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괴수신앙
* * *
여신 티아마트는 작금의 상황이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자발적인 협력을 댓가로, 분신이 사용할 수 있을 법한 신분을 손에 넣은 덕이다.
무엇보다, 여신은 세속적인 산물을 좋아했다.
맛있는 음식이 좋다.
멋들어진 옷도 나쁘지 않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마음에 들었다.
성좌들 특유의 여유라고 해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그녀 개인의 성품일까.
어느 쪽이든, 여신 티아마트는 요 며칠 동안 대한민국 사회를 실컷 만끽할 수 있었다.
……분명 알고 있었을 텐데.
어울리지도 않게 들떴던 탓인지, 그렇지 않으면 방심하기라도 했었던 건지.
그 끝에 마주한 옛 인연은, 역으로 여신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참으로 어리석은 이야기다.
정신을 차렸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기라도 했나, 그렇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고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펼쳤던 건가.
그럴 리 없다는 건 내심 알고 있었을 텐데.
사실상 유폐나 다름없던 협회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 아니었던가.
스스로의 아둔함에 대해, 여신 티아마트는 그리 평했다.
하지만.
"야, 너랑 김민철 사이에 무슨 일 있었던 건지 알려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물어보라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동아리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박우찬이 던진 품위 없는 물음에, 여신 또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
뭐, 그렇게 되서.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생각난 김에 물어보기로 했다.
"설마 하루만에 물으러 올 줄이야."
정작 당사자인 여신은 그리 한탄했지만.
아니, 네가 물어봐도 된다며?
그렇게 말했던 주제에, 입은 또 비싸다.
상가에서 도보로 10분, 신도심 위에 건설된 바.
우리들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일전, 최승준이 만약을 대비해 소개해 준 장소 중 하나다.
처음 들었을 땐 내가 이런 데에 올 일이 어디 있겠냐 싶었는데, 세상 만사 쓸데없는 건 또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엉?"
"어디까지 조사하고 왔느냐?"
숫제 장사치라도 되는 듯한 말투였다.
"어, 대략적으로?"
"대략적으로, 라."
그 말에 피식 웃으며 가장 먼저 나온 잔으로 입술을 적시는 여신.
메소포타미아 신화 특징, 개나 소나 술 좋아함.
허나.
익숙하지 않은 티를 내며 간신히 주문을 마친 나와는 달리,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술 이름을 읊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입이 열렸다.
"네가 이런 일에 익숙한 이유가 그 녀석 때문일 거라는 점은 짐작하고 있지."
……티아마트의 손끝이 잠시 멈칫했다.
뭐, 당연한 이야기다.
썩어도 상대는 여신.
아무리 그래도, 한국어로 된 욕이나 햄버거 이름 따위를 어디서 익혔겠는가.
"김민철이 데리고 돌아다닐 때 배운 거 아니냐?"
이준구의 설명에 의하면, 티아마트는 협회와 접촉할 때부터 김민철을 데리고 있었다고 한다.
대다수 협회원들은 이를 보고 여신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데려온 아이라고 짐작했겠지.
실제로, 후일 김민철과 티아마트가 결별하는 모습은 그런 추측에 확신을 더했을 테고.
그러나.
만약 김민철이 티아마트에게 실망해 돌아선 게 아니라면?
애초부터 김민철이 여신에게 납치당한 아이가 아니라고 한다면, 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다.
티아마트가 협회와 접촉하기 전부터 김민철을 데리고 있었다면, 과연 그 생활은 어땠을까?
필시, 편하진 않았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서 욕을 배우고 치즈 버거 따위를 알게 되었겠나.
여하간, 아직 협회에 이름을 올리지도 않은 상황이라면 말이 좋아 여신이지 그 실체는 불법 입국자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거기에 조금만 더 상상력을 곁들여 보면, 티아마트가 협회에 접촉한 이유 또한 김민철의 양육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라 예상해볼 수도 있겠다.
이 추측대로라면, 여신은 김민철을 부양하기 위해 협회와 손을 잡은 셈이다.
"썩 듣기 좋은 표현은 아니로구나."
"그러게. 조심하마."
언짢은 기분을 억누르며, 다시 한 번 잔을 꺾는 여신.
방금 전과는 달리, 술의 향을 즐기는 게 아니라 홧김에 때려넣는 듯한 동작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또한 사과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아이를 업어키운 당사자 앞에서 그 애 때문에 힘들었겠네 운운하는 건 아무래도 지나치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 틀린 말은 아니다만……."
