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기말고사
* * *
이번 기말고사는 중간고사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시험을 치르는 장소다.
체단실이 아닌 게이트.
그래, 무엇을 숨기랴.
예의 실습 수업 당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임시 폐쇄되었던 게이트가 다시금 개방된 것이다.
물론, 다시 한 번 공수한 진실의 영약 덕분이다.
여하간, 예의 헌터 양반을 담당하고 있던 티아마트도 지금은 게이트를 비운 상황.
자연스레 그 친구의 신병은 최승준이 인도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게이트 또한 무사히 개방할 수 있었다.
예의 몬스터 출몰 이후 거의 반 년.
여태까지 조사에 별다른 차도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뭐, 녀석들이 몬스터를 들여온 수법을 생각하면 이제 와서 게이트에 문제가 있다고 나올 리도 없고.
문제는, 역시 실습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일까.
실습 수업 자체가 정지한 거나 다름없는 판국이었으니.
뭐, 그 덕에 시험을 출제하긴 쉬웠지만.
이번 기말고사 종목은, 단순한 게이트 탐사.
모든 입학생들이 공평하게 실습 시간을 가지지 못한 만큼, 평범한 탐사도 충분한 시험이 될 수 있으리라는 계산 때문이다.
하물며, 지금이라면 더더욱.
다양한 가르침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동아리 수업이, 이번엔 오히려 발목을 잡은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
기술이라는 건 본디 그렇다.
오랫동안 체화하지 않으면 제대로 다룰 수 없지.
고작해야 얼마 전, 새로운 기술을 습득한 학생들에겐 오히려 쓸데없는 선택지가 늘어난 기분일 테니.
여기에서 자신이 사용할 기술과 전법을 선택해, 적절하게 운용할 수 있는 척도를 실력이라 칭한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번 동아리 수업이 오히려 다소 심심한 기말 시험에 균형을 잡아주고 있는 셈이었다.
의도한 효과는 아니었지만.
내년이 되면 처음부터 동아리 수업을 시작할 테고, 마찬가지로 게이트 또한 어지간한 일이 없으면 폐쇄되는 일도 없겠지.
어느 쪽이든, 형평성은 맞는다.
단지.
'좌충우돌이구만.'
초행이니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겠지만, 나도 학사 일정도 전전긍긍하는 느낌이 장난 아니다.
뭐, 그래도 군계일학이라 할 만한 녀석은 있었지만.
일단 정필연.
동아리 수업을 통해 아버지와 그럭저럭 화해한 덕분일까?
어느덧 녀석의 검술엔 절묘한 조화가 깃들고 있었다.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에 검술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말했다던데, 아무래도 생각을 고쳐먹은 모양이다.
'나 참, 이래서 애들은.'
담임으로선 제대로 무엇 하나 해준 적도 없는데, 멋대로 성장하는 느낌이다.
괄목상대라고 해야 할까.
깔끔한 검술. 몬스터의 공격을 처리하는 실력.
어느 쪽이든, 눈에 띄는 화려함은 없다.
하지만, 견실하다.
재능과 난잡함으로 살아가는 청소년 헌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노련함까지 느껴질 정도로.
훌륭한 성취다.
그 다음은, 역시 이예은이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전법을 깔끔하게 포기한 뒤로, 이예은의 실력은 한층 일취월장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직 손에 맞지 않는 감도 있지만, 차차 익숙해지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저기엔 나 또한 한 손 거들기도 했다.
아니, 본래는 그럴 생각까진 없었는데 말이지~
결국 내가 한 일이라곤 네 전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뜯어고치라 말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는 게 문제다.
물론 내가 틀렸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당사자인 예은이가 보기엔 결국 몇 년동안 연습한 전법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때문에, 예은이의 새로운 전법을 준비하는 데엔 나 또한 도움을 줄 수밖에 없었다.
본래는 충실한 기초 단련 이후, 스스로가 고민한 끝에 짜내야 하는 거겠지만…….
'이번엔 다소 특이한 사례니까.'
그 외에, 우리 반에서 달리 눈에 띄는 학생은 없다.
굳이 따지자면, 윤하가 몬스터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달라붙는 느낌?
뭐, 내 수업은 결국 수수하니까.
당연한 일이다.
