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후폭풍
* * *
자칭 여신을 최승준에게 대충 떠넘긴 뒤에야, 나는 교장실을 뒤로할 수 있었다.
어쩌면 몬스터가 헌터 협회의 회장이 되는 전무후무한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뭐, 괜찮겠지.'
사실, 꼭 나쁜 일은 아니다.
애초에, 나를 제외한 누군가가 여신의 정체를 파악한 적 따위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제 나름대로 어찌저찌 정체를 숨길 수 있다면 좋을 테고, 만에 하나 들키기라도 한다면 더더욱 좋다.
그 날로 곧바로 참수해버린 다음 간악한 몬스터들이 내부에서 협회를 좀먹고 있었다고 선동하기 딱 좋은 상황이고.
나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저 자칭 여신의 정체가 들통나길 바랄 뿐이다.
'문제는, 애들한테 뭐라고 설명하느냐는 건데~'
그런 생각을 삼키며 교정을 걷던 내 앞에, 문득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다가왔다.
그리고.
"……음, 사부. 지금 나오는 길?"
평소처럼 밝은 웃음을 가장하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서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씨발, 들켰구나.
동시에, 깨달았다.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일이라면서 최승준 녀석이 넘어갔던 문제가 무엇인지.
적막.
어색한 침묵이 우리 사이로 내려앉는다.
'씨발.'
도대체 어떻게 안 거지? 정말로 방독면 때문인가?
이 놈의 방독면, 나중에 돌아가면 버려버리던가 해야지.
그런 속내를 삼키며 투덜대기도 잠시,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서아가 아닌 내 쪽이었다.
"……조금 걸을까?"
"응."
다행히, 서아도 거부하지는 않았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 사이의 어색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지금 이 분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지 고만해 볼 수밖에 없었다.
*
"솔직히, 당신이 미워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화풀이였다고, 신서아는 생각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국민들 중 3할이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던 때.
횡단보도를 건너는 초등학생이 으레 그렇듯이, 자신만큼은 차에 치이지 않을 거라는 정체불명의 자신감으로 가득 찬 시절이었다.
집 앞에서 튀어나온 몬스터에게 부친을 잃고, 그 모습을 눈 앞에서 목격한 모친이 트라우마를 품게 될 거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으니까.
고작해야 한 달 전까지,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은 환경 속에 있었던 건지 모르고 있던 신서아는 이제 없다.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알고 있다 생각한 이 시대의 참상이 마침내 그녀의 가족을 향한 지금, 신서아는 여태까지 자신이 품고 있던 어설픈 동정심이 얼마나 얄팍했던 건지 실감했다.
때문에, 버팀목이 필요했다.
높이 날고 있는 새일수록, 떨어질 때의 충격은 큰 법.
가장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나서야, 그녀는 현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다니기 귀찮다고 투덜대던 고등학교조차, 이 삭막한 사회에선 특례나 다름없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 풍족한 편이었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엄격함을 앞두고 좌절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비루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은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부터 그토록 가혹한 풍랑을 자신의 몸으로 헤쳐나가야만 했다.
때문에, 그녀는 부친을 잃었다는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사회로 진출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까진 없다. 이런 사회니까 더더욱.
아버지는 그럭저럭 많은 양의 자산을 남기고 떠나셨으며, 어머니 또한 딸 한 명을 먹여살릴 여유는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증명이 되는 사회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만 있다면, 어느 기업에서도 그럭저럭 괜찮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겠지.
실제로, 신서아의 어머니 또한 딸이 헌터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피력할 때마다 그리 말씀하시곤 했다.
허나, 신서아는 깨달았다.
이 현대 사회가, 얼마나 위태로운 균형 위에 성립되고 있는 건지.
그럭저럭 많은 돈? 딸 한 명은 부양할 수 있는 여유?
그딴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몬스터 앞에선 얼마 되지 않는 자산 따위 단순한 휴짓조각이나 다름없다.
설마 몬스터가 돈을 받고 물러나길 하겠나 뭘 하겠나.
때문에, 어머니의 당부대로 고등학교 졸업장이 눈에 들어온 그 날.
신서아는 헌터가 되기로 했다.
다행히, 여지는 있었다.
얼마 전부터 이 근처에서 머물던 청년 헌터다.
……몬스터가 아버지를 잡아먹었던 바로 그 날, 순식간에 나타나 몬스터를 도살한 사냥꾼.
