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움직이는 섬
* * *
박우찬의 이름으로 잡았다는 펜션은 썩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꽤 넓었다.
오히려 평소 머무르는 하숙집 반지하보다 깔끔할 정도였으니.
이제 와서긴 하지만, 반대로 궁금할 지경이었다.
어째서 박우찬은 굳이 반지하에서 살고 있는 걸까?
설마 돈이 부족할 리도 없고.
물론,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었다.
자하연이라 해도, 박우찬과 함께한 시간은 고작해야 반년 남짓.
몬스터 광고가 지나가는 모습조차 보기 싫다고 자진해서 지하에 쳐박혔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지.
때문에, 자하연 또한 당장엔 고개를 갸웃이며 짐을 풀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하연아."
"응?"
"선생님이랑 무슨 관계니?"
그런 분위기에 금이 간 건 바로 이예은이 지나가듯 던진 한 마디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몰려드는 시선.
각양각색의 눈동자가 자하연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머, 미안."
당사자인 이예은 또한 무심코 그렇게 말할 정도였다.
당연히, 진심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미안하긴 하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질문에 답을 얻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사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본인들은 나름대로 숨긴다고 한 모양이지만, 자하연을 대하는 박우찬의 태도는 다소 노골적일 정도였으니까.
예를 들자면, 길드 관련 사태 당시 자하연의 번호로 그녀들을 호출한 일이라던가.
뭐, 개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인 건 역으로 박우찬을 바라보는 자하연의 시선이었지만.
"응? 아니야, 그런 거."
그렇기에, 그녀들은 자하연의 말도 안 되는 핑계에 일절 개의치 않았다.
남녀가 같이 있기만 해도 커플 소리하는 게 바로 고등학생이고, 개중에서도 연애 얘기라면 환장하는 게 여고생이다.
자연스레 포위진을 좁히며 들어오는 전방위 압박엔 과연 그녀 또한 비명을 지르며 패배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알았어! 알겠어, 진짜! 뭐가,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오, 그럼 자하연 씨. 혹시 쌤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럴 때 가장 먼저 분위기를 타는 건 역시 황윤하다.
어느새 가져온 건지, 부엌에서 들고 온 숟가락을 마이크처럼 내미는 그녀.
그 뻔뻔함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흘긴 자하연이었지만, 황윤하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자하연 또한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믿음직한 오빠?"
"뭣이?! 오빠?!"
"얘들아!! 하연이가 할 말 있대!! 응?! 뭐라고 했어, 선생님 동생 하연아?!"
"다 죽어 진짜."
애써 태연한 척 쏘아붙이려 했지만, 어느덧 목소리는 완연하게 떨리고 있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그 모습에 오히려 환호성을 올리는 황윤하와 류지희의 모습이 그렇게 얄미울 수 없었다.
가끔씩 오빠가 둘을 향해 끽연하는 오랑우탄이란 비유를 사용하곤 하던데, 지금은 그 표현에 공감이 갔다.
"역시,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인 게 큰가?"
"으응? 그보단, 평소 모습?"
"오~ 평소 모습~"
"그냥 있는 그대로인 네가 좋아."
"류지희 자살해 제발."
"미안 미안~ 조금 놀라서 그랬지."
"하긴, 평소 모습이라고 하면 조금……."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발끈하려던 자하연은, 입을 열기 직전에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이 이상 놀림감이 되는 일은 사양이기도 했거니와, 말을 한 당사자가 다름 아닌 황윤하였기 때문이다.
방독면. 그리고 우주복.
'으윽, 머리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동시에 떠올린 자하연의 눈매가 자신도 모르게 구겨졌다.
오히려 그 모습을 사생활에서 목격한 적 없는 류지희만이 의아한 듯 눈을 굴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아, 그래도 멋있을 땐 있지 않아?"
"뭐, 그렇긴 하지."
"결정적일 때 딱 하고 나타나잖아."
"맞아 맞아."
그러더니 이제는 또 자하연이 아닌 박우찬에 대한 성토회가 시작했다.
확실히, 처음엔 거부감도 있었지만 한 번 털어놓고 나니 오히려 조금 편해진 기분도 든다.
정말로 중요한 부분인 한 지붕 아래에서 산다는 부분은 어떻게든 지킬 수 있었고.
그렇기에, 자하연은 마음껏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 편의 봐주고 있잖아 우리."
"그건 그렇지. 나만 해도 아르바이트 소개받았고."
