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병문안
* * *
하연이의 병실은 5층에 있었다.
똑똑, 가벼운 노크 소리.
그 뒤로도 내심 숫자를 세길 몇 초, 나는 그제서야 천천히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병상에 누워 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하연이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바라보는 선분홍색 눈동자가, 살풋 하고 휘었다.
뺨에 댄 거즈가 눈에 밟히긴 했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그리 큰 상처가 남은 건 아닌 듯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았다고 해야 할까?
당시 하연이는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었고.
티아마트의 치료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뭐, 덕분에 지금은 저렇게 평소처럼 웃을 수 있는 거지만.
"오셨어요?"
"옹야. 몸은 좀 괜찮고?"
"네, 덕분에."
"덕분은 무슨. 됐고, 학교에는 내가 말해뒀으니 푹 쉬기나 해."
"감사합니다."
그리 말하며 꾸벅 고개를 숙이는 하연이.
나도 모르게 눈을 돌리자, 정작 하연이는 내 반응에 의아해하는 듯했다.
'이런.'
의심을 피하기 위해, 들고 온 과일 바구니를 적당히 내려놓았다.
너무 뜬금없는 선물에, 하연이가 꺄르륵 웃음을 터트리기도 잠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화를 내기 위해 입을 연다는 건 퍽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아프진 않다고?"
"네. 이젠 괜찮아요."
게다가, 하연이의 대답 또한 내 씁쓸한 기분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더했으면 더했지.
아니, 하연이로서는 솔직히 대답했을 뿐이겠지만.
단지.
'이젠 괜찮다, 라.'
이제서야 괜찮아졌다는 건, 다시 말해 이전까진 괜찮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당연한 일이긴 했다.
여하간, 티아마트의 회복을 받고도 입원한 처지다.
괜찮을 리가 있나.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연이는 지금도 태연한 얼굴을 한 채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나저나, 신기하네요."
"응? 뭐가?"
"헌터가 튼튼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그런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하연이는 돌연 그렇게 말했다.
동시에, 제 뺨을 쭈욱 잡아당기기까지.
마치 우스꽝스러운 광대처럼 보이는 그 모습에, 그러나 나는 역으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연아."
"으, 네?"
"미안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말을 했다.
때 아닌 한숨에 혼날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걸까.
한껏 어깨를 움츠리고 있던 하연이가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나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여하간, 이번에 하연이가 납치당한 건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나 때문이었으니까.
김민철이 하연이를 노린 이유도.
하연이가 김민철을 알아보지 못한 까닭도.
하다못해 하연이가 납치당하게 내버려 둔 것도.
전부 내 잘못이다.
"이번 일은 정말로 나 때문에 일어난 거니까."
"아뇨, 아니에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납치범이 이상한 거지."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었다.
목구멍 너머로 튀어나올 뻔한 격렬한 동의를 반강제로 억누르며, 다시 한 번 입을 연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죠?"
"그래도 내가 이 말은 꼭 해야겠다."
"오빠, 지금 말투 꼭 드라마 같아요."
"다음에는 그냥 말해도 돼."
마치 장난치듯 그리 말하던 하연이 또한, 이 말엔 침묵을 지켰다.
다소 추궁하는 모양새가 된 건 나로서도 미안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이야기를 피하려 하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 때문에 납치당한 애가 억지로 쾌활한 척 행동하려 들고 있으니 더더욱.
……일전, 하연이를 납치한 김민철은 그대로 하연이를 심문했다고 한다.
거기에 대해 하연이는 줄곧 침묵으로 응수했고.
그러자 김민철은 하연이에게 손을 올렸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연이는 어떠한 질문 하나 답하지 않았다.
단락적으로 보면 오히려 칭찬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하간, 내가 김민철을 찍어누를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내게 있었던 정보의 우위 덕분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하연이 덕택에 내가 이길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하연이는 군인이 아니다.
비록 군인이나 다름없는 위치의 생도라고는 하나, 그런 쪽의 훈련을 받진 않았으니까.