기이하게도, 스스로를 박우찬이라 밝힌 헌터는 곧바로 자리를 뜨는 대신 모녀의 곁에 머무르며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심지어 몬스터가 나타났을 땐 발작하기 시작한 어머니를 위해 조용히 몬스터를 사냥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런 젊은 사냥꾼의 얼굴에 깃든 건, 묘한 죄책감이다.
아무리 죽음에 익숙한 헌터라 해도, 눈 앞에서 생명이 사라지는 모습은 썩 유쾌한 게 아니었던 거겠지.
자신이 조금만 더 빨랐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당신이 죽인 거나 다름없으니까."
마침 딱 좋다.
신서아는, 사내의 양심을 이용하기로 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정말로 이 남자의 잘못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쪽은 도움을 받은 측이니까.
헌터의 죄책감을 자극해, 사냥에 필요한 기술들을 배운다.
설령 그렇다 쳐도, 보다 좋은 말투가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해 봐야, 자칫 잘못하면 역으로 사냥꾼의 화를 돋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역시 냉정하진 못했던 거겠지.
헌터의 기술을 훔치기 위해서.
스스로를 그런 이유로 속이지 않으면 힘들 정도로, 소녀가 느꼈던 충격은 컸다.
"만약 당신이 조금만 더 빨리 왔다면, 아빠는 죽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억지를 부렸다.
헌터의 기술을 훔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실제론, 속내를 풀 대상이 필요했던 거겠지.
대한민국 국민의 3할이,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 사실을 실감하게 된 신서아는, 누군가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알고 있다. 소설 속 이야기와 달리, 세상은 그렇게 형편 좋은 식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나타나면, 마석 경제 운운하면서 네 번째 산업 혁명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한다.
무언가 말도 안 되는 목적을 가진 흑막이 나타나 사실 이번 습격은 자신이 주도했다며 토로하는 일도 없고, 그런 흑막을 쓰러뜨린다 해서 단박에 인류 측의 사정이 좋아지지도 않는다.
신서아에게 일어난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게이트가 열렸고, 아버지가 죽었다.
말하자면 딱 그 정도다.
그 게이트가 역사에 남을 만큼 어마어마한 물건도 아니었고, 오히려 피해는 약소한 편에 속했다.
몬스터 또한 하필이면 민가까지 흘러든 졸개 중 한 마리에 불과했고.
요컨대, 신서아에게 일어난 불행은 딱히 특별한 수준도 아니었다.
여태까지 그녀가 모르고 있었을 뿐, 세상의 저변에서는 이런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었겠지.
세상은 여전했고, 그녀가 겪은 일 또한 마무리되었다. 게이트는 공략되었으며, 아버지를 살해한 몬스터 또한 헌터에게 죽음을 맞이했다.
마치 교통사고라도 일어난 듯했다.
분명 안타깝지만, 세상에 흘러넘치고 있는 불행 중 하나. 신문으로 치면 짤막한 부고 소식 한 줄.
소녀가 실감한 부채감은, 고작해야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신서아는 이를 견딜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는 세상이 미웠다.
그래서, 은인인 헌터를 힐난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보 같은 행동이라 매도했던 TV 속 사람들과 같은 행동이었다.
묘하게도, 사냥꾼은 그런 말을 토해내는 서아를 향해 짜증 섞인 얼굴로 폭언을 토해내거나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다.
단지, 그런 말을 하는 서아의 모습이 안타깝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한탄하듯이 수심 깊은 표정을 짓곤 했다.
콕콕, 마음 속에 남은 양심이 쑤신다.
하지만, 신서아는 의도적으로 눈을 돌렸다.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은인일 헌터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대신 계획대로 되고 있다며 스스로를 속였다.
그렇게, 신서아는 박우찬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 사이에서 감도는 막역함은, 마치 그 날의 침묵처럼 느껴졌다.
"많이 화났냐?"
박우찬은 간신히 그런 말을 꺼냈다.
너무나도 조심스러운 어투에, 신서아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화가 났냐니, 도대체 뭘 보고?
자신이라면 모를까, 박우찬이 사과해야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현실도피나 다름없는 퇴사였다고, 신서아는 자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는 와중에도, 길드 상층부는 이 쪽의 목숨줄을 쥐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들도 불안함을 느껴봤으면 했다. 솔직히, 홧김에 저지른 일이었고.
오랜만에 귀향한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팍팍하기 그지없는 길드 대신, 사부 옆에서 엄마가 해 준 밥이나 먹고 싶었다.
