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 *
눈을 뜬 자하연은 가장 먼저 목 뒤가 뻐근하다고 생각했다.
연수치기를 얻어맞고 기절한 탓이다.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기술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자신이 당해볼 줄이야.
아니, 어쩌면 그냥 인정사정 없이 내려쳤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프기도 했거니와, 그 이상으로 눈 앞의 괴한이 자신을 배려해 손속을 두었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아, 일어났니?"
도대체 언제 봤다고 저러는 건지, 생글생글 해맑은 미소로 그녀의 기상을 반기는 사내.
자신도 모르게 적의를 담은 눈초리로 그 얼굴을 노려보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의 표정엔 변화 한 점 없었다.
……납치범을 자극하는 것보단 낫겠지만, 그 이상으로 타인의 반응에 일절 개의치 않는 듯한 태도.
방싯방싯 미소짓고 있는 얼굴은, 웃고 있다기보단 웃는 낯을 제외한 모든 표정을 도려낸 듯한 섬뜩함이 있다.
가면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조악한, 웃는 얼굴을 프린트해 붙인 듯한 위화감.
어느 쪽이든, 눈 앞의 남자가 진심으로 웃고 있다곤 생각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건 무슨 짓이죠?"
"응? 꽤 태연하네. 아니, 어차피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포기한 걸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비록 햇병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자하연은 헌터였다.
그리고.
자만을 경계하라는 의미에서 굳이 말해준 적은 없지만, 박우찬은 자하연이 특정 분야에 있어선 D랭크 헌터에 준한다 판단하고 있었다.
랭크로 따지면 D.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결코 높은 수준은 아니다.
허나, 스스로가 헌터라는 사실을 자각한 게 고작해야 반 년도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파격적인 성장세다.
그리고.
눈 앞의 사내는 그런 자하연이 전혀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그녀를 납치했다.
어중간한 반항이 먹힐 만한 상대가 아니다.
어차피 지금 당장 그녀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박우찬이 구해주러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게 상책이리라.
욱씬.
그렇게 결론짓자, 마음은 편했다.
박우찬은 틀림없이 자신을 구하러 올 테지.
그리고 이 남자를 순식간에 때려눕힐 것이다.
문제는 없다. 당황할 필요도, 없다.
가슴 속의 술렁임을 억지로 잠재우며, 자하연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뭐, 어쨌든! 친구야,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거든?"
"친구 아닌데요."
퉁명스레 쏘아붙여도, 사내는 전혀 내색하는 경향이 없다.
오히려 태연하게 그녀의 말을 받아 이렇게 대답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제 친구가 될 기회를 주려는 거지~"
삭삭, 경박한 태도로 손을 비비는 남자.
그 모습이 마치 파리처럼 보여, 자하연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동시에, 몸 상태를 확인한다.
알고 있었지만, 손발은 밧줄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듣기론 마력을 무산시키는 구속구 따위도 있다고 하던데,어쩌면 그런 물건일지도 모르겠다.
보통은 헌터 출신 범죄자들에게 사용한다고 했던가?
이 밧줄이 그런 물건일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저주 몇 번 건다고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
오히려 경계심을 살 뿐이겠지.
현명한 판단이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늘어뜨리고 말았다.
얼마 전, 윤하가 납치당했던 모습이 떠오른 탓이다.
그 때는 설마 자신이 납치당하는 처지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었는데.
"내가 저번에 싸워보니까 말이야, 박우찬 그 친구가 내 능력을 알고 있는 것 같더라고?"
"하아."
"뭐, 협회의 비겁한 술책이겠지. 자식들이 말이야, 사나이들의 결투를 방해하고 자빠졌어."
물론 박우찬은 사내와의 싸움이 정정당당한 결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자하연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필시 사내 또한 그럴 게 뻔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조건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중언부언한 언동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활하며 치밀하다.
자하연은 눈 앞의 사내를 그렇게 평했다.
내뱉는 말마다 논리가 없는 건 여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진 귀신같이 파악하고 있다.
정보의 격차.