지희는 제 능력을 숨겨야 하는 판국이고.
문제인 건 역시 하연이 쪽일까.
다름이 아니라, 슬슬 성장이 한계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본인의 능력엔 문제가 없지만, 역시 헌터로서의 경험이 적다는 게 치명적이다.
요컨대, 지반이 불안하다.
물론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은 하연이와 같은 학생들을 기준으로 편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주변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인상은 역시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체술도 부족하진 않다. 능력도 아직은 발전 도상이다.
그러나, 공격력의 부재는 어찌할 수 없다.
제대로 몸을 만들기 시작한 건 고작해야 반 년째.
능력 또한 폭발력이 있는 타입은 아니다.
즉, 몬스터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쓰러뜨리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이 늘어난다.
시간이 소요된다는 건, 쓰러뜨릴 수 있는 숫자가 한정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지연된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기록 또한 자연스레 뒤로 밀리고 만다.
본인은 아직까진 개의치 않는 듯했지만, 속내는 어떨까.
'지나치게 초조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여하간, 내 수업은당장 눈에 띄는 결과가 나오는 타입이 아니니까.
으음, 어떡할까.
사실 하연이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실로 간단하다.
말이야 어쨌든, 제대로 된 공격 수단을 마련하면 그만이겠지.
그리고 내게는 하연이의 전법에 대한 구상도 있다.
아니, 그 이상으로 직접 보기도 했으니까.
까놓고 말해, 하연이의 스타일에 어울리는 전법을 찾았다.
폭발력이 없는 능력.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체술.
그에 비해 썩 가녀린 신체는, 저주라는 능력에 골머리를 앓기 마련인 상대로 하여금 선택지를 한정시키기 마련이다.
하연이와 마주친 헌터나 몬스터들은, 십중팔구 하연이를 직접 제압하려 들겠지.
그렇게 근접전을 유도한 상황에서, 깔끔하게 일격.
즉.
'김민철 그 새끼, 전술 하나는 잘 짰는데 말이야.'
아마도, 하연이에게 가장 적합한 전술은 김민철이 마이너 카피다.
능력을 이용한 백병전 유도.
이후, 쿼터스태프를 이용한 카운터.
적절한 소재를 사용한다면, 능력을 증폭시키는 촉매로 사용할 수도 있을 테고.
문제는, 단순히 기분이 나쁘다는 점이다.
아니, 정말로.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이예은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 호불호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예은이처럼 스스로의 몸을 망칠 정도라면 몰라도, 그냥쓰기 싫다고 하는 걸 강제로 쓰라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헌데, 자신을 납치한 납치범의 기술을 배우라니?
대충 듣기만 해도 기분 나쁜 이야기다.
때문에, 나로서도 지금은 조용히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최적의 전술을 포착한 상황에서 어중간하게 다른 전법을 가르칠 수는 없으니까.
제, 젠장.
도대체 뭐 하는 직업이야, 교사라는 거.
혹시 교대에선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한테 납치범의 기술을 가르치는 방법도 전수하고 있을까?
현실도피처럼 그런 생각을 떠올릴 즈음.
"저기, 아무 일도 없는뎁쇼?"
돌연, 내게 딴죽을 거는 녀석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 앞의 사내를 노려보기도 잠시, 곧 억지로 시선을 낮췄다.
여하간, 지금은 참고인 따위가 아니라 학부형이라는 이름으로 출석한 거니까.
둘만 있는 장소라면 또 모를까, 누군가 휴게실에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그렇게 좋은 눈초리는 아니다.
억지로 그리 생각하며, 나는 눈 앞의 남자에게서 눈을 돌렸다.
……오히려 나보다 더 불안해하는 듯한 태도.
거기에, 어정쩡한 시선 처리.
일전, 하연이의 과거를 캐내기 위해 접근하 고아원.
그 고아원의 원장이 지금 내 눈 앞에 있었다.
말했다시피, 명목은 학부모 상담.
최근 하연이가 결석했던 사건을 핑계삼아, 눈 앞의 사내를 호출한 덕택이다.
뭐, 아무리 그래도 하연이가 내 집에서 산다는 사실을 공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연이의 서류상 학부모 자리에는 눈 앞의 남자가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상담을 위해 부른 건 아니다.