"미안."
"아니, 괜찮다. 해서, 네 녀석도 중동의 상황 정도는 알고 있겠지?"
첨언을 일절 허락하지 않는 어조에, 나 또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짧게 웃음을 터트린 여신은 곧 손 안에 든 잔을 가볍게 굴렸다.
"알다시피, 본인은 중동에서 도망친 신격이니라."
"그 쪽 친구들이 참 배타적이긴 해."
"그래. 눈을 뜨고 보니 사방 천지에 미친 놈들 투성이더구나."
그래서 여신은 중동을 떴다.
어떤 경위로 지상에 강림한 건진 역시 알 수 없지만, 상대가 여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알라는 위대하다며 머리통을 쪼개려 드는 놈들 사이에 있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러다 마침 눈에 들어온 게 바로 이 대한민국이었을 테고.
"알고 있느냐? 단순한 밀입국자보단 아이를 데리고 있는 밀입국자 쪽이 검문관들의 시선을 누그러뜨릴 수 있느니라."
거 참 살벌한 생활 팁이다.
"처음엔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데려다 키운 아이였지."
"어, 납치한 건 아니지?"
"네 녀석은 본인을 뭘로 보는 게냐? 아니다. 부모에게도 허락을 받았단 말이다."
"오, 진짜로?"
"그래. 곧 죽을 처지였으니까."
"아하."
몬스터를 상대로 간신히 아이만은 보호할 수 있었던 부모.
그리고 아이를 수단으로 고려하고 있던 티아마트.
둘 사이에 극적인 타결이 이루어진 셈이다.
문제는.
"그렇게 키우다 보니, 요 녀석이 꽤나 귀엽더구나."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여신이 할 말은 아니었다.
아니, 그 쪽 신화에서 인간은 상위 신들의 노예였던 하위 신들이 일꾼으로 삼기 위해 만든 종족이니까.
홍익인간이고 뭐고 없단 말이지~
뭐, 눈 앞의 여신에게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신들의 어머니라 불리는 여신 티아마트는, 동시에 인류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티아마트와 그 자식들을 찢어 죽인 신들이 시체를 재료로 인간을 빚었기 때문인데.
어쩌면 티아마트라는 여신에게 있어 인류는 상위 신격이랑 비슷한 항렬인 걸지도 모르겠다.
"고되면서도 가치 있는 시간이었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여신은 탄식처럼 그리 중얼거렸다.
과거에 잠긴 듯 아련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녀석을 키우며 이 나라의 동태를 살피던 와중, 드디어 적절한 때가 왔지."
홀몸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힘에 부쳤던 건지, 아니면 이 나라가 믿는 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철퇴를 맞을 일은 없겠다 확신했던 건지.
어느 쪽이든, 여신 티아마트와 김민철은 화려한 데뷔에 성공했다.
적어도 양육비에 쩔쩔댈 상황과는 영원히 작별이다.
하물며 김민철 또한 헌터가 되었다고 했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흐으."
"아니, 방금 전 이야기만 들으니 견적이 안 나오잖아. 별 문제도 없는 것 같구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김민철은 협회를 등지고 몬스터 애호파 교단에 몸을 담은 걸까.
그리고.
협회에게도 숨긴 이 사실을, 내겐 말해줄 수 있다 이야기한 까닭은 무엇인가.
지극히 합리적인 의문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여신은 내 질문에 답하는 대신 앓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으으윽."
"이상한 소리 내지 말고. 아니, 뭔데? 이야기해 준다며. 나도 좀 들어봐야 할 거 아냐."
"……하긴. 네 녀석도 민철이와 마주쳤으니 더 이상 남 일이 아니지."
아니, 남 일인데.
것보다, 민철이라고 부르는 거냐…….
뭔가 기분 나빴다.
"거, 뭐시다냐."
"말투가 맛이 갔는데."
"아니, 사전에 설명해 둘 필요가 있어 이러는 것이니라."
"또?"
"그래. 정말로 중요한 일이지."
"뭔데 그래."
"여태까지 이야기를 들었다면 알겠지만, 본인은 여신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자애로움으로 민철이를 돌보았느니라."
"염병을 하네. 그래서?"
"……민철이가 본인에게 혼약을 신청했단다."
터졌다.
아니, 진짜로.
내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자제하지 않았다면, 재채기에 맞은 바텐더가 피떡이 되지 않았을까.
"내 이럴 줄 알았느니라, 이래서 말하지 않으려 한 게야!"