사부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외부인에게 상담할 수 있을 만한 사안도 아니었다. 때문에, 요 일주일 동안 그녀는 당장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하는 말을 억지로 끌어내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허나.
박우찬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고작해야 주말동안 자신의 고민을 완전히 해결해버린 것이다.
그 사실에, 신서아는 감사를 느끼면 느꼈지 이제 와서 탓할 까닭은 없었다.
"아니, 내가 보니까 그 길드 놈들이 존나 아니꼽더라고. 그래서 터트렸지 뭐냐. 거, 너한텐 직장인데 미안하게 됐다."
하지만, 박우찬은 으스대지 않았다.
오히려 상의 한 번 없이 저질러버린 자신의 행동에 제자가 화를 내진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뿐.
무심한 배려. 그리고 그 이상으로 가끔씩 고개를 내미는 소심함.
그런 남자였다.
사회나 세간의 안목 따위는 언제든지 바꿔버릴 수 있다는 듯 성큼성큼 개의치 않고 걸음을 내딛는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옆에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쩔쩔매는 사내.
지금만 해도 그랬다. 너를 위해서 그랬다, 네가 힘들어하는 게 보여서 그랬다…….
너무나도 쉬운 두 마디 말을 내뱉는 대신, 박우찬은 서아의 앞에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지분거리고 있었다.
필시, 본심일 테지.
정말로 박우찬은 이번 일이 서아를 위한 행동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제자인 신서아를 위해 이러이러한 일을 저지른 게 아니라, 누군가 제자인 서아에게 윽박지르는 꼴이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라고.
마치 어린애를 돌보듯, 박우찬은 아직도 그런 태도로 신서아를 대하고 있었다.
몇 년 전, 실수라 부르기도 민망한 일로 부친을 잃었던 소녀를 눈 앞에 두었을 때처럼.
혹은, 부친을 잃은 상실감으로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를 하기 힘들어 대신 원망을 토해내던 소녀를 앞두었을 때처럼.
그래서, 자신이 싫다 말하던 아이를 제자로 받아들였을 때처럼.
그런 사람이었다.
문득, 신서아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쩌면, 저 사람이 보기에 자신은 아직도 이런 상황이 닥치면 역으로 화를 내는 뻔뻔스러운 계집애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응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만.
동시에, 우습기도 했다. 그렇게 성격 나쁜 계집애를, 고작해야 제자라는 이유로 이렇게 챙겨주다니.
솔직히 말해, 이러다 사기라도 당하는 거 아닐까?
사실, 틀리 말도 아니다. 아마도, 박우찬이 보기에 신서아는 여전히 부모를 잃은 충격에 자신을 미워하는 여자애처럼 보일 테니까.
하지만.
언젠가, 박우찬이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헌터가 되려면, 어째서 그들이 초인이나 영웅 대신 사냥꾼이라 불리고 있는 건지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초인이나 영웅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며, 박우찬은 그런 말을 했다.
능력을 각성했다 한들, 무엇 하나 깨우친 적은 없다.
사람을 능가하는 힘을 가졌다 한들, 백마를 타고 도래한 초인은 아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그들을 영웅시한다 한들, 정녕 영웅과 같은 마음을 지닌 자는 한 줌도 되지 않는다고.
사실이었다.
신서아는, 초인도 영웅도 아니다.
때문에.
이유 없는 원망도, 억지로 눌러 담은 미움도 이미 오래 전의 일.
감정이란 마치 모닥불과 같아, 장작이 없으면 타오르지 못한다.
그렇기에,신서아는 더 이상 박우찬을 미워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던 계집애를 제자로 들여, 그렇게 몇 년.
그 시간동안, 신서아는 미움을 잊었다. 그 날, 자신이 느꼈던 공허함보다 더 많은 걸 받았기 때문이다.
어느덧, 신서아의 마음엔 슬픔이 아닌 다른 감정이 자리했다.
첫사랑이었다.
누구 하나 말해주지 않았지만, 신서아는 알 수 있었다.
글쎄, 무엇 때문이었을까? 싫은 소리 하나 없이 자신의 고집을 받아주던 그 모습에 반한 걸까,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억지에 상처 입은 표정을 짓던 그 얼굴에 마음이 동했던 걸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본래 사랑이란 그런 법.
하물며 여고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이 묘한 침묵도 어쩐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신서아는 박우찬의 변명 아닌 변명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을 향해 변변찮은 변명을 늘어놓는 저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답지 않게도 마음 속이 간질간질한 기분이 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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