본래 목적은 어디까지나예의 집단에 대한 확인.
동아리 시간에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으니.
무엇보다, 하연이의 사고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점도 있었고.
"저, 돌아가보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역시 그렇죠?"
"예, 역시 그렇습니다."
문제는, 이 놈이 도통 쓸모가 없다는 점이다.
아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야, 이런 시대다.
고아원 원장이 무슨 성경 속 성자라고 되는 줄 착각하면 곤란하긴 하겠다만.
보나 마나, 대다수 원장들은 아이들에게 별다른 관심도 없을 거다.
그리고 그건 이 원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의도적으로 관심을 배제했다고 해야 할까?
필시 예의 집단 때문이겠지.
아무래도 원장은 일부러 하연이를 의식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모양이다.
물론, 녀석들의 요청이 있었던 만큼 안전 확인 정도는 했겠지만.
이런 시대이니만큼, 원장은 알고 있었다.
세상엔 굳이 뒤를 캐지 않는 편이 좋은 일도 있다는 사실을.
때문에 나 또한 하연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을 뿐.
그러나 원장은 내 생각 이상으로 스스로의 신념에 충실한 친구였다.
내가 하연이에 대해 질문을 던진 이후, 이 양반에게 들을 수 있었던 말은 성의 없는 맞장구가 전부였으니까.
아, 예. 걔가 그런 면도 없잖아 있죠…….
이딴 말은 동네 아줌마도 할 수 있다.
거기에, 지금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기."
"왜요."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역시 착각 아니겠습니까?"
"아니, 착각일 리가 없다니까?!"
"그렇지만, 보십쇼. 벌써 절반은 시험 끝났잖아요."
"끄응."
아카데미 개교로부터 3개월.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6월 첫째 주.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의 예감과는 달리, 테스트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본교사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대체 뭐지?
아카데미 시험 기간엔 당연히 악당들의 습격이 있는 거 아니었나?!
내 경험과 직감, 그리고 웹소설에서 얻은 지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 제기랄.'
아니, 뭐지 이거?
이준구나 최승준한테도 십중팔구 습격이 있을 거라고 말해두기까지 했는데……!!
"저기, 이제 마지막 줄인데요."
"닥치쇼."
"아, 옙."
조용히 합죽이가 되는 원장 양반을 내버려둔 채, 나는 조용히 이마 위로 손을 얹었다.
확실히, 원장 또한 그렇게 말했다.
요 근래 자신에게 지령이 내려온 적은 없었다고.
혹시,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 쪽에 흘린 걸까?
잠시 그렇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건 아닐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멀리 있는 점조직보단 내 주먹이 더 가까우니까.
반대로, 저 쪽이 내통하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가능성 또한 거의 없다.
여태까지 우리에게 꼬리를 밟히지 않은 걸 점조직의 장점이라 한다면, 이건 반대로 점조직의 단점이기 때문이다.
조직을 이루는 각 지점을, 시의적절하게 제어할 수 없다.
세상 만사, 리스크와 리턴이 있는 법.
점조직 체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허면?
정말로 그 녀석들이 손을 떼기라도 한 걸까?
'그럴 리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기 시험이 종료될 때까지,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헌터 아카데미, 첫 기말고사.
설마 했던 무사 종료였다.
*
그리고.
이번에도 기삿거리를 찾아 아카데미를 방문한 수많은 기자들 사이에, 그 남자가 있었다.
속명은 이미 버렸고, 그를 별명으로 부를 만한 친구들 또한 남아있지 않다.
그렇기에.
평소 그를 알고 있는 이들은, 사내를 그렇게 불렀다.
교주.
우리 괴수 숭배 교단을 이끄는 교주라고.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그리고.
바로 그 교주, 세간에선 사상범이자 테러리스트라 불리는 악의 총수는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오고 싶어서 여기 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민철, 이 또라이 새끼!!'
……몇 년 전,갑자기 교단에 투신하겠다며 찾아온 A+랭크 헌터.
놈의 실력을 보고 중용했던 게 실수였던 걸까?
