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74화 (74/371)

〈 74화 〉 괴수신앙

* * *

몬스터 숭배자.

통칭 괴수신앙은,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렇게 드문 경우는 아니다.

척박한 지역일수록 더더욱, 단일 신격이 농경신과 기근신을 겸하고 있는 사례는 드물지 않으니까.

허면, 어째서일까?

일반적인 지역일 경우, 대개 계절에 따른 분류일 가능성이 크다.

여름에는 농경신, 겨울에는 기근신이라는 식으로.

하지만.

정말로 척박한 지역.

농사만 지어선 먹고 살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한 지역은 다르다.

그들에게 있어, 농사란 처음부터 적자 조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농경신의 은혜 또한 다르다.

풍요로운 지역이라면, 남는 곡물의 양으로 농경신의 축복을 점치겠지.

황폐한 땅은, 아사자의 숫자로 농경신의 은혜를 셈한다.

본래 인구 중 3할은 죽었어야 할 상황에서, 고작해야 2할밖에 죽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자연의 은혜란 베푸는 게 아니다.

조금이라도 덜 앗아가는 것이다.

저런 문화가 뿌리내리면, 역으로 기근신이 농경신으로 추앙받게 된다.

인신공양 등이 발생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먹을 입도 줄일 겸, 곡식 대신 이 고기를 진상하겠사오니 부디 화를 풀어주십사 간청하는 게 인신공양의 본질이니까.

뭐, 그거야 어쨌든.

이성과 합리의 시대가 찾아왔다 자언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부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삶이 팍팍해져서 그런 건지, 그렇지 않으면 어떨련지.

어쩌면, 몬스터를 상대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먹이로 던져주며 탈출한 스스로에 대한 일종의 보호 기재일지도 모른다.

요컨대, 몬스터 숭배자들이란 문자 그대로 게이트 내지는 게이트 내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들을 신앙하는 정신병자들이다.

논지는 간단하다.

게이트에서 발생한 산물로 유사 이래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인류.

이 헌터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이토록 풍족한 자원을 선물한 게이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이런 식이다.

당연하지만, 보편적인 신앙은 아니다.

것보다, 대다수 국가에서 테러리스트 취급인 게 당연한 사상이고.

애초에, 비교적 대처가 잘 된 편인 이 대한민국에서도 국민들 중 3할이 가족을 잃었다는 판국이다.

그런 와중에, 피해자들을 밀어내며 살아남았을지도 모르는 놈들이 저런 말을 한다?

맞아죽기 십상이지 않을까.

무엇보다, 설령 저 말을 일정 부분 인정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감사하는 건 주로 헌터들이다.

쑴풍쑴풍 몬스터를 싸지르는 게이트가 아니라, 몬스터를 쳐죽여 고효율 자원으로 바꾸는 당사자들이니까.

만약 김민철이 고작해야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 녀석이었다면, 나 또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겠지.

오히려 정신병자라고 하면 될 걸 뭐하러 그리 늘려 말하느냐고 핀잔을 주지 않았을까.

그러나.

'괴수 신앙자, 라.'

일찍이 당사자인 여신과 가까운 관계였던 현직 테러리스트라.

확실히, 수상쩍긴 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성좌 티아마트가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제 1차 대침공이 시작된 직후야.]

"……그랬지."

아니, 몰라.

뭘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는 듯 이야기하는 거야, 이 자식.

일단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두기로 했다. 사실 별로 중요한 부분도 아니고.

[그렇지만, 협회와 연이 닿기 전까지 여신 티아마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진 아무도 몰라.]

"하긴, 나도 대략적인 이야기밖에 못 들었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중동에 강림한 여신, 티아마트.

허나, 지금 중동은 말 그대로 세기말 이슬람 대잔치다.

덕분에, 이슬람 성기사의 신성한 강타Smite에 골통이 빠개질 뻔했던 여신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 도주.

이후, 아무리 그래도 이 시대에 메소포타미아 신화 따위를 믿는 놈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한다.

그렇게 시작된 외국행 끝에, 여신이 정착지로 선택한 게 바로 이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 땅에 무언가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었던 건 아니고, 여러 사정으로 인해 이 땅의 성좌들이 자리를 비운 덕택이었다.

한 마디로, 빈집털이였다는 뜻이다.

실제로, 여신의 판단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개새끼도 제 앞마당에선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

각 나라의 토착 신화 속, 거들먹대며 모습을 드러낸 버러지들이 신을 참칭하고 있을 때.

제대로 된 성좌 한 명 없이 고생하고 있던 대한민국은, 여신 티아마트의 정착을 적극적으로 환영했으니까.

비록 지나칠 정도로 철저한 보호 탓에 반쯤 감금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이 나라에 있어 여신의 강림은 말 그대로 가뭄의 단비와 같았으리라.

다만.

[협회와 접촉하기 전부터 여신이 데리고 있었던 아이. 그게 바로 김민철이야.]