수업 중 박우찬이 몇 번이나 강조했던 개념을, 지금이라도 만회하려는 속셈이겠지.
……마치 고대인과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이야기의 앞뒤가 맞질 않는다. 서로 사고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러나.
눈 앞의 사내는, 틀림없는 전사다.
싸움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적을 죽일 수 있는지.
전투와 관련된 분야에 대해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집요했고, 그 이상으로 야만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말인데, 박우찬 그 친구 취미가 뭐니?"
지금 이 질문만 해도 그랬다.
남자는 박우찬의 능력을 물어보지 않았다. 전법을 캐내려 하지도 않았다.
무엇이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당장에 묻는다 해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질문도 아니다.
어쩌면 방금 전 사내가 언급한 '저번 전투'에서 미리 확인했던 걸지도 모르고.
물론, 그렇다 해서 취미를 물을 필요는 없었겠지만.
때문에, 역으로 짐작이 갔다.
저 질문은 자하연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잡담이자 동시에 힐문이었으며, 박우찬이라는 개인에 대한 탐문이기도 했다.
박우찬은 강하다.
이기지 못할 건 아니겠지만,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도 아니다.
그렇다면,정직하게 싸워야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정직하게 싸워 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전황을 분석한다. 상황을 읽는다. 거기에 도발을 섞어, 평정을 무너뜨린다.
억지로 만들어낸 빈틈을 향해, 착실하게 한 발.
목숨을 끊는 데에 필요한 건, 화려한 능력이 아닌 착실한 일격이다.
사내, 김민철은 이를 알고 있었다.
"응, 이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나도 박우찬 걔랑 친구하고 싶어서 그래~"
"퉷."
그러므로.
자하연은 김민철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그 얼굴에 침을 뱉었다.
과연.
김민철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꽤 어렵겠네~
뭐, 그건 그거고.
뭔가 빡치니까 패기로 했다.
퍽!!
"컥……!"
섬뜩한 소리와 함께, 김민철의 발길질이 자하연의 복부에 꽂혔다.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아카데미 교복조차 채 줄이지 못한 충격이, 내장을 뒤흔든다.
왈칵, 자신도 모르게 신물을 내뱉은 그녀가 몸을 웅크렸다.
그런 그녀의 머리칼을 붙잡아 올린 김민철.
반대쪽 손으론 그대로 따귀를 갈긴다.
짜악, 마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 참,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자신만만한 건지."
"으흑?!"
"아니, 사실 알고 있단다. 어차피 구하러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하아, 하아."
"뭐, 틀린 말도 아니지. 사실, 대침공 당시만 해도 그런 녀석들 많았거든~"
"도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자기가 놓쳐버린 사람을 대신해, 다른 대체품으로 만족하는 녀석들 말야. 어, 가족이나 연인 같은?"
김민철의 말에, 자하연의 눈이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크게 열렸다.
만족스러운 듯, 그런 모습을 눈에 담으며 낄낄거리는 김민철.
"나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야. 그렇잖니? 인연, 사랑이라는 건 소중한 거거든.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거 아냐?"
흔들리는 보랏빛 눈동자.
억지로 끌어당긴 푸른 머리칼 너머, 그 시선에눈을 맞춘다.
"그러니까 이해해 보려고 이렇게 따로 노력까지 하고 있는 거 아니겠니. 응? 조금만 도와주렴."
하지만, 여전히 대답은 없다.
여기에는 과연김민철 또한 푸욱 한숨을 내쉬고야 만다.
아무래도, 꽤 긴 대화가 될 듯하다.
*
결론만 말하자면, 티아마트를 기용한 효과는 지나칠 정도로 컸다.
오늘 새벽,먼저 등교한 하연이의 기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선 내 불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가 상대라면, 나는 틀림없이 도시 전역을 감지할 수 있다.
헌터가 상대라 해도, 마력 감응 능력자가 아닌 이상 부족함은 없겠지.
수치로 따지자면, 몬스터는 전원. 헌터라면 A+랭크 이하까진 확실하게 찰지할 수 있다.
하지만.
