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케이크를 먹듯 손쉽게 몬스터필리아를 때려잡는 방법
* * *
'완전히 당했군.'
스스로가 처한 상황에 대해, 김민철은 그리 평했다.
자신의 설계가 나빴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저번 전투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자신과 박우찬 사이에는 압도적인 정보 격차가 존재했으니.
그래서, 그걸 메꾸기 위해 여러 수작을 부린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이제 와선 이름조차 기억하지 않는 여고생을 납치한 이유 또한 마찬가지.
예상 밖인 게 있었다면, 그 여고생이 쓸데없이 고집을 부렸다는 점.
거기에, 이상할 정도로 빨랐던 박우찬의 난입 정도일까.
덕분에 시그니처는커녕 박우찬의 취미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싸움을 시작하고 말았으니.
그 결과가 지금 이 꼴이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술로 간신히 승리를 따내길 잠시.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포토스피어를 뿌리치고 달려든 박우찬의 일격에 그는 패배하고 말았다.
'이거야 원.'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 상황을 뒤엎을 수 있는 으뜸패 따위는 없다.
그렇기에, 김민철은 자신을 향해 내리치는 칼날을 시원섭섭한 기분과 함께 올려다볼 수 있었다.
……씁쓸한 감정 또한, 없지는 않다.
김민철은 천성이 전사였으니까.
패배에 대한 아쉬움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력의 열세를 정보와 전술로 뒤엎은 박우찬의 솜씨를.
전사이니만큼 더더욱, 김민철이 보낼 수 있는 건 순수한 찬사 뿐이었다.
그러므로.
김민철은 이미 납득한 이번 전투 대신, 그 이후의 일을 생각했다.
이번 싸움에서 승리한 건 박우찬이다.
자신이 아니라.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자신은 패배했다. 박우찬은 승리했다.
즉, 박우찬은 스스로가 김민철보다 격 높은 전사임을 증명했다는 뜻이다.
'흠.'
김민철에게 있어, 그건 단순한 승패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여신 티아마트의 마음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당대 최고의 전사 뿐.
김민철의 뒤틀린 관념은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를 진심으로 맹신하고 있었으니까.
허면.
만일 자신이 여기에서 쓰러지게 된다면?
설령 도망친다 해도 마찬가지다.
여하간, 박우찬이 김민철을 쓰러뜨렸다는 결과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럼?
자신이 쓰러진 뒤.
혹은, 자신이 다시 한 번 박우찬에게 도전하고자 실력을 갈고닦는 사이.
여신님의 곁에 박우찬이 남아있는 걸, 김민철은 납득할 수 있는가.
'안 되겠군.'
반짝이는 칼날이 자신의 정수리에 닿기 전.
김민철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력이 폭발했다.
*
"앗뜨거 씨팔!!"
칼날을 내리치기 직전.
갑자기 터진 불티에 나도 모르게 그리 외치며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민철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마력의 격동.
마력 감응 능력을 가진 내게는, 차라리 화산이 분화하는 듯 보였다.
색색깔로 뒤섞이며 분출하는 마력.
한 눈에 봐도 정상적인 마력 운용은 아니다.
거기에 대해 제대로 판단을 내리기도 전, 직감이 경종을 올린다.
"씨발, 또 뭐야."
만약 김민철이 틈을 보고 도망치려 했었다면, 차라리 이만큼 놀라지는 않았을 테지.
사실, 그 경우 십중팔구 내 칼날이 김민철의 모가지를 따버렸을 테고.
말이 십중팔구지, 갑자기 내 머리를 향해 운석이 떨어질 확률도 고려해 십중팔구니까.
그 정도로 결정적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거기까지 견적을 내고 보기에, 김민철의 마력 방출은 완전히 상궤를 넘어서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업계는 게임이 아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게임을 닮았더라면, 사회가 이토록 난장판에 빠지지는 않았을 테지.
때문에.
지금 눈 앞에서 김민철이 갑자기 각성하는 일 따위는 없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허면?
작금의 상황은 도대체 무엇인가.
두 번의 전투를 통틀어, 내가 어림하고 있던 김민철의 한계조차 능가하고 있는 이 마력은……!!
"아니 씨발, 그냥 깔끔하게 죽자 민철아!!"
자폭.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눈치 한 번 빠른데?!"
