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후폭풍
* * *
월요일이 찾아왔다.
다행스럽게도, 눈에 띄는 소란은 없었다.
덕분에, 나와 서아 또한 별다른 일 없이 평온한 오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이번에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불온한 시선을 던지긴 했지만.
'언제 날 잡아서 설명 정도는 해 줘야 할 텐데 말이지.'
예의 집단과 투닥대기라도 하면 모를까, 고작해야 길드 하나 상대하는 일이고. 구구절절 변명하며 비밀로 할 필요도 없겠지.
하물며, 이번에는 내가 먼저 도움을 요청한 상황.
하연이를 공유했다지만, 실질적으로 그녀들을 호출한 게 나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입 싹 닦겠다고?
내가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니지~
뭐, 그건 어디까지나 나중 이야기.
오후가 되자, 아카데미는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당연히, 예의 길드와 관련된 소식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3대 길드, 그 실태!!]
[무엇이 영웅이었던 헌터들을 이렇게 내몰았나?]
[길드 대표, 헛소문이라 일축.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길드 소속 헌터,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발언. 길드와 다른 길 가나?]
하나같이 요란한 타이틀이었다.
기자들이 이토록 벌떼같이 달려드는 걸 보면, 대침공 종식 이후 확실히 평화롭긴 했던 모양이다.
이번 일에 화가 난 이준구 또한 다소 힘을 실어주긴 했지만, 고작해야 익명 제보 하나만 가지고 이렇게 몰려들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아니, 단순히 재밌는 구도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3대 길드의 일원이라며 어깨에 힘 빡 주고 돌아다니던 양반들이, 게이트 앞에 팬티 바람으로 내걸린 꼴은 퍽 우스꽝스러웠다.
일단 기자 양반들한테 달려들기라도 하면 곤란할 테니 미리 무장해제시켰을 뿐이긴 한데…….
덕분에, 얼굴만 모자이크 된 사진들이 웃음보가 터질 만한 몰골로 뉴스 1면을 장식하고 있는 판국이다.
다만.
경박한 사진과 달리, 다루고 있는 내용은 결단코 가볍지 않았다.
여하간, 그 이준구가 분개할 법도 한 이야기였으니까.
몬스터를 가축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자 목격자를 암매장했다니, 무슨 도시괴담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무슨 괴담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거기에, 기사는 더했다.
몬스터를 키우기 위해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쓰여있는 게,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숫제 인간 모이라도 주지 않았겠냐는 어조가 대부분이었다.
'꽤 여파가 커지겠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벌써부터 타 길드의 성명 발표가 있었으며, 그런 비인도적인 실험에 동참한 적은 없다는 선언이 뒤를 이었다.
하긴, 이 정도면 헌터 업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만한 불길이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산불은 언제나 조기 진화가 답이고.
덕분에, 일부 세력의 눈물겨운 변호 따위는 없을 듯했다.
지금 누군가 변호하겠다고 나서기라도 했다간, 순식간에 식인종 소리를 듣게 생겼으니.
물론, 내 알 바는 아니다.
그럴 만한 일이었으니까.
애초에, 정말로 이 길드 하나만 손을 대고 있었던 사업일진 또 모를 일이다.
눈치가 있다면 이 기회에 손을 터는 녀석들 또한 나올 테고, 아니면 멍청하게 계속해서 사업을 추진하다 줄줄이 털리는 녀석도 있겠지.
헌터의 이미지 실추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막말로, 업계에서 제일 큰 손 중 하나가 저런 짓거리를 저질렀는데 이미지가 멀쩡하길 바라는 쪽이 놀부 심보다.
어느 쪽이든, 이번 일은 헌터 업계에 있어 자숙의 기회가 되겠지.
뭐, 내가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저지른 일은 아니긴 하지만.
'씨발, 꼬우면 평소부터 잘 하던가~'
내가 해 줄 말은 딱 그 정도였다.
아니, 초등학생도 아니고. 안 들키면 그만이라고 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넌 초등학생이냐?"
그리고.
나는 정작 최승준에게 그런 말을 듣고 있었다.
아카데미, 교장실.
이젠 슬슬 익숙해질 법도 한 방 안에는, 평소 이상으로 묵직한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물론, 나 때문이다.
휴우…….
"미리 말해두지만, 따질 생각은 아니야."
"아, 진짜로?"
최승준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반색하며 외친다. 허나, 다음 순간 득달같이 나를 노려보는 녀석에 조용히 눈을 깔기로 했다.
딱히 쫄리는 게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전략적 후퇴다 전략적 후퇴.
'씨박 새끼, 따질 생각 아니라매.'
마침내 찾아온 오후.
온 아카데미가 이번에 있었던 일로 떠들썩한 가운데, 최승준은 나를 교장실로 호출했다.
왜냐하면 녀석은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나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씨발, 어떻게 알았지?
"증인 중 한 명이 말했다더군. 방독면을 뒤집어쓴 괴한이 우리를 도왔다고."
"아, 그 새끼."