"허어."

이건 역시 처음 듣는 소리였다.

동시에,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갑자기 협회 앞마당에 나타난 여자가 자신을 여신이라고 주장한다면?

과연 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십중팔구 미친 년이라고 생각하겠지.

설령 그 이름에 부족하지 않은 힘을 선보인다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고랭크 헌터들 중 한 명이 드디어 돌아버렸다고 생각하지, 정말 여신이 강림했다고 생각할 녀석은 없을 게 뻔했다.

때문에.

증명이 필요하다.

그녀가 스스로를 성좌라 자칭하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지상에 강림한 여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증거가.

예를 들어, 눈 앞에서 새로운 헌터를 각성시킨다던가.

김민철은 그 열쇠였던 셈이다.

"정확히 어떤 관계인진 모르고?"

[글쎄? 거기까지 자세하게 물은 적은 없을 거야. 다들 꺼려했거든.]

"하긴."

감히 누가 여신의 행동에 토를 달 수 있을까.

하물며, 대침공 당시 전황을 고려해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막말로, 그녀가 스스로를 여신이라 착각하고 있는 미치광이라 해도 마찬가지겠지.

헌터를 인위적으로 양산할 수 있는 시점에서, 그딴 건 단순한 타이틀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고작해야 여신이라 칭하는 일로 환심을 살 수 있다면, 오히려 값쌀 정도다.

'게다가.'

아이의 정체를 캐묻는다고 해도, 어떻게?

혹시 그 아이는 여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주변에서 납치하신 건가요?

그렇게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거기까지 가면 단순히 무례한 놈이다.

[다른 이유도 있었어. 일단, 둘이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거든.]

"나쁘지도 않았다, 라."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았다고 해야겠지?]

"흐음, 어디 보자. 그 년이 협회랑 접촉했던 게 대략 제 2차 대침공 초반이랬던가?"

[맞아. 그 때까진 김민철도 아직 어린애였고.]

"한 열 몇 살 했겠구만, 그럼."

[그렇지. 우리랑 동년배니까 말이야. 여신님, 하는 식으로 불렀던 모양이야.]

수치심을 모르는 호칭이다.

덕분에 '혹시 납치한 아이가 아닐까' 하는 의혹은 빠르게 가신 모양이지만.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구가 다들 꺼려했다고 표현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그렇게 김민철도 성인이 됐고, 자연스레 협회 소속 헌터가 됐지.]

"그래서?"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둘 사이에 언쟁이 있었던 모양이야.]

"언쟁?"

[응. 이유는 불명이지만.]

잘은 몰라도, 상당히 심각한 싸움이었던 모양이다.

[얼마 뒤, 김민철이 길드를 떠났거든.]

"……거 참. 그래서?"

어느 날, 말없이 사라진 김민철.

당연히 협회에는 비상이 걸렸다.

여하간, A+랭크 헌터라는 전력이 소실된 셈이니까.

상층부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겠지.

협회 임원들 중 일부가 여신을 성토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다 못해 어째서 둘이 싸웠던 건지, 그 이유라도 알려달라 청했을 테고.

문제는, 정작 당사자인 여신이 입을 열지 않았다는 점.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하는 여신의 태도에, 온갖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방금 전 언급한 김민철 납치론 또한 그 일환일 테지.

성장한 김민철이 어릴 적 자신을 납치하고 이를 은폐한 티아마트에게 화를 낸 게 아닐까, 하는 식으로.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김민철이 몬스터 숭배 조직에 몸을 담았다는 소식이 들려온 거야.]

"미친 놈일세."

[심지어 어중간한 조직도 아니었고. 너도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 있을걸?]

아니, 없거든?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이준구 녀석은 내가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알 리가 있나.

협회와 달리, 나는 어디까지나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 차원에서 은폐하고 있는 비밀 조직 이름 따위, 알고 있겠냐.

하물며, 조사할 생각도 없다.

미친 놈들이라 생각하긴 하지만, 굳이 찾아가서 혼쭐을 내주고 싶을 정도는 아니고.

생각하기만 해도 역겨우니까 나랑 평생 관계 없는 장소에서 피고 지라는 기분 정도는 들지만.

굳이 찾아가서 어깃장을 놓을 생각은 없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몬스터를 한 마리라도 더 썰어 죽이는 게 낫지.

크게 관심이 있는 분야도 아니고,대충 아는 체하며 넘어가기로 했다.

실제로, 뒤이은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김민철이 그런 조직에 들어갔다더라, 비슷한 조직을 소탕하다 발견한 사실이다…….

그런 소문이 협회에 닿았다.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날 둘의 말다툼을 보고 있던 사람들을 필두로, 협회에 속한 수많은 이들이 티아마트를 추궁했다.

허나.

이번에도 여신은 침묵했다.

결국 협회 또한 진절머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여신이 머무르고 있는 협회 최상층.

