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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72화 (72/371)

〈 72화 〉 회식

* * *

당연히, 이번 동아리 활동은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다.

학생들은 물론이요, 교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무엇보다, 단순한 임시 강사라 치부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화려한 면면들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카데미의 교사들은 이번 동아리 시간을 사실상 임용고시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예상하기도 쉬웠다. 애초에 사지 멀쩡히 은퇴한다는 말 자체가 낭설처럼 여겨지는 직종이다.

높은 사망률. 그에 비례해, 목숨을 걸고 일확천금을 꿈꾸기 딱 좋은 직종.

교사 인력이 풍부할 리도 없고, 그렇기에 어렵사리 구한 인재를 고작해야 임시 강사로 허비할 리도 없었다.

그런 만큼, 이번 회식이 실질적으로 동아리 담당 교사들에 대한 환영회가 된 건 실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아카데미의 교사들에게 있어, 임시 강사들은 미래의 동료나 다름없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이런 자리에 으레 있기 마련인 견제나 질투 등은 드물었다.

완전히 없지는 않겠지만, 이 회식에 출석한 사람들은 교사이기 이전에 사냥꾼이었다.

요컨대, 경력이고 나발이고 몬스터만 잘 죽이면 장땡이라는 이야기다.

학기 초부터 경력이나 낙하산 문제가 불거질 법도 했던 내가 지금까지 멀쩡하게 직장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바로 이 때문이었다.

혼혈 관련 기사가 떴을 땐 반쯤 몬스터인 놈들이 상대인데 아무려면 어떠냐는 식으로 두둔해 주신 덕분에 오히려 곤란했을 정도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 아카데미 교사 자리에 취임한 헌터들은 전부 최승준 나름의 깐깐한 기준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팔이 잘린 사람도 있다. 다리가 날아간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리라도 더 많은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후배 헌터들에게 스스로의 기술과 경험을 맡기고자 찾아온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덕분에, 분위기 또한 나쁘지 않았다.

슬쩍, 잔을 들어 시선을 감추며 주변을 살핀다.

일단, 이번 회식의 중심이 된 건 역시 서아였다.

요 최근, 한창 떠들썩한 사건의 주인공이기 때문이겠지.

사실, 회식 초반엔 내게도 여러 질문이 날아오긴 했었다.

저번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서아가 자신의 스승을 까발렸기 때문이다.

허나, 질문의 태반은 나와 서아가 정녕 사제 관계가 맞냐는 의문일 뿐이었다.

심지어 그조차 한 번 대답한 이후론 한층 시들해졌고.

뭐, 당연한 일이다.

다른 교사들이 궁금해하는 건 어디까지나 서아네 전 길드에서 있었던 일.

이제 와서 서아의 신상 정보를 캐묻고 싶어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을 만큼 유명하다는 점이 크겠지만.

물론 서아는 나를 향해 도와달라는 듯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이번엔 무시하기로 했다.

예의 사건에 내가 얽혀있다는 건 공개적으로 드러낼 만한 일도 아니었거니와,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아를 방패로 삼아 뒤로 빠져 있으면, 평소엔 보이지 않았던 모습도 눈에 밟힌다.

예를 들어, 정일현 선생 쪽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한창 젊은 서아에 비해선 아무래도 관심을 가질 여지가 적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주변에 감도는 묵직한 분위기 때문이다.

일선에서 물러나길 어언 몇 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장의 검술 사범보단 차라리 현역 사냥꾼에 가까운 예기를 두르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그 주변에 계신 건 일전 정일현 선생의 솜씨를 배견했던 교사들 내지는 동년배의 가장들 뿐이었다.

평소엔 조용하던 양반들이, 자식 얘기를 나눌 때만큼은 호쾌하게 잔을 내려치는 모습이 퍽 유쾌해 보였다.

뭐, 헌터이니만큼 쉬이 취하진 않겠지.

의도적으로 마력을 조작하지 않으면 취하기도 힘들 정도니.

덕분에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 다시 한 번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단 한 명.

즉.

우리의 천방지축 얼렁뚱땅 여신님 뿐이다.

"허어, 젊은 처자가 잘도 마시는구먼."

"후후, 어르신들이 따라주시는 잔은 거절하는 게 아니라고 배웠거든요."

"그런 거 다 옛말이야, 옛말. 뭐, 보기 좋긴 하다마는."

"감사합니다, 어르신!"

"거 참, 우리 딸내미보다 더 똑부러지네그려. 우리 딸내미랑 바꿨으면 쓰겠어."

"에이, 따님이랑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죠 뭘~"

"허허, 그런감? 빈말이라도 고맙네. 아가씨도, 외국인이라 들었는데 우리 말도 썩 잘 하는구먼?"

"네. 열심히 공부했거든요!"

"장하네, 아주 장혀."

