있는 사람.

동화 속에 나오는 영웅과 같이, 보고 있으면 그저 안심할 수 있는 사람.

언젠가 그리 느꼈던 바와 같이, 이예은은 자신 또한 다른 이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오빠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그리고.

만약 내가 오빠를 닮지 않길 원한다면, 오빠는 내가 누구를 닮길 바랐던 건지.

이예은은 깨달을 수 있었다.

박우찬이 수업 도중 몇 번이나 강조했듯이,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니다.

형편 좋은 악도 없고, 클리어한다 해서 확실한 보수가 있지도 않다.

멋들어진 엔딩 롤이 끝나도 세상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쓰러뜨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대마왕도 없다.

그렇기에.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실패를 겪지 않는, 무적의 영웅 또한 없다.

대신.

싸우기 위해.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떠나보내면서도 그 사실에 영겁 좌절하지 않는, 스스로의 나약함에 자책하면서도 무릎 꿇지 않는.

괜찮지 않으면서도, 결단코 내색하지 않는.

잇몸에서 피가 날 때까지 어금니를 깨물면서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리고 정말로 익숙해져 버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아직도 손을 뻗고 있는.

……이 세상에, 무적의 영웅 따위는 없다.

마찬가지로, 이예은 또한 더 이상 무적의 영웅을 동경하지 않았다.

언젠가, 홀로 남겨져 울고 있던 소녀를 구하곤 말 한 마디 없이 사라져버린 사냥꾼과 같이.

세상에 흘러넘치는 탄식을 보고도, 여전히 사람들의 웃음을 위해 싸우는.

그녀는, 불굴의 사냥꾼이 되고 싶었다.

*

'갑자기 또 왜 저래.'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던 예은이가, 돌연 조용해졌다.

뚝 하고 입을 다문 꼴이, 무언가 골몰하고 있는 듯했다.

뭐, 나야 편할 따름이다만.

괜히 자극하는 일 없도록, 조용히 발걸음을 재촉한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따위는, 처음부터 들리지도 않았다.

아카데미 개교로부터 반년.

고작해야 반 년이라 하면 확실히 그 뿐이겠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기술은 어떻게든 때려박을 수 있었다.

풀숲 위를 걷는다 해도, 이제 와서 흔적 따위를 남길 리 없지.

슬쩍, 다시 한 번 뒤를 살핀다.

실제로 예은이 또한 별다른 소리를 내지 않았다.

밟힌 풀 또한 머잖아 원래대로 돌아오는 장소만을 골라 딛고 있었고.

본래는 여기에서 추가로 어떻게 몬스터를 추적하면 좋을지 보여줄 생각이었지만…….

'조금 내버려 둘까.'

다소 익숙한 모습에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꼬맹이들은 어디까지나 첫 출진에 지나지 않는다.

몬스터와 싸워본 적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녀석들이 대부분이었겠지.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 부담으로 준비해야 하는, 진짜배기 사냥.

나아가서는, 추적 따위 실제로 해 보는 건 처음일 테니까.

지금은 내가 주도권을 잡고 일부러 화려하게 휘두르고 있어서 그렇지, 불현듯 정신이 들면 도리어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일개 지부가 몬스터의 손에 넘어갔다는, 대서특필될 대사건이고.

솔직히 말해, 낭패인 기분도 들었다.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으면 꼬마들은 데려오지도 않았을 텐데.

허나 어찌하리오,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신속하게 사건을 마무리하는 일 뿐이다.

해서.

우리들은 지금 산 속에 있었다.

신기루 현상을 조사하기에 적절한 장소는 아니다.

물론, 브로켄 산의 유령과 같이 산에 피는 신기루도 없잖아 있다.

그렇지만, 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지인들은 신기루가 나타나는 장소로 하나같이 바다를 지목하고 있다.

산에 신기루의 근간이 있을 확률은 아무래도 적겠지.

뭐, 남해 지부의 꼬락서니로 보건대 그 보고서가 정확할 거란 기대는 버리는 게 좋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보고서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맨땅에 헤딩하듯 처음부터 다시 조사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이상하단 말이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남해 지부를 잠식하고 있던 매료의 마력이 문제다.

나 또한 알고는 있다.

세계 각지에 있는 인어 전설.