가급적 나라는 사실을 숨길 생각으로 쓴 방독면이 오히려 내 정체를 특정하는 단서가 되다니.
세상에 이처럼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아니, 없다.
"잠깐, 고작 방독면 하나 쓰고 있었다고 내가 범인이라는 건 너무 넘겨짚는 거 아니냐?"
"헌터 업계에 방독면 쓰고 다니는 게 너 말고 누가 있다고?"
"독이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잖아."
"진심으로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 사실 내가 그랬다."
결국 무언의 압력 앞에 패배하고 말았다.
아니, 그래도 뒷처리는 확실할 거라고.
"애초에 내가 방독면 쓰고 다닌다는 게 잘 알려진 사실도 아니고."
"틀린 말은 아니지. 실제로, 인터넷에서 네 정체를 추론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독가스를 염려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 판국이니."
다만.
최승준은 내 그런 변명 아닌 변명에 첨언을 달았다.
"내가 초등학생같다고 말한 건,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 부분이다."
"크윽."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말한 최승준은 곧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 무슨 의도인지 짐작이 가긴 한다만. 아카데미가 얽히지 않도록 수를 쓴 거겠지?"
"내 입으로 말하긴 조금 그렇긴 하지만."
"됐어. 나도 이제 와서 뭐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 애초에, 너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위해선 네가 이번 사건의 범인이라고 공표해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건 최승준은 물론이요, 아카데미 측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때문에, 나 또한 녀석이 침묵할 거라는 건 예상할 수 있었다.
"물론, 이해할 수는 있다. 이번 일만큼은 내가 어떻게 해도 도울 수 없었을 테니까."
"도울 일도 아니고."
"그래. 도울 생각도 없었지. 하지만, 미리 기별 정도는 넣어야 나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준비할 수 있지 않겠냐."
그렇게 들으면 또 최승준에게 엄청난 민폐였지 싶다.
나로서는 만에 하나라도 최승준이 얽힐 일 없도록 하려면 차라리 비밀로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녀석은 헌터 업계는 물론이요 재계에서도 상당한 유명 인사다.당연히 기자들의 마이크가 향할 수밖에 없겠지.
그 때를 생각하면, 오히려 최승준에겐 이번 일을 미리 털어놓고 말을 맞추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카데미는 이번 일과 관계가 없다고 대답한 시점에서 내가 이번 일을 저질렀다는 게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나야 짤려도 그만이지만, 녀석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되겠지.
"아니, 미안하다 야."
"됐다, 징그럽게. 신서아 헌터를 위해 지불하기엔 손해일지 몰라도, 너를 묶어두기 위한 값이라 생각하면 차고도 남으니."
"……응? 내가 속사정까지 말한 적 있었던가?"
"네 좁은 교우관계를 생각해 보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지."
틀린 말도 아니었다.
요컨대, 그런 이야기.
어느 날, 평소처럼 사냥에 나섰던 서아가 어쩌다 보니 길드의 치부를 알게 되었다.
당연히,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어 헌터가 된 서아로서는 납득할 수 없었겠지.
허나.
자신과 함께 현장을 목격한 길드원들의 앞날에 대한 걱정. 혹은, 길드 측에서의 협박.
서아 정도가 되면 길드 측에서도 쉬이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겠지만, 결국 서아의 몸은 하나에 불과하다.
만일 길드 측이 작정하고 서아네 친가를 습격하기라도 한다면?
내가 있다 해도, 사시사철 24시간 하숙집에 붙어있을 수는 없다.
하물며, 기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서아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
직장 생활에 염증을 냈던 일 또한 마찬가지일 테고. 진절머리를 내다 못해, 무심코 사표까지 냈을 정도니.
본인으로서는 소소한 반항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길드 입장에선 더더욱 서아를 주시할 수밖에 없다.
그 날,길드가 보낸 전령과 대면한 서아는 이를 한층 깊게 실감하게 되었다. 그야 술에 의지하고 싶은 기분도 들겠지.
그리고.
그런 마음을 찔러 제자에게 술을 먹인 못난 스승은, 뒤늦게 사정을 깨달았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필시 길드 또한 이 이상 서아를 겁박할 여유는 없겠지.서아에게 말하고 움직이지도 않은 만큼, 서아를 의심할 여지도 없다.
애초에, 내부 고발자가 누구인지 색출할 상황도 아니고.
보나 마나, 헌터들 대부분은 이번 일로 말미암아 길드를 떠날 테니까.
사실상 길드의 붕괴다.
애초에 이런 결과를 유도했던 거지만.
"아카데미와 관련 없는 일이라면 더더욱."
이런 사정이니만큼, 아카데미의 힘을 빌릴 여지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내가 범인이라는 게 밝혀지면 동종업자들 사이에서 백안시당할지도 모르고.
때문에, 언제든지 쳐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도 마쳐뒀건만.
아무래도 녀석에겐 이번 일을 공표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내가 범인이라는 게 밝혀져 봐야, 아카데미 교장으로선 손해밖에 없을 테니까.