그리고.

토할 뻔했다.

아니, 진짜로.

씨발, 누구야 저건.

나도 모르게 잔을 내려놓고 말았다. 거기에, 머리털 난 이래 처음으로 마력을 한계까지 운용했다.

"어, 박우찬 선생님. 코피 나요 코피!"

그러다 코피까지 날 지경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환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진심이냐.

지나칠 정도로 맑게 개인 머리가, 당장 눈 앞에 있는 광경을 이해하길 거부한다.

여신 티아마트.

머나먼 중동으로부터 찾아온, 오래된 여신.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신들의 어머니는, 이상할 정도로 사회 생활에 능숙했다.

*

회식이 끝났다.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일은 없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된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여신이 고래고래 고성방가를 지르지도 않았다.

하물며, 특유의 괴상망측한 말투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대하거나 선배 교사들을 상대로 진상한 물건은 잘 받겠다며 진상을 부리지도 않았으니.

솔직히 말해, 결과만 보면 예상 이상이었다.

허나, 예상 이상의 결과라고 해서 언제나 기꺼운 기분이 드는 건 또 아닌 모양이다.

밤이 찾아온 거리를 거닐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옆에는 예의 여신, 티아마트가 있다.

도저히 내키진 않았지만, 회식이 끝난 지금 녀석을 배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교사진의 호들갑도 있었지만, 보다 현실적인 문제다.

만에 하나, 술에 취한 이 녀석이 안주로 사람 머리통이나 씹을까 생각하기라도 하는 날엔…….

부르르, 턱끝을 떨었다.

거기까지 가면 농담도 못 된다.

덕분에, 우리들은 회식 자리를 뒤로한 채 이렇게 나란히 걷고 있는 셈이었다.

술 냄새는, 의외로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방독면을 못 가져온 탓에 숨을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모종의 사건 덕분에 방독면 차림새가 기이할 정도로 유명해진 지금, 쉬이 쓰고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의 5년치 인내심을 가불하는 느낌으로, 몬스터와 걸음을 맞춘다.

만일 평소대로, 하다 못해 예상대로였다면 조금 더 가볍게 무어라 쏘아붙일 수 있었겠지만 방금 전 회식 자리에서의 광경을 본 나로서는 아무래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간신히 입을 뗀 내 목소리는 스스로가 듣기에도 다소 우스울 정도였다.

"아니, 뭐냐. 그, 컨셉 때려친 거 나쁘지 않더라. 어, 생각해 보면 너도 그런 말투 쓰는 건 힘들었겠지. 응."

"시발아."

허나, 내 섬세한 배려는 여신이 툭 내뱉은 욕지거리 앞에 사르르 녹아내리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간신히 끌어모았던 의지가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리는 게 느껴진다.

"네 녀석, 지금 불경한 생각을 하지 않았더냐?"

"아닌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솔직히 조금 하긴 했다.

만일 회식 자리에서 선보인 태도가 본래 말투였다면, 이 녀석은 평소부터 여신 컨셉 플레이를 위해 그런 어조를 연구하고 있었던 건가 하는 의문이 하나.

그리고 컨셉 플레이를 위해 평소부터 그런 말투를 쓰고 있는 거라면 완전히 정신 나간 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둘이다.

사실, 이제 와서 놀랄 일도 아니긴 했다.

이 년이 정신 나간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어라?'

생각해 보니 내 입장에선 딱히 놀랄 일도 아니었다.

덕분에 마음도 적당히 놓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풀어질 순 없겠지만. 그러면 칼부림 난다.

"솔직히 조금 역겹긴 했지."

"역겹다니, 괘씸한지고."

"미친 년아, 괘씸한 건 너고. 뭐? 어르신? 미친, 기원전 민증 들고 양심도 없냐?"

"……지금 이 육체에 걸맞는 언행을 취했을 뿐이니라. 게다가, 다른 선생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더냐!"

"그 양반들도 네 나이 들으면 100% 기겁한다."

"끄, 끄으응."

그래도 양심은 있는 모양이다, 미친 할망구 년.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내 말에, 녀석 또한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일찍이 녀석이 사용했던 표현을 인용하자면, 사내란 곧 '젖가슴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 녀석들'이겠다만.

거기에도 정도가 있지, 5000살 먹은 할망구가 자기를 오빠라 부르면 징그러울 뿐이다.

미친, 5000살이라니.

생각해 보면, 이 년이 피라미드보다 오래됐잖아?

"여신의 육체는 노화하지 않는다."

"갑자기 뭐라는 거야."

"즉, 본인의 육체는 일반적인 성인 여성의 적령기에 해당한다는 뜻이지."

"내가 성좌였어도 굳이 늙은 몸을 만들진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현대 과학적으로 볼 때, 생물체의 정신은 육체에 귀속된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이거냐?"