"아니, 잠깐. 진정해. 웃겨서 웃은 거 아니야. 미친 년이 지랄도 심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어."
"생각하지 않았느냐!!"
쾅쾅, 분을 이기지 못하고 눈 앞의 단상을 내리치는 티아마트.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사실 조금 생각하긴 했다.
슬쩍, 옆자리에 앉은 여신의 외모를 곁눈질한다.
허리 아래까지 길게 내리기른 낙엽색 머리칼.
불꽃처럼 선명한 머리카락 밑으로 늘씬하게 뻗은 지체.
우아한 팔다리와, 외투 너머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굴곡.
어느 쪽이든, 여신이라는 이름에 부족함은 없다.
선글라스 너머로 빛을 발하고 있는 자줏빛 눈동자 또한, 보는 이에 따라선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또한 TV 속 연예인들에 비해 뒤지지 않았지만, 그보단 배우나 모델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분위기가 있었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종족은 여신이라 자칭하는 몬스터.
'미친 놈이네.'
씨발, 도대체 뭐가 좋다고 저러는 거지?
아니, 천천히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목숨을 부지하는 데엔 성공했다 해도, 일반인 부모가 몬스터를 상대로 무얼 할 수 있었겠는가.
기적같이 눈에 띄는 상처가 남지 않았을 뿐, 씻을 수 없는 장애가 남았던 거겠지.
아무래도, 김민철이라는 친구는 어릴 적 머리를 다쳤던 모양이다.
"아냐, 이해해. 그럴 수도 있지. 김민철이라는 친구도 이해할 수 있고 말고, 암."
"그, 그러냐? 허 참, 네 녀서에게 그런 칭찬을 듣는 건 난생 처음인 듯하구나."
"엉?"
"하긴, 이 정도면 보편적으로 뒤떨어지는 얼굴은 아니지. 암, 그렇고말고."
웬 칭찬.
갑자기 헛소리를 주절거리는 여신을 향해 말없이 시선을 던지자, 티아마트 또한 헛기침을 터트리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녀석이 평소부터 본인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느니라."
"갑자기 뭐라 지껄이는겨."
"후후, 녀석. 쑥스러워하기는."
"아니, 뭔데 진짜로 기분 나쁘게."
"수줍어하기는. 알겠다. 허면,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어디 보자, 청혼했다는 데까지 들었지. 그래서?"
"음. 거절했단다."
뭐, 그렇게 되겠지.
것보다, 거절하지 않았으면 갈라설 일도 없다.
하지만.
"왜 거절한 거냐?"
"으음, 도저히 동방예의지국의 백성이라 생각할 수 없는 발언."
"헛소리 말고. 애초에 삼강오륜을 따질 군번도 아니잖아."
애초에 신화 속에선 자식놈이랑 결혼한 적도 있는 여신이다.
이제 와서 그런 부분에 거부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힘든데.
"아, 와꾸가 안 됐나?"
"뒤져 진심."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던 나를 향해, 티아마트가 중지를 세운다.
장갑만 끼고 있었으면 그대로 분질렀을 텐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자니, 그녀는 한층 침착해진 태도로 답했다.
"네 녀석도 이성애자겠지만, 여자라면 아무나 좋다고 말하진 않을 테지?"
"난 귀여운 애면 다 좋은데."
"네 제자들에게도 전해 주마."
"하지만 역시 마음이 맞는 게 우선이지."
"음. 잘 했다."
극적인 협상이 타결되었다.
내 반란을 무혈 진압한 티아마트는, 찬찬히 손 안에 쥔 글라스를 바라보았다.
"그렇다기보단, 당혹스러웠지."
"흐음."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해야 할까. 말마따나, 신화 속에선 드문 일도 아니다만."
"뭐, 마음이 있으니 그런 전설이 생기는 거지 무작정 좋다는 것도 아니다 이거 아냐."
"정확하구나. 사실, 내게 있어 그 아이는……."
"연인이라기보단 아들 같은 느낌이었다고?"
"그래. 기저귀까지 손수 갈아주었으니 말이다. 그런 쪽으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
"김민철한텐 아니었던 모양이던데."
"공교로운 일이지. 어쨌든, 본인으로선 받아줄 수 없었다."
"마음이라는 게 다 그런 법이지, 뭘."
"그렇게 말해주니 한층 마음이 놓이는구나."
꼴깍.
목이 타는 듯, 잔을 들이키며 목을 축이는 티아마트.
