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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71화 (71/371)

〈 71화 〉 동아리

* * *

다행히, 그 뒤로도 별다른 일은 없었다.

거의 한 시간에 걸쳤던 혼신의 아부 작전이 먹혔던 걸까?

서아 또한 가벼운 훈계를 제외하면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내 주말을 서아에게 헌납하고 말았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긴 했지만.

뭐, 이 정도만 해도 어디랴.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직장을 날려버린 걸로도 모자라, 기자들에게 시달리도록 한 값으로는 오히려 싼 편이다.

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 뜬금없이 사표를 쓴 서아의 행적이 들통난 탓에 각종 언론사에서 몰려든 탓이다.

내게는 아직 얼빠진 제자였지만, 누군가에겐 현직 A+랭크 헌터 필두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덕분에 서아가 실험에 참여했다는 소리는 쏙 들어갔다는 점일까?

비록 길드의 만행을 저지하거나, 앞서 공표하지 못한 건 틀림없이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3대 길드라는 간판을 뒤로한 각오를 평가받은 덕이다.

개중에서는, 이번에 길드를 뒤엎었다는 '방독면 쓴 남자'에게 길드의 실체를 고발한 게 신서아가 아닐까 하는 낭설이 나돌 정도였다.

반쯤 맞았다고 해야 할지, 반쯤 틀렸다고 해야 할지.

뭐, 어느 쪽이든 뜬소문 정도였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야 업계에 투신한 서아를 보고, 서아 이상의 실력을 가진 헌터 인맥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말 그대로 음모론 수준이다.

게다가, 서아에 대해 아쉬운 목소리를 내는 이들 또한 머잖아 길드가 서아에게 저지른 일이 완전히 드러나면 머잖아 사그라들 테고.

오히려, 가족의 목숨이 걸린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고군분투한 서아에게 상찬이 쏟아지겠지.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이건 또 뭐야.'

그렇게 출근한 학교에서 갑자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을 줄이야.

나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을 삼키며, 손에 들린 유인물을 살폈다.

[동아리 안내]

유인물의 최상단에는 그렇게 써 있었다.

동아리라니.

거 참 감미로운 울림이었다.

몇 번 말했다시피, 이 헌터 아카데미에서 최우선으로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건 사냥꾼으로서의 실력.

허나, 그 이상으로 중시하는 건 생도들의 정신 건강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헌터라 해도, 정신이 위태로운 사냥꾼은 원칙적으로 전선에 투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실력이 뛰어난 만큼 더더욱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면도 있다.

그런 헌터가 갑자기 미쳐 날뛰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할 테니.

때문에, 아카데미 또한 학생들의 정신 건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타 평범한 고등학교와 같이, 의무적으로 배당된 동아리 시간 또한 바로 그 일환이었다.

분명히, 학창 시절 손에 넣은 귀중한 경험이 헌터들의 마음에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길 기대한다고 했던가.

탁상공론이 다 그렇지만, 의도는 참 좋다.

문제는, 고등학생에게 있어 동아리 생활이란 사실상 자습 시간이나 다름없다는 점이었다.

아니, 사실 나도 몰랐는데 조사해보니까 그렇다더라고.

중졸이 가지고 있던 고등학교에 대한 아련한 동경이 빛바래 부스러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발,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고등학교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말이지.

심지어 여고생은 방과 후에 반드시 파르페를 먹어야 하는 생물인 줄 알았다.

같이 살아보니까 그건 또 아니더라고.

뭐, 하연이 정도면 서아보단 눈에 띄게 착실한 편이지만.

어쨌든.

그러나, 최승준은 기어코 이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든 활용하려 들기 시작했다.

요컨대, 내가 저번에 제안했던 조기 체험 시간의 일환이었다.

때문에, 현재 학교 측에서 제공하는 동아리는 기본적으로 세 개.

다시 말해, 최승준이 섭외에 성공한 정일현 선생의 무기술 동아리.

이번에 들인 서아를 강사로 하는 원거리 전투술 동아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동계 이민자 티아 빈트 라흐만 빈 압둘라 무함마드 씨가 진행하는 보조 능력 학습 동아리다.

'우와…….'

주욱 나열된 이름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그런 소리가 나왔다.

다른 건 다 둘째치더라도, 티아 빈트 라흐만 빈 압둘라 무함마드는 또 뭐야.

비록 중동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조금 더 제대로 된 가명이 있었을 텐데 말이지.

내 생각에, 이 년은 미쳐버린 게 틀림없다.

적어도 점잖게 학교 생활을 보낼 생각이 없다는 건 확실하겠지.

무시무시한 년 같으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유인물의 다음 문장을 확인한다.

어디 보자.

그렇게 되서, 당장에 제공할 수 있는 동아리는 저 세 개.

거기에, 각 반 담임들이 진행하는 심화 수업 정도다.

단, 솔직히 말해 인기는 괴멸적이었다.

아쉬울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평소에도 하고 있는 수업을 뭐가 좋아서 동아리 시간까지 할애하며 들어야 한단 말인가.