"나는 아예 사건 끝나고 살해당할 거라 생각했어."
"에이, 그건 좀 심하다."
"진짜라니까? 뭐, 지금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확실히 박우찬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모로 일을 벌였던 걸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들에게 존경받는 이유까지.
황윤하에겐, 멘토이자 선배 헌터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침을 주었다.
류지희에겐, 예상 이상의 관용을 보여 그녀가 두려워하던 사태를 종식시키기까지 했다.
오로지 그녀들을 위해.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박우찬에게 딱히 그럴 의무는 없었다는 점이다.
고작해야 고등학생 한 명을 위해, 대인전 특화 헌터랑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는 없다.
고작해야 고등학생 한 명을 위해, 학교를 습격한 혼혈들에게 자비를 보일 필요는 없다.
박우찬은 그렇게 했다.
거기에, 박우찬의 이득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정말로 순수하게, 박우찬은 그녀들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이래서야, 겉으로는 어쨌든 존경하지 않기도 힘들다.
'뭐, 나는 인생이 달라졌지만──.'
황윤하에겐 앞으로의 지침, 류지희에겐 예상 이상의 자비.
그에 비해, 자신은 박우찬을 만나 인생 자체가 바뀌었다.
헌터가 되었고, 아카데미에 진학해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오빠와 함께 살면서, 많은 걸 배웠다.
심지어 목숨까지 두 번.
박우찬이 상대라면 겸허해지다 못해 다소 자학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자하연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훗, 이겼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도 어째서인진 알 수 없지만, 자신과 다른 아이들의 처지를 비교하며 은밀한 만족감을 느끼는 게 그녀의 취미 아닌 취미였다.
솔직히 말해, 음습한 취미라는 자각은 있다.
그렇지만, 내심으로는 오히려박우찬에게 있어 자신이 최고였으면 하는 마음이 싹트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개판이구먼.'
그리고.
비교적 냉정하게, 티아마트는 그리 판단했다.
마치 제 삼자같은 어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멀미 때문에 도무지 대화에 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크흑, 시발.
방 한구석에 쳐박힌 채, 울렁거리는 배를 문지르는 꼴이 퍽 처량하다.
여신이라 불리던 자신이 어째서 이러고 있는 건지.
본인도 모르게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잠시, 티아마트는 계집애들의 대화에 쫑긋 귀를 곤두세웠다.
고대의 여신이고 뭐고, 연애담이란 듣고만 있어도 즐거운 법이다.
타인의 연애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흠, 퍼런 머리 꼬마는 아직 자각이 없는 듯하다만.'
머리털에 녹조 든 계집애는 비교적 뚜렷한 편이었고.
다른 애들은 아직 씨앗만 있는 상태일까?
일전, 김민철 사태 당시 하숙집을 기웃거리며 나름대로 분석해 본 차트에 추가로 자료를 입력한다.
다만.
'저 꼬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구먼.'
이윽고 여신의 시선이 향한 건 바로 이예은.
자신이 화두를 던진 주제에, 여신과 마찬가지로 한 걸음 물러선 채 그녀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소녀였다.
……여신조차 알고 있는 유명인, 이준구의 여동생이라고 했던가.
'남매라고 들었건만.'
어찌 저렇게 다른고.
투명한 하늘색 눈동자가, 가을 하늘처럼 아득하게 비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여신은 생각했다.
"우웨엑."
다른 건 모르겠고, 만약 다음 기회가 있다면 멀미약부터 챙겨야겠다고.
여하간, 눈 앞에서 연애 관련으로 수다 떨고 있는 계집애들이 있는데 자신은 한 마디도 못 할 상황이라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억울한 일이었다.
*
그 시각.
나와 서아는 헌터 협회 남해 지부에 도착했다.
목적은 물론 하나.
예의 사건이나 여태까지 파견한 헌터들이 남긴 소견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쉬운 일이 되지 않을 거라곤 예상했다.
만약 이번 사태가 단순한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를 입증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한다.
허나, 만일 이번 의뢰에 몬스터가 관련되어 있었다면?
이만한 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보고 하나 없다는 건 무언가 이상하다.
의뢰만 해도 거진 반 년에, 파견된 헌터만 해도 몇 명인데.
지부 측에서 주도적으로 은폐한 건지,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사정이라도 있었던 건지.
어느 쪽이든, 남해 지부가 얽혀 있을 거라는 건 사실상 확정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니까.