당연히, 교단은 그 이념 상 협회와 대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하 조직인 교단은, 세력의 규모에 있어 도저히 협회를 따라갈 수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멋지게 활약하는 비밀 조직 따위, 실제로는 꿈 속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자금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비밀 조직 따위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국가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비밀 조직은 필연적으로 재물의 흐름을 감출 수밖에 없다.
거기에, 공교롭게도 현대 사회에서 자금 추적이 힘들다는 건 당겨쓸 수 있는 돈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이니, 교주가 김민철이 가입을 환영한 건 실로 당연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김민철.
새로이 교단에 입교한 사내는, 퍽 싹싹한 인상의 청년이었으니까.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친구가 교단에 들어온 건지, 사내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을 정도로.
교주가 교단의 자금을 박박 긁어모아 김민철을 지원한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교단이 동원할 수 있는 힘은 아무래도 협회에 비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허나.
일정한 조직도가 있는 협회에 비해, 교단은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대놓고 밀어줄 수 있다.
김민철을 붙들어놓기 위해선, 적어도 협회에서 A+랭크 헌터에게 제공하는 이상의 대우를 약속해야만 한다.
그런 판단 하의 행동이었고, 실제로 교단의 간부들 또한 전원 동의했다.
그렇게.
김민철은 교단의 지원을 받아 S랭크 헌터에 필적하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바로 얼마 전, 마침내 시그니처를 완성했다 들었을 땐 교단에 속한 이들 전원이 만세 삼창을 했을 정도다.
그렇지만.
'씨발, 농담하지 마!!'
설마 그 기념으로 여자친구한테 프러포즈하고 오겠다며 나간 김민철이 그대로 뒈져버릴 줄이야.
깜짝 놀랐다, 진짜로.
무슨 교통사고도 아니고.
만일 교단의 행적을 집필한 웹소설이 있었다면, 당장 상하차 소리가 나왔을 정도로 막막한 고구마다.
요 최근 재미를 붙인 취미에 비유하며, 교주는 이를 바득바득 갈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 날 교단을 찾아온이들이 제공한 기록 영상에는 틀림없는 김민철의 죽음이 담겨 있었다.
문자 그대로, 완전히 불타버린 김민철의 시체에서 생생하게 퍼올린 사념 영상Thoughtography.
교단에 속한 헌터들 또한 검토해보긴 했지만, 조작된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 제공하며, 저들은 교단에게 앞으로의 행방을 물었다.
당연하게도, 교주로서는 그들의 은은한 복속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뭐 이딴 일이 다 있나.'
대침공 이전, 가상 화폐에 전액 투자했다 미국인 사업가의 언변에 놀아난 경험이 떠오를 정도였다.
자신이 교단에 투신한 계기를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바득바득 이를 가는 교주.
단, 그 날 그랬던 것과 같이 분통을 터트린다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하달한 명령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이 제공한 신분증을 사용해, 아카데미 내의 시설을 살피는 것.
말하자면 일종의 밀정 역할이다.
무슨 이유로 그런 지시를 내린 건지, 교주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단지, 교단 내에서 그런 일을 멋들어지게 완수할 수 있을 만한 인재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고 한탄했을 뿐.
……몬스터 숭배자. 괴수 숭배 교단.
그런 말을 들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건 모든 일을 배후에서 조작하는 흑막이다.
하지만, 그 실체는 이렇다.
교단의 최고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자신이, 이제 와서 고등학교나 시찰하고 있는 꼴이라니.
그 사실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교주는 자신에게 하달된 지시를 완벽하게 이행했다.
어쩌면 아카데미 뒤에 있는 협회와 갈등을 빚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이제 와선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협회와 전면적으로 갈등을 빚는 건 곤란하다, 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활동 자금을 받은 덕택이다.
그 정도 자금만 있으면 김민철을 지원하느라 기운 교단의 세도 어느 정도 바로세울 수 있겠지.
문득, 교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몬스터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한 투자.
혹은, 이 나라가 몬스터에게 무너질 경우를 대비한 보험 정도에 지나지 않았건만.
'어쩌다 이렇게 됐을꼬.'
수많은 범죄자들을 통솔하는 범죄 조직의 총수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막막한 한숨이다.
그렇지만, 물밑의 싸움이란 본디 그런 법.
박우찬의 상상과는 달리, 암투란 이처럼 다소 치졸한 면이 있기 마련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