"이런 씨발, 민철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갑자기 왜 지랄이야?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학대당해 억압당했던 감정을 사회에 분출하겠다는 생각이 막 들고 그래?!"
"본인은 학대 따위 하지 않았느니라!!"
"후후, 잘도 말하는군.……그래. 전부 너 때문이다, 박우찬. 너만 없었다면……!!"
"씨발. 이 새끼, 논리라는 단어가 뭔지 모르나? 왜 이런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한 거지, 보호자?!"
"본인이 보기에 미친 건 지금 네 녀석이니라!!"
개판이었다.
그러나.
농담처럼 말하긴 했어도, 농담으로 풀고 갈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김민철 주변으로 분출하는 화염이, 칼날이 되고 장벽이 된다.
반사적으로 최승준의 마력 결정을 꺼내들면서도, 나는 빠득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는 힘들겠군.'
방금 전 전투와 마찬가지였다.
술책과 정보를 사용해, 나보다 대인전에서 한 단계 우위에 서 있던 김민철을 질질 끌어내렸듯이.
상황과 조건에 따라, 김민철 또한 최승준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최승준은 마력 결정 하나밖에 없는데, 김민철은 남은 마력을 바닥까지 긁어모아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라던가.
혹은, 아예 자폭할 기세로 마력 운용 기관을 오버클럭하고 있다던가.
이론 상, 인류에게 허락된 최고 출력.
세계 최고봉의 재능이라 칭송받는 최승준조차, 지금 이 상황을 뒤집는 건 불가능하겠지.
만일 김민철의 시그니처가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을 소진하는 일격이었다 해도, 녀석의 마력 결정을 통과할 수는 없다.
허나.
마력의 자릿수가 다르다.
최승준이 1의 마력으로 김민철의 마력 10을 능히 상대할 수 있다 해도 마찬가지.
단 한 번의 일격에 대해, 최승준의 능력을 빌릴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마력 결정 하나 분량.
거기에 비해, 김민철은 남은 마력 전부를 이번 일격에 때려 박고도 부족하다는 듯 목숨줄을 태우고 있다.
이래서야, 상대가 되질 않겠지.
단 일격에 모든 마력을 불사르는 광행.
거기에, 상궤를 넘어서는 오버 클럭.
아무리 최승준의 마력을 사용한 결정이라 해도, 이런 상황까지 상정하진 않았으니까.
문제는 저 새끼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건데…….
사실 별로 상관도 없다.
막말로 내가 미친 놈 머릿속을 어떻게 안다고.
그냥 아니꼬워 저러는 걸지도 모른다.
"이대로 내가 죽으면, 너는 여신의 사랑을 손에 넣겠지."
"제기랄, 설명 타임에 돌입했군. 야, 티아마트!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설득, 설득!!"
"사, 사랑이라니.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돌겠네 진심."
"네 실력은 인정해. 그렇지만, 나로서는 그런 결말을 납득할 수 없어."
"저기, 안 물어봤는데요."
"그러니, 나와 함께 사라지자.다행스럽게도, 그녀에겐 피해가 가지 않겠지. 아무래도 분신인 것 같으니까."
"크윽, 씨발. 이 새끼, 대화라는 게 뭔지 모르는 거 아니냐?"
"물론 그녀의 분신을 내 손으로 해치게 된다는 건 썩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녀의 앞에서 내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다는 건 꽤 만족스럽군."
제기랄.
이젠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뒷사정을 씨부리기 시작했어……!
예전엔 말 많은 악역이 상대라면 편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하물며,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좆됐네.'
설득 운운하는 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저 놈이 티아마트의 말을 듣고 멈출 놈이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사태가 되진 않았겠지.
집중해야 할 건 어디까지나 지금 이 상황이다.
스읍, 의식을 가다듬는다.
시그니처, 포토스피어와 달리 압도적인 마력량.
지금이라면 나 또한 시그니처를 사용할 수 있다.
예쁘게 베기.
이걸 쓰면 불의 커튼 너머에 있는 김민철의 모가지도 딸 수 있겠지.
단, 지금 이 상황은 김민철의 목을 친다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다.
말하자면, 김민철은 석유가 담긴 드럼통이라 할 수 있겠다.
거기에 구멍까지 뽕 뚫린.
