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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81화 (81/371)

〈 81화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 *

명확하게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김민철은 자신이 너무 늦게 태어난 건 아닌가 종종 생각하곤 했다.

물론, 그건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상상이다.

허나, 김민철은 달랐다.

저런 사람들이 으레 말하듯이, 10년이나 100년 따위가 아닌 2000년.

김민철은 자신이 2000년은 늦게 태어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혹은 소위 말하는 세간의 상식과 접할 때마다 그랬다.

현대의 율법과 윤리가 그에겐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고대의 여신에게 교육받은 탓일까, 그렇지 않으면 폭력의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일까.

아니, 어쩌면 단순히 천성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김민철은 알 수 없었다.

여신께서 직접 빌어오신 한 끼 식사에 멋대로 손을 댄 불한당들을 태워 죽여선 안 될 이유를.

다른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을 죽여 빼앗으면 안 될 까닭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오로지 여신의 말에 따라 인내하는 삶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김민철에게도 참을 수 없는 충동이 찾아왔다.

여신 티아마트.

자신을 보듬어주신 아름다운 여신께, 김민철이 사랑에 빠진 것이다.

……어쩌면 초조했던 걸지도 모른다.

본디 자신만의 여신이었던 그녀가, 협회의 여신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젠 자신만이 아니라, 수많은 헌터들이 그녀를 숭배할 거라는 현실이.

김민철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겨운 새끼들.

여신께서 가장 힘드실 때.

여신께서 가장 어려우실 때 옆에 있었던 건 오로지 나 뿐이었는데.

상황이 조금 나아지니까 벌떼같이 달려드는 개새끼들.

김민철에게 있어, 협회에 속한 헌터들은 동료가 아니라 시체에 꼬인 파리 새끼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김민철은 훈련을 거듭했다. 실력을 쌓았다.

여신의 사랑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당대에 가장 뛰어난 전사 뿐.

언젠가 여신이 베갯머리에서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김민철은 잊지 않았다.

물론 여신에게 있어선 동화 대신 들려준 이야기에 불과했겠지만.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거절당한 그 날.

절망이나 좌절은 있었으나, 원망이나 미움은 없었다.

여신의 몸과 마음을 손에 넣기엔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신탁처럼.

요구하는 건 힘. 보수는 여신의 사랑.

그렇게 이해했으므로, 김민철은 협회를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교단에 투신했다.

비록 자신이 상상하던 모습과 영 다른 집단이긴 했지만, 그래도 김민철은 신도들과 나름대로 친분을 쌓아올릴 수 있었다.

사실, 김민철은 사람과 어울리길 꺼리는 부류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협회에서도 높은 랭크를 받을 수 없었겠지.

굳이 따지자면, 어울릴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 뿐.

허나, 이번엔 달랐다.

협회 때는 여신의 당부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스스로의 뜻으로 사람들과 얽히길 선택했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배배 꼬인 내면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김민철에게 있어 티아마트란 어디까지나 자신만의 여신님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김민철은 확신하고 있었다.

만일 자신이 여신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라도 하는 날에는, 교단에 속한 무지렁이들 또한 눈이 돌아간 짐승처럼 달려들 게 뻔하다고.

여하간, 그토록 아름답고 위대하며 숭고하고 존엄한 분이시니.

때문에, 김민철은 교단 내에선 여신에 대한 이야기를 일절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여신이 얽힌 일만 아니라면, 김민철은 싹싹한 청년처럼 보이기도 한다.

덕분에 김민철은 입교한 이래 줄곧 나쁘지 않은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환경도 괜찮았다.

김민철의 무력은 교단 내에서도 고무할 만한 성과였으니까.

협회에 소속된 헌터로서 온갖 의무를 짊어져야 했던 예전과 달리, 김민철은 줄곧 본인의 수련에 매진할 수 있었다.

물론 가끔씩 여신님을 뵙고 싶을 땐 불꽃놀이를 터트리는 일에 동참하기도 했지만.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으나, 별로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김민철에게 있어,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사회가 아닌 여신.

여신님만이 자신의 본심을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말해, 김민철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조차 여신의 말 한 마디에 망설임 없이 불사를 수 있는 인간이었다.

게다가, 본인은 그런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점에서 더더욱 악질이기도 하다.

그런 김민철이, 정말로 오랜만에 귀향했을 때 보게 된 풍경이란!

자신과 여신 사이의 계약을 더듬어 찾아간 술집 앞.

박우찬과 함께 걸어 나오는 여신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정말로 박우찬이 여신을 사모하고 있는진 비교적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내를 향해 미소 짓는 여신의 모습을 본 시점에서, 김민철은 박우찬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으니까.

때문에.

"으응, 질리네."