하물며 하연이가 헌터라는 사실을 자각한 건 고작해야 반년 전.
심지가 곧다는 말 한 마디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떻게 고작 여고생이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그토록 완강하게 저항할 수 있었던 건지.
대견함. 미안함. 안타까움.
그리고 의혹.
하연이에 대해 의심하는 게 아니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묻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에.
'이젠 아프지 않다. 헌터가 튼튼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신기하다, 인가.'
그건 다시 말해, 하연이가 장애나 심각한 부상을 감수하기까지 하면서 침묵을 고수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다못해 정말로 중요한 정보였다면 모를까, 고작해야 내 취미 하나를 위해.
왜 거기까지?
나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런 만큼,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 그랬던 건진,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도 들을 수 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역시 다음에 이런 일이 있었을 경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정해두는 거겠지.
그리고 나는 하연이가 중국에선 몇푼 하지도 않을 내 개인정보보단 스스로의 안위를 생각하길 바랐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계집애가 얻어맞고 있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까짓거 알려주고 말지.
그렇지만.
"하연아? 대답."
정작 하연이는 대답을 피하고 있었다.
비록 계속되는 재촉에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어조는 아니었다.
"싫어요."
"응?"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세요?"
"어, 어어."
"그 때, 오빠가 절 구해주셨잖아요."
"음, 그렇지?"
난생 처음 듣는 하연이의 거부 의사.
나도 모르게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는 사이, 하연이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에요."
"엉?"
"오빠는 이미 제 목숨을 한 번 구해주셨으니까요."
"그, 그런가?"
"네. 아무리 그래도, 이 이상 빚을 질 수는 없어요."
빚?
갑자기 튀어나온 낯선 표현에, 잠시 사고가 따라가지 못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난 뒤에야, 나는 하연이가 사용한 그 표현이 자신의 인생을 뜻하는 단어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애초에 갚을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운 은혜인걸요. 이 이상 폐를 끼치는 건, 역시 아니라고 봐요."
"아니, 하연아."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말하는 하연이.
나도 모르게 이마 위로 손을 짚고 말았다.
아니, 뭐 이런.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똑부러진다고 해야 하나?
정말로?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 없을 만큼 냉정한 계산식에, 어질어질한 기분이 들었다.
뻔뻔한 것보단 낫겠지만, 설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너무 정이 없는 대답이라 나도 모르게 살짝 상처를 받고 말았다.
나, 그렇게 매정한 인상인가?
아무리 그래도 고작 열 몇 살 된 계집애한테 빚 운운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 대답 고맙다."
"뭘요."
"응. 그래도,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단다. 그럴 땐 그냥 말해도 돼."
"……혹시 제가 이번에도 방해가 됐나요?"
"설마. 도움이 되기야 했지. 했지만, 그래도 다음엔 네 몸을 챙기라 이거지. 물론, 가급적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내 말에 시무룩한 기색을 보이는 하연이를 위해, 허겁지겁 덧붙였다.
그러자, 이번엔 고개를 갸웃거린다.
잘 했다면서 왜 저렇게 말씀하시는 걸까?
그리 생각하는 게 눈에 밟힐 정도였다.
'육아 존나 어렵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젠장, 요즘 여고생들은 다 이러나?
아니, 그럴 리 없겠다만.
만약 저랬으면 여고생은 서브컬처 최강의 종족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인류 최강의 종족이 됐을 거다.
일본도를 든 여고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알잖니? 오빠 꽤 강하거든. 정말로 괜찮아. 그러니, 다음엔 네 안위를 먼저 생각하렴. 알겠지?"
대답은, 없었다.
쓰읍, 혀를 차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처음엔 화를 낼 생각으로 오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고작해야 취미 하나를 지키기 위해 얼굴이 뒤바뀔 정도로 맞는 걸 감수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로서는 그리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하연이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솔직히 말해, 엄청 부담스럽기도 하고.