헌터의 능력 또한 결국 신체 능력의 일부에 불과하다.
컨디션에 좌우되는 등, 사용한다고 해서 언제나 같은 결과를 보장할 수는 없는 법.
예를 들어, 요 최근 몬스터의 습격이 없었다거나.
혹은, 이번 사건엔 하연이가 연관될 부분이 없다던가.
그런 식으로 방심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역시 빈틈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빈틈이 생긴다 해도 어중간한 헌터 따위는 걸러낼 수 있겠지만, 정작 김민철은 어중간한 헌터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결론만 말하자면, 김민철이 하연이를 납치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결론이 나왔다면, 이야기도 빠르다.
"안 되겠군, 이거."
적당한 거짓말에 불과했다고는 하나, 선처를 바란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지껄이길 하루.
나는 김민철을 죽여버리기로 결정했다.
아니, 정말로.
오히려 놀라울 정도다.
김민철 이 새끼,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어쩜 이토록 절묘한 방식으로 내 신경을 건드리는 건지.
처음엔 어디까지나 티아마트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으론 조금 징그럽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인 만큼 역시 티아마트보단 김민철 쪽에 기우는 마음이 있었다.
하필이면 나를 죽이러 올 줄은 몰랐다만, 그래도 살인엔 거부감이 있기도 했고.
그렇지만.
"선 세게 넘네."
응, 이건 안 되겠네.
개심이라던가 회개라던가, 그런 게 먹힐 만한 놈이 아니다.
고작해야 누가 티아마트 옆에서 술을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살심을 품더니, 이제는 아무 관계 없는 계집애한테 손을 뻗는 놈이다.
하물며, 이게 마지막이라는 보장도 없다.
하연이 또한 헌터라고는 하나, 김민철에 비하면 햇병아리에 지나지 않겠지.
그런 애한테 손을 댄 시점에서, 다른 일반인들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고 감히 누가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녀석 입장에서 따지자면 하연이나 하숙집 아주머니나 마찬가지겠지.
어느 쪽이든 아는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망설임 없이 하연이에게 손을 뻗쳤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마음 속에 그어둔 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내가 그은 선은 실로 심플했다.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 것.
본인의 욕망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힘을 휘두르지 말 것.
그게 바로 이 시대에서 도살자가 아닌 헌터로서 살아가기 위해 내가 정해둔 금선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바로 그런 선을 넘었다.
그 시점에서, 이 놈은 죽여버리지 않으면 답이 없겠다는 판단이 섰다.
때문에.
최승준에게 통보에 가까운 휴가 문자를 제출한 뒤, 나는 교문을 나섰다.
"자, 잠깐!"
그런 내 뒤를 티아마트가 따라붙었다.
다만, 지금 내겐 여유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김민철이 몬스터였다면 이성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 김민철의 명줄을 부지해주고 있는 건 녀석이 그토록 매달린 여신의 사랑이 아니라 친모에게서 이어받은 핏줄에 지나지 않았다.
티아마트를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린다.
과연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진, 역시 모르겠다.
단,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엔 협회와의 알력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는 점이다.
만일 티아마트가 녀석을 두둔하는 말이라도 꺼낸다면, 나는 오늘 티아마트의 모가지를 참수해버리고 말겠지.
협회와 전쟁을 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움찔, 내 시선을 받은 여신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신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나도 따라가마."
"꺼져."
그나마 김민철의 구명을 바라진 않았다만, 공교롭게도 지금 내겐 이 녀석의 요구를 받아줄 만한 도량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었으니까.
물론 티아마트 또한 나름대로 싸울 순 있겠지.
내 판단에 따르면, 본체는 대략 S랭크.
분신은 대략 A+랭크에 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방해다.
내가 싸우는 옆에 몬스터가 알짱댄다는 건 도리어 귀찮기만 할 뿐이다.
오히려 김민철보다 먼저 이 녀석을 죽여버리고 싶어 안달이 나고 말겠지.
아니, 지금만 해도 그랬다.
내가 지금 이 년의 모가지를 날려버리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이 년도 김민철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지만.