김민철 또한 지금 이 상황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심문을 시작하고도 벌써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하연은 여태까지 단 한 마디도 허투루 내뱉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김민철 또한 자하연에 대해선 어느 정도 조사해 본 바가 있었다.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아카데미의 교사로 재임하고 있는 박우찬과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는 계집애.

고작해야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대략적인 사정은 짐작할 수 있었다.

현역 시절, 저런 녀석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구하지 못한 희생자의 가족.

자신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부모를 잃을 필요는 없었을 아이.

그런 녀석들만 데리고 키우는 녀석도 있을 정도였다.

보육원이라도 차릴 생각인가, 자신도 모르게 그리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할 정도였다.

그러므로, 김민철은 자연스레 박우찬 또한 그런 부류이리라 짐작했다.

자하연을 납치한 건 그런 이유였다.

박우찬을 자극하기에 가장 좋은 소재이자, 정보를 끌어내기에 가장 효율적인 인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학생 맞나?'

김민철은 헌터라는 작자들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민간인들이 으레 착각하는 바와 달리, 헌터는 결국 일용직 노동자 아니면 정신 나간 복수귀들이다.

광고 속 멋들어진 모습은 단순한 환상이나 연출에 지나지 않는다.

헌터란 결국 어쩌다 보니 힘을 가지게 된 일반인이거나,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은 슬픔에 잠겨 제 목숨을 담보 삼고 괴물과 사생결단을 벌이는 하류 인생에 불과했다.

그런 만큼, 김민철은 눈 앞의 소녀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헌터라지만, 그 본질은 여고생.

오히려 헌터인 만큼 다루기 쉬울 거라고 여기기도 했다.

헌터인 당사자마저 납치한 실력자가 눈 앞에 있었으니까.

어설프게 힘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압도적인 힘의 격차를 보다 쉽게 체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끔씩 폭력을 곁들이면 최고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된통 흐트러지고, 온 몸엔 발자국이 찍힌 지금까지 자하연은 일절 변함없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마음을 닫았거나, 폭력에 익숙한 거였다면 말도 하지 않았을 테지.

김민철은 알 수 있었다.

자하연은 폭력에 익숙한 게 아니다.

하다못해 아픔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 모든 걸 감수하면서도 여태까지 입 한 번 뻥긋하지 않은 거다.

왜?

아니, 어째서?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녀를 죽일 생각까진 없었다. 일찍이 여신께서 가급적 소녀에겐 손을 대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속내를 읽힌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 쳐도.

'아프지도 않나?'

자신이 물어본 건 정말로 간단한 질문 뿐이었다.

박우찬의 취미가 뭔지, 휴일엔 뭘 하고 있는지.

그런 정보들을 하나하나 취합해, 박우찬이라는 개인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려 했던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고작해야 박우찬의 취미 하나를 사수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완고하게 입을 다물 필요가 있나?

'어떻게 해야 할까.'

알 수 있다.

자하연의 흉중에 있는 건, 박우찬이 언젠가 자신을 구하러 올 거라는 기대다.

어떠한 근거 하나 없는 믿음.

신념이라고 해야 할까, 신앙이라고 해야 할까.

고작해야 10대 후반인 계집애에게 그런 단어를 사용할 줄은 몰랐지만, 김민철로서는 그리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김민철 또한 알고 있었다.

언젠가 박우찬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음탕한 눈으로 여신을 훑어본 주제에,아직까지 살아있으려 하는 그 뻔뻔함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온 결전의 때.

승패를 판가름하는 건 서로의 정보가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김민철에게 있어 지금 이 상황은 썩 기쁘지 않은 오산이었다.

설마 계집애 한 명을 상대로 이렇게 시간을 쓸 줄이야.

'곤란하네~'

여태까진 단순한 손찌검 정도였지만, 슬슬 본격적인 고문을 고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설마 취미 하나 알아내려고 수단을 골라야 할 줄이야.

손톱을 뽑을까? 아니면 능력을 쓸까.

다소 자랑스럽지 않은 경험 덕택에,김민철은 잘 달군 쇳조각 하나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이 시점, 김민철의 경계가 느슨해졌다고 한다면.

그건 오로지 자하연이 예상 이상의 끈기를 보여주었던 탓이겠지.

그리고.

김민철에게는 공교롭게도, 박우찬은 그런 빈틈을 놓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음 순간, 김민철의 시야를 불꽃이 뒤덮었다.

평소, 무의식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능력이다.

만에 하나, 자신의 신체에 위해가 가해질 경우 화염을 방출할 수 있도록.

말하자면 반응 장갑과 같은 원리다.

덕분에, 김민철은 협회 소속 헌터들의 기습 속에서도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흠?!"

휘감긴 작열이 비산한다.

어깨에 작렬하는 충격.