단순히 무능할 뿐이라면 차라리 낫다.
최악인 건, 정치적인 사정 따위로 남해 지부가 해당 사태를 은폐하고 있을 때다.
여하간, 지금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경우만 해도 여럿이었으니까.
남해 지부장이 스스로의 영달을 위해 사건을 필요 이상으로 은폐하고 있다거나.
반대로, 자신의 영전을 위해 이번 사건을 이관하길 바라지 않는다거나.
그 경우, 남해 지부는 아군이 아니라 오히려 적이라 판단해야 하겠지.
정보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왜곡된 정보를 주입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뭐, 나로서는 오히려 환영할 따름이다.
피아 식별은 귀찮으니까.
초기 단계부터 적과 아군이 확실해진다면 나로서는 편리할 뿐이고.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심하지~"
주욱, 시선을 흘렸다.
헌터 협회, 남해 지부.
이 남해 일대의 게이트를 총괄하는 건물 안에,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와 서아 뿐이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해 지부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상태였다.
한 눈에 봐도 자연스러운 상황은 아니었다.
"아니, 왜 남의 일처럼 말하는 거야?! 사부 때문이잖아!!"
"어허, 서아야. 누가 들으면 오해할라."
"오해고 뭐고 사실이잖아?! 아니, 뭔데 이거?! 들어오자 마자 갑자기 칼질이나 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리 외치는 서아.
말마따나 누군가 들으면 오해하기 딱 좋은 발언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듣는 귀는 없었다.
듣는 귀고 뭐고 전부 기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억울할 따름이다.
뭐, 일부 사실 정도는 인정할 수도 있겠지만.
서아가 보기엔 아무래도 남해 지부에 들어선 내가 갑자기 칼질을 한 걸로 보일 테고.
직후, 지부에 속한 모든 직원들이 동시에 기절했으니 내 탓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허나.
"서아야, 눈치 좀 키워라."
"내가 해야 할 말 아니야?! 아니, 것보다 지금 그런 말 할 때야?!"
"그런 말 할 때지, 그럼."
"……응?"
"얘네, 전부 환각 걸려 있었잖냐."
시그니처, 예쁘게 베기.
남해 지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무심코 내 시그니처를 휘두르고 말았다.
당연하지만, 축포 대신 터트린 건 아니다.
뭔가 좆같은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환기를 안 했나?
처음엔 그리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아닌 듯하다.
슈우욱.
극도로 예민해진 내 감각이, 마력의 흐름을 관측한다.
엷게, 옅게.
마치 안개처럼, 이 건물을 감싸고 있던 마력의 흐름.
무색 무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력에선 무언가 구린내가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내 시그니처는 이 건물 안의 누구도 두동강내지 않았다.
건물 그 자체나 사물 또한 마찬가지다.
방금 전까지, 남해 협회 지부 내지는 지부 내의 직원들을 감싸고 있던 마력을 양단했을 뿐.
직원들이 쓰러진 건 단순히 그 반동에 지나지 않는다.
환각 계통의 마력을 억지로 해주한 거니까.
영구적인 장애 따위는 남지 않겠다만, 저들에게 있어선 갑자기 눈 앞에서 현실이 붕괴한 기분이었겠지.
말하자면, 지금 이 상황은 스스로의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직원들의 의식이 멋대로 셧아웃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 시그니처는 어디까지나 메스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
바보도 아니고, 마력만 자르면 되는 상황에서 굳이 몸뚱이에 칼침을 남길 필요는 없겠지.
머잖아 직원들 또한 눈을 뜰 거다.
그리고.
"연장 챙겨라, 서아야."
내 시그니처가 이토록 깔끔하게 들어갔다는 건, 방금 전 마력이 몬스터의 소행이라는 뜻이다.
즉.
"토벌 확정이다."
"……내 생각인데, 사부는 공포 영화나 추리 소설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뭣이? 이럴 수가. 내가 어렸을 땐 셜록 홈즈가 꿈이었는데."
"뭐래 진짜."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음을 터트리는 서아.
그러나, 녀석 또한 A+랭크 헌터.
대침공 이후 야매로 딴 물건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업계 최전선에서 굴러먹던 사냥꾼이다.
때문에, 쓸데없는 반문 또한 없었다.
그렇게, 남해에 도착하길 반나절.
우리들은 이번 사건의 윤곽을 잡는 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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