"애초에, 싸울 수나 있냐?"
"그건……."
"제대로 생각하고 대답해. 네 양아들, 네 첫 번째 신도를 죽여버릴 수 있겠느냐고 묻는 거야."
과연 티아마트 또한 이 질문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곧 모기가 기어가는 듯한 소리로 다시 입을 연다.
"방해하지는 않으마.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게다."
"네가?"
"그래. 잊었느냐? 녀석은 내가 축복한 헌터이니라."
나도 모르게 비웃음 비슷한 어조가 나왔지만, 티아마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확실히, 곤란하기도 했고.
무작정 나서긴 했지만, 나로서는 김민철의 위치를 포착할 수 없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 신도심 속 마력의 흐름으로부터 김민철의 위치를 역산하는 건 불가능했다.
내가 전문 감지 능력자도 아니고.
"어디 한 번 설명해봐."
"음. 알고 있겠다만, 성좌의 축복을 받은 헌터는 은혜를 내린 성좌와 모종의 계약을 맺게 되느니라."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성좌의 축복은 공짜가 아니다.
자신의 권속에게 힘을 내리는 대가로, 성좌는 권속이 된 헌터에게 헌신을 요구한다.
어떨 때는 신앙.
어떨 때는 권세의 증진.
어떨 때는, 섬기는 신의 뜻을 이루고 신앙의 적을 쳐서 멸하는 철퇴로서의 역할을.
일설에 따르면, 각종 신화에서 등장하는 반신 내지는 신의 현신이라 일컬어지는 영웅들 또한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고 하던가.
말하자면, 성좌에게 선택받은 이는 사람을 뛰어넘는 힘을 손에 넣는다.
대신, 그런 힘이 필요할 법한 시련에 직면하는 셈이다.
덕분에, 성좌를 둔 이들은 여타 헌터들보다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애시당초 재능이 있는 이를 선별하기도 하거니와, 맨땅에 헤딩하듯 성장해야 하는 여타 헌터들과 달리 성좌가 적합한 시련을 안배해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경험치 가속 이벤트를 상시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최종적인 종착지는 같아도, 거기까지 도달하는 속도가 차원이 다르니까.
필시 김민철 또한 그런 부류였겠지.
그리고 이번에 녀석이 언급한 건, 이와 같은 성좌와 헌터 사이의 계약.
요컨대, 소위 말하는 신탁 내지는 신탁을 내리기 위한 통로다.
성좌가 몬스터라는 걸 고려해 보면, 무리의 우두머리인 알파 메일이 가지고 있는 무리 내의 네트워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걸 쓰겠다고?"
"그래. 본인이라면 녀석의 위치를 알 수 있느니라."
"……작동이나 하겠냐, 그게?"
다만.
내가 품고 있는 의문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족히 몇 년은방치한 통로를, 이제 와서 사용할 수 있을까?
"문제 없을 게다. 여태까지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까."
"아, 그래."
그런 내 의혹에, 티아마트는 씁쓸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솔직히 별 관심은 없다.
몇 번이나 말했듯이, 놈은 비련의 피해자 따위가 아니다.
티아마트가 놈을 어떻게 생각하든, 내게 있어서 김민철은 선을 넘어도 한창 넘은 미치광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와서 구구절절한 과거사 따위를 늘어놓는 건 사양이다.
쓸데없이 감정 이입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좋아. 이대로 간다."
"승산은 있느냐?"
저번 전투의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무언가 몇 마디 더 보태고 싶었을 여신은, 그러나 쓸데없이 입을 여는 대신 그렇게 되물을 뿐이었다.
승산, 승산이라.
'있을 리가 없지.'
애초에, 내게 주어진 시간은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다.
하물며 상대는 S랭크 헌터.
그렇게 만만한 상대도 아니다.
허나.
"어."
그건 어디까지나 제압을 전제로 했을 때 이야기.
단순히 죽여버릴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승산은 있었다.
뭐, 힘들긴 하겠지만.
그러나.
공교롭게도, 지금 나는 그런 수단을 가리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