물론 도움이야 적잖이 되겠지만, 완전히 색다른 수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하물며, 보충 수업이야 방과 후에 따로 찾아가기만 해도 충분할 테고.

무엇보다, 강사진이 너무 강렬하다.

동급생 중 가장 유명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필연의 아버지이자 동시에 현직 헌터 무기술 강사.

문자 그대로 차세대 헌터 필두라 할 수 있는 신서아 헌터.

거기에, 중동 출신 이민자까지?

이건 못 참지.

내가 학생이라 해도 무조건 다른 동아리에 들었을 거다.

특히 마지막.

조금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이토록 강렬한 캐릭터도 드물다.

덕분에, 각 반 담임 교사들에게 있어 이번 동아리 시간은 사실상 일종의 휴식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헌데.

"으음."

나는 달랐다.

비록 네 명 뿐이었지만, 내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척 보기만 해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라인업이었다.

인류 최강의 헌터, 이준구의 여동생 이예은.

혼인회 간부 출신, 혼혈 소녀 류지희.

일전, 나와 관련된 사건에 얽혀 납치당한 적도 있던 황윤하.

거기에, 대놓고 저 쪽 세력이 노리고 있는 자하연까지.

어딜 어떻게 봐도 동아리 수업을 신청하러 온인선이 아니잖아…….

"그래, 얘들아. 드디어 제대로 된 동아리 시간이구나."

"와, 박수! 박수!! 와아아!!"

"박 우 찬! 박 우 찬!!"

기세 좋게 박수를 터트리는 윤하와, 그에 맞추어 새된 소리를 울리는 지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없던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사실, 비교적 조용한 성격인 예은이나 하연이 또한 절대 잠잠한 눈빛은 아니었다.

아니, 나도 설명할 생각이었고?

어쩌면 따로 설명할 시간이 생긴 건 좋아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부담시러…….'

하지만, 그래도 버거운 건 버거운 거다.

결국, 나는 떨떠름한 어조로 단상 앞에 선 채 그리 말하고 말았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니? 선생님은 이번 기회에 다른 동아리 수업도 들어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너희들한텐 더 유익할지도 모르거든."

"오, 정말요~?"

그런 내 입을 정면에서 틀어막은 건 역시 류지희였다.

짧게 눈웃음치는 눈초리 너머, 석류색으로 빛나는 시선이 말하는 듯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선생님, 제 정체 아시잖아요?

아니, 너는 예외지. 예외긴 한데…….

쓰읍.

"예은아, 너는 서아 수업을 듣는 게 좋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이렇게 된 거, 이예은으로 간다.

그러나, 이예은도 만만한 학생은 아니었다.

"선생님?"

"응, 그래."

"저 능력 사용법 바꾼지 아직 한 달도 안 됐어요."

"그래도 참고는 되지 않을까?"

"게다가, 어떤 전법이 몸에 맞을지도 모르잖아요? 만약 그 쪽 동아리를 신청했다가, 맞지 않는 전법이었으면 어떡해요."

"동아리 선택이야 나중에 바꿀 수도 있잖니."

"그러네요. 그러니 지금은 여기서 들을게요. 괜찮죠?"

"아니, 그렇게 말하면 그러긴 한데."

"혹시, 안 되나요?"

……그렇게 물으면 또 어쩔 수 없지.

다른 녀석들이라면 모를까, 이예은이 전법을 바꾼 건 거의 전적으로 내 탓이니까.

내 말을 듣고 전법까지 바꾼 학생을, 이제 와서 다른 교사들에게 맡긴다?

어떻게 포장해도 무책임하다는 평을 피할 수 없겠지. 아니, 그건 그냥 뻔뻔한 거다.

사락, 조용히 금발을 늘어뜨리는 예은이로부터 시선을 돌린다. 소위 말하는 작전상 후퇴라는 녀석이다.

어디 보자, 다음 대상은?

류지희 안 되고, 이예은 안 되고.

"윤하야, 너는?"

"쌤, 제 사정 아시면서."

"씁."

아, 탈룰라 에바야 진심.

허나, 아무리 그래도 생계에 관련된 이유를 드는데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내가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건 결국 하연이 뿐이었다.

하연아, 오빠 마음 알지? 오빠 좀 도와줘라……!!

내 간절한 마음이 닿았던 걸까?

곧 하연이가 꽃봉오리 만개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저, 다른 선생님들 수업 듣기 싫어요."

"엇, 어어. 그러니?"

그리고.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뭐, 응. 그렇지. 싫으면 어쩔 수 없지.

그야 하연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 방식대로 훈련하고 있으니, 이제 와서 다른 방침이 섞여도 곤란할 뿐이긴 하겠다만.

'저렇게 잘라 말할 줄은 또 몰랐네.'

다른 선생님들이 들으면 의기소침하는 거 아닌가 몰라.

나로서는 여러 수업을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는데 말이지.