"호르몬 분비 얘기다. 즉, 육체적으로 20대인 본인은 20대 처녀와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지."

이젠 아주 얼굴에 철판을 깔기 시작했다.

화장발보다 더욱 두터운 오개조 방탄 낯가죽에 경악하고 있으면, 자연스레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물론 그 말은 사실일지 모른다. 생물이란 무릇 육체에 정신이 귀속되는 생물로, 몸이 아프면 정신도 병들고 몸이 건강하면 정신도 맑아지기 마련이니까. 실제로, 다소 극단적인 이론이긴 하나 사람의 정신을 구성하는 건 외부 자극에 의해 축적된 경험 일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과연 성좌들까지 일반적인 생명체의 범주에 넣어도 괜찮을까?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구구절절 이야기가 늘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한 마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너 유부녀잖아."

"진심 뒤져."

여신이 내게 중지를 날렸다.

……뭐,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참 묘한 일이기는 했다.

물론, 눈 앞의 여신에 대한 이야기다.

지상에 내려온 성좌라는 타이틀만 해도 충분히 특이하다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의도치 않게도 이 년과 몇 번 정도 부대낀 적 있는 내가 보기에 그 이상으로 특이한 건 바로 당사자인 이 여신 쪽이었다.

여신 티아마트.

성좌 행세를 하고 있는 이 몬스터는, 생각보다 훨씬 더 이상한 년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여신 티아마트는 성좌들 중에서도 특이했다.

내가 보기엔 성좌라는 개념 자체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는 건 차처하더라도 말이다.

전조는 없잖아 있었다.

기묘할 정도로 현대 문물에 익숙한 점.

혹은, 지나치게 한국적인 어휘.

처음엔 여신이라 자칭하는 만큼 통역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했지만, 방금 전 보여준 모습은 단순한 권능이라 치부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여신은 언어가 어쩌고저쩌고 하기 이전에 단순히 사회 생활에 익숙했다.

'아니.'

그보다는, 대한민국 문화에 익숙하다.

평소 죽어도 내려놓지 않던 이상한 말투는 어디로 간 건지, 태연하게 존댓말을 주워섬기던 모습만 해도 협회의 어르신들에겐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겠지.

허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 회식 당시 녀석이 보인 모습은 단순한 연기 따위가 아니었다.

묘한 생생함.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여신에게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우습지만,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확실히 이상한 점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귀찮다는 이유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뿐.

심지어 저번엔 맥도날드 메뉴까지 알고 있었고.

'곤란하구만.'

방치하고 싶은 기분은 지금도 마찬가지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는 없다.

까놓고 말해, 내가 몬스터 년까지 나온다는 회식에 참여한 이유가 달리 무엇이겠는가.

일단 생각 없이 저질렀다가 졸지에 몬스터를 떠맡게 된 이준구나 최승준에게 미안해서 그런 게 아니었던가……!!

사나이 박우찬, 염치를 안다.

때문에, 무언가 수상한 움직임이 보인다면 내 선에서 미리 죽여놓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지만.

'좆됐네.'

이 년,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이상하다.

어쩌면 내가 폭탄을 돌린 게 아닐까?

허나,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신은 끊임없이 재잘댈 뿐이었다.

"하여튼, 무례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로구나. 애초에, 본인이 유부녀라는 건 어디까지나 신화 속 내용으로……."

"확실히, 제가 보기에도 여신을 모시는 사제라기엔 부족한 점이 많군요."

"사제는 무슨, 애미 뒤진 소리 하지 마라 진짜. 뒤진다."

"뭐, 뭐냐. 본인은 그런 말 하지 않았느니라."

"심지어, 사람의 몸으로 여신을 겁박하는 그 모습. 아무래도 자격 부족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엉?"

그리고.

그런 투덜거림 사이로, 난생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가벼운 듯, 경박한 듯.

존댓말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

이를 따라 시선을 돌리면, 가장 먼저 밤그림자 가득한 거리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저 너머.

꾸물거리는 밤의 어둠 건너편에, 괴한이 서 있었다.

아니, 정말로.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전신을 감싸는 거적떼기.

외투와 연결된 후드를 깊게 눌러쓴 그 모습으론, 얼굴 한 조각 알아볼 수 없다.

설령 이 자리에 있었던 게 내가 아닌 이준구라 해도, 괴한이라는 평가는 피할 수 없지 않을까.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오랜만입니다."

그렇게.

은은한 가로등 불빛을 스포트라이트 삼아, 몇 걸음 거리에 홀연히 나타난 남자.

기묘한 행색의 사내는, 내가 아닌 바로 옆의 여신을 향해 그리 말했다.

"보고 싶었습니다, 티아마트."

흠칫.

처음 듣는 사내의 목소리에 반응해, 여신의 어깨가 움찔 하고 떨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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