뭐, 애초에 헌터로서의 정체성이 어쩌고 동종업계가 저쩌고 할 성격도 아니다만.
천성이 기업가인 녀석이다. 도리어 몬스터 가축화라는 사업에 눈독들이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승준이 지금 이 상황에서 몬스터 가축화 사업을 추진할 만큼 바보는 아니다. 기업 이미지만 훼손될 게 뻔하고.
"덕분에 예의 집단이 몬스터를 다루던 방법도 대강 감이 잡히는군. 아마도 몬스터에 의한 테러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겠지."
"뭣?"
"……왜 거기서 놀라냐?"
"아니, 별 거 아냐."
"그래. 하지만, 문제가 두 개 있다."
"세 개나?"
"두 개라니까."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최승준은, 그러나 곧 다시금 입을 떼었다.
"첫째는 네 개인적인 문제니 넘어가고, 실질적인 문제는 두 번째가 되겠지."
"그렇게 들으니까 첫 번째도 궁금한데."
"두 번째 문제는, 협회와의 관계다."
"이 새끼, 남의 말을 경청할 줄 모르잖아."
물론 이번에는 내가 밑지는 입장이었기에, 닥치고 경청하기로 했다.
"협회장이 네 정체를 눈치챘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지만, 아무래도 이 쪽에서 접촉하긴 껄끄러워진 게 사실이다."
"뭐, 자칫 잘못하다 내가 범인이라는 이야기가 새어나갈 수도 있으니까."
"그래. 그리고 그 경우, 당연히 제 앞마당을 망친 당사자를 협회장이 달갑게 여기진 않겠지."
"그게 왜?"
"예의 집단과 맞서기 위해선, 협회의 협력이 필수불가결하다. 적어도, 국내의 헌터들을 단결시킬 필요가 있으니까."
"아, 그건 그렇지. 저 쪽 첩자들을 걸러낼 필요도 있고."
"문제는, 이번 일로 협회장의 포섭이 실질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그렇게 들으니까 겁나 미안해지는데?"
"아니,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
"응?"
"솔직히 말해, 그 집단의 세력은 상상 이상이야. 정계나 재계는 물론, 헌터 업계까지 뿌리내리고 있으니까. 앞의 둘은 나나 이준구가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헌터 업계는 힘들지."
뭐, 한 명은 겸직 불가능한 국회의원에 다른 한 명은 아카데미 교장 자리를 맡고 있으니까.
둘 다 업계에선 전설적인 헌터로 통하긴 하지만, 실시간으로 헌터 업계를 휘어잡긴 힘들다.
적어도 대리인은 있어야 할 테고, 그걸 위해 생각해 둔 인선이 협회장이라는 건데.
'응?'
그렇게 들으니 뭔가 불안한 흐름인데?
마치 정계 재계 카드계를 휘어잡고자 하는 삼형제처럼, 각 계층을 언급하던 최승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렇다 해서 헌터 업계를 포기할 순 없지. 만일 녀석들이 무언가 일을 저지르려 하면, 가장 중요한 건 녀석들의 속셈을 분쇄할 무력이 될 테니까."
"야, 잠깐."
"문제는, 지금 협회장과 관계를 개선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 어쩔 수 없지만, 머리를 갈아치우는 일 또한 염두에 둬야겠지."
"잠깐, 그게 가능하다고? 아니, 생각해 보니까 될 것 같긴 한데. 이 흐름 조금 그렇다?"
"그 때가 오면, 너는 협회장이 되어줘야겠다."
"씨발놈아."
마치 무소의 뿔처럼 꼿꼿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녀석의 모습에, 나 또한 그리 외치고 말았다.
아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진심 에바야."
"그래도 너 말곤 할 사람이 없어. 인재도 그렇지만, 신뢰성이 문제니까."
"아니, 그래도 내가 협회장 따위를 할 수나 있겠냐? 씨발, 나보고 서류 작업이나 하라고?"
"할 수 있냐 없냐 하는 문제가 아냐. 해야지."
너무나도 단호한 최승준의 말에, 나 또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씨, 씨발. 협회장이라고? 내가?
"아니, 너도 알잖냐. 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협회랑 사이 겁나 나빴거든?"
"걱정하지 마라. 당장 필요한 일은 아니니까. 뭐, 앞날을 고려하면 정치적 기반 정도는 다져두는 게 좋겠지만."
"야,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 보자고. 적재적소라는 말이 있잖아? 이런 인사로 정말 괜찮을까?"
"달리 그런 인재가 있다면 고려해 볼 순 있겠지만 말이지."
그리 말하며, 최승준은 코웃음을 쳤다.
사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내게 헌터 업계는 물론이요 협회 상층부까지 이름이 알려진 지인 따위가 있을 리 없으니까.
거기에, 신뢰도까지 따지면 더더욱 그렇고.
하지만.
"그거면 되냐?"
"엉?"
*
"안녕, 나 여신 티아마트. 앞으로 잘 부탁해."
그리고.
내가 데려온 여자의 자기소개에, 최승준 또한 폭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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