그러나, 그렇게 대답하기에는 도저히 반론이 허락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사실, 찔리는 일도 있었고.

문제는.

'좆됐네.'

내가 동아리 수업을 단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씨발, 나도 쉴 줄 알았는데.

애초에, 난 중졸이다.

업계 쪽 지식이라면 나름대로 자신도 있고, 서아를 가르쳐본 적도 있으니 그럭저럭 수업을 진행할 수는 있다.

허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

실시간으로 다양한 교육 플랜을 짜낼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인 교육 이론 따위 배운 적도 없다.

솔직히 말해, 본 수업 진행만으로도 벅찬데 거기까지 기대해도 곤란하단 말이죠~

참고할 만한 대상이라곤 중학교 시절 선생님들밖에 없고.

지금도 이미 실수 연발인 판국에, 여기서 추가 수업까지 진행하라니.

아무래도 떨떠름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교육 이론 하나 정립되지 않은 업계라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언제 짤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고.

그럼, 어쩔까.

사정 설명이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만, 방금 전 제시한 이유들이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고.

결국 나로서는 어찌저찌 머리를 짜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럼, 각자 어떤 수업을 듣고 싶은 건지 한 번 돌아가면서 발표해볼까?"

일단 이번 수업은 발표로 떼우자.

누구라도 손쉽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다.

"능력의 활용법을 가장 우선해서 배우고 싶네요."

"예은이는 그럴 만도 하지. 그럼, 지희는?"

"각자의 단점 보완? 선생님이라면 무슨 뜻인지 아실 거라고 믿어요~"

"……하긴, 네겐 꼭 필요할 수업이구나. 그래, 생각해 보마. 윤하는?"

"거, 몬스터 공부나 하죠. 실생활에서 쓸모 있는 수업 아닙디까."

"틀린 말은 아니네. 지식은 중요하지. 마지막으로, 하연이는?"

"전반적인 실력 상승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네."

다만, 이번엔 놀라울 정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네 명 다 필요한 부분이 다를 테니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환장의 호흡을 자랑하는 계집애들을 보건대, 아무래도 누구 하나 의견을 물릴 생각은 없는 듯했다.

적당히 애들이 바라는 수업을 위주로 해 볼까 했는데, 이래서야 원.

'혹시, 사이 나쁜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적어도 눈에 띌 만큼 서로를 싫어하진 않는 듯한데, 어째 이렇게 의견이 맞물리질 않는 건지.

허면, 어떻게 할까.

정 수단이 마땅치 않으면 매 시간마다 방금 전 언급된 수업들을 돌아가며 진행하거나, 혹은 2학기 수업으로 예정해두었던 부분을 끌어와 돌려막을 수도 있겠지.

다만, 그 쪽은 최후의 수단이다. 솔직히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뭐라도 얻어갈 수 있는 편이 서로에게 좋지 않겠는가.

'역시, 그거 뿐인가?'

맞춤형 수업.

당장 생각나는 건 그 정도였다.

기초 훈련에 더불어, 각 학생들에게 알맞은 전법을 쌓아올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훈련이다.

터놓고 말해, 다수를 상대로 가르쳐야 하는 아카데미식 교육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방법이다.

학교 수업보단 과외에 어울리는 방식 아닐까?

실제로, 나 또한 반쯤 포기하고 있었으니까.

애초에, 내가 아카데미에 들어온 건 헌터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교육 방법을 정립하기 위함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런 맞춤형 수업은 내 본 수업과는 어느 정도 반대 입장에 서 있는 교습법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당장엔 나를 위시로 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지식이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데이터가 축적되고 나면 누구라도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게 지금 내 방법.

그에 비해, 이 쪽은 전적으로 선생 측의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뭐, 괜찮겠지.'

거기까지 생각해 본 뒤, 나는 아무래도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애초에, 동아리 시간이 그런 거고.

이 교육법은 쓸 수 있네 쓸 수 없네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미래의 헌터 교육학자들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하물며, 이건 정규 수업도 아닌 동아리 활동의 일환이고.

무엇보다, 효과도 확실하다.

여하간, 자신에게 적합한 기술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실력은 자연스레 상승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런 분야에 자신이 있었다.

마력 감응.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능력을, 심지어 마법이 아닌 백병전에 응용하고 있는 나다.

지금은 나름대로 안정적인 전법을 구축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던가.

이 경험을 활용하면, 어떠한 전법이라도 가르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처음에 다른 교사들을 섭외하며 돌아다닌 건 단순히 내가 거기까지 커버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고.

동아리 내의 소수 인원이 상대라면, 오히려 시간이 남아돌 정도다.

"좋아. 다음 시간부터 동아리 수업도 진행할 테니까, 다들 준비 단단히 하고 오렴!"

결정을 내렸다면, 망설일 이유도 없다.

마침 적절하게 울리는 수업 종을 뒤로하고, 우리 동아리에 할애된 교실을 나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느 정도 가닥도 잡혔고.

그렇게.

5월, 3주차.

다시 한 번 아카데미 생활이 막을 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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