그런 상황에서, 만약 내가 드럼통을 반으로 갈라버린다고 치자.
기름이 새는 상황이야 막을 수 있겠지.
새다 못해 아예 그릇이 사라져버렸으니까.
하물며, 만약 담배에 불이라도 붙인다면?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리고 말 거다.
마찬가지다.
시그니처를 날려, 김민철을 죽여버렸다고 치자.
허면, 그 다음은?
뒈져버린 김민철.
제어할 이 하나 없는 마력.
거기에, 주변으로 흩뿌려진 불씨까지.
발화 능력자인 김민철이 가공한 마력과 주인 잃은 불씨가 접촉하기라도 한다면, 어마어마한 폭발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발화에 특화된 S랭크 헌터의 마력 총량.
추가로, 만약 그 위에 김민철의 시그니처까지 끼얹는다면?
나나 티아마트의 마력까지 자원이 되겠지.
통상적으로, A랭크 이상의 헌터 내지는 몬스터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 화력은 핵폭탄 이상.
그렇다면.
S랭크 헌터 둘에, A+랭크 몬스터 하나.
전원의 마력을 연료로 삼은 자폭은, 과연 어떤 수준일까?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좆됐다는 거.
"씨발."
하여튼, 처음부터 생각했지만 김민철 이 새끼 나랑 상성 나쁘다니까.
욕설을 내뱉으며, 손에 쥔 두 번째 마력 결정을 깨트린다.
동시에, 칼날 위에 바른다.
전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명징한 빛깔로 번뜩이는 대검.
서릿발같은 그 모습을 확인하며, 나는 자칭 여신님을 향해 고했다.
"야, 꺼져."
"응?"
"방해밖에 안 되니까 꺼지라고."
내 몸 하나 건사해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진 않겠지.
격렬한 마력의 흐름.
거기에, 옆에는 티아마트까지 있다.
축지를 밟기엔 최적의 조건이다.
문제는, 그 경우 불어닥칠 후폭풍이다.
모르긴 몰라도, S랭크 헌터의 전 마력을 동원한 자폭.
최소 신도시의 절반은 휘말리겠지.
어마어마한 대재앙이다.
허면.
"여기서 막을 수밖에 없잖냐."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예의 자폭을 저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건 단 하나.
내 시그니처 뿐이다.
'폭발하는 순간에 맞춰서 자른다.'
어떻게 잘 맞춰 자르면 될지도 모르지.
최승준의 마력 결정까지 동원했다.
날아들 불티를 억누르는 일은 녀석의 마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순수한 운 승부.
운칠기삼이라는 말조차 아까운 상황이었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곧바로 도망쳐야겠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력을 김민철의 자폭에 헌납하지 않기 위해서다.
남모를 장소 어딘가에서 타죽는 게 고작일까?
참으로 염병할 노릇이었으나, 도리가 없었다.
하필이면 미친 놈한테 얽힐 줄이야, 재수도 없으려니 하고 생각할 수밖에.
뭐, 어느 쪽이든.
하다못해 둘은 빼돌릴 필요가 있다.
티아마트야 사실 뒈져도 상관은 없지만,A+랭크 분량 연료 탱크가 되는 게 문제고.
하연이까지 가면 정말로 피해자일 뿐이니.
'미안하게 됐네.'
슬쩍, 하연이의 안색을 살핀다.
살짝 부은 뺨을 보고 있자니, 절로 마음이 아팠다.
"하하하, 아주 눈물겨운 헌신이야. 이제서야 사랑이 뭔지 이해한 건가, 친구?! 그래, 짐작하고 있긴 했지. 그 애한테서 여자친구의 환영이라도 보고 있는 모양이지?"
"뭐래 시발."
나한테 여자친구가 어디 있어.
조용히 의식을 가라앉힌다.
어차피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망언, 괜시리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다.
노리는 건 한 순간.
최적의 각도로 검을 휘두른다.
상대가 몬스터라면 또 모를까, 지금은 최대한 집중력을 쥐어짜도 부족할 기예다.
그리 생각하며 대검을 고쳐쥐는 와중에도, 티아마트는 퇴각하지 않았다.
도리어 조용히 뇌까릴 뿐.
"어쩌다 이리 되었을꼬."
"엉?"