서구의 세이렌 등으로 대표되는, 뱃사람을 매료하는 목소리 등.

그러나.

모든 전승에는 근간이 되는 현상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방금 전 언급된 인어 전설만 해도 그렇다.

생물학적인 모티브를 따지자면, 듀공 등.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수서생물을 바탕으로 했겠지.

다만.

본질적인 모티브는 거기가 아니다.

아름다운 모습이나 노랫말로 뱃사람을 유혹해, 바다로 끌고 가는 반인반어.

인어 전설이란, 아름다운 바다를 나타내는 표상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운 바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에 빠져,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지 못하는 사내들.

인어에 대한 전승은 바로 그런 익사자들로부터 기원한다.

즉.

'뭔가 어색해.'

막말로, 인어가 어떻게든 남해 지부를 장악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우리들을 반기는 건 매료에 걸린 남해 지부가 아니라 남해 지부 직원들의 시체였어야 한다.

인어의 매료란 그런 법이니까.

어디까지나 사람을 죽이기 위한 수단.

몽마 등, 사람의 정기를 빼내기 위한 수법과는 다르다.

게다가, 다른 문제도 있었다.

남해 지부가 땅 위에 세워진 건물이었다는 점이다.

아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왜냐하면 소위 말하는 인어란 결국 반인반수.

말하자면 켄타우로스나 미노타우로스에 가까운 생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반은 물고기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인류는 상반신이 인간이고 하반신이 물고기인 인어에게는 매력을 느껴도 대가리가 물고기인 어인에겐 역겨움을 느끼는 생물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 인어들이 남해 지부에 접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작가 중 한 명에 따르면, 인어가 뭍에 오르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도 아니니까.

크흑, 고맙습니다 안데르센…….

그래서, 반대로 생각해보고자 했다.

까놓고 말해, 신기루는 단순한 위장이라면?

실제로 문제가 되는 건 바다가 아닌 땅 위에 건설된 남해 지부였다면?

아니, 신기루도 뭔가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조사하라고 보내긴 했지만.

지금 당장은 협회 지부 근처를 조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뭐, 근본적인 문제로 바닷가를 조사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능력이 있다곤 해도, 바다는 지나칠 정도로 넓다.

본격적인 조사를 위해서라면, 역시 배가 필요하겠지.

때문에, 나는 가장 먼저 남해 지부를 중심으로 주변 일대를 분석했다.

가장 먼저, 지나칠 정도로 남해 지부와 가까운 장소를 제외했다.

아무리 그래도 남해 지부에 소속 헌터들이 이토록 가까운 장소에 둥지를 튼 몬스터를 눈치채지 못할 공산은 없었다.

반대로, 지나칠 정도로 먼 장소 또한 제외다.

내가 지부에 도착했을 당시, 지부 내의 전원은 이미 매혹당한 상태였다.

말이 협회 지부지, 설마 남해 지부에 속한 모든 이들의 활동 반경이 겹칠 리도 없다.

즉, 남해 지부에 손을 쓴 몬스터는 도리어 협회를 덮쳤을 공산이 컸다.

요 반년 사이, 지부 소속 직원들 개개인에게 손수 매혹을 걸고 다닌 게 아니라면 말이지.

당연하지만,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허면, 추론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

첫째, 단독으로 남해 지부를 상대할 수 있는 거물이 있을 가능성.

그리고 둘째, 남해 지부에 속한 인원들을 상회하는 대규모 무리가 있을 가능성.

대형 몬스터, 혹은 상당한 크기의 군락.

어느 쪽이든, 상당한 자원을 소비할 수밖에 없다.

그만한 부양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지역을 제외.

추가로, 대략 반 년 이상 사건 해결에 지장이 있었음을 고려해 인적이 뜸한 길을 우선으로 선별했다.

거기에 게이트의 위치 등을 추가로 고려하면, 남은 장소는 대략 셋 남짓.

그리고.

바스락, 작은 소리가 들렸다.

극한까지 날을 세운 감각이, 멋대로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당첨을 뽑은 모양이다.

"히약?!"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예은이의 옆구리를 찌르자, 예은이는 돌연 그런 소리를 냈다.

다소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소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농담이나 주고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다음 순간, 바스락대는 수풀 너머로 여우떼가 쇄도했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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