어느 누구도 섣불리 여신과 접할 수 없는 작금의 구조 또한 바로 그 때 생겨났다던가.

물론 당시 협회 사람들 또한 여신의 존재를 은폐해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겠지.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지금처럼 외출 하나 빈번히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갑갑한 구조가 된 건 최고급 사상범을 배출한 이후라고 한다.

실제로, 이준구 또한 김민철의 이탈 내지는 일탈 이후로여신이 헌터를 각성시키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증언했고.

그렇지만.

'묘한데.'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여신 티아마트는 기꺼이 그런 구속을 감내할 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더 뺀질거리고 싶어서 안달난 모습이 눈에 밟힐 정도고.

자숙의 의미로 최상층에서 은거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할 성격은 아니란 뜻이다.

'차라리 성질을 내겠지.'

아니면, 그 정도로 큰 일이었다던가?

그렇지 않으면…….

[그러니까 네게 거는 기대가 큰 거야.]

"엉? 갑자기 뭔 개소리야."

[말했잖아? 그 이후, 여신님은 섣불리 다른 이들을 헌터로 각성시키지 않았어. 하물며, 그 이상의 가호는 더더욱 그렇고.]

"징그러운 소리 집어치우고 말해."

[그 여신님이, 정말로 오랜만에 가호를 내리겠다며 선택한 헌터가 바로 너란 말이야.]

"엥?"

뭐?

여신 티아마트가, 직접 나를 선별했다고?

그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니, 그야 중간에 파투 내고 나갔으니 당연하겠지만.

"정말로?"

[정말로.]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말해줄 만한 사람도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 또 그렇지."

[여신님 본인만 해도 그렇고. 은근히 자존심이 강하니까, 널 상대로 으스대진 않겠지.]

아니, 그럴 것 같은데…….

허나, 그렇게 말해도 정작 이준구는 짤막한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결국 나 또한 적당히 긍정해두기로 했다.

[무슨 일인진 잘 모르겠지만, 화해할 생각이라면 나도 도울게.]

"그런 거 아니니까 김칫국 마시지 마라."

[그래? 그럼 마음 한 구석에 담아 둬. 만약 내 힘이 필요할 만한 상황이 온다면 최대한 협력해줄 테니까.]

"아니, 내가 뭘 할 줄 알고?"

[글쎄? 적어도 내가 아는 너는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손 놓고 있을 녀석이 아니거든.]

뭔 개소리야, 이건 또.

솔직히 조금 징그러웠다.

아니, 나 저런 말 들을 일 한 적 있던가?

가물가물한 머리로 생각해 봐도, 최근 이준구랑 연락한 건 가정교육 문제가 전부였는데.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사기당하기 참 좋은 녀석이다.

도대체 뭘 믿고 저런 말을 하는 거람.

것보다, 이런 상황은 또 뭐야.

뿔 자르고 튀었던 상대방이 직장 동료가 된 상황?

"어, 그래. 끊는다."

물론, 주면 거절하지 않는 게 바로 나 사나이 박우찬이다.

비록 다분히 흥미 위주로 지분대고 있긴 했지만, 도움을 준다면 일단 받아두는 게 상책인 법.

하물며.

'그 미친 스토커 자식.'

뒷사정을 들으니 더더욱 수상쩍게 느껴진다.

적어도 인사 한 번 나눌 생각으로 찾아온 건 아니겠지.

무엇보다.

'몬스터 숭배자라니.'

너무 절묘하다.

지나칠 정도로.

티아마트와 갈라선 이후, 김민철이 몸을 담았다는 조직.

다른 이들이 보았을 경우, 그렇게 자문할 수밖에 없겠지.

훌륭한 헌터였던 김민철이 그런 사상에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설마 몬스터를 상대로 동정심이라도 품었던 걸까?

우왕좌왕하며 티아마트를 가뒀던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일 테고.

허나.

내게는 다르다.

성좌.

그렇게 불리는 신들의 정체가, 사실은 몬스터라는 걸 알고 있는 내게는.

……여신 티아마트와 갈라선 끝에, 이상한 사이비 교단에 몸을 담은 김민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나, 여신 티아마트에게 반가움을 표했던 김민철.

일찍이 결별했던 누군가를 향한다기엔 지나칠 정도로 환희에 찼던 그 얼굴을 떠올린다.

적어도 협회 사람들의 예상과는 반대일 가능성이 높았다.

여신에게 실망한 결과 몬스터를 섬기기 시작했다기엔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더러 있었으니까.

오히려 김민철의 감정은 아직까지도 티아마트를 향하고 있었고.

허면.

"뭐든지 답해준다고 했던가."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김민철과 티아마트가 갈라선 이유다.

유도당하는 기분이라 조금 묘하긴 했지만, 우선시해야 할 건 역시 그 부분이겠지.

거기까지 결정됐다면, 이야기도 빠르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