"도대체 무엇이 부족했던 걸까 싶구나. 어째서 본인은 민철이를 네 녀석처럼 키우지 못했던 건지."
먹이는 건가?
나도 모르게 그리 생각했다.
허나.
다음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흡뜨고 말았다.
티아마트의 손끝에 천천히 마력이 모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우마."
"뭐?"
뭔 소리야, 이 새끼.
본체라면 몰라도, 여기에 있는 건 어디까지나 단순한 분신에 지나지 않는다.
김민철의 자폭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하물며.
마력 감응 능력을 가진 내게는 보였다.
저 손에 어리는 건, 어디까지나 축복.
다른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은혜였다.
……불현듯, 어떤 예감이 닥쳤다.
내가 이 년을 처음 알게 된 날.
이 년은 협회 차원에서 내게 성좌의 가호를 내리려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 씨발. 잠깐, 뭐 하려는 거야 너."
"걱정하지 말거라."
"아니, 잠깐. 기다려. 씨발, 아니지?"
"걱정 말래두."
"아악!! 잠깐, 미친 년아!! 내가, 뭐든지 내가 잘못했다!! 그만, 그만둬!!"
몬스터의 마력이 내 몸 안에 들어오는 미래가 눈 앞에 아른거린다.
나도 모르게 눈이 뒤집혀 소리치길 잠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신은 무정하게도 그 마력을 풀어 발했다.
"아아아아악!! 씨발 어머니!!!"
……그러나.
다음 순간,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
오히려, 탄성을 뱉은 건 김민철 쪽.
여신 티아마트가 내린 축복이, 그의 몸에 깃들었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계약을 타고, 불꽃의 너울을 넘은 축복이 빛을 발한다.
그 사실에 당황하면서도, 김민철은 오랜만에 자신에게 깃든 여신의 은혜를 한껏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찬연한 마력광.
놈의 마력이, 한 단계 더 스스로에 알맞는 형태로 정제되는 모습이 보였다.
"……하, 하하하하하! 역시, 역시! 저를 선택하신 겁니까, 여신님!"
그렇게 외치려는 듯 입을 뗀 김민철의 목소리는, 그러나 어떠한 말도 빚지 못했다.
왜냐하면.
다음 순간, 김민철의 목이 하늘을 날았기 때문이다.
"어, 뭐야 씨발."
나도 그리 내뱉고 말았다.
김민철과는 다른 이유에서.
시그니처, 예쁘게 베기.
방금 전.
최고의 타이밍을 가늠하고 있던 그 기술을, 나도 모르게 휘두르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 정도나 하면 다행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가능성을 꿰뚫으며, 휘두른 검섬이 모든 것을 베어 갈랐다.
폐공장의 상층도.
김민철의 목숨도.
응집하고 있던 마력까지.
시그니처를 구성하고 있던 술식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다.
칼날을 타고 흐른 냉기가, 주변의 불꽃을 진압한다.
넘실대고 있던 마력이 단박에 머리 위로 솟구쳐 증발한 탓에, 일시적으로 발생한 진공.
그 너머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만 분의 일이나 하면 다행일 거라 생각했던 가능성은, 너무나도 손쉽게 내 손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푸화악!!
뒤늦게, 목이 잘린 김민철의 단면에서 보라색 피가 솟구쳤다.
바닥에 닿은 피가, 기묘한 소리와 함께 폐공장의 바닥을 부식시킨다.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저건, 몬스터의 피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이르길.
여신 티아마트는, 자신이 홀로 빚은 자식들의 피를 빼내어 독으로 바꿔 넣었다.
그러자 그들은 자비심을 잊었고, 온 몸에 악독함만이 남게 되었다──.
문자 그대로, 권능이나 다름없는 힘이었다.
성좌로서 지니는 능력.
여신 티아마트가 김민철에게 내린 은혜란, 그를 몬스터로 변화시키는 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만 분의 일.
인간이 상대라면 고작해야 그 정도밖에 못 될 가능성도, 지금 내겐 너무나도 손쉽다.
눈 앞에 S랭크 헌터가 아닌, S랭크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는 지금이라면.
신도심을 통째로 날려버릴 폭발을, 무의식적으로 휘두른 검기가 양단한다.
나도 모르게 휘두른 일격이, 이번 싸움에 종지부를 찍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