아니, 까놓고 김민철이 처음부터 대뜸 내 시그니처에 대해 캐묻고 다녔어도 차라리 말해줘라 하고 다닐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내 좁쌀만한 정보를 숨기기 위해 하연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죽음을 감수하라 말하고 싶진 않다.
사람 죽이는 일만 해도 꺼림칙하기 그지없는데,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누군가에게 죽음을 강요하다니.
영 껄끄럽지 않은가.
꿈에 나올 것 같고.
허나, 정작 당사자인 자하연 양은 영 뚱한 표정이었다.
사실상 자신의 행동을 부정한 나한테 품은 불만, 도 없잖아 있겠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단순히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듯했다.
아무래도 하연이의 머릿속에선 내게 사람 인생 하나 분량의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확고한 모양이다.
'아니, 곤란해~'
빚이라고 해도 말이지…….
사람들이 의사나 소방관을 보고 채권 보유자라고 하진 않잖냐.
까놓고, 하연이 또한 지금 신세지고 있는 의사 선생님에게 목숨을 빚졌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 아닌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당사자인 하연이의 표정은 요지부동이었다.
'왜, 왜지?'
하연아, 왜 그랬니? 물론 대단한 일은 맞아. 맞지만, 다음부턴 그러지 마렴. 알겠지? 네가 다친 걸 보고 있으니 나도 마음이 아프구나.
딱 이 정도로 끝날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도 그 정도면 충분했을 거고.
다만.
아무래도 하연이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듯했다.
하연이에게 있어, 내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일종의 빚처럼 작용하는 모양이다.
문자 그대로, 내게 목숨 하나를 받았다.
그러니까.
목숨 하나.
목숨 하나까진 희생하는 일이 있어도, 내게 피해를 끼쳐선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연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정말로 김민철이 그녀를 죽이려 들었다 한들 내 취미 하나를 사수하기 위해 죽음을 감수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씨, 씨발…….'
아니, 부담스럽다고.
진짜로.
그냥 말해도 된다니까……!!
경제야 놀자로 공부한 수준의 경제 관념이 아니잖아, 이거!!
"거기에, 빚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 사실, 오빠도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널 구해준 건 아니거든."
"거짓말."
"응?"
"거짓말이잖아요. 저, 알고 있어요. 처음엔 그런 쪽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으응?"
"그렇지만, 오빠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절 그런 시선으로 본 적 없었는걸요. 그러니까, 거짓말."
단호한 대답이었다.
너무 단호한 나머지, 잠깐 생각해 본 뒤에야 하연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아니, 씹.'
그런 거 말고!!
내가 말한 건 단순히 하연이를 구했던 내 행동이 순수한 선의로 이루어진 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었고.
만약 하연이를 습격한 게 고랭크 몬스터가 아니었다면?
과연 내가 여기까지 도와줬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뭐, 아무래도 하연이는 다른 뜻으로 알아들은 것 같지만!!
아니, 그야 보통 그렇게 생각하긴 하겠지!!
'골때리네.'
나도 모르게 마른 세수를 하고 말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물론 내가 하연이를, 말마따나 뭐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데려온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 내가 너를 데려온 건 몬스터 미끼로 쓸 생각이었단다 하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하연이는 아직까지 내 체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딱히 숨길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말할 기회가 잡히질 않더라.
솔직히 말하자면, 이 나잇대 계집애한텐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기분도 없잖아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사실 내가 이런 체질이라 널 데려온 거라고 이야기한다면?
'위악떨지 마라, 박우찬.'
십중팔구 그리 생각하겠지.
차라리 환멸한다면 모를까, 내가 생각해도 더럽게 조악한 거짓말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문제다.
몬스터를 싫어한다구요? 그럼 왜 몬스터를 끌어들이고 싶어 하세요?
이런 의문에서 시작될 질문 세례를 고려하면, 말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낫다.
납득이라도 해 주면 또 모르겠지만, 뜨뜻미지근한 시선으로 바라볼 걸 생각하면…….
'으윽, 씨발.'
나도 모르게 턱끝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젠장, 이게 업보인가?