"그래. 본인에게 있어, 그 아이는 어디까지나 가족이었단다."
"허어."
"고 쬐끄마한 게 어느새 훌쩍 커선 내 키를 넘어섰을 땐 감동을 느꼈고, 헌터가 되어 가계를 부양하겠다고 했을 땐 사뭇 대견했지."
"완전 싱글맘의 고해성사가 됐는데."
"시끄럽다. 어느 쪽이든, 내겐 그 아이의 마음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는 게지. 하물며, 첫 혼약이었으니 더더욱."
"방금 신화적으론 있을 수 없는 말이 들린 것 같은데."
뭐, 그거야 어쨌든.
둘이 언쟁을 벌인 건 저런 이유였다.
자신이 헌터로 각성시킨 김민철을, 어디까지나 자식처럼 대했던 여신.
그에 반해, 어느 순간부터 여신에게 연정을 품었던 김민철.
둘 사이에 패인 감정의 골은 이미 좁힐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상태였다.
거기에.
"어리석었지."
"……."
"그 아이를 설득하기 위해, 본인은 스스로의 비밀 중 하나를 입에 담았느니라."
나 또한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여하간, 이후에 있었던 일을 미리 듣고 왔으니까.
성좌.
여신 티아마트의 정체는 사실 몬스터다.
애시당초 성좌라는 시스템 자체가 그렇다.
몬스터 중 일부가 신의 이름을 참칭하고 있을 뿐.
단순한 취미 생활일지, 그렇지 않으면 모종의 이유가 있는 건진 나도 잘 모른다.
허나.
적어도 티아마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몬스터에게 친부모를 잃은 김민철을 설득하기 위해선 그 수밖에 없다고.
"바보 같긴 하구만."
그러나.
본질적으로 고대의 존재에 가까운 티아마트는 예상하지 못했던 거겠지.
김민철에게 있어, 자신의 부모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 헤어진 친부모 따위가 아니다.
여태까지 자신을 키워준 티아마트이며, 김민철은 그런 그녀를 사모하고 있었다.
때문에, 결별은 필연이다.
그 날로 김민철은 협회를 등졌고, 이후 여타 헌터들처럼 몬스터를 사냥하는 대신 역으로 숭배하기 시작했다.
누구를 위해서?
뻔한 이야기지.
자신을 향한 김민철의 구애를 목격한 여신이, 자숙이라는 핑계로 몸을 감춘 것 또한 당연한 귀결이다.
한때 협회가 여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준비한 최상층은, 그대로 여신의 감옥이 되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상범, 김민철을 배출한 형벌로써.
물론 여신에게 있어선 단순한 도피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자신의 자식이 갑자기 털어놓은 연정에 대한 외면.
말하자면, 여신이 협회의 구속을 받아들인 이유 또한 고작해야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겠지.
김민철을 피하기 위해서.
김민철의 감정에 답해야 할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다만.
여신조차 슬슬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 지금까지, 김민철은 조금도 마음을 고쳐먹지 않았을 뿐이다.
동시에, 그제서야 조금 이해가 갔다.
이런 말을 하긴 뭣하지만, 나는 이 녀석을 상당히 무례하게 대하는 편이다.
여하간, 첫 만남에서부터 뿔을 자르고 도망쳤으니 어련할까.
뭐, 조금도 후회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은 여러모로 내게 편의를 봐주곤 했다.
내가 독대를 신청했을 때에도 거절하지 않았지.
오히려 당시 도축업자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내 경력을 듣고도 축복을 내리겠다며 선별했다고 한다.
것보다, 다짜고짜 기습을 날리고 도망친 나를 제 앞에 데려와 무릎을 꿇리라며 역정을 부리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적어도 그 때 일로 추적자가 붙은 적은 없었으니까.
……정말로 어렴풋이, 그 이유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내 태도를 보고도 인내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내 태도를 보았기 때문에, 역으로 나를 선택한 거다.
아마도, 이 여신이 각성 이상의 축복을 내리는 기준은 단 하나다.
자신을 경애하지 않을 것.
하필이면 나를 고른 이유 또한 마찬가지겠지.
적어도 나라면 가호를 내린다 해서 갑자기 사랑을 고백하진 않을 테니까.
'골때리네.'
처음엔 조금 신경이 쓰였을 뿐이었지만, 아무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파고들 사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미친 몬박이 새끼같으니.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대상을 향해, 나는 무심코 욕설을 내뱉고야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