폭발을 꿰뚫고 엄습하는 오한에, 김민철은 순간적으로 전신에서 힘을 뺐다.

공격에 저항하는 대신, 오히려 순응한 셈이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적어도 뒤로 뛰는 쪽보단 낫다.

기습은 바로 뒤에서 날아왔기 때문이다.

배후에서의 일격.

도저히 이런 상황에선 사용할 수 없을 법한 대검이, 김민철의 어깻죽지를 베어 갈랐다.

눈에 익은 무기였다.

쿠웅!!

그렇게.

김민철의 육체가 폐건물의 벽에 쳐박혔다.

신도심 근처, 게이트 발생 위협에 방치된 폐건물.

김민철이 은신처로 삼은 건 바로 그런 장소였다.

그리고.

불길을 꿰뚫고, 습격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척 보기만 해도 우스꽝스러운 생김새의 거한이었다.

전신을 감싼 우주복은, 방화 처리야 되어 있겠지만 도무지 전투에 적합한 복장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하물며 얼굴 부근은 더더욱 그렇다.

시야가 방해될 정도로 둥그런 우주복 헬멧 너머로, 한층 더 단단하게 눌러 쓴 방독면이 보인다.

만일 누구가 보았다면 십중팔구 전위적이라 평할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을 눈에 담은 자하연은 이 폐공장에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탄식을 흘렸다.

타오르는 열기 때문일까?

여태까지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녹아내린다.

더운 숨과 함께 흘러나온 감정의 이름은, 기쁨이었다.

동시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뺨에 맞닿고 있는 부근의 모래가 축축해진 걸 느끼고 나서야, 자하연은 자신이 울음을 터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주복을 입은 괴한이 자신을 내려다본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동작 하나하나에서 배어 나오는 감정이, 묘한 안도감에 젖어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정도는 쉬이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오빠?"

갈라진 목소리는, 자신이 낸 건지 의문일 정도로 추레했다.

허나.

그 목소리에 천천히 무릎을 굽힌 우주복 속 사내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안타깝게도, 로맨틱한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지만.

뺨에 느껴지는 합성수지의 감촉에, 도리어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무력함. 그 이상의 안타까움.

그리고 그 이상의 고마움이 그녀의 마음 속에서 샘솟고 있었다.

이윽고 사내는 다시금 무릎을 폈다.

떨어지는 손길에 아쉬움을 느끼길 잠시, 곧 그녀는 자신을 향한 사내의 손짓을 눈치챌 수 있었다.

괜찮다.

걱정하지 말고 쉬어라.

걱정된다.

아픈 데는 없냐.

만감이 담긴 동작.

이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얼마 전과 같이, 수마는 갑작스럽게 몰려들었다.

눈꺼풀 너머의 암막에, 누군가 수면제를 숨겨두기라도 한 걸까?

핑 하고 도는 의식이, 그녀의 정신을 천천히 가라앉힌다.

마침내 안심하고 쓰러진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박우찬은 조용히 턱짓했다.

거기에 담긴 건, 분노라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짜증 뿐이었다.

사내의 동작에 모습을 드러낸 건, 폐건물을 들쑤시고 있는 불꽃과 비슷한 색깔의 머리카락을 한 여자다.

세로로 찢어진 뱀과 같은 눈동자.

지금 이 장소까지 박우찬을 안내한 여신, 티아마트는 그대로 자하연의 몸을 안아올렸다.

방해하지 말고 꺼져라.

박우찬의 동작엔, 틀림없이 그런 의미도 있었으니까.

게다가, 아무리 그녀라 해도 이 참상에는 화가 났다.

'민철아.'

꾹,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문다.

아무리 그래도 열 살은 어린 계집애에게 손을 올리다니.

아카데미의 교사로 재직하며 나름대로 학생들과 교류하기 시작한 그녀에게 있어선, 상당히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테러를 저질렀다? 위험한 사상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보단, 역시 눈 앞에서 목도한 소녀의 얼굴이 실감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티아마트 또한 침묵을 지키며 멍이 든 자하연에게 자신의 축복을 내렸다.

신도들에게 내리는 회복의 은혜가, 자하연의 몸을 훑는다.

마지막까지 그 모습을 확인하던 박우찬은, 소녀의 숨소리가 잦아든 뒤에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고 싶은 말은 여럿 있었지만, 하연이를 치료하고 있는 지금 건드릴 필요는 없겠지.

하물며, 시간은 많다.

김민철에 대한 토로 따위, 앞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

설령 자신의 결정에 불만이 있다 한들 마찬가지다.

여하간, 뒈진 놈은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법이니까.

바로 오늘.

박우찬은 저 김민철인가 뭔가 하는 놈을 죽여버릴 생각으로 여기에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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