한 순간이나마 티아마트가 존경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고작해야 6개월 전, 말 한 마디 안 했다는 이유로 이런 상황에 놓일 줄이야.
하필이면 사이코패스를 키웠다는 이유만으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인간의 양심 구조에 대해 의문이 샘솟는 기분이다.
동시에 생각했다.
'미친 고아원장 새끼.'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저렇게 큰 거야?
가급적 빨리 고아원장의 이야기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결국 박우찬은 마지막까지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앞으로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며 신신당부하던 모습이 퍽 쓸쓸해 보였다.
바야흐로 시대의 가장이라 하기에 부족함 없는 등이다.
그렇게, 박우찬이 떠난 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닫히는 문을 보며, 자하연은 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 키득키득 웃고 있던 소녀와 동일 인물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매가리없는 목소리였다.
'곤란하네.'
아무래도 그녀는 오빠를 난감하게 해버린 듯했다.
……자신은 이미 박우찬에게 목숨 하나를 빚졌다.
그런 만큼, 설령 목숨을 위협받는다 해도 박우찬에게 폐를 끼쳐서는 아니 된다.
그리 다짐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박우찬은 반대였던 모양이다.
본인이 피해를 입을지언정, 그녀에게 피해가 닥치지 않길 바란다고 해야 할까.
괜한 행동을 했다는 생각에 다소 미묘한 기분이 반, 살짝 들뜨는 기분이 반.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자하연은 자신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웃고 있었다.
방금 전, 만발하는 듯한 웃음과는 달리 스며드는 듯한 미소였다.
처음 납치범에게 코뼈를 당했을 땐 회복은 완전히 물건너갔다고 생각했는데.
헌터의 육체 덕분일까, 아니면 티아 언니의 치료 덕분일까.
다행스럽게도, 지금 그녀의 얼굴은 조금 긁힌 듯한 자국만 제외하면 멀쩡했다.
이 정도면 다음 주 즈음에는 퇴원할 수 있겠다는 의사의 소견도 있을 정도였으니, 그조차 흔적도 남지 않겠지.
머잖아 퇴원해야 한다는 사실에 학생다운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자하연은 방금 전 대화를 복기하기 시작했다.
곤혹스러운 듯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쩔쩔매는박우찬의 표정.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레 훈계하듯 입을 떼는 얼굴.
대부분이 박우찬에 대한 기억이었으나, 그 사실에 자하연은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딱히 박우찬이 싫어할 만한 일을 할 생각도 없건만,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가벼운 떠보기에도, 반응은 없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널 구한 건 아니다.
박우찬은 그렇게 말했다.
다소 맥빠지는 박우찬의 표현에 내심 울컥하기도 잠시.
자하연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고자 했다.
문득 김민철이 남겼던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연인 따위를 겹쳐 보고 있다, 여자친구의 환영이라도 쫓고 있는 거냐…….'
물론 일개 납치범 따위가 오빠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사고방식이 달라도 너무 다르고.
그렇지만, 솔직히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다.
실제로 슬쩍 찔러보기도 했지만, 박우찬은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평소와 달리, 묘한 태도를 보이긴 했다.
들키기 싫은 속내를 찔린 듯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진 못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기엔 충분할 정도였다.
'여자친구라.'
옆에 내려놓은 손거울을 들어 스스로의 얼굴을 살핀다.
거즈가 덕지덕지 붙은 얼굴은, 거울 너머로 알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보기엔 나름 이 정도면 괜찮은 편 아닐까 싶기도 했다.
뺨을 찔러, 얼굴에 보조개를 만들어 본다.
'닮은 걸까?'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지만.
물론, 짐작은 갔다.
박우찬과 박우찬의 여자친구 사이에서 있었던 일은, 모르긴 몰라도 가볍게 다룰 만한 이야기는 아닐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마음이 들뜨는 걸 참기 힘들었다.
……만일 박우찬이 들었다면, 그녀의 예상과는 다소 다른 이유로 난감해할 이야기이긴 했다만.
뭐, 좋을 때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